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대체로 페미니즘의 최신 이론에 대한 정리 소개에 충실하다.
퀴어와 남성젠더 같이 젠더 정체성을 흔드는 대표적 에이전시를 통
해 여성 젠더를 다시 사고하는 글 두 꼭지가 “젠더 연구의 최전선”
인 이유에서인지 맨 앞에 배치되었다. 윤조원의 “페미니즘과 퀴어이
론”은 주디스 버틀러뿐 아니라 국내에 덜 소개된 테레사 드 로레티
스와 이브 세즈윅을 통해 퀴어 이론이 여성임, 여성성에 던진 해체
의 힘을 평가하려 한다. 퀴어에 대한 사전 독서가 없는 이들이 이해
하기에는 퀴어이론이 다소 모호하게 정리된 감이 있는데 이는 저자
가 젠더 정체성에 대한 해체론과 여성 젠더의 다소간 안정된 개념
사이 어딘가에 타협점을 찾으려는 양비론적 입장에 있어서인 듯 하
다. 여성 젠더의 수행성과 구성성은 이명호의 “남성, 남성성, 페미니
스트 이론”에서 한층 분명해진다. 다소 몰가치적으로 쓰인 남성성
‘위기’와 여성운동의 위기라는 역설적 동반위기를 운위함으로써 시
선을 잡아채며 시작한 글은 남성 젠더 연구와 여성주의의 긴장된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가부장적 근육질 남성과 다른 새로
운 남성, (주류문화에서 여성적인 존재로 재현되는) 아시아 남성 등
의 유색인 남성, 댄디 남성, 드랙, 나아가 남성페미니스트, 남성의 여
성성 등 다양한 남성성이 존재하고 정당화되는 것을 어떻게 볼 것
인가. 저자는 그것이 “남성 권력의 음험한 재구축”에 불과한 것일
수 있지만 (가령 남자들에 의한 여성성의 전유가 실제 여성의 혐오
와 결합되어 있다고 보는 리타 펠스키 등을 보건데: 57) 그런 남성
젠더 연구가 “페미니즘이 성차화된 육체와 젠더 정체성을 횡단하는
가변적이며 유동적인 것으로 되는 것(65)”에 의해 촉발되었고 이제
다시 그것을 도와주는 그런 관계에 놓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평
가한다.
저자는 시몬 보봐르, 베티 프리던, 저
메인 그리어 등 걸출한 페미니스트가 늙어가면서 주위로부터 업신
여겨지고 차별당하는 경험에 촉발되어 노화의 의미, 품위있는 노년
을 연구해 내놓은, 그야말로 그 분야의 고전들을 정리해 준다.
“아시아 남성주의(218)”라는 이름으로 지적한 뒤 아시아 여성주의는
“각국 내부의 지역 문화운동과 사회운동 주체들이 모색하는 대항적
지구화 흐름과 접속되지 않은 엘리트 여성들의 배타성을 극복하면
서 아시아 여성들 사이의 소통을 아래로부터 실천하는 다양한 통로
를 만들어가는, 아시아 여성들의 초국가적 연대와 교류(223)”를 추
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제시한다. 그것을 위해 ‘아시아 여성주의
문화연구’가 초석이며 거기에 필요한 논점으로 비교의 방법론과 젠
더화된 하위주체 여성의 위치와 시각에 대해 설명한다. 오은경은
‘베일= 이슬람 여성’인 양 하지만 실은 ‘베일 = 이슬람’으로 전치되
어 베일이 “베일을 쓰는 여성의 경험이 아니라 이슬람을 지키려는
무슬림 전반의 경험으로 읽히고 받아들여지는(185)” 것을 문제삼는
다. 그런 가운데 베일담론은 이슬람의 가부장제에 대한 전반적 대결
과 비판을 베일을 쓰느냐 마느냐의 “핑퐁게임(189)”으로 환원하여
순치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베일 속에는 여성도 없고
이슬람도 없음을 알아 ‘베일을 걷어치우고’ 말하자면, 각론으로 들어
가자는 것이다. 이명호는 한국계 미국인 이주여성이 여러 언어와 문
화가 겹치는 경계의 공간에서 혼종적 주체를 창조해내는 과정을 번
역의 관점에서 해독한다. 작품 비평이지만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작품을 텍스트로 삼아, 과문한 평자에게는 비평이 아니라 이
론으로 보인다. 그것이 흠결은 아닐 터, 저자는 이러한 사이에 끼인
존재의 “불편한 이물감(232)”과 “번역에 저항하는 잉여의식(241)”을
더듬고 그것을 혼종적 주체의 해방적/부상적 행위로, 혹은 “역사의
천사처럼 역사의 잔해에서 구원의 흔적을 수집하여... 메시아적 계시
의 흔적을 읽어내려는(244)” 것으로 의미화하고 있다. 이러한 이론
적 비평적 노력이 이주여성 노동자에 대한 연구와 쌍을 이루어 읽
히면 좋을 것 같다.
최성희의 “자아로부터의 비상, 에로스”는 부추기고 꼬드기
는 자본주의의 욕망 경제와 엄숙주의와 이중도덕의 가부장제에 포
획된 섹슈얼리티를 여성 입장에서 (향유는 고사하고) 사고하는 것의
어려움을 여성주의 안의 섹스 논쟁을 통해 보인 뒤, 섹슈얼리티와
구분되는 에로스의 언어로 난관을 돌파하려 한다. 그 때 에로스는
바타이유의 에로티즘, 즉 자아의 경계를 넘어 타자와 융합하는 에로
스적 충동, 합리적 이성의 세계를 녹여버리는 위반의 에너지의 의미
가 강하다. 아울러 “축제적 수행적 퍼포먼스를” 동반해 “아직 되지
않은 것의 상상적 체현”이자 경계 넘기와 “현실 변화”의 계기가 있
음도 강조된다(104). 그러한 에로스의 페미니즘적 구현의 실마리로
저자는 허라금의 ‘자기성실성integrity’ 개념을 끌어들인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진정성으로, “자신을 정체화해주는 삶의 가치나 원칙에
근거해 행위를 선택”하는 “심사숙고의 진정성”이다(108). 장정희는
“페미니스트 신재생산기술 담론의 정치성”에서 (많이 참조하는 해러
웨이처럼) 과학과 기술의 긍정적 잠재력을 적극 수용해 시험관 임
신, 난자 제공, 대리모 등의 새로운 재생산기술의 발달로 유기체적
몸이 시각화되고 몸의 경계가 불안정해지지만 그 불안정한 경계로
부터 몸의 새로운 경계가 배태될 수 있다고 본다.
“모성 이데올로기 비
판의 목적은 모성을 ‘나쁜 것’으로 보아 처단하는 것이 아니라, 모성
을 특정한 방식으로 제도화하고 주체화하는 기제를 분석함으로써
모성 담론의 이데올로기성을 비판하는 것이다 (321)”
차이와 사이라는 케치 프레이즈에 충실했는지는 모르지만 이 책
이 현단계 한국사회의 페미니즘 논의를 (그 성과와 한계 양자의 의
미에서) 집약하는 것은 분명하며 여성학과 사회학 등의 사회과학적
논의와 만나 한층 복합적이고 풍부한 담론과 운동으로 이어지길 기
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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