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에서는 소설의 서사양식과 작가=주인공이라는 공식을 만든 일본 독자들의 읽기방
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A뜨거운 주관의 정과 차가운 객관의 비평이 엉켜진 실처럼 단단히 묶여져 일종의 이상
한마음 상태를 나타냈다.
B슬프다. 실로 통절하게 슬프다. 이 비애는 화려한 청춘의 비애도 아니고 단지 남녀의
사랑의 비애도 아니고, 인생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어떤 커다란 비애다.
C갑자기 눈물은 도키오의 수염을 타고 흘렀다. 1)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인용문이 너무 멋지다. <이불>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고 아직도 안 읽고 있네 망할 놈의 나...
여기에서 작품세계 바깥에 있는 화자는, 작품세계 안에 있는 도키오를 초점화하고 있다.
화자는 AB에서 도키오의 내면, C에서 도키오의 외면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모두 작중인물이 도키오를 초점화하고 있지만 화자와 도키오의 거리는 제각기 다르다. 예
를 들면, A에서 화자는 도키오에게 거의 동일화될 정도의 근거리에 시점을 두고 있다. B
에서 도키오의 독백이 지문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도키오의 독백과 지문이 융합하고 일
체 하는 것같이 느껴지고, 화자와 도키오의 거리가 영으로 될 것 같은 담론으로 되어 있
다. C의 경우, 화자는 도키오를 객관적으로 대상화 할 수 있는 거리에서 그의 내면이 아닌
외면을 보고 있다. 이와 같이 『이불』에서는 ABC에 보이는 것과 같이 주인공에게 시점을
고정하고 AB와 같이 주로 그 내면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이불』에는 삼인칭 그 소설이면서 항상 일인칭 나 소설로써 읽혀져 왔고,
그것이 주인공=다케나카 도키오 라고 하는 읽기의 콘테스트를 만들어 왔다. 동시대 비평
을 보면, 「사생이라고 하는 것」(『문장세계』1907.7)의 일인칭으로 그린 장점과 삼인칭
으로 그린 장점이 완전하게 일치 하든지, 「소설작법」(『문장세계』1907.10)의 일인칭
에 객관적 묘사를 첨가하고, 삼인칭소설에 주관적 묘사를 첨가해서 하나가 된 것 같은 문
체 와 같은 평가가 인정된다. 삼인칭으로 말해지는 『이불』중에 일인칭묘사의 수법이 넣
어진 것에 의해서 『이불』의 작풍은 참신한 작품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와 같이 『이
불』의 서술은 일인칭․고백적으로 수용되어 왔다.
>>자기반영성을 인칭의 문제, 시점의 문제와 (다른 작품이나 매체에서도) 연관시킬 수 없을까?
만화에서는 (서술의) 시점을 따진다기보다 초점화???에 가까운 것 같지만
이러한 묘사(사건을 다루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의 입장. 그게 어떻게 변모하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만화에서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4.쇼와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작가의 사생활이지만 소설형태에 변화를 준 새로운 형태의 사소설이 등장했다고 할 수 있
다.
>><인간실격> 나왔다 엉엉엉엉엉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근데 이거 읽으면서 나는 사소설인줄도 모르고 읽은듯 또라이같은 나ㅋ
그런데 사소설의 경우 그 작가에 대한 배경 지식을 따로 알아야 연관?이 되지 않나?
일군의 작가 생활이 반영된 일상툰의 경우에는 오히려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이게 의식이 되는 것 같은데.... 이거는 '서나래'다.. 라는 식으로
물론 일상툰에도 그런 작가의 현실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닉네임이나 다른 표현 방식을 통해 허구로서의 거리를 획득하고 있지만
독자들은 여전히 이걸 '만화'로 읽으면서도 이것이 실제 서나래의 이야기라는 것을 위화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왜?
다자이 오사무의 실제생활이 소설이 되었다. 독자는 다양한 여성편력과 자살소동,
마약, 알코올중독 등의 비일상적인 생을 산 다자이 오사무의 삶과 소설 속의 주인
공을 일치시켜 읽었다. 사실의 고백을 존중하는 일본인 독자들은 다자이 오사무의
생을 투영시킨 문학에 찬사를 보냈다. 따라서 다자이 오사무는 더욱 더 좋은 소설
을 쓰기 위해 점점 더 비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
다. 즉 일상생활과 소설 속 주인공의 생활이 역전되는 현상이 특이한 현상이 사소
설 작가에게 일어난 것이다.
5.나오며-현대의 사소설과 독자-
사소설에 어느 정도의 픽션이 들어가고 작가의 사생활을 세세하게 알고 있는 기존의 사소
설독자가 거의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소설에서 자전소설로 변화했다고 할 수
있다.
>>뭐야 이 글 왤케 짧지.... 결론도 짧 이게 전부
안영희 영남대 강사가 쓴 글.
(동북아시아문화학회 국제학술대회 발표자료집, Vol.2009 No.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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