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논to문

<완득이>의 상업전략과 사회질서의 유지·재생산 : 부르디외의 이론을 중심으로 / 계운경 (20/100)

snachild 2014. 6. 3. 01:10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상징폭력’(symbolic

violence)과 ‘장’(champ)의 작동 원리를 통해 지배 권력

이 재생산되는 과정을 분석하였다. 그가 말하는 상징폭

력은 “피해자들조차도 감지하거나 깨닫지 못하게 하는,

유연한 폭력”으로 부드럽고 은밀하게 장 내에 작용하면

서 지배 권력이 재생산되는 데 기여한다[1]. 





상징폭력은 “가장 유연하고, 가장 비가시적”(the

most subtle, the most invisible)인 폭력[8]으로 지배 이

데올로기의 재생산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제로 작용한

다. 사회는 상징폭력이 끊임없이 가해지는 지점이다[9].

이러한 상징폭력은 유연하고 부드러우며 비가시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폭력으로 인식하기 힘들다. 또한 상징폭

력을 작동하게 하는 공간인 ‘장’은 보존과 전복의 투쟁

속에서 유지되는데 ‘사회의 장’에서 또한 같은 원리가

적용되며, 이러한 투쟁은 결과적으로 재생산에 기여한

다. 재생산에 기여하게 되는 것은 “순전히 의도적인 의

식의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비투스를 구성하는 인

지, 평가, 행위의 체계를 통해 이루어진다”(is exerted

not in the pure logic of knowing consciousness but

through the schemes of perception, appreciation and

action that are constitutive of habitus)[10]. 그렇기 때

문에 이러한 상징폭력은 “(힘에 의한) 강제나 (합리적

인 것에 대한) 동의 중 어느 것을 억지로 선택해야 하는

차원을 넘어선다”(move beyond the forced choice

between constraint(by forces)and consent (to

resons))[10]. 따라서 이러한 상징폭력은 피해자의 공모

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견고한 권력이다.



브레히트(Bertolt Brecht)는 이러한 코미디가

비판적 사고를 가지게 하고, 동시에 교육적인 목적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그가 비극보다 희

극을 지지하는 이유는, 비극의 경우 고정불변의 사회를

제시하면서 어쩔 수 없는 운명의 탓으로 돌리게 하는

데 반해, 희극은 관객의 지적인 활동을 통해 작품과의

거리화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17].



V. 낭만적 시선과 상징폭력의 재생산




대중성 확보를 위한 가장 큰 전략으로 작용한 웃음의

효과와 낭만적인 시선은 결과적으로 영화를 본 관객들

이 사회변화를 위해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게 한다는

점에서 결국 장 안에서 부르디외가 주장하는 상징폭력

을 유지하게 하는 기제가 된다. 결국 상징폭력은 사회

변화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전복전략을 취하는 입장이

든지, 사회유지를 추구하는 보존전략을 취하든지 간에

상황을 애매모호하게 만들면서 완득이의 가족, 이동주,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관객들까지 결과적으로 상징

폭력에 기여하게 하는 효과를 획득하게 한다.


첫째, <완득이>를 통해 상징폭력과 지배

권력이 재생산되는 과정을 밝히는 것은, 이 영화가 아

무리 사회변화의 필요성에 관해 역설하고 있다고 하더

라도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는 식의 결정론이 전제되어

있다는 한계를 포함한다. 이상길은 이러한 한계에 관하

여, 부르디외의 사회학에 대해 ‘이론적으로’ 접근하려는

모든 기획은 사실 그 출발점에서 이율배반적일 수밖에

없으며, 기계적인 대입이나 단편적인 대립에 대한 어려

움이 있다고 비판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실용적인

정신 속에서’ 부르디외의 이론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

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