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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시의 아날로지적 상응 연구 / 김정수

snachild 2014. 3. 25. 23:00

 

백석 시의 아날로지적 상응 연구 = A Study of analogical Correspondence in Baek-suk's Poetry

김정수(Kim Jeong-Soo) (국어국문학, Vol.- No.144, [2006])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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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석 시세계에 대한 기존의 논의는 대체로 민족 공동체의 회복과 농촌 공동체의 합일 지향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고향'의 향토성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신범수는 백석 시의 시적 대상인 '고향'이 단순한 향수의 서정적 회고주의나 추억담의 소재 나열을 넘어서서 유랑을 통해 '발견'된 민속적 신화의 세계임을 지적한다.

 

>>앞에 선행사 연구 쭉. 김윤식의 선행사도 있네여

 

 

 본고는 이 논의들의 연장선상에서 "대립되거나 조화되지 않은 많은 의미들을 하나도 제거하지 않은 채 껴안아 화해시"키는 파스의 "반대되는 것들의 화해 가능성'과 이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아날로지적 체계'와 '우주적 형제애'의 개념을 통해 백석의 시를 분석하고자 한다. 여기서 파스의 '아날로지적 상응'은 은유처럼 대립되는 것들을 하나로 환원시키거나 변형함으로써 통일성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대립되는 것들의 역동적이고 필연적인 공존", 차별성을 소멸시키지 않으면서도 "개별성이 총체성을 꿈꾸고 차별성이 통일성을 지향하는" 시정신이다. 그리고 이것은 세계의 단일성과 동질성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우주적 형제애'로 나아간다. \

 

 12) O.Paz, 김은중 역, 『흙의 자식들 외』, 솔, 1999, 95쪽.

 

 파스의 '반대되는 것들의 화해 가능성'이나 '아날로지', '우주적 형제애'의 개념은 ... 어렵고 모호. 여기서 '반대되는 것들의 화해'는 "반대되는 것들이 서로 껴안고, 긍정도 부정도 아닌 하나의 발아들임"의 방법을 통해 나-타자가 거리를 상실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가까워짐으로써 친숙성을 획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화해가'가 타자를 '나'의 것으로 흡수하거나 '나' '타자' 모두를 상실한 채, 용해된 상태로 일치하는 것이 아님. 파스의 '아날로지적 상응'은 이 화해의 원리를 바탕으로 '나'와 '타자'의 경계를 유지한 채, 이 두 세계를 관계지어주는 능력이다. 그것은 상이한 사물들 속에서 유사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시정신이다. 

 

  

 

 18) 들뢰즈는 '기호'를 우연히 나타나 자기 안에 들어 있는 바를 해석하기를 강요하는 대상으로 정의한다. 기호는 우연히 나타난 것이므로 경험의 대상 일반으로 환원되지 않는 특정한 것, 유일무이한 것이다. 백석의 시에 존재하는 사물들은 바로 이 '감각적 기호'이다. 감각적 기호는 비자발적인 기억을 강요함으로써 차이 자체의 이념인 즉자적 과거를 사유하기를 강요한다. G.Deleuze, 서동욱 역, 『프루스트와 기호들』, 민음사, 1997, 298쪽과 서동욱, 『차이와 타자』, 65쪽.

 

 

 백석의 시에서 사물들은 비의도적으로, 인과관계를 상실한 채 환유적으로 배열되고 결합된다. 이는 시적 주체가 사물과 우연하게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백석의 시적 주체는 능동적으로 사물을 선택하고 결합하여 자신의 과거 기억을 인위적으로 형성하는 주체가 아니다. 각각의 사물들은 우연하게 병렬적으로 결합된다.

 

 

 27) 벤야민은 진정한 미메시스적 태도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아이들의 '놀이'를 제시한 바 있다. "어린이들은 상인이나 교사놀이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물레방아와 기차놀이도 함께 한다."(W. Benjamin, 반성완 편역,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315쪽.) 이 어린이들의 모방 능력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유사성의 개념, 전통적인 미메시스 개념만으론 이해할 수 없다. 진정한 미메시스는 동일성 사고에서 배제된 것, 비동일적인 것, 타자를 지각하고 경험하는 방식 혹은 그러한 요소들에 합당하고자 노력하는 사고의 의식적 태도이다. 예술이 비규정적이고 다의적인 자연미를 모방할 수 있다면, 이러한 미메시스적 태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미메시스는 대상을 주체의 목적하에 두지 않고 대상으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도록 두는 유토피아적 목적을 지닌 것이며, 주체-대상의 이분법 저편의 주체와 객체의 대립이 고착되기 이전의 현실에 대한 태도이다. 예술적 미메시스는 대상을 동일화하기 위해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주체의 차이를 소멸시키지 않고 대상과 비슷해지기 위해 다가간다. 이러한 미메시스적 태도를 진중권은 '존재론적 닮기'라고 설명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노명우, 앞의 책, 124-129쪽과 최성만, 「탈마법화시키는 마법」, 『문화과학』 25호, 225~237쪽, 진중권, 『현대미학강의』, 아트북스, 2003, 18쪽 참고.

 

 

 그러므로 '흰밥과 가재미와 나'의 세계는 서로 환원되지 않는 것들의 접속과병치의 세계인 '와'의 세계이자 '밀착'의 세계이고 되기/생성(devenir)이 가능한 세계이다. 그의 시세계가 '되기'의 세계라는 것은 그의 기억이 '반-기억'임을 의미한다.

 

 

 '공명'은 이질적인 항들의 이웃관계에서 파생되는 효과이며, 서로 동일한 하나로 환원되지는 않으면서 서로 간의 유사성의 극대치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 사물들은 그 자신의 '고유성', 즉자적인 차이를 상실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타자성을 온전히 유지한다.

 반면, 전체주의적 융합, 집산주의(collectivism)은 국가, 민족 등 개인을 초월한 집단적 이상을 강요함으로써 개개인들을 결합시킨다. 각각의 개인들이 지닌 가치는 하나의 공동체적 이상으로 환원되고 집단의 가치에 종속된다. 사물들의 고유한 '차이'는 하나의 동일성에 폭력적으로 혼융될수밖에 없다. 그러나 백석의 시에서 나타나는 '유사성' 혹은 '친숙성'은 사물들의 차이와 차이를 제거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통해 형성된다.

 존재들의 차이와 대립의 관계를 제거하지 않으면서, 어느 한 쪽을 부정하거나 변형시키지 않으면서 서로 화해할 수 있는 백석의 시세계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이 화합할 수 있는 아날로지적 상응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개별성이 총체성을 꿈꾸고, 차별성이 통일성을 지향"하는 세계이면서 동시에 "세계의 단일성이 아니라 그 복수성을, 인간의 동질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으로부터 갈라져 나오는 그 분열성"34)을 꿈꾸는 세계이다.

 

 34) O.Paz, 『흙의 자식들 외』, 95~96쪽.

 

 

 그것은 외부적 현실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능동적 생성물로서, 국가나 민족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아날로지적 상응'의 세계이다.

 

 

 백석의 시세계가 보여주는 '동일성'은 하나의 공동체적 이상으로 환원시키고 집단의 가치에 종속시키고자 하는 폭력성이 제거된 '동일성'이며, 이러한 동일성, 아날로지적 상응을 통해 백석은 인간들뿐 아니라 인간 아닌 존재들까지도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우주적인 형제애의 가능성을 시를 통해 구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