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의 식민지 후반기(1934-1939) 문학은 관찰과 고백의 서사를 통해 사소설적
경향과 심경소설의 양상을 보이면서 당대에 가졌던 사유 체계와 전향의 논리를 표출
하고 있다. 그의 문학에서 사소설적 경향은 ‘생의 위기’와 ‘삶의 혼돈스러움’이 두드러
지게 드러난 시기에 나타났다. 이 시기는 ‘계몽’을 벗어나서 ‘관찰’과 ‘고백’을 통한 서
사 전략의 변환과 사유 체계의 전환을 동시에 드러낸 시기이다.
이 시기의 이광수의 문학이 ‘계몽’적 글쓰기에서 ‘나’의 글쓰기인 내면적 글쓰기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던 내적 논리는 사유체계의 전환과 정치적 전향의 논리로 귀결된
다.
Ⅰ. 서론
이 논문은 이광수의 문학사에서 민족에 대한 계몽적 서사가 일시적으로 문
면에서 사라졌던 시기인 1934년부터 1939년도까지의 문학의 사소설적 경향과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사소설적 경향의 문학은 관찰과 고백의 서사
전략으로 형성되면서 사유체계의 전환과 전향의 내적 논리를 자연스럽게 드러
내고 있다. 이 시기의 문학은 이광수에게 민족과 민중의 계몽을 뒤로 한 채 주
로 자신, 삶과 죽음, 가족 등의 내면적인 문제를 작품의 화두로 삼고 있다.
>>내적 논리를 드러냄... 그러므로 개아가 가능한 것이다
이 작품들의 공통된 특성은 작품
의 화자가 모두 ‘나’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와 가족, 나의 심정, 내 영혼에 관한
내용으로 고백과 관찰의 방식으로 서사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작품들은 당대의 평자들에 의해 ‘사소설’로 분류될 수 있는 작품 경향을 지닌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주로 이광수가 개인사적인 문제로 고뇌하던 시절과 신
체제론이 대두되는 시기의 갈등과 고뇌의 산물이다.
고백 서사를 통해 ‘나’
를 드러내면서 ‘나’의 내적 갈등이 함의하는 의미를 분석할 것이다.
Ⅱ. 혼돈의 시대와 ‘사소설’
만주사변(1931년) 이후로 일제는 정책적으로 조선 문단을 더욱 억압하였으며,
기존의 조선 문단에서 두 명맥으로 유지하고 있던 민족주의적 경향의 문학과
카프 계열의 문학, 모두에게 큰 타격을 주기 시작하였다. 1930년대 초반부터 카
프 검거와 해산이 진행되었고, 민족주의 계열에서는 정치성이 배제된 인격 수
양단체라고 규정지으며 활동하던 수양동우회조차도 안창호의 검거로 힘을 잃어
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문단적 상황은 작가들로 하여금 이념적 층위의 작품을
쓸 수 없도록 만들었으며, 이로 인해 문학적 경향도 다양화되면서 신변잡기적
인 형태로 변모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의 이광수는 개인적으로 동우회의 정신을 실현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되었던 언론사인 조선일보 에서 사직하게 되었고, 더욱더 고통스러운 일은 사
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지도자로서 유일
하게 힘을 얻을 수 있었던 조직이 와해의 지점에 봉착했고, 언론인으로 반평생
을 살아온 그에게 언론사를 그만둔다는 것 역시 그가 여태껏 지켜온 이념이 위
기를 맞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자식을
>>헐 이광수 사랑하는 자식이 죽다니..ㅠ.ㅠ
왜 이 시기에
이광수는 기존의 작품 경향과 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을 한 것일까? 이 물음
에 대한 답은 바로 그가 처한 당대의 상황과 그의 내면세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일본의 문단적 상황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다.
당대의 일본의 문학적 경향은 사소설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소설, 그
중 심경소설의 중요성은 구메 마사오의 논의를 통해 촉발되었다. 당대 통속소
설 작가로서 유명했던 그가 「순문학여기설」을 통해서 “나는 지금 통속소설을
직업으로 쓰고, 골프를 도락으로 즐기는 인간이지만, 한밤중 꿈에서 깨어나 몸
과 마음이 추울 때 골똘하게 ‘餘技’로서의 순문학을 생각한다.”라고 쓰고 있다.
구메 마사오는 하나의 존재 이유를 갖고 있는 생활자가 외부로부터 강요받지
않고 ‘심경’을 그린 작품이 순문학이라고 말하면서, 결국 문학이란 ‘생활의 구원’
을 목적으로 하며, 진정한 형태는 ‘여기’이므로 ‘직업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다. 그 대신 대중문학과 통속소설을 좀 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좀 더 기술적
으로도 향상되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6) 즉 이것은 진정한 문
학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즉 ‘하나의 존재
이유를 가진 생활자’의 ‘심경’을 그린 것이 바로 진정한 순문학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구메 마사오는 1925년 1-2월 문예강좌 의 .사소설과 심경소설.에서 본
격적으로 심경소설의 가치를 옹호하고 있다.
나는 저 사소설을 문학의-라고 하여 너무 지나친 말이라고 한다면, 산문 예술
의 참된 의미에서의 근본이며 정도이자 진수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예술이 진정
한 의미에서 또 다른 인생의 ‘창조’라고는 아무래도 믿을 수 없다. 예술은 고작해
야 그 사람이 걸어온 한 인생의 ‘재현’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발자크
가 여러 유형의 인물을 살아 있는 것처럼 창조했다 해도 내게는 결국 모조품으로
생각될 뿐이다. 죄와 벌 , 전쟁과 평화 , 마담보바리 도 고급은 고급이지만 ‘위
대한 통속소설’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모조품이며 읽을거리다. 모든 예술의 기초
는 ‘나’에게 있지만, 문제는 ‘나’가 과연 리얼하게 표현 되었는가 아닌가에 달려있
다. 여기에서는 ‘나’를 압축하고, 융화하고, 여과하고, 집중하고, 흔들고 그리고 완
전하게 재생시키고 나아가 무오류를 요구한다.7)
당대의 심경소설에 대한 집중적인 평가뿐만 아니라 일본문학의 뚜렷한 경향
으로 분류되고 있는 사소설은 전후에 더욱더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10) 이토
세이는 “일본 근대 소설의 수필적 자전적 특성, 이야기식 조형에 대한 반발은
소설 기법의 후진성 탓이 아니라 현세의 조형은 현세에서의 기반 없이는 불가
능하다는 것을 느낀 작가들의 본능적 회피”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정
치에 대한 무관심도 또한 그것이 예속을 강요하는 현세의 힘이었기에 회피되
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일본인은 가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픽션 따위
는 우습지도 않는 것이다. 픽션 같은 것은 저녁때 연미복을 차려입고 외출하는
자들이 하는 것이다. 노예에게 외관은 필요 없다.”라고 하면서 일본의 사소설을
>>왜 정치성으로부터 도피할까? : 탕진
추구하는 문학자를 ‘도망노예’로 표현하면서 그 반대편의 ‘허구’를 추구하는 유
럽의 문학자를 ‘가면신사’라고 평하고 있다. 이는 이야기의 조형성에 대한 반발
을 핵심으로 하는 것으로 일본 근대 문학은 자전성에서 비롯됨을 설명하고 있
고 문학인들이 정치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파악한
다.
위의 논의를 통해 사소설과 심경소설에 대한 공통의 특징을 끄집어 낼 수
있다. 첫째는 서사의 조형성, 즉 ‘허구’에 대한 강한 부정, 즉 진정한 서사는 ‘나’
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서양의 근대 소설에서 추구하는 주체로서의 ‘나’, ‘개
인’으로서가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나’를 말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정치성을
견지할 수 없는 시기에 발생했으며, 셋째는 생의 위기의식―그것이 대지진이든
나의 생의 위기이든―가 중요한 서사의 모티브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
로 사소설에 대한 논의나 창작의 활성화는 현세의 혼돈과 위기감이 도래할 때
부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을 갖는 일본의 사소설과 식민지 조선에서 발
생하는 사소설은 그 출발점에서는 차이가 나타나고 있지만, 사소설의 내용적.
형식적 측면에서는 공통된 특성이 드러나고 있다. 발생적 차이점으로는 일본에
서 문학자는 정치성을 가질 수 없었고, 권력을 행사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던,
“봉근아, 나는 네가 죽지 아니한 것은 믿는다. 다만 네가 잠시 썼던 연약(軟弱)
하던 몸을 벗어 버리었을 뿐이요. 그 령(靈)은 무시(無始)에서 무종(無終)까지 살아
있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지나간 전생에도 너는 나와, 혹은 부자로, 혹은 형제로,
혹은 친우로 여러 번 만났던 것도 믿거니와 금후에도 너와 나와는 世世生生에 여
러 곳에서 여러 관계로 만날 줄을 믿는다. 전생에는 네가 내 은인이었던 것만은
안다. 혹은 네가 내 선생이었던 것도 안다. 네가 전생에 내게 미처 다 가르치지 못
하고 간 인생의 이치를 너는 나에게 가르치고 갔다. 너는 나를 예수께 소개하고
다음에는 불타께 소개하였다. 네가 가매 나는 시편을 읽고, 금강경과 원각경과 화
엄경을 읽고, 사람이란 결코 죽지 아니할뿐더러 죽지 못한다는 것을 배우고, 인과
의 원리를 깨닫고, 변치 아니할 인생관을 얻었다. 그래서 네가 죽을 줄만 알고 슬
퍼하던 마음을 돌려 너를 위하여 비는 마음을 얻었다.”12)
>>이광수의 글.. 슬퍼ㅠㅠㅠ
이 시기 이후에 나온 작품들은 주로 예전의 이광수가 추구하던 만들어진 인
물, 즉 작가의 인식 안에서 미리 상정해 놓은 허구의 인물을 활용해서 자신이
추구하는 사상과 삶에 대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이 아닌 자신의 시각,
즉 감각작용을 통해 관찰되거나 사유를 통해 느껴지는 사항에 대해 심경을 드
러내는 방식으로 서사를 진행해 가는 글들이다. 이러한 방식은 위에서 언급한
일본의 사소설의 방법론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2. 고백서사의 조화적 세계와 ‘전향’의 논리
히라노 겐은 사소설과 심경소설을 구분하면서 “인간 실존의 어쩔 수 없는 어
리석음이나 깊은 죄의식에서 발생하는 생의 위기감과, 그런 위기감을 초극하는
데서 생긴 청명한 운명감과의 조화”19)를 보이는 것이 심경소설의 특징이라고
지적한다. 이 시기의 이광수의 작품은 인간 실존의 문제와 생의 위기감을 서사
화하면서 심경소설의 경향을 두드러지게 드러내고 있다. 이 시기 생의 위기감
과 실존, 운명에 대한 심경을 그리고 있는 작품은 「육장기」, 「꿈」, 「난제오」등
이다. 앞서 살펴본 「무명」과는 서사 전략적인 면에서 다소 차이가 나타나는데,
「무명」이 ‘나’의 시선을 통한 관찰로 현실의 조악함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생의
절망감과 위기감을 표현한 것이라면, 「육장기」는 ‘나’의 삶에 대한 위기의식과
생의 갈등을 자연과의 관계에서 도출하면서, 고백적 서사로서 자신의 삶을 돌
아보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드러난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나’의 체험
을 토대로 구성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즉 “사건이나 인물을 그려도 그 사건이나 인
물이 소설의 주체가 아니라 그 사건 그 인물에서 받은 인상, 감상이 주체가 된
다”라는 것이다.20) 이는 심경소설이 갖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구조적 특징이다.
심경소설은 기본적으로 ‘나’의 마음 상태, 내면 풍경을 고백하는 방식으로 이
루어진다. 이 ‘고백’하는 행위 또는 ‘자기에 대한 글쓰기’는 가치를 추구하는 의
지와 결부되어 있다. 과거의 수많은 사건들 중에서 특정한 에피소드들을 선택
하여 배열함으로써 삶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즉 고백의 전략은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21) 고백하는 행위는 자신을 표
현하기 보다는 자신의 진정성을 증명하고 그 진전성의 토대 위에 타인과 관계
맺고 인정을 얻으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1) 유호식, 「자기에 대한 글쓰기 연구 (1): 고백의 전략」, 불어불문학연구 제43집, 한
국불어불문학회, 2000, 184쪽.
Ⅳ. 결론
이광수의 식민지 후반기 문학은 관찰과 고백의 서사를 통해 사소설적 경향
과 심경소설의 양상을 보이면서 당대의 그의 내적 욕망과 전향의 논리를 무의
식적으로 표출하였다.
이광수가 사사 전략의 변환을 시도하는 시기는 대체적으로 정치성의 발휘
유무에 따라 결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정치성의 발현이 시대적 상황논리
에 의한 것이기도 하고 개인의 사적인 삶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그가 40
년간 꾸준히 ‘계몽’적 글쓰기를 해 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중간에
‘나’를 향한 글쓰기로 서사 전략이 변하는 시기는 통시적으로도 공시적으로도
그 의미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이광수의 문학이 ‘계몽’적 글쓰기에서 ‘나’의 글쓰기인 내면적 글쓰
기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던 내적 논리는 바로 사유체계의 전환과 정치적 전향
의 논리로 귀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시기 이후 1940년경부터 이광
수가 적극적으로 신체제론을 옹호하는 제국주의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
관의 전환과 사유체계의 변모를 통해 이루어진 구원의 문학 시기가 있었기 때
문이다. 이러한 문학적 시기를 겪은 후 스스로 구원받은 이광수에게 신체제론
으로의 전향은 무차별의 세계로 진입한 그의 내적 논리에서만은 정당성을 담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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