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왜

미시서사의 ‘작은 연극’, ‘일상극’ 혹은 ‘소극장연극’

snachild 2013. 9. 1. 16:52

오늘, 대학로 연극을 말한다
-미시서사의 ‘작은 연극’, ‘일상극’ 혹은 ‘소극장연극’

 

 

일 시 : 2009년 4월 4일
장 소 : 대학로 카페 장
사 회 : 이미원 (연극평론가, 연극원)
참석자 : 손진책 (연출가)
위성신 (연출가)
박혜선 (연출가)
손상원 (기획자)
장혜전 (연극평론가, 수원대)
이진아 (연극평론가, 숙명여대)
기 록 : 이상민 (연극평론가협회 편집간사)
이미원

 

이진아 : 이전에 연극평론의 쟁점비평 주제로 ‘일상극’의 문제를 논의해본 적이 있었습
니다. 일상극의 등장과 유행의 시작은 그 동안의 거대담론과 소위 ‘절대적 진리’
라고 생각되었던 것들에 대한 반성, 즉 그런 것들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무너지
면서부터겠지요. 그 반대급부로서 이제는 내 주변의 풍경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부터 검토해 보자는 시도들이었던 것인데, 그것이 시
간이 지나면서 ‘풍경의 재발견’이 아니라 ‘풍경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까 문제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오늘날 대학로의 제작 풍토, 구체
적으로 지적하자면 연극을 제작하는 호흡이 많이 짧아진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돼요. 문제를 깊이 고민할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죠. 게다가 우리 연극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관객과의 소통’이란 면에서 일종의 강박증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되네요. 사실 일상이나 주변적 풍경을 무대에 올려놓는다고 해
도, 그것이 개개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내가 너무나 익숙하다고 생각했
던 것이 사실 얼마나 낯선 것이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줄 수 있다면 의미가 있
을 텐데. 현재의 무대는 현실을 모사하기만 하고, 그 모사하는 대상도 조금 자극
적이거나 흥미를 끌만한, 이면의 의미
보다는 사건 그 자체, 그 엽기성에만
관심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주 젊은 작가들,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하는 학생들을 만나보면
무척 놀라게 되는 것이, 아주 사소한

주변적인 일, 특히 그 현상 자체에만
언제나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물론 자

신에게 익숙한 일, 잘 아는 일, 자기 속에서부터 작품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저
도 공감을 하지만, 그래서 그것이 적어도 내게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는 닿지 않
는 것 같아요. 내가 쓰고자 하는 소재를 찾았을 때 내가 평생을 가져가야 할 주
제의식은 과연 무엇인가, 내지는 내가 여기서 진짜 궁금하고 알고 싶은 것은 무
엇인가, 이것을 내가 왜 관객과 함께 논쟁을 해야 하는가, 하는 다음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죠. 사실 이런 사유를 농익게 만들어 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
사회의 호흡과 리듬이 이런 시간을 작가에게 주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
디어 차원에서만 많은 재능들이 소진되고 버려지지요. 저는 이것이 가장 큰 문제
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젊은 친구들을 보면 굉장히 재능이 있다는 생각이 들
고, 또 한국에선 별로 빛을 못 보던 친구들이 외국에선 퍽 잘하고 있는 걸 보거
든요. 그런데 그렇다가도 다시 한국 사회로 돌아오면 그렇지 않거든요. 우리 사회
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보니 모두 덜 익은 아이디어만 소진해버리는 것 같아요.

 

 

>>작은 연극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주제 의식"이고

   자연스러운 패러다임의 변화와 시대 흐름을 반영한다고 생각하는데...

   현상 자체에만 천착하는 것은 별로지만

 

 

 

모든 것들이 포스트모던으로 가는 것은 아니거든
요. 일상을 그리는 것 속에서도, 일상을 어떻게 그리는가에 따라 일상극도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죠. 그런 감동이 없는 세대, 본능적인 감각만 있고, 감동이 필요
하지 않는 시대죠. 사회적인 어떤 동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것이 악순환 되고
있는 것이죠. 지금부터라도 연극영화과가 반성을 하고, 국공립단체에서라도 반성
을 해야 되는 게 아닌가 생각을 해요. 아이들 책임으로만 돌리는 게 아니라, 늦었
다고 생각할 때 가장 빠른 것이니까. 이제는 정돈을 해나가는 것들이 필요하죠.
이런 면에서 평론가의 책임도 커요.

 

>>모든 것이 일상을 그릴 필요가 없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렇게 일상의 범람은 이전 시대의 사회성에 대한 반발에서 오는 것..

 

 

인간의 재발견, 풍경의 재발견, 감동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지금 인
간들의 심리를 얼마나 다층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느냐 이것이 고전과 아
닌 것과의 차이인 것 같아요. 클래식이라는 희곡들을 보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층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고 있는 부분이 있잖아요. 일상극에선 그 부분이
단순화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것을 단순하게 표현하는 사람과 단순하게
바라보는 사람들한테 그것이 단순한 것이지 그것을 다층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
면, 그 한마디 한마디의 이면들을 계속 바라볼 수 있게끔 만든다면 그것은 일상
극을 벗어나서 좀 더 고전과 가까워지는 결과를 맺을 수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한국의 80.90년대 소극장을 보면 마당극, 교육극, 선전극 등으로 불릴만한 이념
적 연극들이 많았습니다.
90년대 한국에서는 창작극을 올리면 실패하기 일쑤였죠.
이런 시대에서 창작극 제가 일상극을 했었을 당시, 일상극의 연극은 비주류였고
이런 작품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비주류였던 작업이 주류로 올라오는
것은 하나의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안티 김연아가 생기는 것도 비슷한 현상이
라고 생각합니다. 올림픽 시즌에는 왜 올림픽만 봐야 하는 것인가요? 왜 이 시대
한국 사회에는 다양성이 없는 것일까요. ‘작은 연극’은 오랫동안 주류인 것이 아
니라 최근 몇 년의 현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너무
우려를 표명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요?
정책적인 방향이나 다양한 목소리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것이 더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내 말이!!! 위성신님 동감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