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바타(Avatar)>에 나타난
힌두(Hindu) · 도가(道家)적 요소
정 병 윤
Ⅰ. 들어가는 말
작년(2009년) 말에 개봉되어 숱한 화제를 뿌렸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아바타>를 필자는 개봉한 지 1년이 훌쩍 지난 얼마 전에서야 비로소 볼 수가
있었다. 아이맥스도 디지털 3D도 아닌 거실 텔레비전으로 보아서인지 영화관에서
관람한 사람들이 느꼈다던, 마치 자신이 판도라 별에 와 있는 것 같은 그런 착각은
들지 않았지만, 영상의 화려함과 기발한 상상력은 한 순간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온갖 기화요초가 만발하고 거대한 아름드리 나무들로 가득한 원시
림, 신선들의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공중에 떠 있는 산들의 모습에서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여러 길짐승과 날짐승들의 독특한 모양
새는 영화 보는 재미를 더했다.
영화 속 나비족들의 대사 곳곳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삶의 철학들이 자주 눈에
띈다. 감독의 의도적인 배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속에는 우리 동양인들의 호감
을 살 만한 요소들이 강하게 녹아 있다. 그래서인지 불교계에서는 이 영화를 단체
관람하기도 했다고 하고, 반면에 서양의 종교계에서는 다소 부정적인 시각의 평을
내놓기도 했다.
본 논문은 영화의 저변에 깔려 있는 동양의 종교·철학적 요소, 특히 인도의 힌
두교와 중국의 도가적인 면모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작업은 본 영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힌두교와 도가 철학에 대한 보다 깊은 인식
을 가져오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이 영화에 대한 종교계(기
독교와 불교)의 반응 및 기존 연구논문 경향을 살펴보는 것은 이 영화에 대한 사회
의 보편적인 시각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먼저 기독교계의 반응이다. <아바타>에 대한 기독교계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못해 이 영화의 흥행을 우려하기까지 하는 분위기이다. 교황청은 기관지 ‘로쎄르
바토레 로마노’와 ‘바티칸 라디오’등의 매체를 통해 <아바타>가 “자연 숭배와 연
결된 정령주의 수렁에 빠졌다”고 비판하였다. 나아가 교황청은 자연을 신격화한
<아바타>의 흥행이 교회가 주창하는 유일신의 절대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에
어떠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였다. 인간의 구원은 어디까지나
교회로 상징되는 그리스도와 하느님을 통한 단 하나의 통로를 통해야 하는데, 이
영화는 그 가치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는 좀 다른 시각을
지닌 소수 기독교인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1) 그들은 기독교도 종교적 도그마를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산도, 들도, 나무도, 공기도 결국은 다 신의 창조물인
이상, 그 속에 녹아 있는 신의 존재를 느껴볼 필요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아바
타>를 부정적으로만 대하고 있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1) 오랜 기간 종교적 다원성을 연구해 온 부산의 김상훈 주예교회 목사는 “기독교가 종교
다원주의를 본질적으로 받아들여서 올바른 신학을 출산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
고 말했다. (부산일보 2010년 2월 6일자 인터넷 뉴스)
기독교계의 전반적인 우려에 비해, 공식적인 평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불교계의
입장은 매우 호의적이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화신(化身)’ 또는 ‘분신(分身)’
을 뜻하는 ‘아바타’를 불교에서는 보신불(報身佛) 또는 화신불(化身佛)의 형태로
받아들인다. 하나의 부처가 수많은 또 다른 부처의 모습으로 세상에 현현(顯現)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곧 삼라만상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부처이고 진리의
현현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니, <아바타>와는 단순히 제목 이상의 상통하는 면이
있다.
Ⅱ. ‘아바타’의 의미와 힌두교와의 연관성
‘아바타(avatar)’는 인터넷상에서 이른바 ‘분신(分身)’이라는 의미로 사용자의
캐릭터를 이르는 말로 자주 사용되고 있는데, 이 말은 본래 산스크리트어로, ‘내려
오다’ ‘통과하다’의 ‘ava’와 ‘아래’ ‘땅’을 의미하는 ‘tar’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아래로 내려오다’ ‘지상으로 내려오다’는 의미가 되겠는데, 고대 인도에서 이 용
어는 본래 하늘나라에서 지상으로, 혹은 신에서 인간으로의 ‘하강’이란 의미를 지
닌, 힌두교의 특수한 종교 개념이었다. 그러던 이 용어가 불교를 비롯한 인도의
다른 교파로 흡수되면서 ‘화신(化身)’이라는 의미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영화
<아바타>에서는 지구인 제이크가 어떤 신적 능력이 아닌, 의식의 전이(轉移)라는
과학적인 방법을 통하여 나비족 아바타로 변신하긴 했지만, 문명인에서 원주민으
로, ‘하늘’을 나는 헬기를 타고 ‘지상’에 사는 나비족 무리로 침투해 들어간다는
점에서 ‘하강’이라는 아바타 본래의 의미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
영화 <아바타>는 한마디로 원주민과 침략자, 혹은 자연과 문명의 충돌로 요약
할 수 있는데, 서양의 영화평론가들은 여기서 16세기 유럽인들과 아메리카 인디
언들의 충돌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러한 충돌은 단지 세계 근현대사에서만 발생한
사건은 아니었다. 일찍이 기원전 1천여 년 전, 전차와 철기 문화를 가진 아리아족
이 인도 북서부 지역으로 침입해 들어왔는데, 이러한 아리아족의 인도 침입은 토
착민 드라비다족의 격렬한 저항을 불러왔다. 그러나 당시 청동기 문화에 머물던
드라비다족은 아리아족의 전차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그들은 아리
안의 식민통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두 민족 사이의 충돌은 영화 <아바
타>의 스토리에 어쩌면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6)
6) 캐머런은 아바타가 뭐냐는 타임지의 질문에 ‘힌두신의 화신’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또한 나비족의 푸른 피부색에 대해 힌두교 그림에서 신들이 푸른 빛깔로 묘사된 게
좋아서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http://truthnlove.tistory.com/entry/아바타-영화-비평’ 참조) 이것은 캐머런이 영화 제
작 당시 인도·힌두적인 요소를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 ;;;;;;;;; 삭제된 게시물이잖아.. 이러니까 인터넷 사이트는 논거로 사용할 수 없음
숲이 스토리의 주요 배경이 된다는 점도 <아바타>와 힌두 문화는 닮아 있다.
영화 속 판도라 행성의 화려하고도 매혹적인 원시림 및 그 속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나비족의 생활 모습은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여러
원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Tagore)는 인도 문명은
이러한 대자연의 숲속에서 탄생하였고, 또 광활한 자연의 생명력에 둘러싸여 성장
하였다고 단정한 바 있다.8) 이에 대한 확고부동한 증거가 바로 인도의 양대 대서
사시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이다. 이들 두 서사시에서 숲은 주인공의 주요
활동 무대가 되고 있다. 특히 ?라마야나?의 대부분 사건은 숲속에서 벌어지며 ‘아
란야칸다: 숲속의 장’이라는 편명이 별도로 존재하기도 한다. ?마하바라타?역시
이야기의 배경이 자연환경인 까닭에 그 속에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묘
사한 대목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다음은 ?라마야나?제5편 순다라칸다
(Sundarakandas)에서 발췌한 것이다.
열매가 맺은 아름답고도 거대한 나무들, 사계절 내내 흐드러지게 꽃을 피워
내고, 가지마다 빼곡히 꽃들로 넘쳐나는 보리수, 그 휘황찬란함이 태양빛을 닮
았다. 풍신(風神)의 아들이 자리에 서서 숲속의 타오르는 듯한 광휘를 바라보는
데, 한 무리의 새들이 나무 위로 내려앉으니, 가지와 이파리들이 부러지고 떨어
질 듯. 수백 마리의 새들이 날아오르니 머리 위에 오색의 꽃 투구를 쓴 듯. 근심
걱정을 없애주는 무수한 보리수나무, 꽃송이들이 뿌리에까지 피어있고, 떨어져
수북이 쌓인 꽃잎은 대지와 입맞춤이라도 하려는 듯.
<아바타>의 나비족들에게 영혼의 나무 에이와는 대지의 여신이자 행성 내의
모든 동식물들과 교감 및 소통을 가능케 하는 존재이다. 그리하여 나비족들은 환
상적인 빛을 발산하는 가지로 뒤덮인 그 나무 아래서 여러 종교적인 의식을 거행
하고 또 기도를 올린다. 침략자 지구인과의 최후의 일전을 앞둔 제이크가 기도를
올리던 대상이 그렇고, 총에 맞은 그레이스 박사를 살리기 위한 기원(祈願), 그리
고 마지막에 가서 제이크가 인간의 몸을 포기하고 나비족 아바타로 의식을 옮기는
과정도 이 영혼의 나무에서의 기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나무의 신에게 기도를 올
리는 장면은 ?라마야나?에서도 드물지 않다. 라마와 그의 아내 시타는 자신들이
머물 숲속의 치트라쿠타 언덕으로 향하는 도중 큰 반얀나무에 이르는데, 이 나무
에 대고 시타는 다음과 같이 기도를 드린다.
오, 신성한 나무여! 나의 남편이 그의 약속을 이루고 내가 다시 왕비이신 카
우살리아와 수미트라를 만날 수 있도록 해주소서.9)
>>이 나무의 기원 좋았음
라마가 마왕 라바나와 혈전을 벌일 때 라마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은 원숭
이 영웅 하누만(Hanumān)과 그가 이끄는 원숭이 군대였다. 중국의 손오공처럼
인격화된 하누만이지만, <아바타>의 나비족들과 마찬가지로 기다란 꼬리를 지닌
원인류(猿人類)를 닮은 모습이다.
이외에도 영화 <아바타>에는 사소해 보이는 여러 설정들이 힌두 문화를 닮았
다. 예를 들면, 베다 시대의 전설 속에서 비슈누는 라마로 나타날 때에는 활과
화살을 주요 무기로 삼는데10) 이것은 영화 속 나비족의 경우와 똑같다. 또 나비족
의 납작한 코는 인도 토착 원주민 드라비다족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11) 그리고
영화 속 나비족들이 타고 다니는 거대한 새 ‘이크란’, 특히 제이크가 나비족들에게
자신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고자 탔던 붉은 무늬의 황금조 ‘토르크’는 비슈누 신이
타고 다니는 가루다(Garuda)12)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 <아바타>에 보이는 도가적 요소는 주로 생태학적 측면에서 찾아진다. 20
세기 중반 이후 환경 위기가 사회 문제로 크게 대두되면서 인류의 생존 차원에서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운동이 사회 각 방면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문학이나 문화적으로도 이러한 움직임은 비교적 활발하다. 1980년대 초 독
일의 생태도시 운동 등을 계기로 본격화되어 문학상의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은
이른바 녹색문학은 이러한 움직임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문화 방면에서는 영화산
업이 이러한 움직임을 꾸준히 반영하고 있다. <재앙을 위한 레시피(Recipes For
Disaster)>·<더 코브(The Cove)>·<지구(Earth)>·<불편한 진실>·<11번째 시
간>·<하늘에서 본 지구>·<오션스>·<월E>·<원령공주>·<갓파 쿠와 여름방학
을>·<바람의 계곡 나우시카>·<워낭소리>·<어느 날 그 길에서>등과 같은 이른바
환경영화들이 여기에 속한다.
>>보고 싶다 영화들...
도가의 자연관으로써의 ‘무위(無爲)’는 ‘인위(人爲)’의 부정이고, 인위의 부정
에는 ‘언어’를 통한 인위적 수식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도가적
관점에서 보자면, 언어는 어떤 것을 한정하고 제한하는 것으로써 인간의 유위의
소산일 뿐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나비족은 상대와의 완전한 교감의
표시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을 봅니다(I see you)”. 이 말은 시각적으로 본
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상대방의 마음과 인격의 본질을 알게 되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그 본질을 통해 상대는 나와 하나로 연결돼 있는 생명임을 깨닫는다는 말이다. 나비
족끼리는 또 멀리서도 말없이 생각을 주고받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 간에 거짓
이라든가 상대방을 속이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한 온전한 일체를 이루게 된다.
나비족의 죽음을 앞에 두고 나비족 여전사 네이티리가 제이크에게 이렇게 말한
다.
모든 에너지는 잠시 빌린 것이며, 언젠가는 돌려줘야 한다.(All energy is
only borrowed and one day you have to give it back.)
모든 생명은 에너지의 집적물이며 반드시 온 데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노
자에 따르면, 도(道)에서 이 세상 만물이 생겨났으니18) 만물은 도의 자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온갖 만물은 필연적으로 자신들이 태어난 어머니의 태 속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도덕경?의 중심 주제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관념
은 제16장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온갖 것 무성하게 뻗어가나 결국 모두 그 뿌리로 돌아가게 된다.(夫物芸芸,
各復歸其根)
그리하여 만물의 어머니인 도의 태 속으로 돌아감을 상징하듯 <아바타>의 나
비족 시신은 태아처럼 웅크린 자세로 땅속에 묻힌다.
영화 대사에서 등장하는 ‘에너지(energy)’는 한자로는 다름 아닌 ‘기(氣)’로 표
기된다. 도의 관념이 전국시대에 이르러 ‘기’의 관념과 결합되면서 ‘기’는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생성과 소멸의 본질적 동력이 되는 요소로 여겨졌다. 즉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은 모두 ‘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궁극적으로 ‘기’로 돌아간다는
생각이다.19)
늑대들은 달아나고 제이크가 그녀에게 고마워하는데, 나
비족은 그런 그에게 성난 목소리로 대꾸한다. “감사해하지 마! 이건 감사할 게
아냐! 이건 슬픈 거야. 아주 슬플 뿐야.(Don’'t thank! You don’'t thank for this!
This is sad. Very sad, only.)” 하늘족(sky people) 아바타(제이크)의 무분별한
행위만 없었다면 그 늑대들은 죽음을 당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비족의 삶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은 제이크는 나비족 편에 서서 야만적이
고 폭력적인 지구인의 침략에 대항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막강한 화력을 앞세
운 지구인들의 무차별적인 파괴를 막아낼 방도가 없자, 영혼의 나무 에이와에게
지구인의 침략을 막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도를 올린다. 이 모습을 뒤에서 말없
이 바라보던 네이티리가 그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한다.
위대한 어머니께서는 편을 들어주시지 않아. 오로지 균형만 유지하실 뿐이
야.(Our Great Mother does not take sides. She protects only the balance
of life.)
>>이 장면들도 좋았었지ㅠㅠ 다시 보고 싶다
?도덕경?(제5장)의 “천지불인(天地不仁)”이란 문구를 떠올리게 하는 대사이
다. 여기서의 ‘인(仁)’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일반적으로 ‘편애하지 않는다’고 읽는다. 하늘과 땅으로 대표되는 도는 인간적 감
정에 좌우되어 누구에게는 햇빛을 더 주고 누구에게는 덜 주는 따위의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우주 전체의 조화로운 원리와의 상관 관계에 따라
순리대로 되어갈 뿐이라는 것이다.21) 하늘의 도처럼 영화 <아바타>의 모신(母
神), 즉 대지의 여신은 ‘불인(不仁)’한 까닭에 어느 한쪽을 특별히 더 사랑하는
일은 없다.
>>그렇다면 인자 역시...
동양적 세계관, 특히 힌두이즘과 노장사상이 여실히 드러나는 영화 <아바타>는
서구의 이런 경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지구인의 탐욕스러운
소비를 충족시키려고 외계 행성까지 나가 자원을 확보하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
책은 되지 못함을 영화는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나비족은 자연을 인격적인 존재
로 보고 대화하고 존중함으로써 스스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매우 독특한
존재로 묘사된다. 판도라 행성의 이 같은 존재양식에 주목하면서 영화는 탐욕과
지배로 일관하는 문명보다는 상생, 공존하는 나비족의 문명이 진정한 대안임을
말하고 있다.
<<논문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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