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 1
1. 들어가며 1
2. 1950년대-사소설 경시와 일본 문학적 성격의 은폐 3
3. 1960년대-사소설 극복과 '새로운 사소설'에 대한 기대 6
4. 1970년대-지속되는 사소설 10
5. 1980, 1990년대-「자전적 사소설」의 등장과 소멸 11
6. 나오며 16
◀참고문헌▶ 18
일본에서는 시쇼세츠(ししょうせつ) 혹은 와타쿠시쇼세츠로 발음하고 있다..
<해방 후 한국 사소설의 행방> p.328
개인아가 아니고 사회화된 '나'의 전형으로서의 '나'인 경우에는 작자가 얼마든지 모델이 되어 작중에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한다면 작자가 작자개인의 이야기를 썼는데...
(안수길 「사소설의 한계 - 개인으로서의 「나」 사화화된 「나」」 1958년 12월 28일 동아일보.
(((((((((((사소설의 형식이야말로 자각한 개인의 감정, 사상을 방출하기에 가장 편리하고 적절한 것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적나한 상태롱니 자신을 사소설로 표현한 것은 어디까지나 당시의 대중들이 더듬어 찾고 있던 정신적인 것을 대변해주었거나 그것을 한걸음 앞서 표현해주자는 데 고심이었을 뿐 자신의 실생활이나 숨김없는 감정의을 묘사 고백하는데 흥미를 느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
박영준의 문장에서는 이토 세이의 '도망 노예'를, 안수길의 문장에서는 고바야시 히데오의 '사회화된 나'를 상기하는 것은 필자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사소설 작가의 태도, 특히 다자이 오사무나 가사이 젠조를 예로 들어 현실 생활에서 도피하고 파멸적인 생활 행태를 글로 발표하는 작가를 '도망노예'에 빗대어 표현한 것은 이토 세이의 '특허'이자, 이는 당시 일본문학비평 논단의 상식이었다. 그리고 사소설 비판의 근거로, 똑같은 개인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다 하더라도 시민의식이 확고하게 정착된 서양에서의 '나'와 서양에서 들여온 개인주의를 굴절되게 표방한 일본의 '나'는 다르다는 정믈 지적하기 위해 사용한, 고바야시 히데오의 '사회화된 나' 또한 일본 문단에서는 고바야시 히데오의 발언으로 '특수'하게 인용되곤 한다.
이는 몇 명의 평론가로부터 사소설이라고 지적받은 것에 대한 반론이다. 물론 평론가는 박경리의 소설을 칭찬하고자 사소설을 들먹인 것은 아니다. 남성이 주류로 문단을 지배하고 있던 당시, 여성 작가에 대한 평가는 엄하고 매몰찼다. 여성작가에게는 '섬세한 감수성' '감각적 문체' '내밀한 심리의 세계'라는 수사어가 붙기는 해도, 당시 지배적인 담론으로 제시되었던 가치 '인간 존재의 탐구', '폐허적인 상황에서의 인간애와 휴머니즘' 등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폄하되었다. 9) 서영인 「박경리 초기 단편 연구」 『어문학』 제 66집 1999년 2월 p.264
>>여기서 당시는 1960년대
마찬가지로 사소설이라는 평어 또한 개인적이고 신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협소한 세계, 즉 거대담론에는 이르지 못하는 좁은 세계관에 머무르고 있다는 비판을 내포하고 있다. 박경리의 반론은 이렇듯 협소한 세계관으로 치부하는 사소설 인식에 대한 거부감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이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은, 개인을 그리고는 있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주인공 ‘나’에게 투영된 거대한 민족의 운명이 함께
드러나는 점이, 바로 “서자적인 차별대우에 반기를 들 수 있는 길”이 된다
는 평가이다. 하지만, 이것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달리 비유하자면, 서
자가 반기를 들었다기보다는, 잔류고아가 핏줄과 관계없이 태어나서 자란
토지의 환경에 적응한 모습으로 설명함이 옳다고 본다.
>>너무 이 분은 사소설 중심적으로만 생각하시는 듯.... 한국 문학의 특질이자 한국적 특성인 거대 담론이 반영되어도 그냥 환경에 적응한 거래.. 적응을 해서 어느 정도 변이가 이루어졌으면 사소설 담론과 다소 거리를 두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개인적으로 거대한 민족의 운명이 안 투영되면 어떻다고 그럼? 사소설은 사소설 자체의 특성만으로도 충분한 듯
한국적인 사소설의 성격, 그것은 다름 아닌 개인을 통한 국가와 민족의
부각, ‘나’의 자화상을 통한 ‘한국사회’의 자화상을 그려내는 것이었다. 일본
에도 이러한 종류의 사소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성격은 아니
고 오히려 특수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데 개인을 통해 사회를 드러내지 않는 소설이 있나? 안 그런 게 있나? 물론 이 경우엔 '자화상'이라고 하니 보다 작가 자신과 밀접하겠지만...
<<<한자가 넘 많아ㅠㅠ
정봉래가 주장하는 “사소설의 전형적 도표가 될 작품”의 내용 또한, 개인
에 머무는 ‘나’ 위주가 아닌, ‘사회적’인 인간의 현실을 객관묘사 하는 것이
다. 결국, 사소설이 한국사회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형성되기란 무척 어려
운 일이다. 민족이나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논하거나, 사회의 변혁을 선도
하는 거대담론을 한국사회는 요구한다. 그러나 사소설에 그러한 요소를 부
각시켰을 때, 이는 더는 ‘나’의 소설이 아니게 된다. ‘공’과 ‘사’가 서로 등을
맞대고 동거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이야말로, 한국에 잔류한 사소설의 운
명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위의 글에서 확인하고 있듯이, 비록 훌륭한
‘공’적인 성과는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끊이지 않고 사소설은 “매월” 발표
되고 있다. ‘공’적인 ‘사회’의 문제를 추구하는 한국 작가에게도, ‘나’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개인’의 매력을 저마다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실은 그것이야말로 사소설의 본고장 일본에서 사소설의 전통을 가능하게
했던 요인이기도 한 것이다.
하근찬은 한국의 전후파 세대에 해당하지만, 다른 전후파와 달리 주로
농촌의 현실을 그리는 작가였다. 그 역시 본격적인 사소설가는 아니고, 윗
글에서 밝혔듯이 1970년대 후반에서야 사소설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후
사소설에 가까운 작품을 자주 발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소설만을 고집
하지는 않는다. 이는 다른 한국인 작가도 마찬가지로, 일본을 예로 들자면
오자키 가즈오(尾崎一雄)나 가와사키 쵸타로(川崎長太郎)와 같은 ‘사소설
가’는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차이점은 일본만의 깊은 뿌리, 사소설
계보를 형성한 일본 특유의 전통을 설명할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다.
정도는 다르지만, 그러나 어찌 되었건 1970년대 한국에도 사소설을 의
식하고, 실제로 창작 의지를 보이는 작가가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이다. 이처럼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지속한 사소설을 한국문학의 일부로 인
정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또 다른 은폐이자 왜곡일 것이다.
>>사소설가가 없었던 것은 그만큼 '사소설'이라는 장르가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했어서 인지도...
1980년대에는 사소설이라는 용어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민중문학’으
로 불리는 거대한 지향점을 중심으로, 정치와, 노동자와, 학생과, 문학자,
개인이 전부 흡수되었다. 사소설 또한 민중의 목소리로 발신되었지만, 그
것을 일부러 사소설이라고 강조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자전적 사소설」을 기획
했는지, 상세한 언급이나 설명이 잡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단지 창간
호 편집후기에 “연재기획물로서 ‘한국의 작가’와 ‘자전적 사소설’을 준비했
다. …(중략)… 또한 ‘자전적 사소설’은, 말 그대로 작가가 자신의 자전적
체험을 소재로 삼아 한 편의 소설로 엮어낸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순전
한 체험의 기록이기를 바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 또한 한 편의 ‘소설’
로서 기능할 것이기 때문이다.”15)
사소설의 본질을 결정짓는 요건으로 안도 히로시(安藤宏)는 다음과 같
은 두 가지 요소를 들고 있다.
․작중화자와 중심이 되는 시점인물이 동일하던가, 작중서술의 시점이
그 인물의 시점과 한없이 밀착한 관계에 있을 것
․동시에 위의 인물이 ‘소설가’로 설정되어 있고, 스스로 ‘소설가’의 자
격을 갖는지 자신의 언어로 반문하는 계기를 잠재하고 있을 것16)
>>이건 정말 적용해 볼 만함
이 밖에도 소년 시절에 경험한 전쟁과 아버지의 기억을 쓴 문순태의 「소
년일기」, 가난 때문에 동생 부부와 함께 셋방을 전전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청년기의 일상을 담은 조용희의 「떠도는 방」, 신문사의 의뢰로 취재를 위
해 일본을 여행하는 기행문형식의 김원우의 「머리 속의 도시」 등이 있다.
김윤식은 이 ‘자전적 소설’을 기획한 ?현대소설?의 의도에는 기존의 문학
형식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이곳에
발표된 작품을, “작가를 내세워 우리 사회를 고발․진단하는 최근의 우리
소설유형에서 바라보는 시각”과, “저주받은 존재로서의 사소설적 시각”이
포괄적으로 섞여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19)
>>하필 1980년대에 이런 게 발표되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함. 시대의 담론이 너무 거세니까 이에 대한 반발 작용...
분명히 이 일련의 작품에는 ‘나’에 대한 서술을 통해 사회를 보려고 하는
의식된 비판의 눈이 움직이고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독자의 감흥을
이끌어내기에는 조금 부족한 자신의 기억이나, 추억을 담담하게 기술하는
작품성의 한계도 있다. 내용상으로는 친척이나 가족, 친구의 죽음을 다룬
작품이 많고, 때때로 문단의 일화도 소재가 된다. 일본의 사소설과 인상이
다른 점은, 자기 자신의 치부를 밝히거나, 어리석은 행위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극단적인 고백이나 폭로가 없는 부분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사회의 상식으로부터 크게 벗어난 ‘나’의 사회 부적응도가 낮다는 점이다.
일본의 사소설 작가에게 부여된 명칭인, 사회의 아웃사이더적인 경향이 이
‘자전적 사소설’에는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역시 이것은 사회의 움직임
이나 존재방식에 민감한 한국문학의 ‘사회인으로서의 고백’, ‘사회 구성원으
로서의 고백’이 그대로 사소설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라고 하는,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진지한
시대로부터의 관계성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부분 중요
이 <자전적 사소설>이란 무엇인가. 이 연재물의 편집기획자는 이를 두
고 곧바로 <문학적 진정성>이라 말하지 않았던가. 여기에도 자멸파와
조화형의 소설이 기묘하게 섞여 있음을 느낄 수 있거니와, 이것이 일본
근대문학의 사소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여기에 나름의 역사적
해석을 가할 수 있다. 이들 소설이 아직도 민중문학과 사회주의 이념,
즉 <큰 이야기>가 남아 있는 시점에 제작되었지만, <작은 이야기>를
향한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이 그 하나이며, 다른 하나는 이들 소설들이
순수 / 본격소설을 모토로 내건 소설전문지 ?현대소설?의 운명과 시효
를 같이했다는 점이다. 이 자전적 사소설은 ?현대소설?발간 중단과 함
께 사라졌다.(밑줄-인용자)20)
김만수 「사소설의 한국적 변용과 그 의미」 ?작가세계?? 1995년 겨울호, p.96.
>>이거 읽은 듯.. 근데 '작은 이야기'가 뭐고 '큰 이야기'가 뭔지 자세히 설명 안해 줌
1990년 이후 ‘사소설’이라는 용어는 한국문학이 아닌 일본문학의 한 개
념으로 강하게 인식된다. 문학 사전에는 “일본 특유의 소설형식”으로 명기
되고, 일시적으로 한국에 영향을 주었지만,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정도는
아니라는 설명이다21).
예를 들면 ?두산백과사전?? 1997년 1월, 동아출판사
지금은 거의 일본문학, 즉 외국문학의 일종으로 인
식하는 개념이 설득력을 얻고 있고, 게다가 사소설이라고 하면 개인에게
한정되고 사회성이 빈약한 ‘좁은 문학’이라는 비판적 이미지가 강하다.
한국에 존재하는 사소설을 통해, 일본과 다른 점으로부터는 문학을 형성
하는 풍토, 형태를 변화시키는 환경의 차이가 분명해 진다. 반대로 일본에서
도 한국에서도 변하지 않는 사소설의 고유성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으로 사
소설이 지닌 본질적인 속성, 근원적인 성질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질 것이다.
>>결국 이 분은 사소설 연구 자체에 관심,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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