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9
'감정화'는 사람들의 온갖 자기 표출이 '감정'이라는 형태로 드러나는 것을 상호 욕망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p.12
덴노의 '마음'이 전체 국민에게 싱크로니시티(공시성)를 불러일으킨 방식
p.13
지성과 권력이 연결되는 것에 대한 혐오감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엇던 구시대적 '반지성주의' 세력을 건너뛰고 감정이 권력을 빼 버린 채 국민화된 것이다.
(...)
이렇듯 '감정'이 우리 가치 판단의 최상위에 놓이고 '감정'을 통한 '공감'이 사회 시스템으로 기능하게 되는 사태를 이 책에서는 '감정화'라 부른다.
>>이와 함께 '감정'이란 말에 애덤 스미스의 용법을 부흥시켜서 쓰려고 함. '감정적'이란 것은 부정적인 의미였고, 이성이나 도덕으로 감정을 규율해야 한다는 사고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p.14
스미스 <도덕 감정론> 타인의 행위와 감정에 대한 공감이 사회 구성의 근간에 놓임
하지만 여기서 그는 나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직접 공감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 중립적인 관찰자를 두고 그것이 자신과 타인의 감정 및 행위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형성하는 단계를 밟는다. 그 결과로 규범, 즉 '도덕'이 형성. 감정이 적절한 회로를 통해 도덕화.
>> 차이와 타자(서동욱)에서 상처 받을 수 있는 가능성, 고통에의 공감을 통해 윤리성을 깨닫는 것과 비슷
>>>> 그런데 스미스 대와는 달리 우리 마음 속에 '중립적 관찰자'가 결여된 것이 현재.
p.15
이 내적인 관찰자는 정치나 미디어, 문학의 형태로 '외화'되고 제도화되었다. 지성이라 불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것들은 현재 심각한 기능 부전에 빠졌다. 기존 미디어가 제4의 권력으로 신뢰성을 잃은 것도 스스로 감정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정적인 정치와 감정적인 미디어와 감정적인 문학과 감정적인 지성이 지금 넘쳐 나고 있다.
(...) 공감을 통해 이어지는 인간 사회.
그런데 '공감'에 대해 비평적이려하거나 공감할 수 없는 감정과 행동(즉 타자)을 어떻게 이해할지를 묻는 단계를 건너뛰고 '공감'이 직접 '커다란 감정'과 직결될 때, 본래 우리가 설계했어야 했던 '사회' 혹은 '국가'와는 이질적인 존재가 만들어진다. 사회나 국가가 아니라 감정이 공명되어 혹은 융해되어 만들어진 무엇.
p.16
안노 히데아키가 지난 세기에 그려 보였던, 자타의 심적 경계가 인류 수준에서 소멸되는 '인류 보완 계획'과도 같은 세계가, ... 감정 덴노제란 그 현재형의 하나다.
p.23
나는 민주주의 시스템이 아무리 매도당해도 현재 시점에 그 외의 선택지를 아무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그것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민주주의를 '비웃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행하고자 노력하는 일에는 많은 사람이 태만하다. 그쪽에 줄 설 생각은 없다.
p.26
덴노로서는 헌법 해석을 '마음'으로 표출할 수 밖에 없었고, 국민은 여기서 다만 '마음'만을 받아들였다. 이 절망적인 상호 불이해야말로 '감정화한 사회'가 초래한 상황이다.
>>덴노가 정치 참여하면 안 되니까 최대한 그 한계점을, 비판점을 '마음'이란 형식으로 표현한 건데... 국민들은 그 비판 의식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마음만 받아들여서 달라진 게 없는 상황
혹실드 포스트포드주의 사회, 탈산업 사회에서는 '노동'에 '육체 노동'과 '정신 노동'만이 아니라 잘 보이지는 않지만 '감정 노동'이라는 영역도 존재한다고 설파.
p.36
동양의 '아'ego란 '개'와는 다른 개념. 불교에서 말하는 '아'란 실로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복잡기괴한 통계와 합성으로 이루어진 숫자, 전세를 살았던 백천만억의 사람에 관해 불교과 처음 생각해 낸 사상을 응축한 무량백천만억재아승기라는 숫자인 것이다.
고이즈미 야쿠모, <전세의 관념>
p.38
아즈마 히로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일본 오타쿠 문화(혹은 서브 컬처)를 '포스트모던'의 선구로 보는 서구권 연구자들에게 참고가 되기도 했는데, 지은이는 이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
(아즈마가 오타쿠 문화를 포스트모던의 첨단이나 대표격이라고 단언한 것은 아니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일부 연구자 사이에서 이 책이 자주 참조된다는 뜻)
p.40
문제는 근대를 통해 '덴노'에 의존하지 않는 '공공성'을 구축할 기술을 갖추지 못했다는 데 있다.
p.43
메이지 시기 여성 1인칭이 성립되어 가는 과정에서 '신의 시점'(전지적 시점)을 취한 서술자가 사라지는 한편 '내면'만을, 즉 마음만을 말하는 문체가 등장했다. 그것은 사회나 현실 등 외부로부터 절단된 문체였다.
p.44
내면화된 문제는 현재의 문학에서 '서플리먼트화', '다자이 오사무화'라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것이 바로 '문학의 감정화'다. 문학만이 아니라 대중 음악 가사나 저널리즘, 트위터나 라인 등 감정을 표출하는 도구가 충실해짐에 따라 언어의 측면에서 '감정화'는 더욱 더 진행.
p.45
지금 우리는 우리가 표출하는 모든 것이 감정이라는 형식을 갖추기를 요구받고 있으며, 또한 감정으로 우리 앞에 제시된 것만을 받아들이고 있다.
p.46
모든 서비스가 내게 쾌적했는지 아닌지를, 즉 '감정 노동' 차원에서 상대를 평가할 것을 매일매일 요구받는다. '유저'화한 우리는 '마음'만이 아니라 온갖 '기분'이 상품으로 제공된다는 사실에 이미 익숙하다.
p.49
업무에서나 일상에서나 '감정 노동'을 요구받고 또 요구하며, 그런 언언들만이 매일같이 규범화되고 있다.
이러한 '감정은 이성적이고 사회적인 경제학적 분석이나 역사학의 집적 같은 것보다 단번에 '감정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을 선호한다. 이것이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반지성주의'라는 이름의, 간신히 존재하던 '지성'마저도 능가하는 '감정'의 정체다. 그 '감정 ' 앞에 저널리즘도 문학도 비평도 침묵하고 있다.
p.50
커다란 이야기 - 프랑스의 철학자 장-프랑수아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던의 조건>(1979)에서 제시한 용어. 그는 사람들이 철학을 '커다란 이야기'로서 피룡로 했던 과거(이 시기를 '모던/근대'라고 한다)와 달리 그런 커다란 이야기에 대한 불신이 만연해진 시대를 '포스트모던'이라 보았다. 국내에서는 '거대 서사'로도 번역되는데, '서사'라는 번역어가 리오타르의 의도에 더 부합하는 면이 있다고 보지만, 이 단어의 일본어 번역인 '오오키나모노가타리'의 경우 일본어 '모노가타리'의 의미 때문에 단순히 '서사', '담론'이라는 뜻을 넘어 '이야기', '스토리'라는 뉘앙스를 담아 사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지은이나 아즈마 히로키 드으이 저술에서) 때문에 번역도 '거대 서사'나 '거대 담론'보다 '커다란 이야기'로...
p.51
덴노제는 더 이상 커다란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것'(역사)을 요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p.52
포켓몬Go를 즐기는 광경..
아, 다들 찰나적인 이야기만을 원하는구나 싶었다. 그것을 회수하는 것은 커다란 이야기가 아니라 플랫폼이고, 우리는 국가라는 이름의 플랫폼 속에서 유저화된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감정화'시켰다. 그런 의미에서 '감정 덴노제'를 '유저 데노제'라고 바꾸어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p.57
비평의 전제가 되는 인간상이 '노동자'에서 '소비자'로 이행
각주) 소비 사회가 성숙된 현실에서 자본주의가 고전적인 '좌파' 이념 이상으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해방시키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며, 자신 또한 좌파로서 이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론했다.
>>그 당시에는 자본주의가 이렇게 안 썩었고 (갓 태동해서) 오히려 대안 패러다임이었던 게지
p.58
기호 조작(요시모토식으로 말하면 일본의 여성 노동자가 꼼데가르송을 입는 일)을 통해 '계급'이나 '문화 히에라르키(위계, 서열)'가 해체된다는 기대 속에서 논의되곤 했다.
p.59
소비라는 행위 자체 혹은 인간 감정의 발로 자체가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기업이나 사회 시스템에 착취당하고, 말하자면 충족되면서 소외된다는 새로운 노동 문제의 위치다.
p.60
수신자에 의한 독해의 다양성이나 오독의 가능성을 찾아냄으로써 그런 경직된 발신자-수신자 관계를 무너뜨리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나는 사실 발신자와 수신자가 공유하는 정보계(이를 세계라 부를지 데이터베이스라 부를지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에 준거해 수신자가 그 안에서 스스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작가'라는 근대적 틀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하리라고 여겼다.
p.61
1980년대 소비 혁명이 포스트포드주의로, 즉 좁은 의미에서 '노동자'의 노동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잉여 가치 생산에 무자각적인 동시에 자발적으로 총동원되는 체제로 이행하는 와중에 나 자신도 그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p.63
컴퓨터 게임의 세계관을 몇 가지 장치를 한 개방계 - 이야기의 설정을 철저하게 만들어 놓고 독자에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설정을 제시하지 않고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방식을 뜻한다.- 로서 수신자들에게 제시해 2차 창작을 유발하고, 거기에 등장한 발신자 및 작품을 출판사가 회수하게 하는 정도의 보잘것없는 실험
p.72
자기 표현은 근대적 자아와 한 몸이다. 인터넷은 작가라는 특권 계급만이 아니라 만인에게 자기 표현의 기회를 개방했다.
>>이걸 내가 논문 쓸 때 봤어야 했는데...
p.78
감정의 표출에 논거나 묘사 따위는 불필요. 소설의 서플리먼트화, 즉 '눈물 난다', '무섭다', '감동적이다', '참고가 된다'는 식의 '즉효성'을 마치 기능성 식품마냥 요구받는 것과도 병렬적인 관계가 아닐까. 소설의 감정화. 기능성 문학의 어떤 부분은 감정 소설.
p.79
신자유주의적 역사 인식 자체가 과거를 철저히 부인하고 스스로에게 기분 좋은 감정적 역사를 만들어 내는 '역사의 감정화'. '국가상' 자체가 '감정화'하고 있다.
p.80
마크르스주의가 등장하기 전에는 노동자가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노동자들 스스로도 깨닫지 못했듯 노동에서의 소외란 원래 알아보기 어려운 법이다. 포스트포드주의 하의 감정 노동 및 기호를 조작하는 정보 노동, 심지어는 인터넷상의 행동 자체가 노동화되어 있다는 사실은 비평이나 사회 이론 없이는 실감하기 힘든 것.
실감하지 못하는 것은 실감하기 어렵도록 구조가 짜여 있기 때문. 노숙인 공원에서 내쫓으려면 벤치 가운데 팔걸이 만들기처럼.
p.91
피지배들이 지배층에 품은 불만을 피차별 부락이라는 차별 대상을 제공함으로써 억눌렀다. 인간은 다른 인간을 낮잡아 볼 수 있기만 하면 계급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게 된다.
p.96
너는 네 트윗을 너무 좋아하잖아. 자기 관찰과 분석은 최고로 날카롭다고 생각하잖아. 가끔씩 다시 읽기도 하고 그러지? 너한테 그 계정은 따스한 이불 같은 거야. 신경 안정제지. 버릴 수 있을 리가 없어.
- 아사이료, 누군가, 신초사, 2021. <누구> 권남희 옮김, 은행나무, 2013.
p.98-99
자기 책임론 - 자기 행동의 결과로 위기에 빠졌다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법. 청년증과 서민층에 퍼져 있으며 빈곤충, 난민, 재일 외국인, 위안부 피해자 같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가 겪는 어려움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고 그 해결 역시 사회 복지적 접근이 아닌 개인적 노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p.100
요즘 젊은이들에게 체제를 의심하는 서브컬쳐는 악. 일본의 대항 문화가 체제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반체제에 대한 카운터를 표방하는 것이다. 니코니코동화 같은 것이 전형적인 사례다.
스쿨 카스트.
p.105
히에라르키 최하층의 존재야말로 히에라르키와 제도를 회의하고 반전시킬 특별한 위치에 있다는 참으로 그리운 혁명 사상.
>>그리운 = 근대적인.
p.109
상위 카스트의 문학은 스쿨 카스트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제도 탓이 아닌 자기 책임으로 돌릴 뿐이다. 그렇다면 하위 카스트의 문학인 라이트노벨은 당연히 계끕 혁명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p.129
데즈카의 캐릭터 '기호와 신체의 이중성을 살아간다'. 만화 표현에 국한된 이야기.
p.139
캐릭터의 아이콘화, 묘사의 소멸, 말풍선용 대화 등 라인이 소설에 요구하는 적용 방식과 매우 닮아 있지 않은가.
p.142
배우가 등장인물답게 연기하는 것보다 딱 보기에도 프티브루주아인 공장주, 아주 가난해 보이는 늙은 농부 등 등장 인물의 '겉모습'으로 꾸민 아마추어를 카메라 앞에 두는 편이 더 리얼리티가 높다는 '티파주'typage 수법
각주 26 : 유형으로 분류하다라는 의미의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용어. 전형화. 몽타주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전문 배우가 아닌 일반인에게서도 표현력을 이끌어낼 수 있음
p.147
근대 소설이 만들어 낸 것에서 '묘사'가 사라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야기하는 이'로서의 작가가 다시금 가시화되는 상황이 분명해졌다.
p.168
복수의 작가가 만드는 이본이 수신자의 관여를 동반해 계속해서 생성되는 구전 문학
p.172
전승 문학은 얼마간 직합적인 문학. 각주 7 -막스 뤼티, <민간 전승과 창작 문학 : 인간상, 주제 설정, 형식 세력>
이른바 '오디언스론'인데, 오늘날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UGC에 관한 논의나 이언 콘드리 등의 견해와 전혀 다르지 않다.
p.174
집단적인 문학의 생성 과정에는 "언어 작품의 단어나 어군, 제재, 모티프 안에 형식을 만들고자 하는 무수한 노력이 포함되어 있다."며 그 생성의 역학을 옹호하고 있다.
p.175
구전 뭏학에서는 단어나 어군, 제재, 모티프가 하나 선택되면 (예를 들어 '호수로 나가자'라는 구절) 그 다음에 오기 가장 적절한 것(예를 들어 '물고기를 보기 위해'라는 이유)ㄱ이 선택된다. 이처럼 뤼티는 구전화란 생성되는 것이고 끊임없이 '형식'을 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문학이라면 호수와 소녀의 불연속을 낯설게 하기로 간주할 수도 있겠지만 구전 문학에서는 이런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 (...)
이와 같이 단어나 문장에 그것이 향하는 목표가 내재되고, 그곳으로 향하는 '형식 노력'을 통해 구전 무학이 형식화된다는 것이 뤼티가 생각한 내용이다.
p.176
AI가 임의의 두 문장 사이에서 유의미한 진행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학습시켰다. 로맨스와 판타지여야 하는 이유는 문장과 그 연속이 이미' 진부'해진 장르기 때문이다.
p.177
문장이나 단어를 그저 확률론적으로 선택하는 예측 변환이 아니라 '의미' 수준에서 '형식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이 보인다.
>>AI 문학을 구전 문학의 형식성과 연관 짓고 있음
p.182
무리가 작가고 작가는 단지 그중에서 슬기로운 대표자에 지나지 않았던 옛적 모습이 지금도 여기저기 남아 있다.
p.190
그 결과 옛날 이야기에서 "추상적이고 고립적인 도형적 양식은 다양한 모티프를 파악해 변용"되며, "물체도 인물도 그 개성적 특질을 잃고 중량 없는 투명한 도형이 된다."(...)
내가 가끔 '기능성 문학'이라고 부르는 추상화 및 문체의 소멸, 알레고리화, 철확화 등의 상황 역시 문학이 인터넷상의 '구전화'에 적응한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p.192
언문일치체는 '사소설'이라는 특권적인 '나'와 연결되어 나의 고유성을 즉시 입증할 수 있게 해 주는 문체로 보급
민속학이 사회적 '문학'이라는 사실을 나는 얼마나 자주 주장했던가?
p.194
'하나시'의 기술을 '공공'으로 구축하는 데 쓰지 않고 탈사회적인 '나'를 자동 생성하는 도구로 사용한 데 이 나라 근대 '문학'의 착오가 존재한다는 것이 내 일관된 주장
p.199
마치 기능성 식품처럼 소설이나 그 밖의 책, 언어 등에서 '감정'에 대한 직접적 효능을 찾는 독해 방식
p.200
소설에서 '서플리먼트' 같은 단순한 기능을 바란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책의 근대사를 돌이켜 볼 때 '효능이 있는 언어'에 대한 수요는 일관되게 존재해 왔고(실용서의 역사는 메이지 시대까지 쉽게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p.204
허약한 자아의 표출인 혐오 발화나 인터넷 댓글,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공감과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즉, 감정의 공진共振이다.
>>공진:진동하는 계의 진폭이 급격하게 늘어남. 또는 그런 현상. 외부에서 주기적으로 가하여지는 힘의 진동수가 진동하는 계 고유의 진동수에 가까워질 때 일어난다. resonance, sympathy
p.205
기능성 문학의 시대 묘사 기피 - 타인 자아의 표출을 접하는 일이 불쾌. 작가가 감정 노동으로서 소설을 독자에게 제공해 주지 않는 것은 '악'
p.208
근대 소설 집팔자의 상당수가 신경증 환자였던 것처럼 자아 따위는 '마음의 병'일 분이고 그 처방전의 하나가' 소설 쓰기/읽기'였던 역사
p.215
소설 속 '나'를 둘러싼 세계의 정보론적 재구축 문제. '역사-사회'에서 '사가-세계관'으로의 변화 혹은 '사회학적 사회'에서 '정보론적 혹은 기호론적 세계'로의 이행이라는 아즈마 히로키적인 '게임적 리얼리즘 문제'
p.220
또 한편에서는 '세계'를 다딯ㄴ 정보계로, 하나의 게임 시스템처럼 간주하는 태도가 사가와 일체화되어 문학 영역에 등장
p.221
요즘 '문학'이나 '비평'에서 '사회'를 찾아보기 힘든 것은 '문학'을 쓰는 이들이 현실에서 소외당하고 있지 않기 때문
여기서 말하는 '사회로부터의 소외'란 예를 들면 내가 프랑스 이민자들이 사는 지역에서 간헐적으로 열고 있는 스토리텔링 워크숍에 참가하는 이슬람계 학생들을 가리킨다.
>>기성 사회를 비판할 수 있는, 대안적 지형에 있는 소수자들. 사회학적으로, 대안 사회를 문학으로 제시할 수 있는 작가층들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말인듯.
p.223
에토는 '문학의 서브컬처화'라는 말을 문학이나 소설이 역사와 지형도에서 절단된다는 의미로 사용.
p.247
괴테가 생각한 생물학적 빌둥은 원생물이 내재된 힘에 의해 개별 생물로 '형성'된다는 것
p.254
무라카미 본인이 직접 쓰쿠루의 몸에 일어난 일이 '역사'의 비유라고 말했기 때문
p.258
자기 계발서는 교양 소설에서 표면의 이야기를 걷어낸 책
p.279
AI 소설이 '문학은 이런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장인의 기술(문학 장치나 문체)'이나 '분야에 의존'(문단)해 만들어진 소설의 한계를 주저 없이 넘어설지도 모른다.
p.283 ~ 후기 : 역사의 특이점을 향하여
무수히 많은 '말하듯이 쓰기'(언문일치)의 표출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문체는 지극히 불안정한 '나'를 '나'라는 1인칭으로 말함으로써 가능해졌다. (...)
철저하지 못하게 끝나버린 근대를 인터넷상에서 철저하게 재실행해보자는 것이 내 입장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발언과 참가의 권리가 보다 널리 담보되어, 근대가 불철저할 수 밖에 없었던 요인 중 몇 가지는 배제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p.284
일본 파시즘 체제가 대중 선동을 위해 다이쇼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을 동원해 구축했던 미학이나 방법론이 전후 일본의 영화와 사진, 디자인과 문학, 그리고 '오타쿠 문화'의 기반을 마련했음
2) 오쓰카 에이지 엮음, <동원의 미디어믹스 : '창작하는 대중'의 전시하.전후> 시분카쿠슛판, 2017.
p.286
포스트모더니즘이 역사의 종언을 떠들어댔던 1980년대 문학과 서브컬쳐 영역에서 '재신화화', 즉 사가의 부흥이 일어났다는 점을 나는 수년간 문제 삼아 왔다.
p.287
역사라는 개념의 진화 자체가 특이점에 접어들고 있음을 인터넷상에서 일어난 근대의 반복이나 재신화화 같은 재실행, 반동, 정체, 루프 등으로부터 연상해야 하지 않을까.
p.289
'현재'의 문학이나 사회, 정치 등에 대한 '비평'을 써 달라는 출판사의 요청으로 이 책을 집필했지만, 이제 그런 비평은 불가능하지 않나 하는 '감정'을 씻어낼 수가 없었고, 그럼에도 구 세대인 내가 지금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이성', 즉 '비평'으로 맞서는 것뿐이다.
p.291 ~ 옮긴이 후기
이 책을 필두로 지은이는 최근 들어 플랫폼과 유저라는 문제를 자주 다루고 있다. (...) 한국 IT 플랫폼 역시 외국 자본 소유로 점점 넘어가고 있다는 점, 그 와중에 기존 산업계와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플랫폼 노동 문제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다.
1) 아마존과 플랫폼 기업이 빚어내는 현대 사회의 갈등, 기획 희오 462호, 2018.
p.292
독자에게 '불편함'을 제공하는 것도 원래 문학의 기능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불편함을 독자가 읽게 하기 위한 방법론이 바로 작법론인 것이고, (...) 불편함을 일부러 겪고 싶은 사람이 있을 리 없으니 재미있는 스토리 중간중간에 숨겨진 가시와도 같이 '잘 생각해 보면 불편한 지점'을 집어 넣고 '잘 생각해보는 독자'가 그 부분에서 한번쯤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문학
>>그렇다기보다는 대놓고 사회 비판을 담으면 교조적이고 납작한 글이 되기 쉽기 때문. 어떤 문제 의식을 가급적 입체적이고 리얼하게 담아내기 위해 오히려 허구의 문학으로 담아내는 것이 아닐까?
>>곰곰 관찰해서 포착해내고 잘 생각해보는 독자는 요새 사라진듯... 그리고 그 불편함을 깨닫는 건 TED나 유투브 강의 쪽, 아니면 자기 계발서 쪽으로 다 흡수된 듯
p.295
지은이는 '타자와의 접촉이 만들어낼 수 밖에 없는 불편함'을 피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문학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알기 쉽고 그것을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가 확실한 글, 짧고 명쾌하게 쓰여 술술 읽히는 가성비 높은 글, 그런 글이 유행하고 그렇지 않은 글은 기피되는 현재가 과연 근대 이후post-moderen인지를 그는 묻는다. 바로 이것이 그가 여러 책에서 '안일한 현대 문화 비평'을 양산하는 일본의 몇몇 포스트모더니스트를 비판했던 주된 논점이다
>>이래서 아즈마 히로키를 싫어하는 듯. 포스트모던의 가볍고 비성찰적인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좌파적 신념이 확실한 모더니스트라서.
p.296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불편할 것 같다'고 느끼면 바로 '차단'이나 '뮤트', '언팔'을 하면 되니 점점 더 확증 편향이 심해지고 자기 확신에 빠져든다. 그리고 거기에서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끼며 옛날 이야기처럼 '오래오래 잘 살았더래요'로 끝나는 결말을 ㅅ너호하게 된다.
p.297
(지은이는 '정답'을 '세 줄 요약' 해달라는 것을 싫어하고 역자도 마찬가지. 실제로는 어렵고 복잡하며 오래 걸리고 불편한 해결책들만이 존재)
편안하고 안락한 답변을 원하는 이들은 그런 해결책에 대해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라고 반응하며, 확신에 찬 말투를 구사하는 테드TED식, 혹은 유튜브식 '구두 강연'에 빠져들어 설득되곤 한다. 요 몇 년 간 TV에서 '교양 있어 보이는' 강연형 프로그램이 유형해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p.207
나가야마 노리오
namu.wiki/w/%EB%82%98%EA%B0%80%EC%95%BC%EB%A7%88%20%EB%85%B8%EB%A6%AC%EC%98%A4
p.208
고마쓰가와 사건의 이진우
소년A (작품명인듯)
마타요시 나오키 <불꽃> : 개그맨이자 소설가.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아사이 료,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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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수업> 윤홍균 : 자존감, 자기 효능감, 자신감, 직장 생활 (0) | 2021.03.16 |
<오쓰카 에이지 : 순문학의 죽음 오타쿠, 스토리텔링을 말하다> 선정우 지음. 북바이북. (0) | 2021.03.16 |
<열린사회와 그 적들> 칼 포퍼 지음, 이한구 옮김, 민음사 (0) | 2021.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