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은 유년기가 드러내는 시대의 이중성과 어린아이
들이 품고 있는 새로운 지각가능성을 통해 ‘현재’를 재사유할 것을 촉구한다. 즉,
과거는 현재가 임의적이며 충분히 변화 가능함을 드러내는 매개이자 행복에의 씨
앗을 담고 있는 일종의 ‘원천’(Ursprung)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과거를 기억하고
서술하는 작업을 통해 주체는 스스로와 자신의 시대에 대해 새롭게 사유할 수 있
다. 이러한 사유 속에서 주체가 망각하고 있는 진리의 계기, 망각된 것들과 타자
들의 존재가 떠오른다. 주체는 과거를 통해 자신이 억압하고 망각한 타인들의 존
재를 깨닫게 되며 자신의 불완전성과 대면한다. 그러나 그 불완전성 앞에서 멈추
거나 되돌아가지 않는다. 기억은 하나의 ‘일방통행로’이며 글쓰기는 그 길을 걸어
나가는 주체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구원 가능성이다. 벤야민이 자신의 유년기를
통해 드러내는 과거와 정신분석에서의 ‘분석주체’가 기억해내는 자신의 과거는 모
두 증언과 글쓰기의 작업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글쓰기는 개인적인
회상이 역사적이고 자본주의와 폭력의 역사 전체에 대한 기억과 성찰이라는 정치
적인 차원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현재의 위기에 맞서는 이론적 해결책은 포스트모더니즘이 강조하는 문화적 다
양성과 관용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종의 원천, 주체와 정치적인
것을 새롭게 정립하는 보다 근본적인 태도 속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
나 여기서 말하는 주체는 문명과 진보라는 이름으로 자연과 타자에 대한 폭력
을 자행해왔던 그러한 인간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우리가 진리와
주체라는 말을 여전히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은 궁핍하고 일그러진, 혹은 아우
슈비츠와 같은 폭력의 역사 앞에서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주저함의 진리이고
주체일 것이다.6)
라캉(Jacques Lacan)은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화되어있다고 말
하는데 이는 무의식과 욕망이 재현 불가능한 혼란의 장소가 아니라 이해되고
해석되어야 할 대상임을 드러낸다.
“지배적
관념들은 왜 지배하는 자들의 관념이 아닌가?”라는 지젝(Slavoij Žižek)의 물음
은 자본주의적 질서가 피지배 다수의 삶의 방식과 갈망들을 자신 안에 통합하
는 방식으로 작동해왔다는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35)
아라공은 이렇게 유리처럼 반짝이는 대도시를 ‘현대의 신화’로
명명했으며, 그러한 현대성의 신화는 상품이나 건축물, 기계와 철도 같은 인공
적인 창조물들에의 매혹을 포함한다.
아라공은 가장 최신의 것 속에서 신화적 형상들을 재발견한다. 벤야민이 19세
기에 관해 말하며 “자본주의는 꿈을 동반한 새로운 잠이 유럽에 덮쳤고 그 잠
속에서 신화적 힘들이 부활했던 일종의 자연현상이었다.
중요한 것은 가장 오래된 근원적 소망의 형식들이 가장 새로운 것의
외관을 띠고 등장한다는 점, 즉 자본주의의 발생기라고 할 수 있는 19세기는 한
편으로는 기술적 진보와 풍요의 형식으로 넘쳐나면서 다른 한 편에서는 신화적 상
상력이 귀환하는 모순을 안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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