[1]1 Definition
1. 정의
'중개성'이라는 단어는 슈탄젤에 의해서...
스토리가 중개된다. 서술자의 담화에 의해서. 하나나 두개의 방법으로.
스토리가 개방적으로 전달되든 (이야기꾼 역할을 하는 서술자를 통해) ~ 이야기-화자
혹은 직접적이고, 비-중개적인 제시를 통해 중개성 자체가 가리워지든 ~ 반성자-화자
반성자 모드에서는, 스토리의 중개적인 전달이 기본적인 근간이 된다 (구조주의 서사학에서)
쥬네트는, 중개성이 2중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담화(discourse)와 서술(narration : 서술자의 말하기 행동) - 서사 담론
프린스는, 내러티브를 언제나 중개하고 있는 서술 층위(mediating narratorial level)를 가진다고 하였다
채트먼은, 영화와 비-언어 내러티브를 다루기도 했는데... "내러티브 전달"에 대해서 말했다. - 이야기와 담화
최근에는, 다양한 미디어의 강조점/역점 - 내러티브를 사용하는 - 다른 장르와 내러티브의 형식에...
>> transmit, transmission 이란 게 계속 나오네 ( "전달"의 중요성)
2 Explication
2 설명, 해설; 전개
내러티브는
1) 스토리에 대해서 말하고 코멘트하는 서술자에 의해서 중개된다.
2) 생각하고, 느끼고, 인지하는 에이전트에 의해서 중개된다.
슈탄젤은 화자-캐릭터와 반성자-캐릭터를 구분한다. 허구적 사건의 중개자.... 라고 주장하면서 <서사의 이론>
그러나, 중개된 스토리 요소 ex) 사건 연쇄, 화자-캐릭터가 서술하고, 알려주고, 코멘트 하는 것 - 뉴스나 메시지를 전달하듯이
반면, 반성자-캐릭터는 서술하거나 전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독자가 행동을 인식하다 반성자 캐릭터의 시선을 통해서
이러한 가리워진 중개성은 - '비중개성의 환상'을 만들어 낸다.
쥬네트가 소위 'narrating instance'라고 했던 것은 커뮤니케이션적인 행동이었다. 개시하게/착수하게 만드는 행동
무엇을? 스토리를 생성해내는 스토리와 내러티브 담화 모두를
더 자세하게는, 'narrating instance'는 대표한다 이벤트와 존재(스토리), 그리고 그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중개되는 것을
Chatman speaks of the process of “narrative transmission” as “the source or authority for the story” (1978: 22). For him, the process of narrative transmission centrally concerns the relationship between story time and discourse time as well as issues of voice and point of view. Chatman discriminates between “overt narrators,” who communicate directly to the reader, and “covert narrators,” who remain more or less hidden in the narrative’s discursive shadows (Chatman, Seymour (1990). Coming To Terms: The Rhetoric of Narrative in Fiction and Film. Ithaca: Cornell UP.1990: 115). Fludernik argues that all narrative is built on the mediating function of consciousness, a complex “natural” category with several available cognitive frames to choose from. She integrates Stanzel’s mediacy into a more general cognitive model of narrative transmission based on “real-life” schemata. Teller-mode narratives are mediated by the consciousness of a narrator; reflector-mode narratives by the consciousness of a protagonist; and neutral narratives by the reader who “views” and constructs narrative experience (1996: 50).
채트먼은 "서사적 전달" 과정에 대해서 말했다. "스토리를 위한 원천과 권한/작가성"
그에게 있어, 내러티브 전달의 과정은 중심적으로 중요하다 스토리 시간과 담론 시간의 관계에
또한 목소리와 시점의 문제도 중요하다
채트먼은 독자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외적 서술자"와 내러티브의 담화적인 그림자에 숨어 있는 "내적 서술자"를 구별한다.
Fludernik은 내러티브가 중개적인 기능ㅡ의식적이고, 복잡한 "자연적" 카테고리, 그로부터 인지적인 틀을 추려낼 수 있는ㅡ에 기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슈탄젤의 중개서을 보다 일반적인 인지 모델에 적용한다. '실제-삶' 스키마에 기반한 서사적 전달
화자-모드 내러티브는 서술자의 자각/의식(consciousness)에 의해 중개된다
반성자-모드 내러티브는 주인공의 자각/의식에 의해서 중개된다
: 그리고 내러티브 경험을 구조화하고 "바라보는" 독자에 의한 중립적인 내러티브
Underlying the question of what constitutes narrative is the concept of mediacy. While most narrative theorists define narrative in terms of event sequences, Stanzel and Genette reject blanket uses of the term “narrative,” the latter defining narrative stricto sensu as a “verbal transmission” ([Genette, Gérard ([1983] 1988). Narrative Discourse Revisited. Ithaca: Cornell UP.1983] 1988: 16). In Stanzel’s account, drama and film are im-mediate renderings of story, while (verbal) narrative is a mediated representation—mediated by the discourse of a narrator (openly mediated) or a reflector (obliquely mediated by presenting an illusion of im-mediacy). In contrast, Chatman also considers plays, movies, and cartoons to be narrative because they present stories (Chatman, Seymour (1990). Coming To Terms: The Rhetoric of Narrative in Fiction and Film. Ithaca: Cornell UP.1990: 117). For him, there are “diegetic” and “mimetic” forms of narrative; narratives can be told or shown. Finally, Fludernik’s redefinition of narrativity on the basis of experientiality, i.e. “the quasi-mimetic evocation of ‘real-life experience’” (1996: 12), and its mediation through consciousness allows her to open up the field of narrative inquiry not only to drama and film, but also to oral storytelling and some kinds of poetry
무엇이 내러티브를 중개성의 개념으로 구성하느냐의 문제
대부분의 서사 이론가들이 내러티브를 사건 연쇄(이벤트 시퀀스)의 관점에서 정의하는 반면,
슈탄젤과 쥬네트는 "내러티브"라는 용어의 사용에 장막??을 거부한다
후자들은 내러티브를 "구두적 전달"로서..
슈탄젤의 설명에서는, 극과 영화는 비-중개적인 스토리의 번역(rendering)이다.
반면, 구두적인 내러티브는 중개된 표현(reperesentaion)이다ㅡ 서술자의 담화에 의해서 중개되는 (공개적으로 중개되는)
혹은 반성자(간접적으로 중개되는, 비-중개성의 환상을 제시함으로써)
이와 대조적으로, 채트먼은 연극과 영화 만화 또한 내러티브라고 여긴다
왜냐하면 그들이 '스토리'를 제시(present)하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 그들은 '서사세계'적이고 '모방적'인 내러티브 형식이다
내러티브는 말하여지거나 보여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Fludernik의 서사성에 대한 재정의는 체험성(experientiality)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실제-삶 경험의 의사-모방적인 환기법
“the quasi-mimetic evocation of ‘real-life experience’”
그리고 이러한 중개성은
그녀에게 내러티브의 장을 열어젖히게 한다. 극이나 영화 뿐만 아니라, 구술 스토리텔링이나 어떤 종류의 시까지도 (서사적인 연구)로...
through consciousness allows her to open up the field of narrative inquiry not only to drama and film, but also to oral storytelling and some kinds of poetry
3 History of the Concept and its Study
개념과 연구의 역사
[7]
3.1 Mediacy from Plato to Stanzel
중개성 ㅡ 플라톤에서 슈탄젤까지
[8]
슈탄젤의 중개성 개념은 '모방'과 '디에게시스' 사이의 구분으로부터 기인한다. Lubbock [Lubbock, Percy (1921). The Craft of Fiction. New York: Scribner.1921: 62
플라톤의 디에게시스 혹은 '순수한' 모드에서, 문학은 '그 자신이 화자이고 우리에게 제시하려고 시도하지조차 않는다 그 자신이 말하는 것 말고는' >> 화자 신경 안 쓰고 씨부린다는 거
그러나 모방적인 모드에서는, 문학은 "그 자신이 다른 누군가인 것처럼 말을 전달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문학은 이 두 가지 모드의 혼합으로 이루어진다. 에픽 시처럼(서사시)
플라톤이 스피치 재현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할지라도, 플라톤적인 모방/디에게시스 구별은 이분법이다 오래 이어진
이는 내러티브와 드라마의 장르적인 차이를 이룬다
슈탄젤 : 극에 부여된 것은 비중개성의 축 (스토리의 중개되지 않은 재현)
그러므로 모방과 중개성을 플라톤적 감각과 엮자능>_ㅇ
While for Plato (and later Stanzel) the term “diegetic” refers to narratorial discourse (i.e. the act of telling), Genette uses the term diégèse (adopted from Souriau Souriau, Etienne (1951). “La structure de l’univers filmique et le vocabulaire de la filmologie.” Revue internationale de filmologie 7/8, 231–40.1951) to denote의미하다, 나타내다 the fictional world of the characters ([Genette, Gérard ([1972] 1980). Narrative Discourse: An Essay in Method. Ithaca: Cornell UP.1972] 1980: 27 n. 2, [Genette, Gérard ([1983] 1988). Narrative Discourse Revisited. Ithaca: Cornell UP.1983] 1988: 17–8). Genette’s term diégèse has many affinities with Aristotle’s notion of mimesis. For Aristotle, “pure” narratives and direct representations are two varieties of what he calls mimesis because both represent a world (2002: 1448a). Similarly, Genette’s notion of diégèse refers to the primary story level, specifically excluding the narratorial discourse which is constitutive of both Plato’s and (in his wake) Stanzel’s understandings of diegesis. For Genette, “the diégèse is [...] the universe in which the story takes place” ([Genette, Gérard ([1983] 1988). Narrative Discourse Revisited. Ithaca: Cornell UP.1983] 1988: 17). Despite this terminological disparity, however, Genette and Stanzel agree with regard to the constitutive narratorial mediation of narrative, even though for Genette this is achieved through the narrating instance. For him, the narrator’s speech act produces the story through the narrative discourse.
플라톤에게 있어서 '디에게시스'는 서사적인 담론을 의미했지만,
쥬네트는 '디에게시스'를 캐릭터의 허구적 세계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서사담론>
쥬네트의 '디에게시스' 용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 개념과 많은 유사성을 지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순수한' 내러티브와 직접적인 재현이 그가 '미메시스(모방)'라고 부르는 것의 두 가지 다양성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두 개다 세계를 표상하기 때문이다
유사하게, 쥬네트의 '디에게시스' 개념은 기본적인 스토리 레벨을 의미한다. 특히 플라톤과 슈텐젤이 이해한 '디에게시스' 개념을 이루고 있는 '서술적인 층위'를 배제한다.
쥬네트에게 있어서, "디에게시스'는 ... 스토리가 일어날 수 있는 세계이다 >>> 서사 세계 말하고 있는 거구먼. 허구적으로 창조된 서사 세계. 재현이니 제시니 이런 건 별로 안 중요한 개념
이러한 용어적인 분리에도 불구하고, 쥬네트와 슈탄젤은 내러티브의 구성적이고(구성요소이자) 서사적인 중개성에 대해서 (둘다) 동의한다. 쥬네트에 있어서는 narrating instance를 통해서 성취되기는 할지라도. 쥬네트는 서술자의 발화와 행동(화행)이 서사 담론을 통해서 이야기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Stanzel’s concept of mediacy is directed against Spielhagen’s prescriptive demand for “objectivity,” i.e. immediacy of presentation ([Spielhagen, Friedrich ([1883] 1967). Beiträge zur Theorie und Technik des Romans.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1883] 1967: 220). Stanzel seeks to counter the excessive demands of “neutralists” like Spielhagen, who argued that the narrator should remain completely invisible throughout the narrative and thus wished to see every trace of a narrator erased. Stanzel’s proposal is closely related to Friedemann’s argument that the presence of a narrator in prose writings is in no way inferior to immediacy in drama, since the narrator is evocative of actual experience of the world. According to Friedemann, it is the narrator “who evaluates, who is sensitively aware, who observes” ([1910] 1965: 26), thus conveying an image of the world as s/he sees it, not as it is in a depersonalized objectivity.
슈탄젤의 중개성 개념은 <-> Spielhagen '객관성?'에 반하는 개념 - 객관성은 재현의 비중개성.
슈탄젤은 Spielhagen처럼 중립주의자로 과도하게 주창하는 것에 대해 반발했다. (걔는 서술자는 완전히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내러티브에서. 그렇게 모든 서술자드르이 흔적이 지워지기를 바랐다)
슈탄젤의 제안은 매우 관련이 있다. Friedemann의 논의 - 산문 예술에 있어 서술자의 존재는, 극의 비중개성에 비해서 전혀 열등하지 않다! 서술자는 세계의 실제적인 경험성에 대해서 evocative환기시키기 때문에. Friedemann에 따르면, 서술자는 "평가하고, 감각적으로 깨어 있으며, 관찰하는 자" 그러므로 그/그녀가 보고 있는 세계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비개인화된 객관성과는 다르게!
From the beginning, Stanzel presents the concept of mediacy as the linchpin for a definition of the term “narrative,” and he puts forth a sophisticated argument for mediacy as a gradable concept ([1955] 1971: 6). More specifically, he points out that mediacy is more or less foregrounded (as revealed by the presence or absence of comments by an authorial narrator), but its absence in the figural narrative situation is merely apparent. In the final version of his model, Stanzel revises the figural narrative situation by integrating it into the illusion of immediacy in order to constitute the reflector mode of narration, which is responsible for producing this illusion. In opposing the teller mode and the reflector mode, he significantly reformulates his original typology, dating from 1955, by instituting two basic types of mediacy: teller-mode and reflector-mode mediacy.
슈탄젤은 중개성의 개념을 제시했다. '내러티브'라는 용어를 정의하는 (조직・계획 등의) 핵심적인 요소로!
그리고 그는 등급이 있는 개념으로 중개성을 개념화하기 위해 정교한 논의를 진행했다
특히, 그는 중개성이 대략적으로 전경화되어있다고(?) 지적했다. 작가적인 서술자에 의한 코멘트의 존재/부재에 따라 나타난다고
인물적인 내러티브 상황.. 그것의 부재는 대체적으로 명백하다.
그 모델의 마지막 버전에서, 슈탄젤은 인물적인 내러티브 상황을 결합시켰다 비중개성의 환상과 ~ 서술에 있어서 '반성자 모드'를 구성하기 위해서
반성자 모드는 이러한 환상(비중개성)을 생산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
반성자 모드와 화자 모드와는 다르게, 그는 그의 원래 유형학을 재구조화했다 : 화자-모드와 반성자-모드 중개성이라는 두 개의 기본적 타입의 중개성을 구성하면서
In this discussion, Stanzel proceeds from three pairs of oppositions arranged as scaled categories of person, perspective, and mode (mediacy). The first element of the narrative situation, person, is based on the relations between the narrator and the characters, and it ranges from identity (first-person reference) to non-identity (third-person reference) of the realms of existence of the narrator (→ Narrator) and the characters (→ Character). Perspective directs the reader’s attention to the way in which s/he perceives the fictional world, extending from internal (perception located in the main character or within the events) to external (perception located at the periphery of the events) (→ Perspective/Point of View). Finally, mode breaks down into “overt mediacy of narration [teller mode, J.A./M.F.]” and “covert [...] mediacy which produces the illusion of immediacy in the reader [reflector mode, J.A./M.F.]” (Stanzel [Stanzel, Franz K. ([1979] 1984). A Theory of Narrative. Cambridge: Cambridge UP.1979] 1984: 141).
슈탄젤은 인칭(person), 시점(perspective), 그리고 양식(mode)의 중개성이라는 세쌍의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서술 상황의 첫번째 요소 1) 인칭(person) - 서술자와 캐릭터의 관계 / 동일성(1인칭 레퍼런스) vs 비동일성(3인칭 레퍼런스)
서술자의 존재 영역에 따라서
<<이 부분은 책에 다 번역되어있음. 슈탄젤 책 볼 것
Stanzel regards the three narrative situations (first-person, authorial, and figural) as descriptions of basic possibilities of theorizing narration as mediacy. He also introduces a dynamic analysis into narrative transmission by demonstrating that narrative situations do not span entire novels uniformly. In his remarks on narrative dynamization, he discusses narrative profile and narrative rhythm. Although this dynamization is defined as a dynamization “of the narrative situation,” i.e. a study of “the variations of the narrative situation during the course of the narrative process,” the subsequent analysis actually focuses on the “relation of the narrative parts, that is, to dialogue and dramatized scene; specifically [on] their purely quantitative ratio and their distribution” ([Stanzel, Franz K. ([1979] 1984). A Theory of Narrative. Cambridge: Cambridge UP.1979] 1984: 63–7). Besides these proportions, the incidence of direct speech vs. indirect and free indirect speech and thought representation is also taken into account. The second term, narrative rhythm, concerns the distribution of narratorial emphasis in a specific novel and refers to the fact that in most novels, the narrator figure manifests him- or herself prominently at the beginning of the text and sometimes at the end, but then lapses into inactivity when the plot becomes exciting, resurfacing only at moments of narrative report, commentary, or description. The result of this configuration is a simultaneous “decrease in these authorial intrusions [which] parallels the increase of the hero’s ‘perspective solipsism’” ([Stanzel, Franz K. ([1979] 1984). A Theory of Narrative. Cambridge: Cambridge UP.1979] 1984: 69).
슈탄젤은 세 가지 서술 상황 (1인칭, 작가적, 인물적)을 서술(narration)을 중개성으로 이론화하는 기본적인 가능성의 설명으로서 여겼다. 그는 또한 서술 상황이 소설 전반에 균일하게? 확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서사 전달의 역동적인 분석을 도입했다.
그 역동성을 위해 논의한 것 : 내러티브 프로필 / 내러티브 리듬
이러한 역동화? 활성화? 는 서술 상황의 역동화로서 정의된다.
내러티브 프로세스의 과정 동안 서술 상황의 다양화에 대한 연구
내러티브 부분 - 다이얼로그와 드라마화된 장면 ; 특히 순수하게 양적인 비율과 그것의 분배
이러한 비율 말고도, 직접적인 화법(speech) vs 간접적이고 자유 간접 화법의 발생정도
사고의 재현 또한 고려할 만하다.
두번째 용어, 내러티브 리듬은, 서사적인 강조의 분배?를 고려한다.
대부분의 소설에서, 서술자 인물은 그- 혹은 그녀가 현저하게 나타내다 텍스트의 시작에서부터... 때때로는 마지막에
lapse (특히 무엇을 잊어버리거나 부주의해서 하는 작은) 실수[과실], 깜박함
(두 가지 사건 사이의 시간적) 경과
플롯이 흥미로워질 때 비행동성의 경과?
내러티브 레포트, 코멘터리, 묘사의 순간에 다시 떠오르면서
이러한 배치의 결과는 동시적인 "감소" - 작가적 침입 주인공의 관점적 유아론
decrease in these authorial intrusions [which] parallels the increase of the hero’s ‘perspective solipsism’
Nevertheless, it must be noted that the introduction of the three axes (identity vs. non-identity of realms of existence; external vs. internal perspective, teller vs. reflector modes) and emphasis on the dynamization of the narrative situation tend to foreground “mode” (i.e. the distinction between tellers and reflectors) and to background “person” (Cohn Cohn, Dorrit (1981). “The Encirclement of Narrative.” Poetics Today 2, 157–82.1981: 168). Cohn additionally points out that Stanzel’s category of perspective merges the “presentation of space (the visible outer world)” into the “presentation of consciousness (the invisible inner world)” (175). And since perspectives on fictional space and fictional minds do not always coincide (Uspenskij Uspenskij, Boris (Uspensky) (1973). A Poetics of Composition: The Structure of the Artistic Text and Typology of a Compositional Form. Berkley: U of California P.1973: 105–07), Cohn considers this axis to be less unified than the other two (cf. also Cohn Cohn, Dorrit (1990). “Signposts of Fictionality: A Narratological Approach.” Poetics Today 11, 775–804.1990). She therefore proposes to simplify Stanzel’s typological circle by subsuming the category of perspective under the heading of mode (Cohn, Dorrit (1981). “The Encirclement of Narrative.” Poetics Today 2, 157–82.1981: 179).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가지 축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존재의 영역에서 동일성 vs 비동일성 / 외부적 vs 내부적 시점 / 화자 vs 반성자 모드)
서사 상황의 역동화를 강조하는 것은 "모드"를 전경화하는 경향이 있다 / "인칭"을 후경화하고
도릿 콘은 추가적으로 지적했다. 슈탄젤이 한 시점의 카테고리가 "공간의 제시(presentation)- 시각적인 외부 세계"를 병합한다고 보이지 않는 내부 세계의 의식의 제시로
허구적 공간의 관점과 허구적인 마인드가 늘 동일하지 않듯
도릿콘은 이러한 축이 덜 융합되어있다고 여긴다 다른 두 개에 비해서
그녀는 그러므로 슈탄젤의 유형원을 다눈화한다.
시점의 카테고리를 모드의 헤딩 아래로 합쳐버림으로써?
내러티브의 에워쌈. - 시학 투데이.
3.2 Mediacy in Genette and Chatman
쥬네트와 채트먼의 중개성
쥬네트는 슈탄젤이 양식을 카테고리화한 것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쥬네트는 "우리의 일반적인 시점의 카테고리는 쉽게 축소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쥬네트에 관점에서, 슈탄젤의 구분 : 화자 / 반성자 캐릭터는 "목소리"의 문제에 있어서 혼란스럽다. 인칭 (누가 말하는가?)이 그러한 '모드' 혹은 '시점'(누가 보는가?)와 같이 있을 경우에 특히나.
쥬네트는 도릿 콘의 수정을 받아들여, 슈탄젤의 이론에 다른 분류체계를 제안했다. 처음의 유형(원래 슈탄젤의 모형을 말하는 듯)은 대체적으로 자주 나타나는 상황에 대하여 너무 제한되어 있는 최초의 유형을 다양화시킨다. >> 너무 세분화시켰다느 건가?
쥬네트의 모델은 서술하는 (누가 말하는가?) 형식의 1) 동종제시와 이종제시의 cross-tabulation (교차적인 도표.목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2) 초점화의 3가지 유형으로도 이루어져 있다. 쥬네트는 이러한 분류체계가 향상성(improvement)이 있어야 된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더욱 시스템적이고 일반적인 내러티브 형식(동종제시 서술에 외부 최점화가 나타난 어떤 작품, 어떤 작품..)을 덜 포함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Stanzel’s mediacy is equivalent to what Genette calls “narrating act” and “narrative.” More specifically, Genette discriminates between “story (the totality of the narrated events), narrative (the discourse, oral or written, that narrates them), and narrating (the real or fictive act that produces that discourse—in other words, the very fact of recounting(특히 자기가 경험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다)” ([Genette, Gérard ([1983] 1988). Narrative Discourse Revisited. Ithaca: Cornell UP.1983] 1988: 13). In this model, the narrating act shapes and transforms the story through the narrative discourse. Similarly, Rimmon-Kenan uses the terms story, text, and narration ([Rimmon-Kenan, Shlomith ([1983] 2002). Narrative Fiction: Contemporary Poetics. London: Methuen.1983] 2002: 3), while Bal modifies Genette’s terminology by arguing that it is by way of the text that the reader has access to the story, of which the fabula is a memorial trace that remains with the reader after the reading ([Bal, Mieke ([1985] 1997). Narratology: Introduction to the Theory of Narrative. Toronto: U of Toronto P.1985] 1997: 5).
슈탄젤의 중개성은 쥬네트가 "서술 행위" 그리고 "내러티브"라고 불렀던 것과 동등하다. 더욱 자세하게는, 쥬네트는 "스토리(서술화된 사건의 총체성)"과 "내러티브(스토리를 서술하는 담화, 구술 혹은 문자로 쓰여진), "내래이팅"(담론을 만들어 내는 실제적이고 허구적인 행위) .. 이러한 모델에서, 서술 행위는 스토리를 구성하고 전달한다. 비슷하게, 리몬-케년은 "스토리, 텍스트, 서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미케 발이 쥬네트의 용어를 수정한 것에 반해. (리몬 케넌은 그냥 썼다는 거지)
미케 발이 어떻게 수정했냐면 독자가 스토리에 접근하는 방식에 따라~ 파불라~ 리딩~ >>관련 책 참고
When Chatman introduced the principle of “narrative transmission,” he discriminated between “overt narrators,” “covert narrators,” and forms of “non-narration” for neutral narratives (Chatman, Seymour (1978). Story and Discourse: Narrative Structure in Fiction and Film. Ithaca: Cornell UP.1978: 22). Later, Chatman rejects the idea of non-narration by arguing that “every narrative is by definition narrated—that is, narratively presented” (Chatman, Seymour (1990). Coming To Terms: The Rhetoric of Narrative in Fiction and Film. Ithaca: Cornell UP.1990: 115), but he maintains the distinction between overt and covert narrators, equivalent to Stanzel’s mediacy. His model is in close agreement with Stanzel’s, except that he includes drama and film among the narrative genres and therefore does not reduce narrative transmission or mediacy to the discourse of a narrative voice. Chatman provides a sliding scale from overt to covert narrators based on the linguistic markers of subjectivity, the presence of narratorial comments, and the use of evaluative phrases. Like Stanzel and Genette, he argues that all narratives have a narrator, so that all three theorists clearly oppose the Banfieldian “no-narrator” theory (Banfield, Ann (1982). Unspeakable Sentences: Narration and Representation in the Language of Fiction. Boston: Routledge & Kegan Paul.1982), according to which certain sentences of fiction cannot possibly be enunciated by a narrator. Chatman argues that “narrative presentation entails an agent,” even when “the agent bears no signs of human personality” (Chatman, Seymour (1990). Coming To Terms: The Rhetoric of Narrative in Fiction and Film. Ithaca: Cornell UP.1990: 115). The three authors agree that narratives always present a story which is mediated by a narrator’s discourse. Furthermore, Chatman stresses the conjunction of story and mediatory discourse by pointing out that “narrative entails movement through time not only ‘externally’ (the duration of the presentation of the novel, film, play), but also ‘internally’ (the duration of the sequence of events that constitute the plot)” (9).
채트먼이 "내러티브 전달"이라는 원칙을 도입했을 때, 그는 "overt 서술자" "covert 서술자"를 중립적인 내러티브를 위한 "논-내레이션'의 형식과 구분했다. 이후, 채트먼은 논-내레이션이라는 아이디어를 거부한다. "모든 내러티브는 서술되는 것이다ㅡ서술적으로 제시된다" >> 그러니까 역사적인 기록도 결국 어느 정도 스토리성을 갖출 수 밖에 없다능. 서술된다는.
그러나 그는 "overt 서술자" "covert 서술자"의 구분은 유지한다. 슈텐젤의 중개성과 마찬가지로.
채트먼의 모델은 슈탄젤의 논의와 유사한데, 채트먼의 경우 드라마와 필름을 포함시켰다는 점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내러티브 보이스의 담론에 대한 중개성과 서사적인 전달을 낮추지 않았다!does not reduce
채트먼은 overt에서 covert까지의 슬라이드 스케일 형식을 제공했다. 주관성(서사적인 코멘트의 존재)의 표지에 대한 언어학적인 논의를 통해서.
슈탄젤과 쥬네트처럼, 채트먼 또한 모든 내러티브는 서술자를 갖고 있으며, 그러므로 이 세명의 이론가들은 "Banfieldian “no-narrator” theory"와 대치된다. 서술자에 의하여 (또렷이) 말하다
채트먼은 "내러티브 제시는 에이전트를 포함한다" "에이전트가 인간적인 성격을 전혀 갖고 있지 않더라도"
이러한 세 저자는 내러티브가 언제나 스토리를 제시한다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 서술자의 담화에 의해서 중개되는 스토리!
나아가, 채트먼은 스토리와 중개적인 담화의 결합을 역설한다. 내러티브는 '외부' 시간(소설을 읽는 시간, 영화와 극을 상영하는 시간의 지속성) 뿐만 아니라 '내부' 시간(플롯을 구성하는 사건의 연쇄와 지속)의 흐름에 의한 운동성을 포함한다고" 지적하면서
It is quite apparent that Stanzel’s teller mode corresponds to Chatman’s scale which ranges from overt to covert narration (i.e. from subjective and foregrounded tellers to “objective,” neutral, and backgrounded narration). By contrast, with regard to Stanzel’s reflector-mode narrative, in which an illusion of immediacy is projected, Chatman (Chatman, Seymour (1978). Story and Discourse: Narrative Structure in Fiction and Film. Ithaca: Cornell UP.1978: 198) argues that a covert narrator expresses the thoughts of a character, while Genette ([Genette, Gérard ([1983] 1988). Narrative Discourse Revisited. Ithaca: Cornell UP.1983] 1988: 115) describes such a scenario as heterodiegetic narration with internal focalization. What the two terminologies fail to take into account, however, is the prototypical absence of a foregrounded narrator in reflector-mode narratives or, to put it differently, the fact that in order to read an extended passage as internal focalization, a pronounced teller must not interfere because such a foregrounded narrative voice would impede a reading of the text from the character’s perspective. Stanzel shows that Modernist novels (e.g. Joyce’s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establish a representation of the narrative world which is (or seems to be) filtered through the consciousness of the protagonist (cf. also James [James, Henry ([1909] 1934). “Preface to The Ambassadors”. H. James. The Art of the Novel: Critical Prefaces. New York: Scribner’s, 307–26.1909]: 322–25). This effect can only be achieved by completely backgrounding the narrative voice reporting on external events (for a critique of this claim, see Schmid Schmid, Wolf (1968). “Zur Erzähltechnik und Bewusstseinstechnik in Dostoevskijs ‘Večnyj muž’.” Die Welt der Slaven 13, 294–306.1968). By distinguishing between a teller and a reflector mode, however, the mere reduction of the narratorial voice to a default existence is not sufficient to characterize the reflector mode, since it is equally necessary to have a predominant internal perspective to produce the relevant effect. The reflector mode as mode only makes sense theoretically when one conceives of a different type of transmission through the character’s perspective or consciousness in contrast to the prominent (first- or third-person) teller-mode narrative which is mediated by an explicit transmitter.
슈탄젤의 화자 모드는 채트먼의 overt covert 내레이션의 범주와 부합하다는 것은 뚜렷해 보인다. 반면, 슈탄젤의 반성자-모드의 내러티브 - 비중개성의 환상이 주입된 것은, 채트먼이 논의했다. 캐릭터의 생각을 covert 서술자는 표현한다고. 반면 쥬네트는 그러한 시나리오를 내부 초점화의 동종제시 서술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두 가지 체계는 모두 다 설명하는 것을 실패했다. 반성자-모드 내러티브에서의 전경화된 서술자의 '부재' (이건 전형적인prototypical 것이다)
확장된 단락을 내부 초점화로 읽기 위해서는, pronounced단호한 화자는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전경화된 내러티브 보이스는 impede 지연시키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읽기를. 캐릭터의 관점으로부터.
슈탄젤은 모더니즘 소설(조이스)은 주인공의 의식과 생각을 거쳐서 나오는 내러티브 세계의 재현을 구축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효과는 내러티브 보이스를 완전히 뒤로 뺐기 때문에(후경화)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내러티브 보이스는 외부적인 이벤트를 보고하고 있는 목소리였거든.
그러나 화자와 반성자 모드를 구분함으로써, default existence에 대한 서사적인 보이스의 단순한 축소는 충분치 않게 되었다. 반성자 모드를 캐릭터라이징하는 데 있어서. 왜냐하면 주도적인 내부 시점이 동일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relevant effect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양식'?으로서의 반성자 모드는 이론적으로 말이 된다. 이럴 때만 > 어떤 사람이 conceive마음속으로 상상하다 다른 종류의 전달을. 캐릭터의 시점 혹은 의식성에서 주도적인 화자-모드 내러티브 외부적 전달자의 중개성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3.3 Newer Developments
Schmid (Schmid, Wolf (1982) “Die narrativen Ebenen ‘Geschehen,’ ‘Geschichte,’ ‘Erzählung’ und ‘Präsentation der Erzählung.’” Wiener Slawistischer Almanach 9, 83–110.1982) puts forth an alternative model of narrative mediation by breaking down the story vs. discourse dichotomy into four terms: Geschehen (events); Geschichte (fabula or story); Erzählung (plot); Präsentation der Erzählung (narrative discourse). He goes on to posit three processes of transformation between these levels, all of which are accomplished by the narrator. According to Schmid, the mediating narrator first selects particular situations, characters, events, and qualities from the invented story material and transforms them into a story. The narrator then transforms the story into a narrative plot, going through a process that correlates with the linearization of simultaneous event sequences and the permutation순열 of chronological story segments. And finally, the narrator presents the narrative by verbalizing it in a particular style. However, as Cohn argues, fictional narratives do not typically transform something pre-existent into a narrative, and they are thus plotted rather than emplotted (Cohn, Dorrit (1990). “Signposts of Fictionality: A Narratological Approach.” Poetics Today 11, 775–804.1990: 781). It is therefore worth noting that Schmid assumes an ideal-genetic perspective: the invented story material logically precedes the presentation of the narrative.
Schmid 얘는 내러티브 중개성에 대한 대안적인 모델 제시. 스토리와 담화의 이분법을 파괴시킴으로써.
이벤트(사건) / 스토리(파블라) / 플롯 / 내러티브 담론
그는 이러한 층위들 사이의 변환 과정을 세 가지로... 그 모든 것들은 서술자에 의해서 성취된 것이다.
Schmid에 따르면 중개하고 있는 서술자는 처음에는 특정한 상황, 캐릭터, 이벤트, 자질을 선택한다. 개발된 스토리 요소로부터. 그리고 그것을 스토리로 변환한다.
서술자는 스토리를 내러티브 플롯으로 변환하며, 이 과정에서 동시적인 사건 시퀀스를 선형적으로 만들고,연대기적인 스토리 부분을 순열화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술자는 그것을 특정한 문체로 언어화함으로써 내러티브를 제시한다. 그러나, 도릿 콘은 허구적인 내러티브가 전형적으로 변환하지 않는다고 한다. 기존에 존재하던 내러티브.. 그러므로 그들은 플롯화된다.
Schmid의 이상적인-유전적? 관점 : 개발된 스토리 요소는 논리적으로 내러티브의 제시를 앞서간다. precede
Fludernik (Fludernik, Monika (1996). Towards a ‘Natural’ Narratology. London: Routledge.1996) takes Stanzel’s concept of mediacy further by locating all mediation in narrative transmission through consciousness (which can surface on several levels and in different shapes). For her, all narratives operate through the projection of consciousness—the character’s, that of the narrative voice, or the reader’s. She also departs from the general tendency to identify narrativity (→ Narrativity) with the presence of a story/plot transmitted in narrative discourse. While most narrative theorists define narrative through sequentiality or progression, Fludernik argues that there can be narratives without plot, but there cannot be narratives without a human experiencer of some sort at some narrative level. She redefines narrativity in terms of experientiality, with embodiment constituting the most basic feature of experientiality: embodiment evokes all the parameters of a real-life schema of existence which has to be situated in a specific time and space frame. In addition, she broadens the analysis to include a wide variety of narratives, following on from Chatman (Chatman, Seymour (1978). Story and Discourse: Narrative Structure in Fiction and Film. Ithaca: Cornell UP.1978: 96, Chatman, Seymour (1990). Coming To Terms: The Rhetoric of Narrative in Fiction and Film. Ithaca: Cornell UP.1990: 115) and Bal ([Bal, Mieke ([1985] 1997). Narratology: Introduction to the Theory of Narrative. Toronto: U of Toronto P.1985] 1997: 5).
Fludernik은 슈탄젤의 중개성 개념을 확장한다. 서사적 전달에 있어서 모든 중개성을 의식성을 통해 위치시킴으로써..
그녀에게, 모든 내러티브는 의식의 주입을 통해 작동한다 ㅡ 캐릭터의, 내러티브 보이스, 독자의.
그녀는 또한 서사성을 규정하는 일반적인 경향으로부터 분리시킨다. 스토리/플롯이 내러티브 담론으로 변환되는 제시를.
대부분의 내러티브 이론가들이 내러티브를 연쇄적이고 진행적인 것을 통하여 규정하는 것에 반해,
Fludernik은 플롯이 없는 내러티브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 오올! 흥미로운데?
그러나 인간의 경험이 없는 내러티브는 없을 수 없다. 내러티브 층위의 어떤 측면에서든. >> 오! 진짜 흥미롭다
그녀는 서사성을 재개념화한다. 경험성(experientiality)의 측면에서...
-특수한 시간과 공간의 프레임에 위치되어있는- 실존, 실제 삶의 스키마의 패러미터를 떠올리게 해주는 전형embodiment
게다가, 그녀는 분석을 넓힌다. 내러티브의 폭넓은 다양성을 포함기 위해서. 채트먼처럼.. 발..
Fludernik는 내러티브 전달이 일어나는 방법을 확장시킬 것을 ㅈ베안했다. 모든 중개성(혹은 중개)는 인지적인 스키마를 통해 일어난다
중개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스토리가 아니다. (비록 내러티브의 대부분이 그래도..) 경험성이다! 보고성?과 지점?을 결합시키는??
>>Tellability 이것 정돈 찾아봐도 될듯
Reportability은 흥미를 특징화시킨다. 그 흥미란 화자와 청자가 내러티브 안에서 즐기는 것이다. 이야기를 말하기 위한 동기를 지칭하면서
“Reportability” characterizes the interest which tellers and listeners entertain in narratives while “point” refers to the motivations for telling the story
경험은 행동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감정과 생각은 전경화되나, 어떤 내러티브는 실제로 플롯 없이 작동한다.
플롯 없는 내러티브의 예시
체화된 보이스가 계속 같은 이상한 세계를 반복한다.
Mediacy is constituted by the following cognitive frames or schemata, all of which relate to our real-world knowledge (about telling, experiencing, viewing/observing, and reflecting) and provide us with access to the narrative: (a) the “telling” frame (narratives focusing on a teller figure); (b) the “experiencing” frame (narratives roughly corresponding to reflector-mode narratives); (c) the “viewing” frame (this frame occurs less frequently than (a) or (b), but relies on a basic witness position in relation to observed events); (d) the “reflecting” frame (when narratives project a ruminating consciousness). Consciousness mediates these frames in the reading process in which readers narrativize what they read as narrative, resorting to these four schemata but also to generic concepts and narratological tools as well as basic real-world knowledge (such as our understanding of intentionality as a goal-oriented process) which is also stored in scripts and frames (Fludernik Fludernik, Monika (1996). Towards a ‘Natural’ Narratology. London: Routledge.1996: 12–52). on this basis, natural narratology moves away from the idea of the narrator or the illusion of narration to a wider spectrum of cognitive frames and processes on different levels which feed into the constitution of narrative and its reception. Like all cognitive approaches, this model is grounded in the real-world frames of everyday experience and is reader- rather than production-oriented (Alber Alber, Jan (2005). “‘Natural’ Narratology.” D. Herman et al. (eds). Routledge Encyclopedia of Narrative Theory. London: Routledge, 394–95.2005).
중개성은 인지적인 프레임 혹은 스키마를 통해 구성된다. 이것들은 우리의 실제-세계 지식과 연관되어 있다. (이야기기하기, 경험하기, 보기/관찰, 반성하기) 그리고 우리에게 제공한다 내러티브에 대한 접근을.
(a) '말하기' 프레임 : 이기꾼 인물에게 집중하는 내러티브
(b) "경험하기' 프레임 : 반성자-모드 내러티브와 상호작용하는 내러티브
(c) '보기' 프레임 : a와 b보다 덜 일어나지만, 관찰된 사건에 관련하여 기본적인 목격 포지션에 의존하고 있는 것
(d) "반성하는" 프레임 : 심사숙고하는 의식성을 주입하는 내러티브
의식성은 중개한다 이러한 프레임들을 읽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그들이 읽고 있는 것을 내러티브라고 서사화하며, 이러한 4가지 스키마는 의지, 의존... 실제-세계의 지식 뿐만 아니라 generic포괄적인 개념과 서사학적인 도구에... (예를 들어 우리의 목적-지향적인 과정으로서의 의도성에 대한 이해) 스크립트로 축적되고 프레임... 이러한 기반에서, 자연적인 서사학은 서술자의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서술의 환상은 인지적인 구조의 더 넓은 스펙트럼.... 다른 레벨을 갖게 된다 내러티브의 구조를 반영되다.. 내러티브와 그 수용.
다른 인지적인 접근처럼, 이 모델 또한 매일 겪는 경험의 실제-세계 프레임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리고 독자-지향적 (생산보다는).!!
>> Fludernik 이 학자 들어 온 책은 많은데 번역된 게 없네~~~ 번역 좀 해라 이 시키들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The question of mediacy in narrative fiction has also been examined by Walsh, who argues quite provocatively that “the narrator is always either a character who narrates, or the author” (2007: 78). For him, “extradiegetic heterodiegetic narrators […], who cannot be represented without thereby being rendered homodiegetic or intradiegetic, are in no way distinguishable from authors” (84). Walsh suggests eradicating both “impersonal” and “authorial” narrators. While the first case aligns with Stanzel’s illusion of immediacy, the second differs radically from Stanzel’s distinction between authors and authorial narrators. Walsh maintains that the only way to account for the knowledge of an authorial narrator would be to take quite literally the figurative concept of omniscient모든 것을 다 아는, 전지적 narration: “in order to know rather than imagine, the (evidently superhuman) agent of narration must indeed have such power, or some lesser or intermittent version of it” (73). Thus, omniscience is not a faculty possessed by a certain class of narrators, but a quality of the author’s imagination. While some theoreticians infer from this an implied author (→ Implied Author) (“an ideal, literary, created version of the real man” [Booth (Booth, Wayne C. ([1961] 1983). The Rhetoric of Fiction. Chicago: U of Chicago P.1961) 1983: 75]) as the mediating agent of narrative, Walsh speaks of “the author,” stating that “our idea of the author of a written narrative is no more than an interpretation” (2007: 84). Two things are worth noting here. First, the difference between Booth’s implied author and Walsh’s interpretation of the author is of course minimal or non-existent. Second, why should it be problematic to argue that third-person narrators can occasionally have “supernatural” (Ryan Ryan, Marie-Laure (1991). Possible Worlds, Artificial Intelligence, and Narrative Theory. Bloomington: Indiana UP.1991: 67) or “unnatural” (Cohn Cohn, Dorrit (1999). The Distinction of Fiction. Baltimore: Johns Hopkins UP.1999: 106) powers?
내러티브 픽션에서 중개성의 문제는 Walsh에 의해서도 다루어졌었다.
Walsh는 "서술자는 언제나 서술하는 캐릭터이거나, 작가이다."라고 함
"외부제시 동종제시 서술자..." > 작가랑 구별 안된다는
Walsh는 "비개인적'이고 '작가적'인 서술자를 없애버리자고 제안했다. 첫번재 케이시는 슈탄젤의 비중개성의 환상에 맞춰 조정된다고 하여도, 두번째는 다르다 작가와 작가적 서술자를 구별하는 슈탄젤과
Walsh는 작가적 서술자의 지식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꽤나 문학적으로 취해져야.. 전지적 서술의 인물적인 개념
상상하는 것보다 더 잘 알기 위해서, 서술의 에이전트는 그러한 권력을 가져야 한다 정말로. 간헐적인 버전이라도!
그러므로, 전지적이라는 것은 특정한 서술자의 클래스에 의해서 독점되는 능력이 아니라, 저자의 상상력의 퀄리티다. 몇몇 이론가들이 내포적 작가를 이상적, 문학적, 창조된 버전.. 이라고 한다. 쓰여진 내러티브의 작가의 아이디어는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 독창적 창조가 아니라?
첫째, 부스의 내포 작가와 왈시의 작가의 해석은 최소한이거나 비-존재적이다.
둘때, 왜 그것이 문제가 된단 말인가 3인치 서술자가 때때로 '초자연적'이나 '비자연적'인 것이? >>> 마리 로르 라이언 나오넹 하이여ㅎㅎ
3.4 Mediacy and Narrative Media
중개성과 내러티브 미디어
>>>이때의 미디어는 디지털 미디어 같은 거 아님
As pointed out in Nünning & Nünning (2002) and Wolf (2002), the definition of narrativity in reference to experientiality and the extension of mediacy to include an open list of cognitive frames, scripts, and schemata lead in the direction of transmedial and transgeneric narratology, as proposed in Fludernik (1996; → Narration in Poetry and Drama; → Narration in Various Media). Many forays have recently been made into the area of narratological approaches to film, hypertext narrative, ballet, comic strips, drama, poetry, even painting and music (Ryan 2006, ed. 2004; Wolf 2002, 2003a, 2003b, Wolf, Werner (2004). “‘Cross the Border—Close that Gap’: Towards an Intermedial Narratology.” European Journal of English Studies 8, 81–103.2004; Nünning & Nünning 2002). In this area, Chatman (Chatman, Seymour (1978). Story and Discourse: Narrative Structure in Fiction and Film. Ithaca: Cornell UP.1978, 1990) was an important innovator, for it was he who staked out a place for film in narratology (→ Narration in Film) and who also confronted narrative with other text-types, putting the concept of narrative under a new light.
누닝 누닝>_<과 울프가 지적한 바 있듯,
체험성과 관련된 서사성의 정의는 .. 그리고 중개성의 확장은 인지적인 프레임, 스크립트, 스키마,
트랜스 미디어와 트랜스 장르 서사학에~~~
많은 시도가 최근에 이루어졌다. 영화, 하이퍼텍스트 네러티브, 발레, 만화, 드라마, 시, 회화와 음악의 영역에서.. 이런 영역을 서사학적으로 접근하려는!
이러한 영역에서, 채트먼은 중요한 혁신자이다. 영화를 서사학 영역으로 들여온 자라서.
Chatman sees narrative transmission as media-related, and he therefore dissociates narrativity from the figure of a human narrator (Chatman, Seymour (1990). Coming To Terms: The Rhetoric of Narrative in Fiction and Film. Ithaca: Cornell UP.1990: 116; cf. Ryan Ryan, Marie-Laure (2001). “The Narratorial Functions: Breaking Down a Theoretical Primitive.” Narrative 9, 146–42.2001, Ryan, Marie-Laure (2006). Avatars of Story. Minneapolis: U of Minnesota P.2006). Although he reintroduces a so-called “cinematic narrator” for film, this figure is not a human or human-like narrator as in novels. Rather, the term denotes “the organizational and sending agency” (1990: 127) behind the film and fulfills a neutral or covert shower or arranger function. The notion is similar to what Jahn calls the “filmic composition device (FCD),” which refers to “the theoretical agency behind a film’s organization and arrangement” (Jahn, Manfred (2003). “A Guide to Narratological Film Analysis.” <http://www.uni-koeln.de/~ame02/pppf.htm>.2003: F4.1). Even so, the question of who (or what) mediates a film as a whole remains highly disputed. Bordwell, for one, argues that film has narration but no narrator, and that consequently cinematic narration is created by the viewer (Bordwell, David (1985). Narration in the Fiction Film. London: Routledge.1985: 61). on the other hand, Lothe (like Chatman) posits a cinematic or film narrator as “the superordinate ‘instance’ that presents all the means of communication that film has at its disposal” (Lothe, Jakob (2000). Narrative in Fiction and Film: An Introduction. Oxford: Oxford UP.2000: 30). And finally, theoreticians such as Gaut speak of an “implied filmmaker” who mediates the film (Gaut, Berys (2004). “The Philosophy of the Movies: Cinematic Narration.” P. Kivy (ed). The Blackwell Guide to Aesthetics. Malden: Blackwell, 230–53.2004: 248). From the perspective of natural narratology, one can alternatively argue that film resorts more generally to the “viewing” frame than to the “telling,” “reflecting,” or “experiencing” frame.
채트먼은 서사적 전달을 미디어-관련으로서 보았다. 그리고 그는 분리해서 생각했다. 서사승을 "인간" 서술자 인물으로부터.
그가 "영화적 서술자"를 도입했지만.. 소설에서와 같은 인간 같은 내러이터는 아니다
>>영화 관련된 내용인 듯 패스패패스
보여주는 프레임임~
말하기, 반성하기, 경험하기 프레임보다는
Like experimental literary narratives (Alber Alber, Jan (2009). “Impossible Storyworlds―And What To Do With Them.” Storyworlds: A Journal of Narrative Studies 1, 79–96.2009), new media such as hypertext narratives or computer games require the introduction of new cognitive frames into the model proposed by Fludernik. From this perspective, mediacy does not refer to mediating through a (narrator’s) discourse, but mediation through consciousness. More specifically, we can gain access to these new media through the identification of consciousness. The verbal medium of a teller/narrator is only one possibility among many others; cognitive frames such as viewing, observing, experiencing, and reflecting (and maybe others) also play an important role.
경험적인 문학적 내러티브처럼, 하이퍼텍스트나 컴퓨터 같은 뉴미디어는 새로운 인지적인 프레임의 도입을 필요로 한다. Fludernik이 제안한 모델 같은.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중개성은 (서술자의) 담론을 통하여 중개되고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의식을 통한 중개.
특히나, 뉴미디어에 대한 접근을 얻을 수 있다. 의식을 규정함으로써. 언어적인 매체 ... 인지적인 프레임 : 보기, 관찰, 경험, 반성 중요한 역할을 한다
However, some of the media that have come into focus since the turn towards transmedial narratology are hard to analyze on the basis of narratological categories. As shown by Wolf (2002), paintings and music can only occasionally be narrativized. These aesthetic products lack crucial elements of experientiality in what they are able to represent (most types of music are perhaps not able to represent anything at all). With poetry, the situation is more vexed. on the one hand, there is narrative poetry (the epic, the ballad), a genre much neglected by narrative theory. on the other hand, many lyric poems exist that are also readable as narratives or contain narrative elements (Fludernik Fludernik, Monika (1996). Towards a ‘Natural’ Narratology. London: Routledge.1996: 304–10; Hühn Hühn, Peter (2002). “Reading Poetry as Narrative: Towards a Narratological Analysis of Lyric Poems.” Ch. Todenhagen & W. Thiele (eds). Investigations into Narrative Structures. Frankfurt a.M.: Lang, 13–27.2002, Hühn, Peter (2005). “Plotting the Lyric: Forms of Narration in Poetry.” E. Müller-Zettelmann & M. Rubik (eds). Theory into Poetry: New Approaches to the Lyric. Amsterdam: Rodopi, 147–72.2005; Hühn & Schönert Hühn, Peter & Jörg Schönert (2002). “Zur narratologischen Analyse von Lyrik.” Poetica 34, 287–305.2002; Müller-Zettelmann Müller-Zettelmann, Eva (2002). “Lyrik und Narratologie.” V. Nünning & A. Nünning (eds). Erzähltheorie transgenerisch, intermedial, interdisziplinär. Trier: WVT, 129–53.2002, Müller-Zettelmann, Eva (2011). “Poetry, Narratology, Meta-Cognition.” G. Olson (ed). Current Trends in Narratology. Berlin: de Gruyter, 232–53.2011; Schönert et al. Schönert, Jörg, et al. (2007). Lyrik und Narratologie: Text-Analysen zu deutschsprachigen Gedichten vom 16. bis zum 20. Jahrhundert. Berlin: de Gruyter.2007). All types of poetry (narrative and lyric) are mediated by a speaker. The lyric persona also clearly operates as a mediator on the “reflecting” frame. However, this does of course not turn lyric poetry into a narrative genre. Lyric poetry does not typically evoke experientiality, i.e. temporal and spatial parameters, and thus lacks the situatedness of narrative. In prototypical cases of lyric poetry, we are confronted with the musings of a disembodied voice about feelings or abstract ideas.
그러나, 어떤 미디어는 서사학적 카테고리로 분석하기 어려운 트랜스 미디어 서사학~
Wolf 회화와 음악도 때때로 서사화될 수 있다. 이러한 미학적 상품은 체험성의 중요한 요소를 간과하고 있다. 그들이 재현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체험성. (대부분의 음악은 ..) 시의 경우, 상황은 더욱 곤란하다.
ㅅ시에도 서사는 있지만...
모든 종류의 시는 화자에 의해서 중개된다.
시적인 페리소나는 "반성하는" 프레임의 중개자
그렇다고 해서 시가 내러티브 장르가 된다는 건 아니다..
시는 전형적인 '체험성'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패러미터 -> 이런 게 체험성의 예시 / 내러티브의 상황성 부족~
Drama has long been a neglected object of narratological analysis. Drama was the focus not only of Aristotle’s discussion of mimesis and has thus become a subtext of all narrative theory, but like epic forms it is closely bound up with sequentiality and thus invites narratological analysis. Hence, Pfister (Pfister, Manfred ([1977] 1988). The Theory and Analysis of Drama. Cambridge: Cambridge UP.1977) undertakes a narrative analysis of drama, studying the relationship between story time and discourse time. Since then, Richardson (Richardson, Brian (1987). “Time is Out of Joint: Narrative Models and the Temporality of the Drama.” Poetics Today 8, 299–310.1987, (중략)2008) have started to focus on drama and its relation to narrative. Much of this work analyzes elements in drama which have to do with mediacy such as the introduction of teller figures (the Stage Manager in Wilder’s Our Town), first-person narrators (Henry Carr in Stoppard’s dream play Travesties), or the fictionalizing of stage directions to include psychonarration, puns, or authorial commentary (Fludernik Fludernik, Monika (2008). “Narrative and Drama.” J. Pier & J. Á. García Landa (eds). Theorizing Narrativity. Berlin: de Gruyter, 355–83.2008). For the present purpose, these impositions of a teller figure on the plot level, the introduction of an extradiegetic frame into the play, or the narrativization of stage directions are not really relevant due to the fact that the mediacy of drama is constituted by other factors. Plays partake of the same stock of cognitive parameters and depend on the same reception frames as do other narratives. Since plays represent experientiality, they are narrative, irrespective…을 돌아보지 않고, …을 무시하고, …에 개의치 않고 of narrator figures or additional narrative techniques (such as the use of music). In other words, having a narrating character on stage, for example, is not required to bring plays within the domain of narrative.
극은 오랫동안 서사학적인 분석에서 간과되어 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논의한 '모방' ... 내러티브 이론의 하위 텍스트
연쇄성
그러므로, 드라마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야기 화자의 소개로서 중개성
1인칭 서술자 단계 방향성 / 작가적 코멘터리
드라마의 중개성은 구성된다. 다른 요소에 의해서
연극은 체험성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내러티브이고, 서술자 인물의
플레이를 내러티브의 영역으로 데려올 필요는 없다
From this perspective, a problem very similar to that of film arises: what is the discourse level of drama? Here, the dramatic performance needs to be distinguished from the dramatic text (→ Performativity) (cf. also Jahn Jahn, Manfred (2001). “Narrative Voice and Agency in Drama: Aspects of a Narratology of Drama.” New Literary History 32, 659–79.2001: 675). Does one treat only performances as drama in which performance is the discourse and the script merely the plot with instructions on how to perform? Or is performance a separate manifestation of the play and the play script the equivalent of the dramatic discourse? If one takes the text as central, it could be argued that an idealized abstract performance is sketched in it and that a unique center of origin can be posited for the performance: the text underwrites a singular “meaning” of the play that one might associate with “the implied author,” i.e. the real author’s “second self,” which, according to Booth, satisfies “the reader’s need to know where, in the world of values, he stands, that is, to know where the author wants him to stand” ([Booth, Wayne C. ([1961] 1983). The Rhetoric of Fiction. Chicago: U of Chicago P.1961] 1983: 73).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영화에서도 비슷한 문제점이~ 드라마의 담론 레벨은 무엇인가? 드라마적인 수행은 드라마적인 텍스트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극에 있어서의 내러티브 보이스와 에이전시 : 드라마 서사학의 국면
"내포 저자"와 실제 작가의 '제 2의 자아' ... 부스에 따르면, "독자의 필요 어딘가, 어디에 서길 바라는가.."
By contrast, if the performance is to be taken as the only acceptable discourse, there results a collaborative venture—as in film—for which the term “dramatic composition device,” in analogy with Jahn’s “filmic composition device” (Jahn, Manfred (2003). “A Guide to Narratological Film Analysis.” <http://www.uni-koeln.de/~ame02/pppf.htm>.2003: F4.1), might be appropriate. Most crucially, assuming performance to be the basic medium of drama requires taking account of the acoustic, visual, kinetic, and spatial aspects of a performance within narratological description. Jahn in fact argues that plays “are structurally mediated by a first-degree narrative agency which, in a performance may either take the totally unmetaphorical shape of a vocally and bodily present narrator figure [...] or remain an anonymous and impersonal narrative function in charge of selection, arrangement, and focalization” (Jahn, Manfred (2001). “Narrative Voice and Agency in Drama: Aspects of a Narratology of Drama.” New Literary History 32, 659–79.2001: 674). This suggestion is of course reminiscent of Chatman’s distinction between overt and covert narrators. If only the script and a possible performative realization are focused on as the relevant medium of drama, then kinesis, lighting, and sound would acquire narratological significance only if they are explicitly grounded in the script. The performance level in drama is much more complicated than in film. Filming results in one fixed copy of the narrative, whereas with plays a variety of productions and different performances within each production occur, and none of them (unless videotaped) is accessible except in a viewer’s experience of watching the performance.
<<연극과 관련된 서사적 층위 / 중개성의 문제 (연행과 연기하는 것까지 모두다? 아니면 극본만? 어디까지나 경계이며.. 이에 따라 '서사'라고 규정하는 요소들이 어디까지 확장되거나 변화되는지)
It is obvious from these remarks that playscripts are much easier to handle for narratologists and that they allow a much clearer idea of how story and discourse are related to one another. Performance poses quite difficult problems for mediacy. In fact, one could enquire whether the notion of mediacy might here be an exclusively reception-oriented one. Is the story mediated to the audience through the experience of the performance? This question indicates that current research on mediacy has some distinct limits or horizons and that there are numerous matters waiting to be resolved by further research.
스토리와 담화가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
연행은 꽤 어려운 문제이다. 중개성을 위해서. 사실, 중개성의 스토리와 담론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연행은 꽤 중요한 문제이다. 중개성에 있어서.
이러한 문제는 중개성에 대한 최근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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