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석랑(Suck-Rang Song) (철학과 현상학 연구, Vol.49 No.-, [2011])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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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현상학, 역사철학
【주제어】역사, 일상, 역사의 진실, 일상사, 생활세계, 해석학적 현상학
【요약문】이 논문은 해석학적 현상학과 일상사(日常史)의 ‘역사인식이론’적 관계
를 통해 ‘역사주의 이후의 역사주의’를 모색하기 위한 연구의 예비논의로 쓰여
졌다. 따라서 이 논문의 논지는 해석학적 현상학과 일상사의 연계성[이론↔실천]
을 ‘생활세계’와 ‘일상’이라는 고리를 통해 역사주의적 관점에서 규명한 후, 일상
사의 방법론에 떨어진 주요 현안들, 즉 ‘반(反)이론’성, ‘파편성’, 그리고 ‘비(非)정
치’성 등에 걸려 있는 문제들을 지적하며 그 문제들을 해소할 방도를 제시하는
데에서 그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논문은 해석학적 현
상학의 존재론적 역사이해를 대안의 역사주의적 역사인식의 요체로 제시하는
가운데 다음의 두 사항을 논증하는 성취를 갖게 될 것이다. 즉, (1) 해석학적 현
상학은 일상사에게 전통 역사주의의 역사이해를 지양하는 새로운 역사이해의
존재론적 토대를 명확히 제공해 줄 수 있다. 그리고 (2) 일상사는 기존의 유력한,
그러나 “역사개념의 퇴락”을 초래했던, ‘역사적 사회과학’의 역사인식을 능가하
며 해석학적 현상학의 역사주의적 역사인식이론을 예증하는 역사일 수 있다.
1. 서론: “역사개념의 퇴락”과 일상사
크로체는 자신의 계승자 안토니오가 쓴 책 ?역사학에서 사회학으로?
를 위한 서언에서 “역사학에서 사회학으로, 철학에서 경험주의 과학으로
의 전이 속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진단을 통해 “역사개념”(conception
of history)의 퇴락을 단적으로 표명한 바 있다.1) 이 표명은 요컨대
딜타이의 “주관의 ‘유형’(ein Typus)으로부터 생산되는 외적 유기체”2)
론과 베버의 “이념의 유형으로 파악되는 사회적 추상구조”3)론 등을
매개로 삼아 실증주의적 또는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인식 방법을 역사
주의의 이해이론에 절충적으로 접목시킨 역사적 사회과학의 “심리학
적 혹은 인과적”인 역사연구 경향에 대한 반감을 함축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모색의 일치에도 불구하고 양자, 즉 역사가의 방법론과
철학자의 역사인식이론은 묶일 수 없다. 역사에 ‘형식의 통일성을 부
여하는 정신의 이념’이 역사의 리얼리티로 기능하는 후자의 역사인식
과 ‘삶의 비공식적 경험과 생활양식’을 좇는 전자의 일상사는 아무래
도 이질적이기에 그러하다. 이러한 이질성은, 전통역사주의[이상주의]
의 몰락국면에서 크로체가 재구성한 역사주의[신(新)이상주의] 뿐 아
니라 ‘형식의 통일성’을 달리 추구했던 그 이전의 역사주의(즉, 헤겔
에서 마이네케에 이르는 이상주의적 역사주의와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주의) 혹은 그 이후의 역사주의(즉, 만하임에서 비롯하여 지식사
회학적으로 또 달리 재구성된 역사주의)에 대한 일상사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우선 실증주의와 ‘현재주의’[역사주의의 변종]의 역사 인식이론은 일상사의 철학일 수 없
다: 이 철학들은 일상사와 어울릴 수 없는 고유한 거시적 속성, 즉
역사의 ‘통합적 시각’[총체]성과 ‘이론적 분석’[과학]성, 혹은 ‘이념적
정치’[계급]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후자(현재주의)의 경우 이
속성들을 벗어나 일상사와 어울릴 여지가 있긴 하지만10) ‘상대적 주관성’ 내지 ‘객관적 상대성’이라는 주관주의적 관념의 덫에 걸리고
만다. 이러한 점에서, 예컨대 크로체에서 달리 반복된 것처럼 비록 미
시성과 충돌하는 ‘정신사의 이념성’으로 인해 일상사의 인식을 위한
철학적 토대를 제공해줄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하더라도, “개체”와
“보편”을 동시에 아우르려 했던 ‘역사주의적 기획’은, 조악한 절충주
의를 고려하지 않고 하는 말인데, 적어도 현 시점에서 일상사와 어울
리며 ‘역사개념’에 정당성을 부여해줄 하나의 보루다.
우리가 삶의 관계를 통해
의미를 생성하고 공유하는 상호주관적인 “생활세계”(Lebenswelt)를 역
사의 리얼리티, 즉 “생생한 인식의 기반”15)으로 규정하며 역사주의의
탈(脫)근대적인 ‘지양/극복’의 새 길을 텄던 해석학적 현상학의 역사
인식이론이 일상사의 방법론에 정확히 상응할 경우,16) 일상사는 자신
의 철학적 토대를 명확히 확보하며 자신의 미시적 방법론에 수반된
문제들을 해소할 ‘전혀 다른’ 의미의 ‘이론’성과 ‘총체’성, 그리고 ‘정
치’성 등의 논리를 취할 수 있게 된다.
<인류학의 제시에 따라 현상학적으로 보충된 해석학적 이해의
주관(역사가)에 상응할 해석학적 현상학의 생활세계, 즉 역사의 리얼
리티>와 동일한 것인지 혹은 그렇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검토가 먼
저 있어야 한다.25)
25) ‘일상’과 ‘생활세계’는 일차적으로는 우리의 삶이 이루어지는 나날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점에서 언뜻 아무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간단히 말하자면, 생활
세계는 일상에 대한 하나의 철학(현상학)적 정의로서 이해될 수 있으며, 그
정의 속에서 ‘일상’은 많은 부분 ‘생활세계’와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문제는 일상사가 이야기하는 또 다른 일상, 즉 “전유의
장으로서의 일상”31)이다. 일차적으로 이때의 일상사는 무엇보다도
‘역사’와 ‘일상’의 균열을 부인한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에서는 일상
사의 준거가 “반복”이 아니라 “현실적인 ‘삶의 생산과 재생산’에 관
련된 역사적 변혁의 역동성과 모순성이 된다. 이 준거 위에선 일상사
적 ‘재구성’(서술)이 단순히 나날의 생존 상황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일상에의)참여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역사의) ‘객
체이자 동시에 주체’가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32) 이처럼 일상
의 삶이 역사의 형성자이자 인식자로서 기능되는 ‘전유’의 형식을 통
해 일상을 다루는 것이 일상사라면 이제 일상은, 인류학자 카슈바의
표현에 기대어 다시 말하건대, “역사의 내지”(das Landesinnere der
Geschichte)라는 이름을 얻어 해석학적 현상학이 역사의 리얼리티로
서 가리켰던 “생활세계”와 다른 무엇이 아니게 된다.33)
33) W. Kaschuba, “Popular Culture and Workers’ Culture as Symbolic Orders:
Comments on the Debate about the History of Culture and Everyday
Life”, Lüdtke hg.(2002), 259-260. 그러나 이 인류학자의 주장은 신중하다:
즉, “일상은 아마도 ‘생활세계’, 즉 개인적인 욕구와 사회적 상식 그자체가
역사적으로 구성 정의된 판단기준들에 따르는 가치지평 내에서 항상 새롭게
조정되어야 하는 그런 ‘경험 공간’에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는, ‘역사적 사회과학’을 비롯한 기존의 거시사가 역사의 사실을 왜곡 은폐
한다는 주장이 타당한 한, 역사의 진실은 “역사의 주체이자 객체인
일상”의 논리를 통해 거시사의 형이상학적 이념 및 자연과학적 설명
의 논리를 들어낼 해체의 힘으로 단선의 역사를 ‘복수’(複數)화 하는
탐구과정 속에서 비로소 얻어질 수 있다는 신념을 정당화하며 <인류
학의 방법론이 품고 있던 현상학적 해석학의 ‘이해/인식’>에게 자신의
모습을 내보인다. 물론, 일상의 ‘소외/물화’성을 깨뜨리며 일상이라는
역사의 ‘내지 혹은 리얼리티’로부터 ‘역사의 진실’을 길어 올리려 했
던 급진적인 역사주의적 기획은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주창했던 마
르크스주의에서 먼저 있었다. 하지만 이 시도는 ‘역사’와 ‘일상’의 균
열을 사회과학[‘정치/경제’학]의 계급적 방법론을 통해 연결함으로써 일
상에 함축된 역사의 진실을 이데올로기적인 역사의 진실로 환원하는
“부분성(pars pro toto)의 오류”34)라는 과제를 남긴 지 이미 오래다.
“이론을 배격하고 구체적인 것을 중시하는, 그리고 성급하게 전체적
해석을 지향하며 거시적 차원에서 접근하기 보다는 미시적 차원에서
세부적인 것에 대한 충분하고 정확한 이해로써 역사의 진실로 접근”35)
하려는 일상사의 초점은 역사 속의 다양한 권력관계를 밝히는 수고를
통해 거시적 이념 및 제도 아래에서 ‘소외 혹은 물화’[식민화]된 채 친
착취 내지 규제와 억압의 대상이 되어왔던 개인이나 집단의 삶에 관심
을 갖고 역사를 그들의 입장[‘타자의 관점’]에서 파악”36)하는 일에 맞
춰져 있다.
<일상은 우리 인간이 “세계를
전유하는-또한, 그럼으로써 지속적으로 변화시키는-형식들”38)에 상응
할 서로 다른, 하지만 본질적인 합의를 찾아낼 수 있는, 관찰방식들을
통해 ‘파악/해석’된다>.
이런 논
리 속에서라면 생활세계는 역사의 리얼리티이되, 생활세계를 압도하
는 ‘생활세계의 가능성’으로서의 ‘역사의 리얼리티’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이 경우의 해석학적 현상학의 이해가 일상사의 인류학적 인식으
로 규정될 수도 있는 까닭은 그 “퇴락성”과 “가능성”이 생활세계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그것도 ‘반드시’ 생활세계를 매개로 삼아서,
분리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비(非) 본래적인 현존재의 생활세계는 끝
내 초월될 퇴락의 세계이지만, 그것은 비(非) 본래적인 현존재의 생활
세계를 결코 떠날 수 없는 본래적 현존재의 가능한 생활세계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단초다.42) 만일 ‘일상사’가 탐구한 그리고 탐구해야
할 일상이 그러한 생활세계라면, 역사가의 이해는 본래적인 실존의
이해가 된다. 이러한 이해는, 비록 그 ‘본래적 실존의 진정성에 상응
하는 상대적 객관성’43)[“증여와 철회”를 반복하는 “존재”(Sein) 의미
의 역사적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해도, 역사적 사실의 구체성을
훼손하면서 역사의 진실을 ‘실존의 결단’이 불러올 빛나는 이상으로
압도하는 사태로 떨어지기 쉽다. 이는 결국 일상사가 ‘친숙한 것’(‘소
외/물화’된 일상)을 낯설게 만드는 리얼리즘적 진실 대신에 ‘낯선
것’(‘소외/물화’된 일상) 쪽으로 친숙한 것을 가져다주는44) 낭만주의
적 진실을 이야기하는 역사, 달리 쓰자면 과거에 대한 연구로써 끌어
낸 사회현실적인 구체의 진실로써 미래의 희망을 제시하는 역사가 아
니라 그것을 초월한 숭고한 진리의 사건-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려 쓰
자면, ‘자연보다 더 오래된 시간’45)이 유출할 세계개시의 사건-에
응답하는 역사로 귀착될 결과를 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46)
>>하이데거 어렵다능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소외/물화’된 일상을 비판적 거리를 유지할
수 없는 낯선 것으로 보지 않고 그럴 수 있는 친숙한 것으로 볼 수 있
게 해줌으로써 일상사의 진실로 하여금 사회현실적인 구체성을 띠게
해주는 생활세계의 개념이 있다.
다른 누구보다도 메를로-퐁티에게서 선명
히 나타나는 이 단일성은 <설령 ‘자신의 삶을 사회현실적인 것으로 만
들며 일차적으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라 하더라도, 말 그대로 ‘일
차적’인 혹은 ‘우선적’인 수준, 즉 생활세계의 비(非) 본래적 영역에서
만 겨우 그러할 뿐 본래적 영역에선 그 구체성이 ‘지양/초월’되어 버릴
인간실존47)>의 귀결을 처음부터 차단한다. 때문에 메를로-퐁티에겐
하이데거와는 달리 ‘타자의 타자성’에 얽힌 생활세계48)가 해석학적 현
상학적의 출발점이자 종착지가 된다.
송석랑, 「역사인식의 주관성과 상대적 객관성」, ?인문학연구?(충남대
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제77호, 2009, 235-265쪽.
안병직, 「일상의 역사란 무엇인가」, 안병직 外 지음, ?오늘의 역사학?,
서울, 한겨레신문사, 1999, 23-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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