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왜

장 폴 사르트르 타자론 <존재와 무>

snachild 2013. 6. 7. 14:14

 

 

출처
http://terms.naver.com/entry.nhn?cid=276&docId=1518648&mobile&categoryId=1112

 

 

 


들뢰즈는 학창 시절 사르트가 자신의 진정한 '스승'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타자의 문제는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 없다. (...) 사회적 동물로서 우리의 일상적 삶이 다른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만남의 연속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는 없을 것이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존재론을 세우기 위해 우선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두 영역으로..
구분의 기준은 의식의 유무. 의식을 가진 존재와 그렇지 못한 존재.
의식을 가진 존재 = 인간 = 대자존재 = 다른 존재와 맺는 관계 : 의식의 "지향성"
의식을 가지지 못한 존재 = 사물 = 즉자존재 = 자기충족적


"모든 의식은 무엇인가에 관한 의식"
무엇인가 = 즉자존재인 사물 or 대자존재인 인간 그 자신
           무엇인가에 관한 의식 / 자기에 관한 의식

사르트르의 존재론은 인식 이전의 단계를 문제 삼고 있다.

 

인간이 자유롭다고 하는 것은 의식의 지향성의 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당연한 결과이다.


인간은 한순간이라도 자신의 의식을 비어 있는 상태로 둘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 세계에서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겨냥하고 잘라내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함과 동시에 그것을 가지고 자신의 의식의 지향성의구조를 채워야만 하는 것이다.
=> 인간은 항상 실존의 어려움을 껴안고 살아가야 함

 

-사르트르의 존재론 전체를 관통하는 두 가지 명제

1. 이 세계의 모든 존재는 '잉여 존재'
   :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거기에 있으며, 그것이 반드시 거기에 있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

것은 이 세계의 모든 존재가 갖는 무상성 또는 우연성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된다.

2.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
 : 인간은 우선 먼저 있어 세상에 존재하고 세상에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며, 그는 그 다음에 정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그냥 거기에 '던져져 있는' 존재
그 중에서도 특히 대자존재인 인간은 평생 실존적 불안에 노출되어 있다. 즉자존재인 사물은 자기 안에 자신의 존재 근거를 담고 있다. 그러나 대자존

재는 그 근거를 대면하고 잇을 뿐, 그 근거를 자기 것으로 삼을 수가 없다. 그 근거를 자기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대자존재는 즉자의 방식으로 존재해

야한다. 그런데 즉자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순간 대자존재는 더 이상 대자존재이기를 그친다. 인간은 죽는 순간에만 대자의 방식으로 존재하기를 그치

고 즉자의 방식으로ㅡ곧, 시체이자 사물로ㅡ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대자의 방식으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즉자의 방식으로 존재할 수

없다.

>> 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대자와 즉자의 결합상태는 신의 존재방식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신이고자 하는 욕구'를 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르트르의 존재론에서 이 욕구는, 인간이 살아있는 한, 즉 그가 대자

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한, 절대로 충족될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르트르는 인간을 '무용한 정열'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의미에서 사르트는 한 인간의 역사는, 그가 누구이든지 간에, '실패'의 역사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자존재와 대자존재가 아닌 또 하나의 존재를 문제삼고 있는데, 이 곧 타자의 영역이다. 그러니까 사르트는 자신의 존재론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이 세계의 존재를 인간과 사물의 두 영역으로 구분하고, 인간의 범주를 다시 '나'와 '타자'라고 하는 영역으로 구분하고 이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이처럼 타자를 나의 대타존재를 형성하는 또 하나의 존재영역ㅡ따라서, 존재의 제3영역ㅡ에 속하는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수치심 : 누군가의 앞에서 느끼는 감정
내가 나의 행동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결국 나를 객체화한 결과, 즉 나를 타자의 눈으로 바라본 결과인 것이다.
'타자 앞에서 내가 나에 관해 갖는' 의식이라는 이중의 구조.


나는 나의 존재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타자를 필요로 한다. '대자'는 '대타'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인간과 즉자존재와의 존재관계를 그 전체 속에서 파악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이 책의 앞의 장들에서 했던 기술들로서는 만족할 수 없는 일이다. (..) 두 문제 : 1. 타자의 존재 문제 2. 타자의 존재에 대한 나의 '존재' 관계의 문제


시선 : 타자는 나를 바라보는 자이다.

 

인간-사물과의 관계와 인간-타자와의 관계는 다름


이러한 의미에서 내가 중심으로 있는 세계에 한 명의 인간이 출현한 것은 나의 세계를 훔쳐가는 하나의 특수한 존재의 출현으로 여겨진다. 사르트르는 이와 같은 타자의 출현을 나의 세계 내에서 발생한 '하나의 작은 균열'로 규정

타자의 출현으로 인해 나의 세계에 발생하는 '내출혈'

나의 세계, 내가 중심이 되어 형성되었던 세계는 그 인간-객체의 출현으로 인해 점차 와해


나는 누군가가 중심이 되어 새로이 조직된 또 다른 세계에서 다른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그 누군가에 의해 거리를 부여받는 사물, 즉 객체의 자격을 부여받는 존재가 된다.


누군가가 나를 바라봄으로써 나에게 부여하고 있는 나의 모습ㅡ이것은 나의 즉자존재에 다름 아니다.

신체-의식(심신일원론)

 

 

 

-

 

나는 타자의 시선에 의해 '바라보는-존재'에서 '바라보인-존재'로 변화하게 도니다. 타자의 승격과는 달리 타자의 시선에 의해 나에게 일어나는 이러한 변화는 내가 주체의 위치에서 객체의 위치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르트르는 타자의 시선에 의해 나에게서 발생하는 이러한 현상을 나의 존재의 '원초적 실추'라고 보고 있으며, 그 현상 자체를 '강등'이라는 용어로 지칭하고 있다. 그러니까 타자의 시선에 의해 발생하는 나의 존재의 강등과 그의 존재의 승격은 항상 동시에 발생하며,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시선
 신체
까지 봤음.


갈등 : 나와 타자와의 근본적 관계
부터 봐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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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지식백과 짱짱맨이네 앞으로도 이렇게 종종 찾아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