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한철학회 논문집
철학논총 제53집 2008․제3권
사이버 공동체에서 아바타의 존재론적 지위:
매체와 준-주체로서의 아바타
고인석(
>>새한철학회 어째 익숙하다했더니 예전에 생태위기 어쩌고 본 논문이 새한영어영문학회 쪽... 그 외에도 본듯?
>>제목이 넘 멋있다.... 준-주체로서의 아바타라니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한글 요약]
사이버 커뮤니티 람다무에서 일어났던 아바타 간의 사이버 성폭력 사건에 대한 분석의
과정에서 아바타의 존재론적 지위에 대한 물음이 제기된다. 특히 세컨드라이프 류의 사이
버공동체 공간에서 3D 아바타는 실세계 사용자의 대리행위자로서의 지위를 점점 더 공고
히 확립하고 있다. 날로 확장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에 점점 더 깊숙이 영향력
을 행사하는 사이버 세계의 주민인 아바타는 실세계 사용자와 사이버공동체의 차원을 연
결하는 매체인 동시에 그 자체 독자적 정체성의 측면을 지니는 준(準)-주체다. 아바타의 매
체성은 사용자가 아바타의 몸을 빌려 사이버 세계로 진입하고 사이버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지점에서 드러난다. 한편 아바타의 준-주체성은 아바타의 정체성이 사용자의 임
의적 처분에 완전히 복속되지 않는 독자적인 ‘사이버 세계 내 사회적 지위’, 그리고 그것
고유의 역사적 발달 경로에 의해 한정된다.
>>아 이래서 준-주체? 쩌는데? ㄷㄷㄷㄷ 굳굳
1. 람다무에서 일어난 미스터 벙글 사건
1) 사건
1993년 람다무(LambdaMOO)라는 사이버 채팅공간에서 일어난 사이버 성폭력
사건은 이후 많은 토론을 낳았다. 람다무는 일종의 MOO1)로, 사용자들이 인터넷
에 연결된 자신의 컴퓨터 앞에 앉아 각자의 아바타를 조종하면서 하나의 가상공
간에서 서로 만나 부대끼고 컴퓨터 자판을 이용하여 서로 대화(chat)를 나누는
사이버 공동체 공간이었다. 당시 그것은 시험 삼아 그것을 비영리적으로 운영하
고 있던 미국 팔로알토(Palo Alto) 소재 제록스(Xerox)사의 컴퓨터를 통해 유지
되고 있었다.
1993년 3월 어느 월요일 저녁에 여러 아바타들로 붐비고 있는 람다무의 한 거
실에 미스터 벙글(Mr. Bungle)이라는 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아무 이유 없이 못된 행위를 시작했다. 그는 다른
아바타를 임의대로 조정하게 할 수 있는 일종의 마법인형(voodoo doll)을 사용해
서 legba라는 캐릭터에게 자신을 대상으로 한 성적 행위를 시켰다.2) 잠시 뒤 미
스터 벙글은 다른 캐릭터들에 의해 문제의 거실에서 쫓겨났지만 그의 행위는 중
단되지 않았다. 마법인형의 조종 효과는 방과 방을 넘나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
고, 미스터 벙글은 다른 방에서 여전히 그 거실에 있는 아바타들을 조종하여
Bakunin과 Juniper 등에게 잔혹한 동작을 포함하는 성적 행위를 시켰다. 이런 만
행은 강력한 능력을 지닌 그곳의 한 터줏대감 캐릭터 Zippy가 개입해서 미스터
벙글을 마법인형의 힘조차 무기력해지게 만드는 철장 안에 가둬버린 뒤에야 비
로소 그쳤다.3)
이 사건은 사이버 공간에서 이런저런 형태로 일어나고 있는, 그리고 적절한
대응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빈발할 개연성이 높은 폭력적 현상의 일
면을 보여주었다. 이 사건 이후 그것을 둘러싸고 사이버 공동체의 구축과 운영과
결부된 기술적 측면에 관한 토론으로부터 미스터 벙글 등 이 사건에 연루된 개
별 캐릭터들의 행적과 특성에 관한 토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토론이 온-오프라
인 상에서 벌어졌다.4)
이 사건에 관한 이론적 해석 역시 간단치 않았다. 우선 이 사건의 성격을 한
마디로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지부터 분명치 않았다. 이것은 사이버 ‘강간’인가,
아니면 ‘성희롱’인가? 어쨌든 물리적 공간의 몸은 아무런 침해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명백하게 이것은 강간의 개념과 무관하다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비록 물
리적 몸을 대상으로 한 침입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목격자가 느낀 현실감이나 피
해자의 정신적 피해라는 차원에서 실제 강간의 경우와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견해도 있었다.5)
하지만 이 논문의 관심은 이 사건에 대한 사회적-윤리적 관점의 평가 이전의
문제에 놓여 있다. 그것은 아바타로 대표되는 사이버 인격의 존재론적 지위에 관
한 것이다. 다시 말해 미스터 벙글의 사용자와 미스터 벙글의 관계, 내 아바타와
나의 관계가 문제다. 우리는 그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이것이 이 논문의
중심 물음이다.6)
>>우와 이런 사건이 있었다니.. 뭔가 의의 있다
2) 사건의 서술에서 만나는 원초적 물음
일반적인 문법의
구조로 이 사건을 기술하려 할 때 제일 먼저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했는가’ 하
는 물음이 떠오른다. 말하자면 이 사건의 존재론적 문법에 관한 물음이다. 그리
고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의 방식에는 기본적으로 두 갈래 길이 존재한다.
그 한 가지는 “Mr. Bungle이 legba를 강간하고, 나아가 Bakunin과 Juniper
등에게 그들의 의사와 무관한 성적 행위를 강제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가해
자는 Mr. Bungle, 그리고 피해자는 legba, Bakunin, Juniper 등이다. 이 대답은
명료하고, 직접적인 전달력을 갖는다. 그것이 ‘실제로 그 사건을 목격한 이들의
눈앞에서 일어났던 바’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서술은 분명한 문제점 역시 지닌
다. 그것은 미스터 벙글이나 legba 등이 독자적 행위의 능력을 지닌 주체라기보
다 ‘실세계 사용자의 의도와 행위에 의해 조종되는 비독립적-수동적 행위자 혹
은 대리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 앞에서 자연스럽게 두 번째 서술의 방식이 제안된다: “Mr.
Bungle이라는 아바타의 사용자가 legba라는 아바타의 사용자와 Bakunin이라는
아바타의 사용자에게 그들의 의사와 상충하고 성적 폭력의 의미를 갖는 사이버
공간상의 행위를 통해 심적 피해를 입혔다.” 그리고 이러한 서술은 첫 번째 서술
과 다른 평가적 관점을 함축하고 있다. 이 관점에서 ‘강간’ 같은 개념은 성립할
수 없다. 한 사용자가 결과적으로 다른 사용자들의 기분을 ‘더럽게’ 상하게 했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직접적 신체접촉 없이 이루어진 성희롱’의 범주를 넘어설
수 없다.
하지만 첫 번째 서술의 문제점이 곧장 두 번째 서술을 채택할 것을 지시하지
는 않는다. 후자는 우선 좀 더 상세해질 필요가 있다. 그 서술은 문제의 사건을
구성하는 행위의 주체로 컴퓨터 화면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던 몇 명의 사
람들을 상정했다. 그런데 여기서, 그 중 한 사람이 주도한 ‘(성적 폭력의 의미를
갖는) 사이버 공간상의 행위’란 무엇인가? 그 ‘행위’는 그 사람이 자판에서 특정
한 순열에 따라 철자들을 누르는 일이나 모니터를 보면서 옆에 있는 다른 사람
과 음담패설을 주고받는 것 같은 일을 지시하지 않는다. 그 행위는 미스터 벙글
의 아바타가 legba의 아바타를 대상으로 벌인 행위이다. 그는 사이버 공간이 아
니라 실세계의 물리적 공간에 존재하고 있던 반면 문제의 ‘행위’는 실세계적 공
간이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났다.
이는 주체와 행위 사이에 ‘공간적 불일치’가 가로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
은 일종의 알리바이다. 범행의 용의자와 범행이 일어난 장소 사이의 공간적 불일
치는 용의자가 범행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하는 근거가 된다. 한편 ‘부당
한 알리바이’의 적용을 방지하려면, 우리는 모니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던 Mr.
Bungle의 배후 사용자와 ‘문제의 그 행위’를 그 사이 영역에 존재하는 두 번째
주체가 매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이 문제에 관한 일반적 해석은 ‘대리자’ 개념을 축으로 한다. 위 사건에서 사람들이 경험한 것은 사용자의 의지
와 명령을 사이버 공간에서 구현하는 대리행위자가 벌인 행위였다. 이제 우리가
탐구해야 할 것은 사용자와 이 대리자의 관계 그리고 이 대리자의 존재론적 의
미이다.
2. 대리행위자로서의 아바타의 지위
1) 아바타의 개념
2) 사이버 세계에서 아바타의 지위
세컨드라이프 같은 사이버 세계에서 아바타는 명실상부한 그 세계의 거주민
이다.11) 이 세계는 물질적 부피와 무게를 지닌 몸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곳의 거주민이 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전자기적 정보기호의 형태로 저장된 ‘속성다발’로서의 아바타들뿐이다.12) 그러나 아바타는 단순한 정보기호가 아니
다. 아바타는 각자의 이름(혹은 그것의 기능을 대체하는 닉네임)을 가지고, 생일
이 있고, 서로 자주 방문하고 대화를 나누는 친구들이 있고, 참여하는 동호인 모
임이 있고, 저마다의 거처를 가진다.
3. 사용자에게 아바타의 몸이 지니는 의미
1) 사용자, 아바타의 몸을 입다: 매체로서의 아바타
이런 의미에서 아바타는 이 세계의 사용자와 사이버 세계를 잇는 매체의 역
할을 한다. 적절한 여건이 충족될 경우, 아바타를 조종하여 사이버 공간의 이곳
저곳을 방문하는 사용자는 스스로 그 세계의 거주민이 되어 활동하는 유사경험
을 한다. 이것은 MUD 게임에 몰두해 본 사용자라면 대부분 경험해 본 바일 것
이다.
아바타가 한 손을 높이 들어 사이버 세계의 동료에게 반가움을 표현할 때 모
니터 앞에 앉아 있는 사용자는 비록 자기 손을 위로 들어올리지 않지만 그는 동
료와의 인사나누기에 아바타-매개(avatar-mediated)14)의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다.
14) ‘avatar-mediated’라는 표현은 B. Damer와 S. DiPaola 등이 1997년 International Conference
on Computer Graphics and Interactive Techniques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쓰였다.
이런 아바타-매개적 유사경험은 능동적 차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앞
서 서술된 람다무 사건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타자의 아바타가 나의 아바타에게
행한 육체적 만행은 그것이 비록 나의 이 몸뚱이에 아무런 접촉도 보태지 않았
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자행된 성적 폭행의 의미로 다가온다. 하지만 아바타-매
개적 경험은 특정한 경우에 능동적이고 다른 경우에 피동적이라기보다 인간의
일상적 경험과 마찬가지로 능동적-피동적 차원의 복합체다. ‘리니지 2’에서 일어
났던 이른바 ‘바츠 해방전쟁’에 관한 다음 서술을 보자.
“반3혈측의 절박한 호소문이 인터넷에 오르자 비슷한 폭압에 시달리던 다른 서버
의 사용자들이 자신들의 캐릭터를 버리고 ‘정의와 자유’를 외치며 바츠 서버로 밀려
들어왔다. 이들은 바츠 서버에서 새로 캐릭터를 만들어야 했기에 이들의 캐릭터는
형편없는 저레벨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저레벨 캐릭터로 내복만 겨우 걸치고
값싼 뼈단검 하나만을 장비한 이들을 프랑스혁명의 상퀼로드 집단에 비유해 ‘내복단’
혹은 ‘뼈단’이라 불렀다. [……] [아덴성 전투에서] 인간 바리케이드를 형성한 내복단
은 화살받이가 돼 죽으면서 자신들의 시체로 마을 입구를 겹겹이 막았다. DK연합군
이 전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사이 제네시스혈맹의 칼리츠버그 총군주가 각인실에서
성의 점령을 각인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PC방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는 사용
자들이 목격됐고 게임 안에서는 아덴성의 메인 홀에서 내복단들이 춤을 추었다. 이
날은 ‘바츠 해방의 날’로 선언됐다.” (이인화, 2005a)
>>우왓 반갑ㅋㅋㅋㅋ
주목해볼 사항은 앞에서 람다무 사건에 대한 서술을 논할 때 고민했던 주체의
문제가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가이다. 먼저 “비슷한 폭압에 시달리다가 ‘정의와
자유’를 외치며 바츠 서버로 밀려들어온” 것은 실세계의 사용자들이다. 또 다음
문장에서 “새로 캐릭터를 만들어야 했던 이들” 역시 그 사용자들이다. 그런데 이
어지는 전투 장면에서 주체의 전이가 일어난다. “인간 바리케이트를 형성”하고
“자신들의 시체로 마을 입구를 막은” 것은 실세계의 사용자들이 아니라 그들의
아바타이기 때문이다. 소설가이면서 게이머로서 직접 이 ‘해방전쟁’을 체험한 서
술자의 다소 극화된 서술을 고려하더라도 우리는 모니터 앞에서 밤을 지새웠을
실세계의 사용자들과 아덴성 전투에 참여한 아바타들 사이에 성립하는 긴밀한
대응과 연속적 전이의 관계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필자는 이 상황에 참여했던 사용자들이 실세계와 아덴성을 넘나드는 이러한
연속적 전이를 체험했으리라고 생각한다. 리니지의 사용자들은 사이버 세계 민
중들의 호소에 부응하여 아바타의 몸을 입고 바츠 해방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리
고 내복과 최소한의 무기만을 지닌 낮은 레벨의 캐릭터로 전쟁에 참여했다. 날아
오는 화살을 몸으로 받아내는 일은 비록 실세계 육체의 통각(痛覺)을 자극하는
사건은 아니었지만, 분명 ‘숭고하고도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1인칭 온라인 전투게임 같은 상황에서는 이런 관계가 다시 조금 다른 방식으
로 실현된다. 1인칭 전투 게임의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내 전투용 고글의
가장자리, 이따금 높이 들어올렸을 때 보이는 ―아마도 권총을 든― 내 손들, 그
리고 아래를 내려다보았을 때 보이는 내 발들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내
아바타의 시선과 모니터를 통해 사이버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 방향에서 일
치하는 경우다.15) 물론 시야의 범위는 일치하지 않는다. 모니터는 프레임을 갖고
있고, 프레임 밖에 펼쳐진 배경이 모니터 안에 펼쳐진 세계의 지위를 한정짓는
다. 그러나 프레임의 문제는 여기서 논외로 한다. 만일 몰입(immersion)의 기술이
고도로 구현된 상황이라면 “이런 종류의 아바타는 결코 아바타로서 ‘지각되지’
않으며, 그 대신 게이머가 아바타의 관점에서 세계를 지각한다”16)는 스티븐의
서술이 유효하다.
하지만 세컨드라이프 같은 아바타 기술 기반의 사이버 공동체에서는 내가 나
의 아바타를 제 3자적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이
것은 ‘아바타를 입는다’는 취지에서 볼 때 방금 서술한 1인칭 게임의 경우보다
부적절한 방식은 아닌가? 아바타를 활용하는 사이버 공동체를 구축함에 있어 왜
‘한편으로는 아바타의 몸을 입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3인칭적 관점에서
관찰’하는 부정합의 방식이 지배적인 것일까? 필자는 여기서 ‘아바타 구현기술
의 지향점’이라는 개념을 설정하여 이 상황을 설명하려 한다.
2) 아바타, 사용자의 삶을 확장하고 보완하다
(1) 사이버 세계 구현기술의 지향점
그것은 의무론
적 윤리설(deontologism)에서 말하는 그런 당위가 아니라 ‘인간이 그 기술로부
터 기대하는 것, 그래서 그 기술이 장차 구현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생활인인 우리 대부분에게 이미 충분히 넓고 다양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살며 일하고 있는 이 도시를 한 주 내내 쏘다니는 것만
으로도 충분히 지친 상태로 주말을 맞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지친 몸을 되살리
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여행을 떠난다. 사이버 세계는 이러한 인간의 확장
욕구,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신선한 경험과 새로운 관계를 추구하는 원초적 욕
구가 낳는 공간이다.
중요한 점은 사이버 세계가 실세계를 대체(substitute)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것
에 잇대어 확장(extend)된 공간을 지향한다는 사실이다.18)
>>과연?
실세계의 확장으로서의 사이버세계 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공간성, 주민성도 있지 않을까?
과연 그걸 '지향'하는 걸까?
대안하면서도 지향하는 게 아닐까?
필자의 방식으로 말하
자면 ‘사이버 중독’이라는 개념 아래 뭉뚱그려지는 대부분의 개인적 폐해는 사이
버 세계를 실세계에 잇닿아 연장된 세계로서가 아니라 그것을 대체하는 세계로
오인 ― 적극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 할 때 발생한다. 다른 비유를 들어 표
현하자면 사이버 세계는 천국이 아니라 여행지다. 여행은 귀가를 전제로 한다.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여행’은 공포영화의 스토리다.
아바타의 몸을 빌려 입고 실세계로부터 여행지인 사이버 세계로 진입하는 것
은 사용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일종의 변신(metamorphosis)인 반면, 출발점-종착점
으로서의 실세계와 여행지로서의 사이버 공간의 관계를 ‘체계의 관점’에서 보자
면 하나의 매핑(mapping)이다. 그런데 이 매핑은 수학적 구조에서 까다롭지 않
다. 두 공간은 물리적-화학적-생물학적 관점에서 이질적이지만 수학적 관점에서
동질적이기 때문이다. 3차원적 부피를 가진 사용자의 몸과 3차원 그래픽의 아바
타가, 그리고 실세계의 3차원적 공간 환경과 3차원 그래픽으로 구현된 가상세계
가 대응된다. 그렇기 때문에 예컨대 세컨드라이프의 거실은 실세계의 어디엔가
있을 수 있는 거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거실의 수십 배쯤 될 만큼 널찍하고,
멋진 가구나 첨단 전자장비들을 갖췄다는 점에서 내가 실제로 경험한 어떤 거실
과도 차별된다.
(2) 나를 닮았으면서 나와 대비되는 나의 아바타
사용자는 그의 아바타를 스스로 만든다. 아바타를 만드는 일은 성별부터
시작해서 얼굴 모양과 체격, 의복 등 다양한 요소들을 주어진 선택지들 가운데
고르고 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이런 선택의 대상이 되는 요소들이
세분화됨으로 인해 실질적인 선택의 폭이 대단히 넓어지고 실질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용모와 체격을 지닌 개성 있는 아바타를 ‘창조하는’ 일이 가능해졌다.20)
이럴 경우 사용자는 어떤 얼굴, 어떤 신체를 만드는가?
이것은 물론 경험적 조사연구의 대상이 될 만한 물음이다.21) 그러나 필자가
고찰한 사례들을 토대로 볼 때 사용자와 그가 만든 아바타 간의 외형적 관계에
서 두드러지는 일반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사용자가 일반적으로 그와 닮은 아바
타를 만든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러면서도 ‘똑같이 생긴’ 아바타는 일부
러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두 얼굴도 ‘서로 닮은 동시에 서로 다
르다’고 할 수 있을 테니 이 주장은 자칫 내용 없는 것으로 타락하기 쉽다. 그러
나 최대한 이 주장의 의미를 살려보도록 하자.
>>오오 이 주장 흥미롭네
'타락하기 쉽다' 말을 재밌게 하시네여ㅋㅋ
만일 사용자와 아바타의 외모 간의 닮음과 다름의 정도를 계량화할 수 있다면
그 정도는 경우에 따라 문자 그대로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다양성 속
에서도 유지되는 것은 사용자 대부분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흔적을 지닌,
즉 자신을 그 점에서 닮은 아바타를 만든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외모를 가깝게 닮은 아바타를 만든다.
다음의 왼편 사진에 나타난 사용자의 용모
와 오른쪽 아바타의 얼굴을 비교해보자.22)
사용자는 자기가 현실세계
에서 갖거나 실현하지 못했던
그러나 갖고 싶었던 속성을
아바타에게 부여한다. 그렇게
첨삭된 속성은 반드시 늘씬한 몸매나 큰 키처럼 일반적인 의미에서 바람직한 것
일 필요가 없다. 그것은 진한 갈색으로 그을은 피부색일 수도 있고, 과감한 피어
싱일 수도 있으며, 동물처럼 털이 아주 많이 난 피부일 수도 있다. 사용자가 실
제 자기와 다른 성별을 지닌 아바타를 만드는 것 역시 드문 일이 아니다.
아바타는 사용자와 ― 아마도 그가 생각하는 중요한 측면에서 ― 닮았지만 한
편으로 다른 외모를 지녔고, 그 다른 부분은 사용자의 희망이나 모험욕구 등을
반영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처럼 아바타의 세계는 사용자에게 그가 소망했던 삶,
혹은 체계적인 이유 없이 호기심으로 그려보았던 삶을 일시적-부분적으로 실현
할 수 있게 해준다.24)
24) 이인화(2005b)는 사용자가 아바타를 조형하는 과정을 출생배경도 외모도 성장과정도 모두
타자에 의해 결정되었던 경험을 가진 사용자가 ‘자기보다 더 자기다운 자신’을 만드는 과
정이라고 서술한다.
우리는 앞에서 사이버 공간에서의 아바타 구현에 왜 1인칭적 관점과 3인칭적
관점이 혼합되어 있는지를 물었다. 이제 이 물음에 답할 때다. 그것은 아바타 기
술이 지향하고 있는 혼합된 덕목 때문이다. 아바타는 ‘내가’ 사이버 세계로 진입
하기 위한 1인칭적 매체인 동시에 실세계의 내가 갖지 못한 속성을 갖고 실세계
의 나와 다른 활동을 펼치는 ‘나와 다른 쌍둥이 나’다. 따라서 사이버 세계의 내
아바타는 그곳에서 활동하는 나의 화신인 동시에 내 훔쳐보기의 대상이다. 이것
은 적극적이고도 자유로운 방식의 ‘아이덴티티 메이크업’25)이고, ‘아이덴티티 확
장’이다.
4. 아바타의 정체성
1) 아바타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들
프로필 역시 완전히 뜯
어고쳐 다시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아바타의 정체성은 이런 가변성의 수준 위로
솟아오르는 중요한 국면을 갖고 있다. 그것은 아바타가 그 세계 안에서의 활
동을 통해 구성해 온 사회적 관계, 그리고 그런 관계 속에서 축적한 인정과
명성이다.
예를 들어 ‘시골약사’라는 아바타는 지난 1년 반 동안 이 사이버 공동체에서
사이버 공간의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가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문제 상황
에 대한 요긴하고도 적절한 컨설팅으로 명성을 얻었다. 게다가 그녀는 게시판 운
영과 파티 개최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그녀의 게시판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모든 모임 등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이 마을의 대표 게시판이고, 3주에 한 번
꼴로 열리는 그녀의 파티는 날로 더 많은 캐릭터들의 참여를 끌어당기고 있는
유명 이벤트가 되었다.
사실 이 아바타의 사용자는 대학에서 다른 전공을 하다가 중단하고 느지막이
약학과에 입학한 25세의 약대 2학년 학생이다. 실세계에서 그녀는 평범한 늦깎
이 대학생이고, 파티 같은 것을 주선하는 일은 물론 없다. 하지만 이 마을에서
만일 그녀가 사라지거나 게시판을 폐쇄한다면 마을 전체에 중요한 변동이 일어
날 것이다. 또 그녀가 길을 나서면 사람들은 지난 번 파티에서 있었던 재미나는
일을 얘기하면서 다음 번 파티 계획에 대해 묻는다. 그녀는 유명인사이고, 이 사
회의 중요한 인물이다.
물론 이런 인정과 명성은 실세계 사용자의 활동에 근거하여 구성되어 간다.
그러나 그 명성은 약대 2학년 학생의 것이라기보다 분명히 ‘시골약사’의 것이다.
시골 약사의 정체성은 그 발생적 맥락에 있어서 그 학생의 활동에 의존하지만,
결과의 국면에서 볼 때는 사용자인 학생의 실세계 정체성에 대하여 독립적 지위
를 갖는다. 시골 약사의 정체성은 그것 자체의 역사와 힘을 갖는다.26) 그리고 이
런 역사와 힘은 아바타 ‘시골약사’의 정체성에 상당한 안정성의 무게를 부여한
다. 이 캐릭터의 사용자는 시골약사의 외모나 품성을 임의대로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런 변경은 비록 가능한 일이지만 일어날 법하지 않다. 이는 마치 사람
들이 중대한 이유 없이는 성전환 수술을 시도하지 않는 것과도 비슷하다.
아바타의 독자적 지위와 관련된 또 한 가지 사항을 거론하기 위해 앞서 언급
한 사이버 강의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사이버 세계의 강의실에
서 진행되는 강의에 수강신청을 한 학생이 그 강의가 진행될 강의동 건물을 화
면에 띄워 놓고 있는 경우라 해도, 만일 그의 아바타가 몸을 움직여서 그 강의실
을 찾아가서 입실하지 않는다면 그는 강의에 ‘출석’할 수가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용자의 시선과 아바타의 시선은 체계적인 불일치를 함축하고 있지만,
아바타 세계를 매개로 하는 사용자의 경험은 아바타의 몸에 의해, 특히 아바타
세계 내에서 그것의 위치와 자세 등에 의해 뚜렷이 제약된다.
2) ‘아바타 정체성’: 준(準)-주체로서의 아바타
필자의 결론은 사이버 공동체의 아바타가 존재론적으로 그것의 실세계 사용
자와 그가 임의로 만들어낼 수 있는 기호 사이에 놓인 중간적 지위를 갖는다는
것이다. 필자는 아바타가 가진 이런 중간적 지위의 정체성을 ‘아바타 정체
성’(avataric identity)이라고 명명한다. 아바타 정체성은 서로 연관된 두 가지 의
미에서 중간적 지위의 특성을 지니고, 아바타는 매체로서의 특성을 넘어 준-주체
(quasi-subject)로서의 특성을 드러낸다.
첫 번째는 존재론적 의존관계의 관점에서 본 아바타의 중간적 지위다. 앞에서
논의한 것처럼 아바타는 저마다 고유한 용모와 이름(또는 별명), 그리고 거처 등
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들은 하나같이 그의 후견인이라고 할 실세계의 사용자가
선택하고 조정하여 부여한 요소들이다. 생명의 세계나 물질계의 대상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 인과적 영향의 그물 속에 서로 의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아바타의 경우 그 의존은 생성에서 유지에 이르기까지 ‘그 사용자’ 한 사람에게
배타적으로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고유한 특성을 지닌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런 의존 관계에도 불구하고 아바타는 인형과는 다르다. 우리는 원하면 각자 여러
개의 인형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아바타와 사용자 간에는 원칙적으로 1대1 대
응의 관계가 성립한다.27) 뿐만 아니라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발생적 맥락에
서의 결정적인 사용자-의존성에도 불구하고 가상 공동체 속의 아바타는 결과적
으로 독자적 정체성을 확보하게 된다.
두 번째로 아바타 정체성은 그 안정성의 관점에서 볼 때 중간적 경도(硬度)를
지녔다. 아바타의 존재론적 특징은 그것이 사용자가 창조해낸 존재28)이고 전적
으로 사용자의 명령에 의해 작동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비독자적, 사용자 의존적
측면을 지님과 동시에 아바타 세계 내에서 그것 고유의 역사와 사회적 지위 혹
은 명성을 지닌 독자적 존재로서의 지위를 지닌다는 데 있다. 이러한 후자의 측
면은 아바타의 탄생과 소멸을 좌우할 권한을 지닌 사용자라 할지라도 그것의 정
체성과 관련하여 임의의 권한을 가질 수 없음을 함축한다. 그것을 태어나게 할
수 있었고 특정한 용모와 체구, 그리고 이런저런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게끔 할
수는 있었지만 그렇게 부여되고 형성된 아바타의 특성을 ― 그것이 비록 김선희
가 말하는 속성존재론이 지배하는 영역이고 그 ‘속성’들을 선택할 권한이 원칙적
으로 모두 사용자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 임의로 변경할 수 없게 하는 존재
론적 경도가 있다.
>>이 부분 좋다.. 더 길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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