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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에 있어서 실존론적 공간해석의 현대적 의의 / 강학순

snachild 2013. 12. 7. 21:59

 

하이데거에 있어서 실존론적 공간해석의 현대적 의의 = Die heutige Bedeutung von der Heideggers existenzialen Raum-auslegung
강학순(Kang Hak Soon) (존재론 연구, Vol.14 No.-, [2006])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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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존재방식을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변화시키는 가상공간의 도전과 위협 속에서 고유한 인간존재와 세계와 관련된 근원적인 공간의 존재론적 위기와 상실에 대한 물음은 피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철학적 과제로 여겨진다.

 

>>철학적 논의에서는 이렇게 '사이버 공간'을 위기ㄷㄷㄷ 나파요ㄷㄷㄷㄷ 라고 보는 경우가 많은 듯? 허허.. 새로운 사이버 공간성이 새로운 인간의 존재방식을 반ㄹ전시켜가는 건 아닐까시라

 

>>이 논문은 전기-하이데거 공간에 대한 논의가 주네요 (저번 건 후기-하이데거)

 

 

 

 

 단순히 공간에 대한 첨단의 기술적 패러다임이 이 시대를 주도하는 것을 넘어서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기술적 공간이 무서운 속도로 인간의 존재방식 및 존재 자체에까지 침투해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소위 컴퓨터 디지털 문명이 가공한 사이버공간은 우리의 일상적 삶의 공간으로 점점 확장되어 간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자가 자신의 존재에 상응하는 저마다의 고유한 자리와 위치, 공간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개별 존재자를 그것의 공간성을 배제하고 그 존재를 생각할 수 없으며, 공간의 의미는 그것의 존재의미와 직결된다. 따라서 공간의 위기는 인간존재 및 사물존재의 정체성의 위기를 불러온다.

 

 

 오늘날 기술공학이 가공한 사이버공간에서는 공간의 고유성과 근원성, 질적인 특수성과 다층성이 상실되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론적 기원과 단절된 채, 획일화되고, 수평화된 동질적이고, 등가적이고, 일의적, 등방적인 것으로 존재한다. 더욱이 가상공간에서는 다양한 공간들의 존재 방식이 표준화되고 추상화된 기호와 이미지로 채워져 있다. 혹자는 정보화 사회의 존재론적 소외와 대재난은 바로 장소의 추상화와 공간의 일의화에 있다고 진단한다. "대중매체가 조성한 의사실재의 공간과 거기에 터하는 표피의 존재론은 공간의 일의화로 귀결되는 테크놀로지의 추상성에서 비롯된다.

 기술에 의해 기획되고 조성되는 공간에서는 살아있는 인간과 생경한 사물과 아름다운 풍경과의 직접적인 만남이 단절되어 있다. 인간이 존재자와 교섭하며 살아가는 공간에서의 근원적 만남의 차원이 탈취된다. 오히려 기술적인 도구의 매개를 통해서 사이버공간에서만 그들과의 접속만이 가능해진다. 다시 말해 오늘날 기술에 의한 접속공간은 확장되는 반면, 공간이 지닌 근원적 의미는 축소되고 있다. 즉 후자에 있어서 인간의 거주공간 및 삶의 공간의 의미와 연결된 인간적 맥락, 즉 사회적, 역사적 맥락 그리고 사물들 간의 상호지시하는 존재론적이며 의미론적 맥락이 사라져 가고 있다.

 

>>뭔솔;; 참고참고

 

 

 이런 점에서 인간의 존재방식을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변화시키는 가상공간의 도전과 위협 속에서 고유한 인간존재의 근원적인 공간의 존재론적 위기와 상실에 대한 물음

 

 

 

 공간에 대한 전기-하이데거의 실존론적 해석 "세계내부적 도구존재자의 공간성", "현존재의 실존론적 공간성", "현존재적 공간성의 탈자적 시간성"

 공간과 세계의 친화적인 관련성, 공간과 인간의 친화적인 관련성

 

 

 "주변세계성의 주변성과 현존재의 공간성"

 

 

 

 

 

 

 근대이후 공간개념은 물화되고 계량화되고 추상화되어, 인간주관의 인식과 소유 및 지배의 대상으로서만 사유되었다. 또한 데카르트에게서 물리적 공간성, 즉 연장이 세계의 세계성과 등식을 이룬다.

 

 

 

 이 공간에서는 장소, 자리, 위치가 다차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공간은 인과율이 지배하는 합법칙적이고, 동질적이고, 획일화되고 표준화된 일위적이고 등방적인 공간이다. 여기서 공간은 다른 존재자들과 단절되고 고립되어 탈세계화된다. 이러한 공간이 속해 있는 근대적인 과학적, 수학적 세계는 후설에 의하면, 오히려 인간의 생활세계에 정초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근대 이후 공간개념은 공간이 근원적으로 갖는 세계와의 친화성(소통과 친근성) 및 인간과의 친화성으로서의 공간개념, 즉 지상에서의 거주개념으로서 공간이 갖는 인간실존과의 연관성과 역사적인 의미맥락이 단절되었다고 보는 것이 하이데거의 입장이다.

 

 그는 전통존재론이 망각하고, 은폐하고 있는 공간존재의 근원적 차원에 대한 해명, 다시 말하면 그것에 대한 실존론적 탐구를 시도한다. 이를 통해 공간이 지닌 실존적이고 구체적이며, 시간적이며 역사적인 의미가 드러날 것이다.

 

 

 하이데거는 "세계-내-존재"라는 현존재의 근본틀과 관련하여 공간을 파악하고자 한다. 그가 주제화하는 세계는 "현실적 현존재가 현존재로서 <살고 있는> <그 곳>으로서 전존재론적 실존론적 의미를 지니며, 공공적 '우리-세계'라든가 <자신의> 가장 친근한 (가정적) 환경세계를 가리킨다."(SZ 65) 단적으로, 여기서 "세계는 세계성이라는 존재론적-실존론적 개념을 나타낸다."

 

 

 하이데거는 공간에 대한 실존론적 탐구를 통해 공간존재의 현상을 해명하고자 한다. 이른바 "세계내부적 도구존재자의 공간성과 세계-내존재의 공간성에 대한 이상의 설명을 통해서 비로소, 세계의 공간성이라는 현상을 부각시키고, 공간의 존재론적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전제가 주어지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현존재로서 근원적 의미에서 공간적이라고 한다. 그에게서 공간은 실존범주로서 인간의 본질적인 존재방식이다. 이 공간은 무엇보다도 실존론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삶과 존재론적 관심에 의해 공간이 열리고 동시에 발견된다. 현존재는 "거리-제거"와 "방향열기"의 방식으로, 즉 "방향을 제시하는 거리-제거함"으로서 공간적이다. 공간은 인간과 독립되어 있는 단순히 외적인 대상도 아니고, 주관 안에 있는 내적인 체험의 대상도 아니다. 인간은 우선적으로 자신의 주변적 세계와 교섭하는 관계적 행동 및 실천을 통해 소통하면서 그 소통공간 속에서 실존한다. "우선 대개 현존재는 주변세계적으로 만나는 것과 둘러보면서 배려되는 것에 입각해서 자기를 이해한다."

 

 

<<하이데거 '개시성' 관련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87394&cid=282&categoryId=282

 

 

 

 

1. 세계 내부적 존재자의 공간성

 

 하이데거에 있어서 세계 내부적 존재자는 우선 사물 및 자연이다. 인간이 자신의 삶의 지평에서 그것들과 관계를 맺고 교섭할 경우, 그것들은 비로소 도구, 즉 사용사물이 된다. "도구는 그때마다 다른 존재자에 앞서서 가장 먼저 만나는 존재자를 의미할 뿐 아니라, 동시에 <가까이> 이는 존재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일상적 교섭에서 만나는 도구는 가까움(친근성)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이 자신의 삶을 영위하면서 우선 만나게 되는 세계는 친숙한 도구존재의 세계, 도구연관의 세계이다. 이것을 하이데거는 주변세계라고 한다. 여기서 주변세계는 인간의 삶의 관심을 통해 발견되고 형성된 세계이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위해, 다시 말해 지상에서 거주하기 위해 삶을 영위하면서 사람들과 사물들과 교섭한다. 이 때 우리가 생활하면서 주위와 교섭하는 공간이 바로 도구의 세계, 주변세계이며, 활동공간이다. 구체적 삶의 역사적 공간이다. 근대 존재론 이후 망각되고 탈취된 공간이 바로 이 구체적인 실존의 공간이라는 것이 하이데거의 철학적 통찰인 셈이다.

 

 세계란 모든 도구가 그 속에서 개현되어 있는 '거기'이며, 따라서 도구가 '거기'에 의거해서 용재적으로 되는 그곳이다. 다시 말하면 세계를 근거로 해서 우리는 도구를 만나고 그것과 교섭할 수 있다. 즉 세계가 미리 개현되어 있어야 비로소 현존재는 도구와 교섭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우선적으로 발견되어 있는 공간은 결코 그 자체로 있는 순수공간이 아니라, 세계현상으로부터 만나지는 공간, 즉 도구전체의 자리로서의 공간인 것이다. 세계를 근거로 해서 우리는 도구를 만나고 그것과 교섭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세계 내부적 존재자들과 교섭하고 소통하면서 살아가는 세계에서 조성되는 생활공간을 하이데거는 "세계 내부적 도구존재자의 공간"이라 명명한다.

 

 

 이것은 인간이 현존재로서 본질적으로 개시성이며, 여기서 '현'은 모든 공간들을 개현하는 개시성의 토대이다.

 

 

 

 

인간만이 지닌 유의의성으로 인해 각각의 도구는 쓰임새를 인간으로부터 부여받게 되어 '쓰일자리'가 생기게 된다. 현존재의 존재인 '궁극목적은 '하기 위한'을 유의의화하고, '하기 위한'은 '거기에' 유의의화하며, '거기에' 적소토록 하는 '어디에'를, 또 이 '어디에'는 사용사태의 '무엇을 가지고'를 유의의화 한다. 이 유의화작용 전체를 우리는 유의의성이라고 한다. 유의의성은 세계의 구조, 즉 현존재가 현존재로서 그때마다 이미 그 안에 존재하는 그런 세계의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실존으로서의 인간의 고유한 존재방식의 해명에서부터 현존재의 공간성의 논의가 가능하며, 이것으로 인해 눈앞의 존재자 및 도구존재자의 공간성이 자신들의 존재론적 토대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의 사이버공간의 출현은 세계의 실재성을 소멸시키고, 근원적 공간이 가진 정체성과 실재로서의 저항력을 상실하게 된다. 가상공간에서는 사물들의 근원적 친근성의 공간과 존재론적인 방역적인 위상성이 사라지고 그것들의 기능성의 공간 속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얻게 된다.

 보드리야르의 지적처럼 우리는 더 이상 사물들이 자리하는 현실공간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시뮬라르크(대상 없는 이미지)가 지배하게 되어 그것이 현실적 대상을 대체하여 유령처럼 우리의 의식과 접촉하는 시대가 오늘날의 기술적 매체가 지배하는 소비사회라고 언급한다.

 

 

 

 

 

>>정말??? 글쎄다...

 

 

 

 

 

 

 

>>이 부분 좋다

공동현존재

 

 

>>과연 탈인간화된 공간일까??

 

 

 

즉, 가장 넓은 의미의 용재적 도구만이 아니라 <역사적 지반>으로서 주변세계적 자연이다. 현존재가 아닌 존재자가 자기의 세계귀속성을 근거로 하여 역사적으로 되는 것을 '세계역사적인 것'이라 부른다.

 

 

 후기 하이데거는 무엇보다도 "존재사건이 모든 장소들과 시간-놀이 공간들의 근원적인 처소"라고 본다.

 

 

<<과연 저자가 우려하는 것처럼 무거리성일까, 사이버 세계가.. 무세계성인 걸까.

 

 

 오늘날 대중매체가 소멸시키는 무거리성은 무세계성으로 연결되고, 이것은 인간과 사물의 존재와 그 정체성까지 해체시키며 사물과 공간의 분리를 가져온다. 사물과 공간의 분리는 사물이 조성하는 공간성을 탈취하여 사물의 존재를 탈공간화하고, 공간을 탈세계화한다. 사물은 마침내 인간 및 다른 존재자들과의 존재론적인 관계의 맥락이 사라지고, 단지 기술적 공간 안에서의 어떤 공간적 양태에 불과하거나 어떤 순수한 기능성의 지배력 속에 빠져버린다는 사실이다.

 

 

 

 

 

 

 

 

 

<<좋은 논문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