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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의 시각의 타자성(대상a)에 근거한 만화비평으로서의 주체와 응시 / 양승규

snachild 2013. 6. 3. 22:43

라캉의 시각의 타자성(대상a)에 근거한 만화비평으로서의
주체와 응시 : 강도하의 큐브릭을 중심으로

 

 

 

즉, 우리의 ‘눈’이 기하학적 차원의 원근법에 근거한
데카르트의 자율적 의식 주체라면, ‘응시’는 우리가 대상을 바
라보는 ‘눈’과는 전혀 다른 차원인 결여를 지닌 욕망의 주체이
기 때문에 우리의 시각세계는 근본적으로 ‘눈’과 ‘응시’가
분열관계에 놓여 있어 균열이 생성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이러한 시각세계의 분열은 라캉이 주장한 욕망하는 주체개념과

동일 선상에 놓여 있다.
‘응시’는 바라보는 것, 즉 의식적 사유 주체에 선행하여
‘나’는 바라보임을 당하는 위치에 놓여져 있기 때문에 ‘응
시’는 균열의 지점으로서 주체의 결여이자 주체의 욕망이다. 따
라서 ‘응시’는 시각세계에서 욕망의 원인/대상인 ‘대상 ’의
지위를 갖는다. ‘대상 ’는 우리가 상실한 ‘존재’와 관련되
며 실재의 귀환으로서 특정한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무(無)이며, 주체의 욕망과의 관계 속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이처럼 ‘응시’는 데카르트의 기하학적 시각세계에서
는 볼 수 없는 주체의 결여를 드러냄으로서 시각세계에 욕망의
주체를 기입한다.

 

 

1부 4화를 보면 ‘혜화’의 집에서‘독우’를 처음 만나는
‘미우’는 ‘독우’를 사냥개로 비유하며, ‘독우’의 성격을
대변하고 있다<그림 1>. 이는 ‘독우’를 바라보는 ‘미우’의
응시이다. ‘미우’는 빛의 점에서 ‘독우’를 바라본다. ‘독
우’는 스크린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그 너머에 있는 어떤 감추어
진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독우’는 자신을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 즉 ‘미우’의 응시를 볼 수 없다. ‘미우’의 응시는
“전혀 상이한 두 개의 상들의 단순한 병치보다는 하나의 시니피
앙이 다른 시니피앙으로 대체되는”24) 형상으로 나타난다. 즉,
‘독우’라는 시니피앙이 사냥개라는 다른 시니피앙으로 대체되
면서 ‘독우’와 ‘사냥개’의 이미지는 합쳐져서 합성이미지가
형성되는 압축의 형태를 띤다. 이는 무의미했던 ‘독우’라는 인
물에 의미를 부여한 은유의 형태로서 ‘독우’의 주체를 구성하

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것은 본래 시니피앙인 ‘독우’에 덧붙
여진 새로운 의미의 출현이다. 그러나 대체하며 등장한 시니피
앙, 즉, 사냥개는 의미만을 남기고 이내 사라진다.

 

 

>>>은유, 환유의 공식.... 모르겠다ㄷㄷㄷㄷ

 

 

2) 작품 속에서의 주체와 응시

(1) 은유(metaphor)와 환유(metonymy)로서의 주체와 응시

(2) 표현형식의 모호적 상황에 의한 작가의 응시

(3) 의도적 오류(The Intentional Fallacy)에 의한 응시

(4) 감동적 오류(The Affective Fallacy) 속에 숨겨진 응시

(5) 개별적 조직의 응시와 통합의 구조로서의 응시

(6) 초과된 의미의 긴장으로부터 응시

 

 

 

<<<눈과 응시가 다르다는 건 알겠다

<<<이런 식으로도 웹툰 논문을 쓸 수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