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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설(私小說)의 가능성 / 강우원용

snachild 2013. 7. 11. 17:45

 

 

1. 들어가며

2. 당혹감과 비판 그리고 옹호

3. 『체일지링』의 주제계

4. 「체인지링」의 주제계

5. 나오며 - 사소설의 가능성

 

 

헐... 처음 시작하 ㄹ때 초록.. 요약? 아무튼 '요지'라고 써 있는 이 부분 일본어임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이렇게 말하면, 일본 문학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분들은 일본 근대문학의 특
징적인 형식인 ‘사소설(私小說)’을 떠올리실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소설에
작가 자신을 생활 배경까지 포함하여 등장시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
다. 저는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사소설’의 전통에 반역하는 것을 지향
하였습니다. 저의 소설은 픽션으로 구상된 이야기 속에 현실의 저와 비슷하
지만 그러나 저 자신 그 자체는 아닌 인물을 도입시키는 방법을 취합니다.
(「우리는 나지막이 나지막이 움직이기 시작해야 한다」)1)

 

>>>근데 일본 소설이 떠오르(?) 것은 그런 사소설 전통이 기반이었기 때문 아닌가?

 

 

 

오에는 자신의 소설이 그것을 쓰고 있는 작가 ‘나’와 거의 동일한 인물
을 도입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지만, 그 작품은 이른바 사소설(私小
說)과 다른 픽션이라고 못을 박는다. 다시 말해 구상된 이야기 속에 현
실의 자기 자신과 무척 닮았지만, ‘나’ 그 자체가 아닌 인물을 도입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설명이다. 이른바 사소설의 전통에 반역하는 소설인
반(反)사소설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반 사소설도 있더냐ㄷㄷㄷㄷ

 

 

 

완전한 픽션이 아닌 ‘사실’과 ‘허구’ 사이를
줄타기하듯 넘나드는 ‘반사소설’은 사소설이라는 전제 없이 존재할 수 없
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사소설에 대한 무의미한 비판보다 사소설을 뛰어
넘는 ‘반사소설’로써 ‘사소설’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작가의 시도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시도가 도출해낸 결과물은 단순히 ‘내 이야기’에 그치지 않
고, 일본사회에 대한 비평적 시각과 역사인식을 ‘내 이야기’와 일체시켜
반응시키는 서사로 확장된다.

 

 

 

정리하자면, 작가가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면
서 허구를 도입해서 ‘사실을 날조’했다는 비판적 언설이다.

 

 

그러나 소설 텍스트라는 ‘허구’와 대비시키는 상상력으로 독
자는 주변정보가 마치 현실인 양 착각하게 된다. 그것은 허구세계와 현
실세계를 일대일로 대응시키고자하는 독자의 욕구
를 조장해 작가가 설치
해 놓은 ‘덫’이라는 것이 고모리 요이치의 설명이다

 

>>그런 욕구가 있다는 것인가?

 

 

 

비판적 언설이든 옹호적 언설이든 이들 논증의 중심에 위치한 것은 다
름 아닌 사실과 허구를 둘러싼 ‘사소설’적인 방법과 작가가 얼마만큼 ‘진
실’되게 고백하는지, 그 태도에 대한 평가문제이다

 

>>방법과 태도

 

 

 

가운데 넘어 감

 

 

 

 

작가의 기존 작품을 인용한다든지 작품명이 등장하고, 작가 주변에 실
재하는 인물을 ‘누구나 알 수 있게’ 등장시키는 것은 사소설의 ‘전형적’인
방법이다. 사소설에 대한 정의는 연구자마다 다르고, 명확한 범주가 정
해져 있지는 않지만, 사소설이 ‘작가의 일상생활을 있는 그대로 쓴 소설’
이라는 좁은 개념이 아니고, 또한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부
여한 설명에 의해 결정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체
인지링?을 사소설로 간주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조금 더 객관
적인 참고를 돕기 위해, 한 작품을 사소설로 판단하는 근거를 제시한 안
도 히로시(安藤宏)의 기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작중화자와 중심이 되는 시점인물이 동일하던가, 작중서술의 시점이 그
인물의 시점과 한없이 밀착한 관계에 있을 것.
•동시에 위의 인물이 ‘소설가’로 설정되어 있고, 스스로 ‘소설가’의 자격을
갖는지 자신의 언어로 반문하는 계기를 잠재하고 있을 것.
이때 이야기되는 내용이 작가의 ‘사실’과 합치할지 어떨지는 모두 작품 밖
의 콘텍스트와 관계한 부차적 요소가 된다. 단적으로 말하면 작가의 ‘사실’
과 전혀 관계없는 픽션이라 할지라도, 위의 두 조건을 만족시키는 단계
에서 그 소설은 내부에 자기의 ‘보이는 모습’을 파생시킬 계기를 품은—혹
은 ‘그리는 자신’과 ‘그려지는 자신’과의 관계를 표백할 수 있는— ‘사’소설
로서의 기능을 함유한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밑줄-인용자)10)

 

10) 安藤宏(1994.3) 「自意識の昭和文学」 至文堂 35쪽.

 

논문 137쪽

 

>>이 부분 개중요

 

 

 


요한 것은 ‘진실’을 전하기 위한 방법이고, 그것을 위해 ‘허구’마저도 ‘사
실’처럼 읽히는 사소설이라는 ‘장치’를 작가가 들여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을 통해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장치’를 해석하는 것으로 ‘진
실’에 접근하는 방식을 택함이 옳다.

 

 

 

예시 생략

 

 

 

 

오에는 이렇듯 피비린내 나는 폭력에 ‘폭력적’인 글로 대응한다. 하지
만 오에의 ‘폭력’은 폭력을 목적으로 한 행위가 아니라, 그 폭력을 해체하
고 버리기 위한 암유(暗喩)로써의 ‘폭력’이다.

 

 

>>'암유'래... 쩐다

 

 

 

 

사소설이 일본에 존재하는 이유를 언급할 때, 많은 경우는 일본 자연
주의 계열 문학자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사회성 부재의 전통을 들고 있다.
그러한 전통을 탈피하기 위해 전후 문학가의 대부분은 사소설을 극복하
려는 의지가 강했다. 그들은 사회적 현상들을 향해 촉각을 세우고, 작품
의 개인적인 성향을 의도적으로 배제
하며, 뛰어난 상상력을 동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강한 부정은 오히려 사소설이 지금까지도 일본작
가들의 의식에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에의 사소설에 대한 언급, 다시 말해 무시가 아닌 반발과 부
정은 사소설과의 ‘단절’이 아닌, ‘관계성’을 증명한다.

 

 

 

일본인이라면 익
히 알 수 있는 작가를 둘러싼 지식 등, 이 모든 요소가 충족됐을 때 비로

소 ?체인지링?이라는 텍스트에 다가갈 수 있다.

 

오에는 “소설을 쓰기 시작한 때부터 ‘사소설’ 전통에 반역하는 것을 목
적으로 삼았다”라고 말했다. 사실과 허구를 모호하게 교차시킴으로, 사실
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읽는 행위를 무효화시키는 것이 사소설을 향한
반역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에는 일본사회와 인간에 대한 비
평 등 문학의 사회적 역할(사회성)을 끊임없이 제공해 왔다. 하지만, 그
반역의 방법이 역설적으로 넓은 의미의 ‘사소설’에 흡수되고, 그야말로
처음부터 경계가 애매했던 사소설의 범주를 확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또 하나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