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2. 역사적 배경으로서의 1960년대
3. 1960년대 한국만화계의 상황
4. 반공주의의 출현 방식
4-1. 반공주의가 작품의 주서사인 경우
4-2. 반공적 서사에 보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경우
4-3. 반공주의의 장식적 활용
4-4. 반공주의의 비극성 내포
5. 나오며
국문요약
본 논문은 1960년대의 반공국시 아래에서 한국만화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났는가에
대한 연구이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1960년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약술하고, 이어서
1960년대 한국만화계의 상황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동시대 만
화계의 다양한 모순적 구조들을 형성하고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어서, 1960년대 반공‧반북성이 드러난 만화를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첫째로 반공‧
반북성이 작품의 주서사인 경우, 두 번째로 반공‧반북성이 주 서사에 보조적으로 결합되
어 있는 경우, 세 번째로 반공‧반북성이 주는 비극성을 강조하는 경우, 마지막으로 반공‧
반북성을 장식적으로 활용하는데 그치는 경우이다. 그러나 연구 자료의 빈약성은 향후
연구들을 위한 몇 가지 유형 제시 이외의 접근이 힘들다는 한계를 노정한다. (주제어:
1960년대, 반공‧반북성, 반공만화, 사전검열, 합동, 반공국시)
>>이러한 국문요약은 형태 참고하면 좋을 듯
단호박 같은 매력..
1. 들어가며
많이 보면 좋은 작품이라는 자본적 논리가 횡횡하고 있으며 만화학과가
생긴지 20년임에도, 기초적인 ‘한국만화사’조차 제대로 연구되어 있지 않
으며, ‘학’으로서의 만화란 아직 먼 나라 이야기이다.
심심찮게 일어났던 어린이날 기념 ‘만화 분서갱유’는 오늘날 60년대
만화자료를 만나기 힘든 이유 중의 하나이다. 쉬이 태울 수 있는 자료를
누가 제대로 보관하고 관리했겠는가. 현재 만화에 대한 사료들을 뒤질 수
있는 곳은 그나마 부천에 있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만화박물관1), 이천
에 있는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박물관이다. 1960년대 작품들을 검색해보
면 전자에서는 약 400권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수장고에 보관
되어 있다 보니, 몇몇 복간된 작품들을 제외하고 나면 일일이 보는 것이
쉽지 않다. 연구자들도 원칙적으로 하루에 20권만 열람할 수 있고, 그것
도 담당자가 옆에 있어야만 가능하다. 연구자들에겐 불만을 자아낼 수 밖
에 없지만, 부스러지고 있는 종이상태를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
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문DB 사업을 계획하고 있긴 하지만,
순식간에 가능한 일은 아니다.
>>빨리 DB화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약간 딴 얘기지만 의미있는 이야기
2. 역사적 배경으로서의 1960년대
김정훈과 조희연은 한국에서 형성된 냉전형 사회를 ‘반공규율사회’로
개념화하는데, 이는 1960년대의 반공이데올로기가 얼마만큼이나 한국사
회를 지배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이러한 반공주의가 1960년대 한국만화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
를 살펴봄에 있어서, 직접적인 양태와 간접적 양태로 나누어 보려고 한다.
만약 직접적인 양태가 더 ‘적극적인 대응’이라면, 간접적인 양태는 일정
정도 만화가들에게 반공주의가 ‘내면화’됨으로써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전제해본다. 이 양태 분류에 앞서 우선 1960년대 한국만화계의 상
황에 대해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3. 1960년대 한국만화계의 상황
1960년대는 한국만화가 양적, 질적으로 성장한 긍정적 시기인 동시에,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부정적 문제점들이 배태된 시기이기도 하며, 반공국
시의 행태가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에 영향을 끼친 시기이다.
사실상 이러한 만화방 중심
의 유통구조-오늘날에는 도서대여점까지 이어지는-가 만화생태계의 태생
적 허약성을 노정한다. 즉, 책을 사는 대신에 빌려보는 행태로 대신하는
것이야말로 만화산업구조를 취약하게 만드는 것이며, 취약한 산업구조는
새로운 자본 및 인력을 끌어들이는데 명확한 한계를 노정한다.
>>다른 콘텐츠라고 안 그럴까...
만화방을 중심으로 한 대여구조가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모순의 집적체
중의 하나라면, 다른 한 가지는 ‘사전검열’이다. 물론 지금은 사후심의의
형태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화생태계의 건전화에 딱히 많은 것을 기여하
는 것은 아니다. 반면 1960년대의 사전검열은 만화창작활동의 양적, 질적
제한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치명적이었다. 군정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하더
라도 작품에 대한 사전심의보다는 양서를 더 많이 발간함으로써 어린이
들의 정서를 함양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1959년 6월 13
일자 <동아일보>의 기사를 보자,
“12일 오후 문교부에서는 감수성이 강한 아동들의 건전한 정서를 보호하고
이들의 맹목적인 모방에 의한 비도덕적 행위를 막아내어 도의교육의 뒷받침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교육자, 문학가, 만화가들에 의한 연석회의가 열렸다. 16인
의 연석회의에서는 불량만화에 대한 단속방법을 법적인 조치보다는 양서를 더
많이 내는 것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아동도서 선정위원회’를 구성할 것과 ‘아동
도서 선정기준’을 마련키로 합의하고 문교부에 초안을 제시하기로 하였다”21)
>>애들한테 세상의 더러운 면도 좀 보여주고 그래라ㅡㅡ...
이는 1960년 1월 24일에서도 “2월중에 좋은 만화를 선정”할 것이라고
재언급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검열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이 없
었던 것은 아니다.
“최근 부산의 한 소녀가 악질 만화책에서 힌트를 받어 가지고 인질로 동굴
안에 감금당하였으니 돈 五백만 환을 가지고 와서 데려가라는 협박 편지를 부모
에게 보내어 그럴듯한 탐정소설 같은 연극을 꾸며내어 천여 명 경관이 동원되었
다는 사건은 세상 사람을 놀라게 하였고 자녀를 둔 부모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
였다. 대단치 않게 생각한 만화 한 폭이 이같은 비극을 일으키는 것을 볼 때 글
이나 그림의 힘이 얼마나 그 영향을 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었다. 당국은
이제야 엄중히 단속하겠다고 언명하였으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셈이 안될
까?22)”
“검열과 단속 불충분으로 인하여 각종의 저속한 대중잡지‧만화‧연극‧영화
등의 내용이 미숙한 소년들에게 폭행 범죄‧잔인한 행동들로의 강한 자극을 주고
있는 것을 큰 원인의 하나로 들 수 있을 것이다.23)”
4-1. 반공주의가 작품의 주서사인 경우
4-2. 반공적 서사에 보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경우
두 번째의 경우는 김종래의 .마음의 왕관.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고우영이 아직은 자신의 진가를 다 드러내지 않던 시기라면, 김종래는 당
시 만화가로서 그 시대에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상당한 인기를 끌던 작가
이다. 60년대, 양심을 지키며 떳떳하게 살아가는 편부가정의 아이들이 겪
는 어려움이 그 주제이다. 부자들은 적대적이며, 관리들은 부정부패를 일
삼는다. 정직하나 가난한 아버지가 리어카를 끈다고 창피해하는 아들 영
진이, 당차나 아직은 어린 영란, 어머니 역할을 대신하는 어른스러운 영
숙이 세 형제는 어려운 여건에서 성실히 생활한다. 영진과 영란이가 자신
을 창피해한다는 것을 안 아버지가 리어카를 팔아 양복으로 바꿔 입고 몰
래 노동현장에서 일하다 건물에서 떨어져 죽는다. 가난한 영진이를 부잣
집 아이들과 차별하지 않고 지지해주던 담임선생님도 밉보여서 학교에서
쫓겨나고 주변에서 그 누구도 이들을 도와주지 않는다. 영숙의 병으로 병
원을 가던 자매는 남으로 내려올 때 헤어진 어머니와 마주치지만, 모른척
하고 지나가는 그녀에게 상처받는다. 나중에 몰래 찾아온 어머니는 사실
자신이 간첩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아이들은 공산당을 믿지 말고 핏줄을
믿으라며, 자수하면 용서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때 갑자기 밖에서 시끄러
운 소리가 들리고, 영진이가 4.19데모를 하러 나갔다가 다쳤다는 소식이
들린다. 북한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적극적 용기를 낸 아들을 생각하고
어머니는 자수하며 네 식구는 비록 가난해도 마음의 왕관을 지니고 있었
던 덕분에 행복하다.
4-3. 반공주의의 장식적 활용
김원빈의 포졸아기(1969, 신신문화사)는 이
야기를 전개하다가 갑자기 한 칸을 “간첩신고 113”이라는 글자로 채우는
데 사용한다. “공산주의처럼 그렇게 하지마(라이파이)”, 고기를 분배하면
서 대장이랑 부하랑 같은 양으로 나누자 “잘 나눠라, 공산당식으로!”라고
요구하고, 대장을 더 많이 주자 “과연 똑같이 나눴구나!”라고 칭찬한다(쌍
쌍전우 5권). 간첩, 땅굴, 괴뢰 같은 단어들은 수없이 등장한다.
사실상, 이들은 반공서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다만, 이러한 무의
미한 반복이야말로 반공이데올로기를 점차 일상화, 내면화시키는 과정중
의 하나였다. 직접적인 반공서사보다 수위는 낮을지 모르겠으나, 분명 반
공이데올로기의 일상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 이런 은근한게 직접적인 서사보다 더 무서울 수도
4-4. 반공주의의 비극성 내포
5. 나가며
만화가 나름의 심리적 저항
이 발현된 형태로 보자면 긍정적이나, 반복되는 반공, 반북적 언급들은
당시의 독자들에게 분명히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점은 70년
대로 넘어가서도 쉽사리 어떻게 고칠 수 없는 문제로 남게 된다. 1970년
대 중반기 이후 한국만화가 서서히 붕괴되었던 이유를, 60년대에 구조화
된 만화계 내부의 모순이 사회전체의 모순과 겹쳐서 이중적으로 만화가
들을 압박했기 때문이 아닌가 추정해 볼 수 있다. 이후 좀 더 세부적인
연구들을 통해 이러한 추정들을 논증하거나 반박할 계기들이 많이 만들
어지기를 바란다.
>>그럼 반공주의가 반영된 만화에 대해 비판적인 것?
꼭 반공주의뿐만 아니라, 만화나 예술 같은 것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이용될 떄 (혹은 경도될 때) 의 문제점을 보다 확실하게 비판하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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