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 문학작품에서 개인은 일차적으로 개인주의가 가진 강력한 힘에 근거해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려는 개인이다.29)
29) 바우만이 지적하듯이, 보편주의적이고 세계-내적인 개인성 개념이 상대적으로 갑자기 오직 세계
의 작은 한 지역에서 등장했다는 미스테리는 일상생활의 매번 변화하는 상황에 대해서뿐만 아니
라 전체 ‘삶의 계획’에 대해 모호하지 않은 행동처방을 제공할(그리고 강제할) 수 있는 명확하고
포괄적인 규범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근대적 개인의 자유는 불확실성에서, 즉 외적 현
실의 특정한 ‘과소-결정’에서, 사회적 압력들의 본래적 논쟁성 속에서 생겨난다.(Zygmunt
Bauman, 자유 , 이후, 2002, 77-78쪽) 이와 같은 ‘과소- 결정’의 상황은 해방 이후 한국의 상
황에 그대로 대입될 수 있을 것이다. 서구 근대 개인상이 가진 힘의 근거는 일차적으로 이러한 보
편적 상황에 기인한다.
결국 개인주의는 다양한
개인주의 개념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형성된 것이며, 그들의 일부가 개인주의의
핵심가치로 나타나게 된다.32)
이런 측면에서 개인주의는 구체적 수준에서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비서구 사회에서의 개인주의는, 전통적 주체의 양태와 당대 사회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최인훈 작품에 나타나는 ‘개인’의 의미 역시, 특정
한 개인주의적 시각에 입각해서가 아니라, 작품에 나타나는 ‘개인’에 대한 분석을
통해 파악될 수 있는 것이다.
1. ‘개인’을 통한 담론39)의 탐색
39) 담론이란 개별 이론가들에 따라 다르게 쓰이고 있기는 하지만, 구체적 의미를 보여주는 이데올로
기와 차이가 있는 개념이다. 이데올로기는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그들이 이해하지 못한 메커니즘
에 의해서 부과되어진, 사회구성체의 한 객관적 구조이며, 그 메카니즘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구조
가 실재의 외상의 ‘객관적 양식으로 규정되어지는 것’”(M. Glucksman, 구조주의와 현대 마르크
시즘 , 정수복 옮김, 한울, 1983, 269쪽)이다. 이에 비해 담론은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이 객관적이
고 구조주의적인 성격을 가짐으로써 개인을 수동적으로 그리는 것에 비해 발화행위 자체에 관심
을 둔 개념이다. 이 글에서 사용하는 담론의 개념 역시 이데올로기의 영역에 속하나 보다 언어행
위에 밀착한 개념으로 쓰인다. 최인훈 소설을 분석하는 데 있어 그 대상은 정확히 담론이라 할 수
있다. 서론에서 밝혔듯이 이때의 담론은 구조주의 서사학이 서사물을 이야기와 담론으로 나누었을
때의 담론과는 의미가 틀리다. 구조주의 서사학에서 담론은 이야기 되어진 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의미로 쓰인다. 여기에서의 담론은 이야기의 재료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본 논문에서 쓰이는 담론
의 개념은 푸코적 의미에서 쓰였다. 푸코는 자신의 담론 개념을 “모든 언표들의 일반적인 영역으
로, 때로 언표들의 개별화가능한 群으로, 때로 일련의 언표들을 설명하는 조절화된 실천”(Michel
Foucault, 지식의 고고학 , 이정우 옮김, 민음사, 1992, 118쪽)으로 설명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
의 담론은 “의미를 가지거나 실제세계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치는 발화 행위”(Sara Mills, 담론
, 김부용 옮김, 인간사랑, 1997, 19쪽)라는 의미에서 사회에 존재하는 발화행위를 전반적으로 지
칭하며, 개별화된 언술집합이란 의미에서 민족주의 담론, 문학담론 등에서도 사용된다. 다음으로
‘일련의 언표들을 설명하는 조절화된 실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담론의 체계와 실천으로서의 담
론이다. 담론의 이런 측면은 본 논문의 전체 주제와 연관되며, 본 논문이 구조주의 서사학의 이론
적 가정을 받아들이는 부분이다. 결국 본 논문은 이런 측면에서 최인훈 작품이 작품과 작품 외부
로의 개방성을 통해 검토하는 담론이 서사로 제작될 수 있는 ‘규칙’과, 서사화라는 ‘실천’을 통해
창출하는 의미를 밝히는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 가지고서 출발해야 하는 정체성이랄까 자기 동일성이라든가 하는 것을 자
기 손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일종의 문화적인 콤플렉스, 문화사적인 강박관념을 내
작품의 모티프로 회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소설이란 것이 제 경
우엔 이름을 붙인다면 탐구적인 경향의 소설이 됐어요.(“하늘의 뜻과 人間의 뜻”,
文學과 이데올로기 , 403쪽)
제6장 결론
본 논문의 목표는 최인훈 문학작품의 특질을 ‘개인’의 문제를 통해 독해하는 데
있다. ‘개인’은 탐색의 대상으로서, 또한 탐색의 방법으로서 최인훈 문학작품의 특
질을 이루는 핵심적 요소이다. 일차적으로 ‘개인’은 획득하고자 하는 개별자이다.
이 개별자는 억압적 전체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말하는 주
체, 성찰하는 주체, 기억하는 주체로서의 개인은 지배담론과 지배담론에 의해 구성
된 주체로부터의 이탈을 가능케 해 주기 때문이다. 수립하고자 하는 개별자로서의
이 ‘개인’은 서사화전략의 핵심이 됨으로써 탐색의 서사에서 이탈과 재구성의 중심
으로 기능한다.
서사화전략의 분석은 주체로서의 ‘개인’과 내용으로서의 담론을 중심으로 이루
어졌다. 최인훈 작품의 특질로 지목되는 관념성은 이 ‘개인’과 담론의 관계를 통해
해석될 수 있다. 최인훈 작품에 나타나는 담론 탐색은 지배담론과 대결하는 과정
에 다름 아니다.
미군정기에 세워진 반공주의219)나, 박정희 정권의 반공주의, 성장
주의, 권위주의220)등의 지배담론들은 민족주의와 서구주의의 자의적 융합과 전치
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였다. 이러한 담론들은 경제성장과 민족발전을 과제로 내세
우며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지배를 관철시킨, 근대화 담론의 하위부문을 구성
했다. 문제가 더욱 복잡했던 것은 저항 세력 역시 그 근거를 민족주의와 서구주의
에서 찾아야 했다는 점이다. 최인훈 작품에 있어 이런 민족주의와 서구주의 담론
은 지속적으로 서사화 되었으며, 그 서사화 전략에 있어 핵심은 다름 아닌 ‘개인’
에 있다.
최인훈 작품에서 관념이 직접적으로 서사에 등장하고 있는 것은, 외부담론이
상대적으로 독립성이 부각된 이 ‘개인’에 의해 이입되기 때문이다. ‘담론의 서사화
전략’은 이 ‘개인’이라는 주체를 통해 담론을 서사 내에 이입하려는 전략이다. 3장1절 “‘개인’을 통한 담론의 탐색”은 이런 측면에서 최인훈 소설이 보여주는 에세이
적 성격과 그 에세이적 성격의 핵심인 ‘개인’을 분석하였다. 끊임없이 ‘개인’의 독
립적 영역을 확보하려 했던 최인훈 소설의 주인공들은 개인주의에 입각한 추구를
보여준다. 여기에서 담론 탐색은 에세이 양식의 이입을 통해 이루어진다. 에세이
양식이 직접적으로 소설 내에 등장하는 경우, 작가는 소설의 작가일 뿐만 아니라,
에세이의 작가로 나타난다. 작품 내 등장인물을 통해 담론이 이입되는 경우, 등장
인물은 에세이 서술자의 성격을 갖는다. 상이한 담론들은 에세이 서술자의 성격을
가진 발화자를 통해 이입됨으로써, 서사 내부에 병치된다. 결국 텍스트 외부의 담
론들은 서술자나 발화자에 묶인 채 이입됨으로써 서사 내에서 상대적인 독립성을
띤다. 따라서 소설 내부에 위치한 발화자를 통해,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위상을 가
진 담론들이 소설 내에 배치된다. 이 점에서 최인훈 소설이 보여주는 에세이성은
담론을 서사화하는 중요한 기제이다. 소설과 달리 에세이는 서술자의 개인성에 더
욱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예술적 형상화를 통한 감동이 아니라 전달 및 설득
을 통해 독자에게 영향을 끼치는 양식이다. 에세이는 완성된 이론을 독자에게 제
시하는 것이 아니며, 예술적 형상화를 목적으로 하지도 않는다. 에세이의 목적은
독자에게 부여하는 성찰에 있다. 최인훈 소설에 나타나는 에세이적 성격은 에세이
가 부여할 수 있는 이 성찰성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상대적으로 독립성
을 띠고 이입되는 담론들이 만들어 내는 서사의 균열은, 결국 독자의 성찰성을 확
보하는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최인훈 작품에 나타나는 ‘개인’이 갖는 전체에 대한 반발은 균열의 핵심이다.
이 ‘개인’은 사회내의 다양한 담론들을 서사화함으로써 균열을 극대화한다. 통합적
정체성은 지배 이데올로기의 역상을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전체주의의 논리를 제
시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 ‘개인’이 지속적으로 노정하는 균열된 정체성은 중요
하다. 여기에 에세이성을 보이는 관념 이입의 의의가 있다. 에세이성은 최인훈의
작품에서 관념이 생경하게 드러나는 이유이지만, 동시에 담론을 모호하게 융합된
상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독립성을 지닌 채 서사 내로 이입하려는 방법의 성격
을 갖는다.
최인훈 소설에 나타나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균열로는, 다양한 비사실을 적
제4장 “‘개인’과 연대의 서사”에서 분석되었듯이 끝없이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
려 했던 ‘개인’들은, 통합의 비전을 드러낸다. 균열과 통합의 비전의 관계는 세밀한
독법을 요구한다. 통합의 비전은 ‘자아’의 분열을 완전히 봉합해 내거나, 자아를 공
동체로 융합시키는 논리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 통합의 비전이 기초하고 있는 ‘서
사를 절단하는 모호한 시간들’은 서사 내부에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지도 않다
이 답변은 개별자로서 ‘개인’의 독립성을 보장하면서도 공동체의 구성을 가능케
하는 연대의 서사로 주어진다. ‘그 여름’은 기억에 매어 있는 시간의 파편이 아니
라, 그 자신 의미를 생성하는 자생적 시간이다. 여기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포용과
연대이며, 뜨거운 살과 폭격은 어느 편이 좋고 나쁘다는 가치의 인식론적 지평을
넘어선다. ‘그 여름’의 내부서사는 원초적인 감각을 통한 타자와의 연대를 제시하
나 욕구를 통해 통합된 주체를 갖지 않는다. 이전의 서사가 인식하고 사고하며 욕
구하는 독립적 주체에서 출발한다면, 여기서의 주체는 외부와 결합하는 느낌의 주
체이다. 비록 외부가 이 주체의 내부에까지 쏟아져 들어오고 있기는 하지만, 주체
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약화된 상태로 외부와의 연대를 수행한다. ‘그 여름’에서
확실한 것은 육체이며, 불확실한 것은 외부와 자아의 경계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여기서도 주체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외부는 이 주체의 내부
에까지 쏟아져 들어오지만, 그는 이성은 아니더라도 느낌의 주체로 계속 존재한다.
따라서 이 공간은 연대의 공간이지 주체가 무화되는 공간은 아니다.
‘개인’은 여기에서 통합의 비전이 개별자를 무화시킴으로서 통합을 달성하는 것
을 막는 강력한 근거이다. 통합의 비전이 제시되더라도 그것이 이 ‘개인’의 영역을
보장할 수 있어야만 하며 또한 ‘개인’을 사장시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긍정적인
의미를 띠기 때문에, 통합의 비전이 전체서사를 장악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
여름’은 광장 , 회색인 , 서유기 , 화두 등 주인공의 자전적 이야기에 기반하
고 있는 작품들의 대부분에서, 괴로운 현실의 이탈이자 희망의 근거로 등장한다.
끊임없이 ‘개인’에 근거해 외부세계의 현실을 풀어나가려는 주인공들은 그 외부세
계에서 패배할 때, ‘그 여름’으로 탈출한다. ‘그 여름’은 회색인 과 서유기 에서
주인공이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며, 전체 서사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개인’을 뒷받
침하는 역할을 한다. 결국 ‘개인’은 ‘그 여름’의 내부에서는 감각의 주체로, 외부에
서는 의지의 주체로 나타난다.
최인훈 작품들에 나타나는 근대적 의미의 개인은 ‘비서구’라는 현실인식 하에
다시 세워져야만 했던 ‘개인’이다. 현실의 서구근대는 보편성에서 끌어내려져 현실
의 한 구체상으로 제시된다. 그것은 다른 민족이며, 다른 국가이고, 또한 제국이기
도 하다. 하지만 서구 근대를 보편적인 것으로 보고 자신의 사회를 특수한 것으로
놓는 논리가 지배담론으로서의 민족주의가 갖는 강력한 지반인 것과 마찬가지로,
서구 보편성을 부정하는 논리 역시 결국은 자민족 중심주의로 귀결됨으로써 지배
담론화 할 가능성을 갖는다. 그것은 이 후자의 논리가 비서구적인 것만을 자민족
의 특질로 놓는 역 오리엔탈리즘의 가능성을 갖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민족중심주
의는 공동체로서의 민족에 최우선 순위를 둠으로써, 전자의 논리보다 전체주의와
더 큰 친화성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현실로부터의 이탈이 현실의 역상으
로 귀결되지 않기 위해서는, 현실의 지배담론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근거가 확보되어야 했다. ‘비서구’라는 인식을 넘어서, 비판과 의사소통의 근거가
될 수 있는 보편성의 탐색이 요청되는 것이다.
보편성은 명확한 것으로 제시되고 있지 않다. 보편성은 최인훈 작품에서 세워
지고 있는 대립항의 관계를 통해 드러난다. 보편성 획득이라는 과제는 지배담론으
로서의 전체주의와 대결하는 과정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최인훈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지배담론의 모습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이다. 이 전체주
의를 극복하는 데 있어 근대적 의미의 개인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은 가장 강력
한 무기이다. 그렇지만 이 개인은 지속적으로 자체의 문제를 노출한다. 개인의 독
립성만을 강조한다면, 그 ‘개인’ 내부에 문제가 생길 뿐만 아니라 이 ‘개인’들은 결
국 어떠한 의미에서든 공동체를 부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타자의 타자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독립성 추구는 실상 자신의 근거를 위협한다. ‘개인’들
이 아니라 단일한 ‘개인’만이 추구된다면 이는 ‘개인’들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에 대한 억압적 통합의 논리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함정을 피하기 위해 탐색되는 것이 대립항의 상호승인이다. 이는 개인/
공동체, 서구근대/민족전통, 관념/풍속 등의 대립항을 어느 한 쪽을 택해야만 하는
선택지로 놓을 것이 아니라, 상호승인이라는 긴장의 관계에 놓으려는 노력으로 나
타난다. 소설의 경우 이러한 상호승인의 논리는 표면적으로는 비판을 통해 역으로
만 드러난다. 민족전통은 서구 근대로 서구 근대는 민족전통으로 비판됨으로써,
메울 수 없는 균열들이 지속적으로 서사에 제시되는 것이다. 연대의 서사는 이 균
열들을 메우고 통합된 ‘개인’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통합의 비전에 대한 ‘개인’
의 추구를 통해 전체서사에 지속적으로 균열을 만들거나 통합의 비전을 전체서사
와 독립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나타난다.
이 점에서 제4장 “‘개인’과 연대의 서사”에서 분석되고 있는 것은 모호한 상태
로 제시되는 통합의 비전이 갖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분석되고 있는 통합의 비전
들은 전체서사에 있어서는 자기동일성을 확보하려는 ‘개인’들의 추구를 뒷받침한
다. 즉, 이 통합의 비전이 전체 서사에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통합의 비전에 대
한 지속적인 추구가 서사구성의 원리가 된다는 점에서이다. ‘탐색의 서사화전략’은
결국 이 통합의 비전에도 적용된다. 통합의 비전은 전체서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
도록 독립적인 서사로 배치되며, 그 내부서사는 구체적인 것으로 의미화되지 않는
모호성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이러한 통합의 비전에 대한 탐색은 현실의 지배담론
들이 구성해내는 정체성에 대한 거부가 ‘개인’의 파열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
에서 비롯된다. 결국 최인훈 작품들은 ‘개인’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려는 작업이었으
며, 일정한 수준에서의 통합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제5장에서 최인훈 작품에
나타나는 균열과 연대가 비판적 근대주의의 정치학으로 분석될 수 있는 것은 바
로 이 균열과 통합의 근대적 ‘개인’이라는 성격에 기인한다.
요약하자면, 밀실/광장, 개인/공동체, 서구근대/민족전통, 관념/풍속 등의 대립
항들은 보편성의 기준을 통해 관계가 모색되어야 하는 것이지, 상호 부정을 통해
통합되야 하는 것이 아니다. 최인훈의 작품에서 세워지고 있는 대립항들은 상대항
의 부정이 아니라 상대항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 한쪽의 논리가 상대항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팽창한다면, 자신의 논리에 먼저 변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각
항목들은 서로 간에 대화관계를 유지해야만 긍정적인 성격을 띠고 나타날 수 있
는 것이다. 지켜져야 하는 것으로서의 ‘개인’은 공동체가 개인을 침입할 경우에는
전면적으로 나타나지만, 개인의 논리만이 확대될 경우 이 개인의 모습은 희화
화222)되어서까지 나타난다.
이 상호승인의 논리는 모호한 통합을 통해 모든 것을 단일화하는 통합의 서사
혹은 실재하는 것은 다 가치가 있다는 상대주의에 따른 균열의 극대화와는 다르
다. 이 차이를 만들어 내는 핵심에 ‘개인’이 있다. 통합의 비전에 대한 지향이 현실
의 지배담론에 대한 비판이 되는 경우는 그 통합의 비전이 ‘개별자’로서 ‘개인’을
보장하고 있을 때 만이다. 균열은 이 경우에만 비판의 지점을 확보하고 의사소통
의 근거로 나타날 수 있다. 균열과 연대는 이런 점에서 상보적인 관계이다. 균열
의 극단화가 균열을 위한 균열이 아닌 것은 연대의 서사가 그 균열을 비판과 소
통의 지점이 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또한 연대의 서사는 균열로서 ‘개인’을
내장한 채 진행됨으로써 통합의 서사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최인훈 작품에
나타나는 ‘개인’의 탐색과 ‘개인’을 통한 탐색은, 균열과 연대의 상보공간으로 귀결
된다. 이 사이에서의 상호승인이란 균열을 지닌 개인을 인간적 연대 아래 세워놓
음으로써 가능하다. 최인훈 문학작품에 나타나는 ‘개인’의 의미와 이 ‘개인’들의 ‘느
슨한 통합’으로서의 연대는 바로 이러한 탐색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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