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비평의 정치성이나 역사성, 지시대상의 문제
데리다나 드만의 텍스트를 꼼꼼히 읽어보면 지시대상ㅡ해체의 주문으로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고 믿어지기 했던ㅡ의 문제가 항상 그림자처럼 해체비평을 동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가령 해체비평과 동의어 격으로 사용되는 결정 불가능성이나 독서 불가능성의 개념이 그러하다. 만약 지시체의 진공 속에서 의미작용이 이루어진다면, 다시 말해 자족적인 기호의 폐쇄적 체계 속에서 기표와 기의의 결합이 이루어진다면, 기호는 최소한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가 있다. 아니다, 기호의 안정성이라는 문제마저도 아에 제기되지 않는다.
지시체는 부동의 자세로 정지되어 있지 않다. 현실의 바람에 흔들리면서 대상은 끊임없이 부유하고 요동하며 변화한다. 이렇듯 변화.생성하는 현실이나 대상과 맞닿으면서 기호의 안정ㅡ만약 안정성이 있다면ㅡ이 그만 흐트러지고 마는 것이다.
변화하는 현실과 대상을 기호의 핀으로 고정시키고 박제화시켜놓음으로써 대상과 기호의 관계가 일대일의 관계로 굳어진다면, 데리다와 드 만은 대상의 중심에 박힌 핀을 제거해놓았던 것이다.
지시체와 기호의 해방
지시체의 해방이 이데올로기적 질곡으로부터 현실과 역사의 해방
기호의 망으로 포획될 수 없는 타자로서 지시체의 타자성
따라서 드 만이 펼쳐놓은 수사적 독해의 지평에 텍스트와 세계, 기호와 지시대상, 이론과 실천 등의 문제도 놓여 있다
실천성/정치성
실천/정치의 이론성도 수사적으로는 교차대구법
언어 주체는 기표에 기호성을, 사물에는 세계성을 부여하는 의미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
바깥의 사물은 인간의 의식에 투영되어 내면화된 다음 다시 언어로 외면화된다. 따라서 의식의 거울이 훼손되지 않았다면 내면은 외면이 되고 외면은 내면이 되는 대칭관계가 이루어진다.
일대일로 기의가 맺어져야 할 기표가 다른 기표로 빗나가기 때문
이완된 기표와 기의의 지그재그적 관계는 물론 지시성의 착란을 초래
기호는 즉시 지시대상과 교환
..
기호와 지시체의 교환과정이 '광기'
이 교환의 광기는 기호의 이중성에서 유래
드 만이 지적하듯 "언어는 주체를 세상에 속한 경험적 자아"와 기호를 통해서 구성되고 "기호처럼 기능하는 자아로 분열시켜놓는다."
각주6
더욱 엄밀하게 말하면 주체는 지시대상적 자아(어린 아우구스티누스)와 기호적 자아(청년 아우구스티누스)로 분리된다.
>>??????????????? 이해 안감
주체의 한편에 세계가, 다른 한편에 언어가 있다면 주체의 위상에 따라서 세계는 언어와 일대일로 결합되기도 일탈하기도 아니면 단절되기도 한다. 경험적 자아에 있어서 언어는 지시대상과 등가적으로 교환되고 호환된다. 주체를 축으로 언어와 지시대상이 서로 자리바꿈을 하는 것이다. 반면 기호적 자아에게 언어는 오히려 지시대상의 부재와 교환된다. 요철이 심하거나 불투명한 거울에 비친 대상처럼 주체를 거치면서 언어와 지시대상과의 관계에 분열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서 경험적 자아든 기호적 자아든 교환의 주체는 언어나 지시대상이 아니라 자아라는 사실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언어와 지시대상(혹은 그것의 부재)은 결코 직접적인 관계에 놓이지 않는다. 양자는 언제나 언어 주체의 매개를 통해서 지시성이 획득되거나 상실되기도 한다. 달리 말해서 언어는 지시대상으로 아니면 그것의 부재로 해석된다. 이와같이 해석학적인 주체의 중요한 역할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면, 쏘쒸르 언어학의 기본 전제가 되는 이른바 기표와 기의의 분리는 인간의 변화 혹은 세계관의 변화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지시대상 자체의 상실이 아니라 일찍이 지시대상과 기호가 일대일로 상응한다고 믿었던 신념의 상실이 표현의 계기를 얻은 것이다.
이 상실된 세계에서 지시대상을 향한 기표의 여행은 기의의 단계에 머무르거나 아니면 기의의 목표에 이르는 길도 끊임없이 지연될 수 있다.
>>???? 왜 지연? 어떻게 지연?
>>헐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아까 표1을 발전시킨 것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쩐닫ㄷㄷㄷㄷ
기표가 사전적으로 기의와 맺어지면서 개념화되든 아니면 다른 기표로 탈선하든 양자는 모두 기호학적인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존재론적이거나 지시대상적인 사건이 아니다. 기표에서 기의를 거쳐서 지시대상에 이르는 기호의 연쇄도 그렇지 못한 기호의 유희와 같은 차원에 속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기호와 지시대상이 일치하는 문법적 독서도 수사적 장치를 거쳐서 이루어진다. 안과 밖, 내부와 외부, 텍스트와 세계 등의 대립쌍의 교환을 나타내는 전통적인 수사의 하나가 바로 메타포이기 때문이다. 문법적 주체는 메타포라는 수사의 사다리를 통해서 기호 내부에서 기호의 외부로, 외부에서 내부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가 잇다. 말하자면 인간의 의식 자체가 메타포적이다. 더불어 수사는 대상의 부재나 배제를 명명하는 부정성이 아니라 대상의 부재와 현존을 동시에 포괄하는 부정적.긍정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수사는 논리를 근본적으로 중단시키고서 어지러운 지시대상적 탈선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다.
>>> ???? 이해 안 감..
기표와 기의의 폐쇄망 속에서 제한된 안정을 찾으려는 문법적 시도를 수사학은 기호의 바깥에 위치한 지시대상의 힘을 빌어서 좌절시키는 것이다.
수사학은 지시대상과 매우 미묘한 관계를 갖는다. 그것은 지시대상을 가까이 불러모으면서도 동시에 멀리 밀어내는 이중의 몸짓을 취한다. 한편으로 기호는 지시대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정작 다가온 것은 지시대상이 아니라 의미 혹은 개념이다. 수사학은 이와같이 다가섬과 물러남의 상반된 움직임으로 특징지워진다. 물러남이 무시되고 다가섬이 강조되며 기호가 곧 지시대상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멋져
5
지시대상과 기호의 관계는 안과 밖, 표현과 내용, 텍스트와 현실, 이론과 실천, 형식주의와 맑스주의, 내재적 비평과 외재적 비평이라는 이항 대립적 관계의 쌍과 맞물려 있다.
..
기표의 자유로운 유희를 강좋였던 구조주의나 해체비평도 현실과 역사를 무시한다는 비난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반면 외재적 비평은 텍스트 내적인 메커니즘을 도외시한다는 비판에 직면하여야 한다. 말하자면 대립쌍 관계에서 한 항목의 수용이 저절로 다른 항목의 배제나 부정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수사에 관한 드 만의 논의가 말해주듯이 지시대상은 결코 기호의 망으로 포획되지 않는, 그러면서도 기호의 지평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저항의 성격을 지닌다.
드 만에 의하면 내재적이든 외재적이든 전통적 문학비평은 언제나 지시대상을 억압하였다.
텍스트의 해석에 종사하는 비평가들은 "형식과 의미의 일치" "표현의 형식과 진술의 의미와의 완벽한 일치"를 지향하였다. "시의 진정한 본질이 시적 내용의 구조와 동일한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하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내부가 외부가 되고 외부가 내부가 되는 교차대구법이 비평적 작업의 전범이었다. 한편으로는 매혹적임에 틀림없는 이러한 비평은 다른 한편 지시대상 상실의 위험을 수반한다. 지시대상을 언어로 완전히 환원시키켜버리거나 아니면 지시대상의 부재 속에서 기호의 유희를 통해 다듬어지는 유기적 구조를 찬양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다.
"부재하는 대상을 회복하려는 수단이 메타포이다." 이러한 메타포를 통해서 "주관의 내면성과 외부 세계 사이의 상응"이 이루어지는 계기를 얻는다.
>>내가 하려는 건 지시대상의 부재가 아니라 지시대상의 실체성? 현전화?에 더 가까운듯
기호에 앞서는..
뒷부분은 뜨문뜨문 읽고 졸려서 잘 이해가 안됨 근데 논문 자체는 괜춘한 듯
문학적인 표현이 종종 보이는데 잘 읽히고 이해되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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