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매체의 대중화와 만화
-1920년대 초, 동아일보와
동명의 만화를 중심으로-
1. 서론
2. 시사만화의 공적 텍스트로의 편입
3. 주간지 사회면의 가십화
4. 표상된 이미지로 폭로되는 문화정치
4-1. 문화정치에 은폐된 민족적 차별
4-2. ‘순사’로 표상되는 문화 정치의 희화화
5. 결론
국문요약
본고는 시사만평이 대중 저널리즘에 유입된 과정을 식민지 시기 민간
언론의 형성과 대중화 기획과 관련하여 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조선
에서 만화가 서서히 공적공간으로 자리 잡게 된 과정에 주목하고자 한
다.
>>이렇게 치고 들어가야 하는거죠!! 뽱!!
1909년 대한민보의 ‘삽화’
이후에 새롭게 등장한 시사만평이 동아일보와 동명을 중심으로 전
개되는 과정을 통해 당대 저널리즘을 이끈 지식인들의 식민지 정치에
대한 인식을 만화를 통해 살펴보고자 하며, 동시에 신문을 통해 여론을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만화가 어떻게 정견을 형성해 나갔는지 고찰하고
있다.
1. 서론
만화는 산업과 과학의 발달로 이루어낸 근대의 산물이자, 체현된 근
대성이 발현되는 대표적인 시각예술이다. 만화가 저널리즘에 등장하기
위해서는 인쇄술의 발달을 전제해야 하고, 시각적 재현에 대한 이해가
가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1909년 대한민보의 ‘삽화’는 “대한민국
최초의 만화”라는 의의를 넘어, 근대성이 발현된 장르의 출현으로도 이
해될 수 있다.1)
>>저자의 만화에 대한 정의와 접근.. 이런 것부터 밝히며 시작해야!
3.1운동에서
확인한 불특정 다수의 군집의 역동성은 이것을 어떤 형태의 주체로 구
성하느냐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잠재된 욕구의 분출이 가져다 준
언로(言路)의 해방은 은폐된 통제의 일환으로 시행된 언론의 자유라는
일제의 정책과 맞물려 식민지 조선에 매체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3.1운동 이후의 새로운 주체를 구상해 나간 조선의 지식인 집단은 대중
의 취향과 요구를 수용하는 입장에서 문화 장(場)을 재편해 나갔다. 특
히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각종 유인물과 격문,
삐라, 신문 등과 같은 근대적 인쇄매체의 역할이 컸다. 천정환은 이러한
격문과 유인물 등이 민중의 손으로 직접 제작된 ‘대항’미디어로서, 주체
의 글쓰기와 재현의 양식을 보여준다고 말했다.2)
>>우와.. 쩔.
이를 위해서 김동성을 기자로 임명하고4) 최초로 만평란을 저널리즘
에 고정시킨 동아일보와, 사회 문제를 만화로 재현한 동명을 대상
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정도가 이제 연구 대상 선정 / 선정의 이유. (뒤에 더 자세히 나오긴 함) 이 정도로 간단히, 핵심적으로 밝혀도 됨.
2. 시사만평의 공적 텍스트로의 편입
김동성은 1919년 12월까지 매일신보에 시절
만화를 게재하며 “폰(punch)화가”로 명망을 얻고 있었다.7)
이 ‘풍자화’들은
주로 1면, 2면에 실려 물산장려운동을 지지하거나16), 악덕지주의 횡포
와 착취당하는 소작농17) 등 다양한 시사 문제를 다루었지만 그 중에서
도 총독부의 실정으로 인한 조선인의 궁핍과 강압적 통치에 대한 비판
을 내용으로 하는 만화가 상당수 게재되었다.
>>올ㅋ 동아일보ㅋ 당시엔 그랬었찌염...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1919년 3.1운동이라는 예기치 않은 소요사태를 겪은 일본의 통치전략이
‘문화정치’로 전환된 시기였기 때문이다. 제국 일본은 ‘문화정치’라는 정
교화된 통치 방법의 일환으로 조선인들이 발행하는 언론 매체의 허용을
통해 “통제 속에서의 분출”을 가능케 했다.18) 이렇게 해서 일본은 통제
되지 않은 불투명한 대중의 욕망을 분출시키고 그들의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다.
>>문화통치를 하는 이유
특히 이 란이 독자들의 현상공모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대중
성과 정론성이 결합된 만평 고정란을 통해 만화 인구의 저변을 확대하
고 신문사의 정견이 재생산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한 신문사
의 전략적 선택에 의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24)
3. 주간지 사회면의 가십화 -동명
이와 같이 매체의 재미의 강조는 이미 서구와 일본에
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만화를 도입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
다. 결국 동명에 재미를 부가하고 독자참여를 유도하는 것은 만화라
는 장르를 통해서도 시도되었다.
오락만화가 아닌 만평이나 풍자만화를 게재함으로써 동명은 민족주의적 편집경향이
두드러진 정론지의 성격을 유지할 수 있었고36), 동시에 만화를 통해 자
신들의 정견을 대중화하고 여론화할 수 있었다.
4. 표상된 이미지로 폭로되는 문화정치
4-1. 문화정치에 은폐된 민족적 차별
‘위생’의 강조는 질병으로부터의 보호라는 ‘시혜’로 포장되어 식민
지 통치권력의 헤게모니 장악 과정 속에서 ‘위생’을 통한 위계화 작업이
교묘하게 작동되고 있었다.
4-2. ‘순사’로 표상되는 문화 정치의 희화화
정권에 대한 불만을 조롱과 풍자로 표출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권력이 더욱 강압적일 때 그것을 표상하는 이미
지를 통한 풍자가 활발해진다는 점이다.
‘문화정치’로 포장되었지만 은폐된 식민정치의 폭압은 “큰 칼”로 표상되
었고, 그것은 곧 폭력의 도구를 표상하는 가장 직접적이고도 노골적인
도구인 것이었다.
5. 결론
특히 만화가 고정란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만화가 공론에 개입할
수 있게 된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만화사 초기 연구에 중요한 지점
이 되고 있다.
특히 상당
수의 만화들이 독자 투고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만화가 독자들에게 하
나의 장르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만큼 만
화는 독자의 반응을 이끌어내는데 있어 즉각적이었다. 또한 현상공모는
독자들의 여론을 수렴한다는 미명 하에 언론사의 정견을 드러내는 효과
적인 수단이기도 했다. 문화정치에 은폐된 식민 통치에 대한 불만을 드
러내거나 정권을 희화화하였으며, 정치적인 것을 소재로 할 뿐만 아니
라 주로 독자들의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실들을 다룸으로써
식민당국에 압박을 가하고 여론을 형성해 나갈 수 있었다.
<<연구 의의 확실 논의 전개 명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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