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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 기호학의 이해 // James Jakob Liszka, 이윤희 옮김

snachild 2015. 11. 1. 22:49

p.56

이러한 작용 중 제일의 원리는 추상화인데, 퍼스에 따르면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분리적 추상화이고 다른 하나는 실재적 추상화이다. 전자는 개별적인 발현과 무관하게 특정한 성질(이를테면, 달콤함)에 대해서 생각하는 과정을 뜻한다. 후자는 분리된 속성을 관찰을 통해서 그것이 원래부터 연관성 있는 특정한 현상에 귀속시키는 것을 뜻한다.(이를 테면 꿀은 달콤함을 가지고 있다)

 

p.56

분리적 추상화 : 개별적인 발현과 무관하게 특정한 성질(이를테면, 달콤함)에 대해서 생각하는 과정

실재적 추상화 : 분리된 속성을 관찰을 통해서 그것이 원래부터 연관성 있는 특정한 현상에게 귀속시키는 것 (꿀은 달콤함을 가지고 있다)

 

p.87

연역은 기호의 깊이와 넓이를 증가시키는데 이바지한다고 해도, 정보의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다. 반면에 확장적인 추론을 통해 ㅡ가추와 귀납이 좋은 예다ㅡ 기호 체계에서 정보는 새로운 방식으로 확장이 된다. 가추는 가설을 발전시킴으로써, 귀납은 그것을 확인함으로써 확장시킨다. (...)

비록 정보가 명제의 형태로 표현되고 유추 과정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의 최종의 의미는 딴 곳에 있다. "...하나의 명제가 번역될 수 있는 무수한 형식 중에서, 그것의 진정한 의미로 불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프래그마티시스트(pragmaticists)에 의하면, 그것은 명제가 인간의 행동에 적용할 수 있게 하는 형식이다.." 기호(혹은 기호 체계)의 최종적 해석체, 즉 기호의 번역에 관한 최상의 표현은 효과적 측면에서ㅡ일차적으로는 그 기호 체계에 없어서는 안 될해석 대행체 안에 수립된 일종의 행동 습관 측면에서ㅡ 발견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프래그마티즘 격률의 본질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 격률은 기호의 의미가 일반화될 수 있는 기호의 효과에 수립된다고 주장한다.

p.88

(...)

"상징이란 존재는 어떤 조건이 충족된다면 어떤 것을 확실하게 경험하게 된다는 실제 사실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상징은 그 해석자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기호의 체계에 의해 마련된 정보, 그러한 정보가 획득되는 바로 그 추론의 과정은 그것에 따라 해석 대행체에게 영향을 미친다. 정보가 참이고, 수반된 추론이 타당하다면, 그러한 체계 안에서의 효과는, 퍼스에 의하면, "사고와 행동을 합리적으로 만드는 듯 하고, 우리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천적 합리성"(concrete reasonableness)의 형식을 수립하기 때문이다.

 

 

p.87

퍼스가 말하는 것처럼, 비록 연역은 기호의 깊이와 넓이를 증가시키는데 이바지한다고 해도, 정보의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다. 반면에 확장적인 추론을 통해ㅡ가추와 귀납이 좋은 예다ㅡ 기호 체계에서 정보는 새로운 방식으로 확장이 된다. 가추는 가설을 발전시킴으로써, 귀납은 그것을 확인함으로써 확장시킨다. 이러한 이유로 적절한 추론에 관한 연구 기호학의 결정적인 부분이며, 그래서 비판 논리학은 이 문제에 있어서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비록 정보가 명제의 형태로 표현되고 유추 과정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의 최종의 의미는 딴 곳에 있다. "...하나의 명제가 번역될 수 있는 무수한 형식 중에서, 그것의 진정한 의미로 불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프래그마티시스트들(pragmaticists)에 의하면, 그것은 명제가 인간의 행동에 작용할 수 있게 하는 형식이다..." 기호(혹은 기호 체계)의 최종적 해석체, 즉 기호의 번역에 관한 최상의 표현은 효과적 측면에서ㅡ일차적으로는 그 기호 체계에 없어서는 안 될 해석 대행체 안에 수립된 일종의 행동 습관 측면에서ㅡ 발견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프래그마티즘 격률의 본질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 격률은 기호의 의미가 일반화할 수 있는 기호의 효과에서 수립된다고 주장한다.

 

p.145

왜 이 같은 가설이 도일의 "미라" 경우보다 더 선호되는가? 그것은 가설이 변칙을 설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설명 자체도 용인된 설명적 틀에 속한 것으로 간주되는 유형에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 같은 프레임 워크는 잘 작동되어 왔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효과가 있을 특정한 형이상학적 또는 존재론적 가설을 도출한다. 과학은 전형적으로 자연주의적 형이상학을 도출한다. 즉 이는 우주가 마술, 악마, 신비한 힘보다는 존재론적으로 물리적 힘, 법칙, 규칙성, 그리고 관찰할 수 있고, 측정할

p.146

수 있는 실체가 모여 이루어진다고 추정한다. 그러한 자연적 형이상학에 기대는 것에 대한 정당성은 이러한 유형의 형이상학적으로 기반을 둔 가설들이 보다 일관적으로 과학의 덕, 즉 예측과 검증능력으로 이어진다는 의미에서 오히려 실용적이다.

 그러한 형이상학적 프레임워크 자신은 여러 이론들의 토대를 제공하게 된다. 따라서 가설들은 개연적인 이론들에서 도출된 것이 될 수 있다. 그 가설들이 검증으로 신뢰할 만한 것임을 증명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그러한 변칙은 오로지 또 다른 이론에서 나온 가설을 도출함으로 해결이 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패러다임 전환이나 혁명을 야기한다.

 

 

p.151

[프래그마티즘은] 어떤 효과를 연구하는 것에 있다. 이는 가설이 받아들여진다면 그 가설이 미래의 경험에 관하여 우리의 기대를 수정하면서 가져야 할 효과이다. 따라서 이러한 새로운 조건의 기대들이 실현되려면 어느 정도까지 이르러야 하는지를 알기 위하여, 우리는 실험하고... 그것이 우리의 경험에 관한 이전의 기대를 크게 수정하기에, 그리고 그것이 성취됨을 알기에, 우리는 우리의 미래의 모든 행동과 사고를 결정하는 데 영향력이 있는 적절한 가설에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 우리는 연구에서 이 같은 동일한 방법을 지속해야 하며 점차적으로 진리에 가까워지게 될 것이다.

 

 

p.159

 

칸트에게 신의 존재, 자유 의지, 영혼의 불멸성 등에 대한 특정한 이론적 주장은 이론적 이성으로는 증명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실제적인 선결조거느이 역할을 한다. 즉 도덕이 가능해 지려면 자유의지는 실제적으로 전제되어야만 할 것이다. 자유의지가 없다면 의미가 없다. 유사하게, 퍼스의 궁극적 지도 원리는 그 자체도 아닌, 그것을 타당성 있게 만드는 추론의 패턴도 아닌, 탐구의 실천에서 정당화 된다. 탐구와 같은 것이 있게 하기 위해서는 지도 원리(leading principle)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실제로, 타당한 공준으로서의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칸트의 주장과 탐구자들의 무한한 공동체에 관한 퍼스의 개념은 신비하게 닮아 있다. 칸트는 최고의 선의 성취는 의지가 완벽하게 도덕적 법, 즉 신성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것의 가능성은 그러한 완전한 부합에 이르는 끊임없는 과정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 같은 끝없는 과정은 동일한 합리적 존재가 무한정으로 견뎌내는 실존과 개성을 가정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하다. 즉 이를 영혼의 불멸성이라 부른다. 퍼스는 이 같은 주장을 집단적이고 공동체적인 입장에서 바꾸어 말한다. 즉 "신성"을 "실재에 대한 지식"으로 "개성"을 "공동체"로 대신하며, 퍼스는 칸트와 동일한 주장을 한다. 다시 말하면 "그러므로 실재의 개념의 진정한 근원은 이러한 개념이, 정해진 한계가 없는, 그리고 확실하게 지식의 증가가 가능한 공동체(COMMUNITY)란 개념을 근본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실재에 대한 개념은 무한한 탐구 공동체를 전제해야만 한다.

 

 

p.175

 

과학적 인간은 이성적이거나 지성적인 어떤 것으로 언젠가는 모든 정신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될 진리의 위엄에 깊게 감동한다. 그가 사실 너머에 있는 신성한 위엄을 가진 합리성의 힘을 숭배한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그러한 정서로부터 진리의 발견을 향해 나아가려는 그의 열정적인 욕망이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CP 8.136n3)

 

 

 

p.205

프래그마티시스트들에 의하면 "최고의 선"(summum bonum)은 "행동에 있는 것이 아니고, 진화의 과정이다. 즉 현존재는 운명지어진 것이라고 조금 전에 언급했던 그러한 일반개념을 더 한층 체현하며 진화한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그 개념들을 합리적이라고 일컬으면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진화는, 보다 높은 단계에서, 자기절제를 통해 한층 폭 넓게 일어난다..." 시네키즘(synechism)은 "융합(coalescence), 연속적이 되는 것, 법 위에 서게 되는 것... 등이 합리성의 성장을 위한 동일한 단계라는 개념에 기초한다."

실천적 합리성은 그 자체로 목적이며 따라서 내재적으로 우수하다. 궁극적으로 그것의 우수성의 성격은 목적에 관한 연구인 미학을 통해 알려진다. 실천적 합리성은 그 자신 말고 다른 것으로 정당화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정당화에 대한 모든 시도들은 이성에 호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라시트토텔레스의 행복의 개념과 다르지 않다. 즉 실천적 합리성은 그 자신의 존재ㅔ의 힘으로 모든 것의 근거를 세우고 특정한 방향으로 기호작용을 움직이는 최종 목적이다.

 

 

 

<퍼스틑 통해 설명된 퍼스용어>

 

p.247

근거(ground) : 성질(quaility)과 관련되어 있으며 존재와 실재 사이의 중간 개념의 하나로 첫 번째 개념에 해당한다. 즉 순수한 형식이나 관념이다. 이는 사물의 최초의 상태에 대한 관념이나 형식(플라톤의 개념과 유사한)으로 이를 통해서만 구체적인 사물로 구현된다.

 

시네키즘(synechism) : 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연속주의 관념, 즉 모든 것이 연속적이라는 관념이 강조되는 철학적 사유의 경향이다. 특히 진정한 연속성은 가설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내가 찾은 논문 : 청자의 해석작용은 단순히 사적이거나 자의적인 연상이 아니며 공동체 안에서의 공통의 경험과 맥락을 반영한다.)

 

p.248

지도 원리(leading principle) : 모든 유추는 다음과 같은 판단을 포함한다. 즉 전제가 참인 그러한 명제들이 있고, 이러한 명제들이 결론인 하나의 명제로 연결되면, 그 결론은 참이 되어야 하거나 참의 근사치여야 한다. 논증의 한 유형에 관한 이 같은 판단에 함축된 원리를 논증의 지도원리라고 한다. 따라서 타당한 논증은 그것의 지도 원리가 참인 것이다. 논증이 그것의 결론이 필수적이거나 개연적인 진리라는 것을 한정하려면 전제와 지도원리 모두가 참이어야 한다.

 

담화 영역(universe of discourse) "나는,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가에 대한 나의 기술이 일반적으로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에 적용되는 것뿐만 아니라 이미 가정된 조건 하에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에 대해서도 적용되기를 원한다. 이전에 강요된 제한적인 것이 무엇이든지, 진리와 오류가 제한되는 것을 담화 영역이라 부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