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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 도스트옙스키 (민음사)

snachild 2021. 4. 4. 22:54

11쪽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 되지 못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숫제 아무거도 될 수 없었다. 심술궂은 인간도, 착한 인간도, 야비한 인간도, 정직한 인간도, 영웅도, 벌레도 될 수 없었던 것이다.

16쪽
이 경우 쾌감은 바로, 자신의 굴욕을 너무도 선명하게 의식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었다. 즉, 막다른 벽에 다다랐다는 것을, 이건 추악하기 짝이 없지만 달리 어쩌 수가 없다는 것을, 더 이상 출구도 없고 절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없다는 것을, 설령 뭐든 다른 것으로 변할 수 있는 시간과 믿음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할지라도 분명히 자기 스스로 그 변화를 원하지 않을 것임을, 설령 원한다고 한들 사실상 마땅히 변할 대상이 전혀 없을 테니까 결국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느끼기 때문에 쾌감이 생기는 것이다.

43쪽
인간은 언제나 어디서나 그가 누구든 간에 절대 이성과 이익의 명령이 아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길 좋아했던 것이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이익에 반해서라도 그렇게 하고 싶어할 수 있고 이따금씩은 꼭 그래야만 한다. 자기 자신의 의지적이고 자유로운 욕망, 아무리 거친 것일지라도 여하튼 자기 자신의 변덕, 이따금씩 미쳐 버릴 만큼 짜증스러운 것일지라도 여하튼 자기 자신의 환상, 이 모든 것이 바로 저 누락된 이익, 즉 어떤 분류에도 속하지 않고 모든 체계와 이론을 끊임없이 산산조각 내 버리는 가장 유리한 이익인 것이다. (...)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독립적인 욕망 하나뿐이다. 

46쪽
소망도, 의지도, 욕망도 없는 인간이라면 배럴 오르간의 스톱이지, 무슨 인간이오?

47쪽
이성은 오직 이성일 뿐이어서 오직 인간의 이성적 판단력만을 만족시킬 뿐이지만, 욕망은 삶 전체, 즉 이성과 온갖 긁적임을 포함하는, 인간의 삶 전체의 발현이다.

<<8편에서는 인간 실존이 도구적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역설한다. (자기파괴처럼 쓰잘데기 없는 짓조차 저지르는 것이 인간). 2곱하기2 = 4 가되는 것처럼 자동성이 아니라 자율성! 자유 의지가 있는 인간 

52쪽
정말로 인간의 일이란 오직 자신이 오르간 스톱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시시각각 증명하려는 데 있으니까!

55쪽
모든 죄악의 어머니로 알려진 파괴적인 무위에 빠져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56쪽
인류가 지향하는 지상의 모든 목적은 오직 목적 달성을 위한 이 끊임없는 과정에, 달리 말해 삶 자체에 있는 것인지, 어차피 2곱하기2=4가 될 수 밖에 없는 목적 자체에, 즉 공식에 잇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 적어도 이와 같은 목적을 달성할 때마다 매번 그에게는 뭔가 어색한 것이 나타난다.
             
65쪽
누구든 사람은 오직 친구들이 아니면 아무한테나 털어놓지 못하는 추억이 있는 법이다. 친구드롣 아닌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그것도 은밀히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끝으로,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털어놓기 무서운 것들도 있는데, 점잖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것들이 상당히 많이 쌓여 있을 것이다. 즉, 심지어는 점잖은 사람일수록 그런 것들은 더욱 더 많을 것이다.

73쪽
우리 시대의 점잖은 인간은 누구나 겁쟁이이자 노예이며 또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79쪽
그 무렵 이미 나는 내 영혼 속에 지하를 담고 다녔다.

89쪽
문제는 내가 목적을 달성했고 자긍심을 지켰으며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음으로써 대중 앞에서 나 자신을 그와 사회적으로 대등한 지위에 세웠다는 데 있다.
>>망상증에 가깝게 준비하고 고작 거리에서 어깨 맞부딪쳤지만 피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렇게 사회적 자존감을 채우려는 주인공...

149쪽
“리 자. 인간이란 자기 괴로움을 세는 것만 좋아하지. 자기 행복은 아예 세질 않아. 만약 제대로만 센다면 누구나 자기 몫이 있다는 걸 알게 될 텐데.”

170쪽
신경의 팽창에서 비롯된 허튼 상념

17 3쪽
(아폴론에 대해) 이놈은 나의 종양이요, 하느님이 보내신 채찍이었다.

194쪽
‘살아있는 삶’이 너무 익숙하지 않은 탓에, 이제는 그것이 숨이 막힐 만큼 나를 짓눌러 왔다.

197쪽
모욕은 그녀를 높은 데로 이끌고 가... 증오의 힘으로 그녀를 정화해 줄 것이며... 음... 용서의 힘으로 또 정화해 줄지도 모르지.

198쪽
가 령 내가 지하의 구석방에서 정신적인 부패에 시달리고 환경의 결핍을 맛보며 살이 있는 것으로부터 유리되어 허영심 가득한 분노나 키우고 그럼으로써 정작 삶은 놓쳐 버린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늘어놓는 것은 맹세코 재미없는 일이다.
(...)
소설에는 주인공이 필요한 법인데, 여기서는 일부러 반주인공에게나 걸맞은 특성만 몽땅 모아 놓았다. 중요한 건 이 모든 것이 불쾌한 느낌을 준다는 점인데, 이는 우리 모두 삶으로부터 유리된 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너나할 것 없이 다 절뚝거리고 잇기 때문이다.

199쪽
우리를 단 한권의 책도 없이 홀로 남겨 둬 보라, 그럼 우리는 당장에 갈팡질팡하고 어리중덜해질 것이며, 어디에 합류해야 하고 무엇에 따라야 할지, 무엇을 사랑해야 하고 무엇을 증오해야 할지, 무엇을 존경해야 하고 무엇을 경멸해야 할지 통 모를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조차, 자신만의 진짜 육체와 피를 가진 인간이라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한다 이것이 너무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나머지, 지금까지 존재한 적도 없는 무슨 보편 인간이 되려고 안달복달한다. 우리는 사산아, 더욱이 이미 오래전부터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아버지에게서 태어나는 존재이며, 또 이것이 우리는 점점 더 마음에 든다. 취향에 맞는 모양이다. 조만간 우리는 어떻게든 관념으로부터 태어날 궁리를 할 것이다. 하지만 됐다. 더 이상 ‘지하에서’ 이러헤 쓰고 싶지 않다...

201쪽 작품 해설 
도스토예프스키 - 지식인 프롤레타리아, 잡계급 출신. (가난해서 밑천이라고는 자신의 머리밖에 없는)

203쪽
간질 발작이 시작되고 의식이 완전히 명멸하기 직전의 순간을 작가는 세계의 모든 비밀을 꿰뚫을 수 있는 순간이라고 했다. 

205쪽
그의 처녀작은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과 심리를 휴머니즘적인 관점에서 사실주의적으로 그려 냄으로써 1840년대 러시아 문단을 뒤흔들었지만 그 자체로 러시아 문학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수는 없었다.
>>죄와 벌 같은 걸 써서 위업을 이룩했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적 진화에서 일종의 ‘변태’의 순간을 포착하고자 할 때, 우리는 <지하로부터의 수기>와 만나게 된다.  

 

<<이것 참... 이상주의자면서 마음 여린 문학 내향인의 고뇌와 어울리지 못함이 녹아든 작품임...

1부는 난해하고 두서 없지만 2부부터 볼만 하다.

1부 때문에 안 보면서 미루다가 도서관 가서 2시간 만에 다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