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중음악, 양적 정의와 질적 정의
2. 대중음악에서의 진정성개념
3. “은유, 사라지다” : 텔레비쥬얼 세계의 형성과 진정성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의 전환기 한국대중음악
4. “Pop, you bastard!!": 팝, 매체 그리고 문화
국문요약
대중음악이 여타의 다른 음악카테고리들과 경계를 설정하고 스스로를 하나의 독립적
인 장 (sphere)으로써 구성하기 시작하면서 주도적으로 떠오른 문제는, 대중음악에 관한
가치평가에 관한 것이었다.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다층적이면서도 분산적으로 작동되는
대중음악에 대해, 어떤 통일적인 미적판단기준이 적용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아직도
대중음악연구에서 미완의 과제로 남겨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편적 시각에 의거
해 양적/질적으로 대중음악을 정의하거나 판단하는 기존의 방식들에 대한 비판적 검증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 하에 이 글에서 중심적으로 다루어질 내용은 대중음
악 내에서의 ‘진정성 개념’이다. 진정성 개념은 이론적, 일상적 범주에서 흔히 대중음악
에 관한 일종의 질적/미적 가치 판단 기준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자세히
고찰했을 때, 대중음악에서의 진정성 개념은 예술음악이나 민속음악에서처럼 “진정하고
정통한 ’근원‘ ’원전‘ ’작가‘ ’연주가‘”를 보증하는 방식과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에
대한 역사적 형성 방식을 관찰함으로써, 이 글은 결론적으로, 대중음악 내에서 진정성개
념이란, “주도적인 매체화의 방식이 다른 것으로 전이될 때 등장하는 일종의 상징적 가
치에 관한 것”임을 밝히고자 한다. 이고, 이 개념 역시 복합적인 역사적 과정을 통해 구
성된 형성체이며, 이 개념의 상징적 가치들을 둘러싼 대립을 통해 실제로 작용되고 있는
것은, ‘진정성의 유무에 관한 차이’가 아니라 ‘대중음악의 매체화와 이를 통한 감각방식
의 차이’임을 밝히고자 한다.
1. 대중음악, 양적 정의와 질적 정의
이러한 난제들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대중음악이 다른 여타의 음악 카테고리들 (예
술음악이나 민속음악)과 구분되는 하나의 ‘장 sphere’을 역사적/사회적/문화적
으로 구성해왔으며, 이것이 “popular“혹은 ”popularity“1) 라는 실제 및 개념
축을 중심으로 작동되어 왔다는 점이다. 누구나 흔히 사용하는 이 포퓰러라는
용어개념을 정의하는 데 있어 두 가지 위험요소 혹은 부당한 (?) 전제들이 있
는데, 첫 번째는 소위 대중성이라는 단어를 양적으로 정의하는 방식이고 두
번째는 질적으로 정의하는 방식이다.
이 불명확함에 근거해서 곧잘 차용되는 ‘대중성’의 전거방식
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얼마나 잘 팔렸는가’ ‘차트에서 몇 위를 차치했는가’
‘얼마나 많이 남겼는가’ ‘얼마나 자주 방송에 등장하는가’ 같은 질문들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러한 대중성에 관한 양적 정의에 따르면, 어떤 방식으로건
(음반이건 다운로드건) 많이 팔린 음악, 방송에 자주 나오는 음악, 차트에서
윗부분을 차지하는 음악, 인터넷에 조회 수/검색빈도 수가 높은 음악이 ‘대중’
음악이다. 이러한 정의들에 대한 반론으로 가장 가볍게 제기 될 수 있는 예시
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어떤 경우 클래식 음악이 양적 판단기준에 의해 ‘다
수적’이라는 판명이 날 경우에도 이는 대중음악이라 명명되지 않는다. 베토벤
음악이 아무리 다수의 사랑을 받아 많이 팔리는 음악이라 하더라도 베토벤
음악은 대중음악에 귀속 되지 않는다. 또 정 반대의 경우, 대중음악 내에서의
‘양적 소수’들 - 언더그라운드나 인디 등의 의식적 비주류 음악들뿐만 아니라
주류를 지향하지만 주류가 안 된 음악들까지도 포함해서 - 에 대해, 이들이
아무리 눈에 보이는 어떤 결과물로 다수적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들이 대중음
악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 되지도 않는다. 달리 표현하면, ‘대중성’을 바탕으
로 한 대중음악이라는 ‘장’은 단지 양적인 수준에서만 움직이는 것도, 이를
통해서만 가늠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차원이나
및 심도에서 대중음악에 대한 이해 방식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인데, 바로 대중
성 대중음악에 관한 ‘질적인 정의방식’에 관한 문제이며, 이것이 본 글의 주
제인 진정성 개념과의 연관 하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질 내용이다.
>> = 많이 팔렸다고 대중 음악 아니라능
2. 대중음악에서의 진정성 개념
질적 판단의 내용들은
대체로 “진정성”이라는 개념과 관련되고 있다.
수잔 크날러에 의하면, 진정성 (Authenticity)이란 말은 신학, 해석학, 법학,
철학, 문화인류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대와 역사에 따라 상이한 의미
들로 사용되어왔는데, 행위주체와 관련하여 “원작자 (Urheber)”및 이와 연관
된 “작자, 권위자, 권위 (Autor, Autorität)”라는 의미로, 텍스트 및 작품과 관련
하여 “오리지널, 진짜, 조작되거나 변형되지 않은(original, echt, unverfälscht
등)”의 의미로, 미학 및 철학과 관련하여 “진실한, 본질적인 (wahr, wesentlich)”
등을 포괄하고 있고, 이들 각종 유사 동의어들의 복합체로써 진정성은 18세
기 이후 주요한 예술미적 개념으로 자리잡기 시작한다.5)
즉, 대중음악에서 나타난 진정성개념은 예술론에서 다루어지듯 ‘어
떤 음악이 진실본유나 진정성을 내재하고 있는가 (혹은 아닌가)’에 관한 인식
론적/미적 차원의 논의와는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사이먼 프리쓰에 의하면 “문화이론 내에서 우리를 가장 잘못된 길로 이끄
는 용어가 <진정성>”이다.6) 사회학적 접근 방식이 주조를 이루던 기존의
대중음악 논의를 벗어나, 미학적 이론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시도로 서술된
이 글에서, 그는 록 비평 혹은 록 담론을 “진정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기반
한 신화이고 허구로 간주한다; 록음악이 록이 아닌 음악 - 말하자면 팝 음악-
형식들을 미적으로 열등한 것으로 배척하면서, 스스로를 상업적 논리로부터
자유롭다고 정당화시키는 이 이데올로기의 핵심에 진정성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지만, 이 소위 진정하고 진실하다는 록 음악 역시도 상업적 과정의 한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다시 말하자면, 진정성이란 이름으로 포장
된 록 음악이 잘 팔리고, 잘 팔기 위해서 록 음악을 진정성이란 이름으로 포
장해야 했었다는 것이다.7)
>>기존 것을 이렇게 적절히 까줘야
그는 특히 록음악이라는 특정 취향을 정당화시키는 측면으로서의 ‘작가 및
작품의 진정성’을 신화적/이데올로기적이라고 비판했지만8), 진정성을 둘러싼
“상징적 가치symbolic value”9)들은, 이론적인 차원에서건, 사회적인 공론의
차원에서건, 혹은 일상생활에서건, 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한 모습으로 드러난
다. 장르의 우열관계에서 뿐 만이 아니라, 예를 들면, ‘사회비판적 내용/인간
내면의 심도/진지함/철학적 관조를 드러내는 노래 가사 vs 소위 진부하고 천
편일률 사랑타령’, ‘노래건 악기건 수년간 다져온 연주가의 숙련된 연주 테크
닉 vs 유아적 수준의 가창력/립씽크’, ‘음반과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칼 같은
라이브 공연 vs 공연도 안하는/공연에서 삑사리 내는’, ‘곡의 독창성/신선함/
새로움 vs 어디서 많이 듣던/진부한/식상한’, ‘좋다고 잘 듣다가도 vs 표절시
비 나고 나면 더 이상 안 좋은’ ‘본토에서 배우고 왔다/본토에서 녹음했다/본
토에서 잘했다고 칭찬받았다하면 vs 어디선가 잠자고 있던 정통성이나 진정
성이 벌떡 일어나는’ 등등.
예술미론에서와 달리 대중음악 내
에서 이 ‘차이’는, ‘정말 본질적이고 진정한 무엇이 있다/없다’간의 차이에 관
한 것이라기보다, 주도적인 대중음악의 생산, 전달 및 전유방식이 변화하는
지점에서 이들 간의 차이를 첨예화했다는 것이다.
3. “은유, 사라지다” : 텔레비쥬얼 세계의 형성과 진정성
-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의 전환기 한국대중음악
대중
음악에서의 진정성 개념의 역사적 형성과 그 전이지점을 극적으로 드러내 주
는 시점에 주목하고자 한다면,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의 경과과정에 국한
시켜 관찰
왜냐하면 한국 대중음악 실제 및 형식에
서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 일종의 ‘요구 기준’으로서 전제 되어왔던 진
정성 개념,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를 둘러싼 ‘상징적 가치’ 문제들이 가장 현
저하게 가시화되기 시작했던 지점이 이 시기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대중적인 것’에 대한 논의들은 이미 다각도로 이루어져 있
다. 이들 선 논의들에서 언급된 이 시기의 변화양상, 특히 대중음악과 관련된
부분들에서 공통분모를 짚어내자면 “대중음악의 전반적인 생산/재생산 조건
의 변화”10)로 요약될 수 있으며, 여기에서 이러한 변화를 가늠하도록 하는 핵
심적 ‘척도’로 작용했던 것이 “텔레비전의 매체적 영향력”이고, 이 영향력의
광범위함과 강력함에 의해 “텔레비전을 통해 매개되는 음악”이 집중적 관심
과 논의의 대상이 되어왔다는 점에도 일정 정도 동의가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문제는 그 집중적 관심과 논의의 내용과 수위들이다. 1980년대 후반을 거치
면서 (일정부분 지금까지도) 텔레비전이 가진 대중음악계 내에서의 강력한 위
치와 영향력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이들이 상업적/경제적 이윤동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전제
1961년 소위 ‘혁명정부의 크리스마스 선물’11)로 도입된 텔레비전은 1970
년대에 접어들면서 전반적인 한국 경제 성장과 더불어 텔레비전 수상기 보급
률 면에서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기존에 라디오가 가지고 있던
미디어로써의 위치를 위협하며 주도적인 매체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12)
>>예전이 주류 매체가 이랬다면 요새는? 요새의 대중음악은? 현시대 대중음악의 진정성은?
1980년대 초
컬러TV는 이전의 흑백과는 다른 감각의 장을 마련했는데, 흑백에서 칼라라는
기술변화가 가져왔던 텔레비전 미디어 기능의 변화는, 특히 ‘미디어와 현실과
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다. 즉 흑백의 세계가 “텔레비전은 현실
의 무엇을 드러내는가?”라는 질문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1980년대 컬러 이후
는 ‘무엇’이 아니라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텔레비전이 현실을 현실로 드러내
는가?”로의 중심적 관심의 전이라고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달리 설명하면,
텔레비전이 도입되어 컬러TV가 등장하기까지 항상 주목되었던 것은, 무엇인
가 텔레비전을 통해 보여진다는 것 자체가 관심의 대상이었는데, (예컨대, 아
폴로의 달 착륙, 김일의 레슬링, ‘아씨’, ‘쇼쇼쇼’ 등을 보면서 저게 진실일까
아닐까 의심했던 것이 아니라, 그 ‘텔레비젼을 통한 드러남 자체를 감각’ 했
다는 말이다) 이제 컬러의 등장에서는 ‘어떤 대상이 어떻게, 얼마나 사실적인
가를 감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반상업성 (반텔레비전)’ ‘반아마츄어리즘’이
라는 특징적 경향들이 언더그라운드 음악 씬과 음악가들 사이에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 그러나 이는 극한 대립이라기보다 공동의
과제에 대한 상이한 대안 제시18)에 가깝다.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80년대는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음악’이라는 전자 쪽에 힘을 실어 줬고,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음악 혹은 등장 할 수 있는 음악’이란 말이 곧 ‘대중음악’이란 단어
의 동의어로 자리잡기 시작했으며, 그 힘의 무게는 복합적인 요인들의 복잡함
얽힘을 통해 점차 가중되어갔다.
>>그러니까 이렇게 치자면 요새 대중음악은..
아 하긴 요새도 TV를 중심으로 향유되고 있는 것 같다
4. “Pop, you bastard!”: 팝, 매체 그리고 문화
대중음악의 생산과 전유는 항상 매체기술을 통한 ‘복제가능성/재생산가능
성’을 전제하고 있으며, 대중음악은 이 같은 기술발전의 내재화를 통해서 ‘대
중‘음악으로 기능해왔다.
바로 이러한 특징이 여타의 예술음악이나 민속음악
이라는 카테고리들과의 명확한 구분을 가능케 하는 기준에 속한다. 달리 말해,
예술음악이나 민속음악에 있어서 매체화의 전제가 되는 기술적 수단들은 ‘원
형’과 ‘근원’을 담보하는 전거(典據)로 기능했다면, 대중음악은 이 ‘기술을 통
한 끊임없는 생산과정과 이의 다차원적 재생산가능성’을 통해서 대중음악으
로써 존재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근대
화는 모방의 역사이며, 이런 역사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런
역사를 모른 채 문화의 승리를 논해서는 안 될 것이며, 문화적 생산이 제품의
단순 복제와 같은 생산 공정을 거치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한류 열풍을 두고 일고 있는 한국 대중문화의 ‘승리’는 민족주의자들이 바라
는 것과 같은 ‘민족문화의 승리’가 아니라 그간 혼을 빼 놓고 질주해 온 결과,
곧 ‘터보 자본주의의 승리’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 한국이 팔고 있는 문
화제품은 ‘미국 상업문화’의 ‘한국 버전’이고, ‘한류 열풍’은 한국의 제조업
중심의 수출산업이 문화상품으로까지 단순히 확대된 것뿐이라는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34-35쪽)“고 주장한다.
>>우와 적확한 비판
“주도적인 매체화의
방식이 다른 것으로 전이될 때 등장하는, 일종의 상징적 가치에 관한 것”이고,
이 개념 역시 복합적인 역사적 과정을 통해 구성된 형성체이며, 이 개념의 상
징적 가치들을 둘러싼 대립을 통해 실제로 작용되고 있는 것은, ‘진정성의 유
무에 관한 차이’가 아니라 ‘대중음악의 매체화와 이를 통한 감각방식의 차이’
임을 밝히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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