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식민주의의 조건 : 에드워드 사이드와 헤테로토피아의 변증법 = (The) condition of postcolonialism : Edward Said and the Dialectic of heterotopia
- 이미영, 연세대학교 대학원,[2001]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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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헤테
로토피아적 해체를 이데올로기 분석이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기획으로 삼는다. 여
기서 헤테로토피아란 유토피아와 달리 대서사나 단일한 통합의 기획을 해체하고
도달하게 되는 미래를 의미한다. 이것은 권력에 대항하는 세력이 또 하나의 권위
와 권력을 가지게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과 반성을 가능케
한다.
탈구조주의 지식인들이 대문자 주체(주권적 주체)
를 공격하고 해체시킨 자리에 자연스럽게 소문자 주체들(경험적 주체들)이 들어선
스피박은 재현(representation )이라는 영어 단어에 묘사(dar stellung) 뿐만 아
니라 대표(vertretung )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권력, 욕망, 이해관계를 연속적인 이슈로 보는 푸코와 들뢰즈와는 달리, 마르
크스는 계급을 차이가 동일성으로 전환되는 재현 의 사건으로 보고, 그 차이와
동일성 간의 불연속성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에게 재현은 주체가 되지
못한 하위주체 (subaltern )를 주체로 대표하는 사건이다. 탈구조주의 지식인들의
문제는 바로 하위주체를 묘사하면서 스스로가 그들을 대표하고 있다는 자의식을
가지지 못하는 데에 있다.
바바는
재현을 차이와 혼종성이 생겨나는 자리로 본다. 혼종성 (hybridity )이란 완전히
하나는 아니면서 빼 닮은 (less than one and double) 것으로 정의된다.7) 그것은
재현물과 재현 대상의 관계의 속성, 즉 재현의 거리를 암시한다. 그 거리에 의해
재현은 필연적으로 대상을 왜곡시키고 전위시킨다. 재현물과 대상 사이에 끼어 드
는 이러한 왜곡과 전위는 바로 바바가 말하는 혼종성의 문화를 가능케 하는 메커
니즘이 된다. 그는 혼종성의 예로 전도사 아넌드가 인도의 원주민에게 기독교를
전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대화를 재구성한다. 아넌드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성
서를 읽으며 대화하는 원주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냐고 질문한다. 이에 원
주민은 그는 신이며, 우리에게 이 책을 주었습니다 라고 대답한다. 천국에서 온
천사가 허드워 시장에서 이 책을 주었습니다. 그는 사람이지만 우리에게는 신의
천사였습니다. 이러한 대답을 듣고 아넌드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이 책들은
유럽 나으리들의 종교를 전파하는 책입니다. 그 책은 그들의 책입니다. 그리고 그
들이 우리를 위해 우리말로 인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자 원주민은 반박한다.
오, 아니에요. 그릴 리가 없어요. 그들은 고기를 먹는 걸요. 8) 식민지 원주민들은
성서의 권위를 영국인의 책과 연결시키려는 아넌드의 재현을 거부하고 고기를 먹
는 야만적인 영국 사람이 그 책을 주었을 리 없다고 부정하면서, 성서의 권위를
자기들의 방식으로 재현한다. 여기서 성서는 기독교의 권위와 결합된 유럽의 문화
에서 떨어져 나와 경이로움으로 간주되는 기호들 이 된다.
>>예시가 잘 이해가 안간다능ㅇㅅㅇ;;;;
그 경계는 바로 하
위주체 라는 말로 암시된다. 하위주체 라는 말은 주체가 되지 못한 것, 혹은 계급
화되지 못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주체와 비주체, 계급과 비계급의 경계를 내포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재현의 문제에 대입시키면, 경계란 재현된 것과 재현되지
못한 것 사이의 어떤 가상의 공간으로서 아날로그적 차이가 디지털적인 차이의
재현으로 구체화되는 지점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계는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에
서도 동양 의 안과 밖이라는 장소적 비유를 통해 암시된다.
하위주체 혹은 동양의 밖 은 이데올로기의 경계선, 담론의 한계 지점만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유토피아적 상상력을 내포한다. 그러나 그
것은 단일한 해방의 기획이나 대서사를 내포하는 유토피아와 그 성격이 다르다.
오히려 그것이 암시하는 것은 제국주의이나 민족주의의 대서사와 정체성 담론이
해체된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의 세계이다. 문화와 제국주의 는 동양 의 이
질적 경험들을 강조하면서 오리엔탈리즘 에서 암시했던 밖 의 성격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이드가 상상하는 헤테로토피아의 세계는 바바의 혼종성과는 엄격히 구
분해야 한다. 바바는 혼종성 속에서 저항의 가능성을 구해내고 있지만, 사이드의
헤테로토피아는, 현재는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저항을 통과하여 도달할 수 밖
에 없는, 미래로 끊임없이 후퇴하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저항과 해체의
기획이 서로 맞물리는 탈식민주의적 변증법적 사고의 독특한 한 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질성과 차이에 대해 바바와 사이드가 가지는 이러한 입장의 차이는 그
들이 재현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로 이어진다. 바바가 재현을 차이와 잉여, 지배
권력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지 않는 저항과 담론적 실천의 영역으로 보았다면, 사
이드는 그 재현이 만들어 내는 차이와 잉여가 철저하게 제국주의 이데올로기 속
에서 새롭게 봉합 되는 권력 구조를 분석한다. 사이드는 언제나 제국주의의 엄청
난 물질적 불균형 현상을 망각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차이들이 차이의 기표로 떠
돌아다녀서 비평가에 의해 손쉽게 전유될 수 없는 물질적 권력의 역사와 현실적
조건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현실과 헤테로토피아적 상상력 사이의 긴장을 잃지 않는다. 헤테로토피
아는 아직 규정되지 않은 미래의 대안적 사회와 문화를 암시하는 것으로, 오직 현
실에 대한 비판과 저항에 하나의 역동성을 부여해주는 희망의 원리 로 작용한다.
헤테로토피아적 변증법은 결코 차이와 연대를 하나의 이율배반적 현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차이를 인정한 연대, 연대를 통해 해방되는 차이로서 탈식민주의의
정치학과 윤리의 핵심을 형성한다. 그것은 권력에 대항하는 세력이 또 하나의 권
위와 권력을 가지게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반성을 의미
한다. 다시 말해, 권력을 해체하려는 기획의 내부에 바로 저항 집단이나 비평가 스
스로가 저항을 위해 사용한 매개, 개념적 도구, 입장 등을 해체하는 잠재적 기획을
포함해야 한다.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탈식민주의 비평가는 텍스트가 한정하고 있는 빈
공간이 유럽의 테두리 안에서 이론 생산의 거점으로 진전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탈식민 비평가와 지식인은 텍스트에 각인된 빈 공간을
미리 가정해야만 그들 자신의 이론적 생산물을 전위시켜 볼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고나 사유하는 주체를 투명하게 혹은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은 타자를 사정없이 동화시켜 인식하는 행위를 은폐하는 것
이다. 데리다가 타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도록 하기 보다, 우리 안
에 존재하는 타자의 목소리라는 저 내면의 목소리를 환각으로 만드는
전적 타자 (자아 통합에 기여하는 타자와 반대되는 타자로서
tout - autre)에 호소하고 그 타자에게 말을 거는 것도 타자를 동화시켜
인식하는 태도를 경계하려는 뜻에서이다.19)
또한
2장에서는 사이드의 대위법적 시각이 가지는 헤테로토피아적 변증법의 성격이 드
러난다. 즉, 대위법적 시각이란 이중의 기획을 가지는데, 첫째는 문화에 내재하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들의 지층들을 드러내는 비판적 기획이고, 둘째는 헤게모니에
의해 배제된 이질적 경험이 담론화될 수 있는 조건과 장을 열어 가는 헤테로토피
아적 기획이다.
텍스트는 인간 현존으로부터의 일탈이며, 혹은 그것의 과장이거나 부정
이다.21)
20) Said, The World, the T ex t, and the Critic (Cambridge: Harvard Univer sity
Press. 1983), pp. 3- 4.
21) 위의 책 p. 147.
그러나 사이드가 보기에 기능주의의 폐해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기능주의
가 텍스트에서 비평가의 현실적 위치를 완전히 지워버린다는 것에 있다. 기능주의
는 저자와 독자를 텍스트의 산물 또는 효과로 본다. 이는 확고한 주체 위치에 대
한 현대적 불신을 반영한다. 주체의 불안은 읽기란 내가 나 라고 부르는 주체적
원리(subjective principle)가, 내가 더 이상 나 를 나의 나 로서 생각할 수 있는 권
리를 박탈하는 방식으로 수정되는 행위이다 라는 조르주 뿔레(Georges Poulet )의
말에 반영되어 있다.24)
역사의 각 단계에는 각 세대가 그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물질적
성과와 생산력의 총합, 역사적으로 형성된 자연에 대한 관계 및 개인들
간의 상호관계, 다시 말해서 생산력, 자본재 및 환경이 존재한다. 그것
들은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대에 의해 개조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새로운 세대에 대해서 그 특유의 생활 조건들을 규정하고, 그 세대에게
특정한 발전, 특수한 성격을 부여하는 것 등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역사관은 인간이 환경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환경은 인간을 만든
다는 것을 보여준다.39)
여기서 상징적이라고 하는 것은 다양한 심급들(경제적, 정치적, 심리적 심급
등등)의 관계가 분리되거나 완전히 자율적인 것이 아니며 특정 심급은 어떤 방식
으로든 그 내부에 다른 심급을 반영하고 포함한다는 말이다. 알튀세르의 말을 빌
면, 한 심급은 다른 심급들과 중층결정의 관계를 가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들레
르의 특이한 걸음걸이는 궁극적으로 그의 심리의 비밀과 사회경제적 이데올로기
그리고 시적 감수성 자체까지도 포함한다. 그러나 제임슨은 어느 특정한 심급이
다른 심급에 우선하지 않는 약호 전환45)의 관계에 있다고 말함으로써 알튀세르의
심급과 결정론이 가지는 위계적인 뉘앙스를 제거한다. 왜냐하면 모든 심급은 각각
따로 놓고 볼 때 이미 언제나 서로 서로를 자신의 내부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
다.46)
45) 약호 전환이란 특정한 코드나 언어를 만들어 내거나 다른 곳에서 전략적 차용해서
두 개의 이질적 대상들이나 텍스트들 혹은 현실의 다른 층위들을 함께 연관시키고
설명하는 방식을 말한다. 약호 전환(transcoding)은 결정, 인과관계, 재현, 표현, 상
동성 등으로 표현되는 마르크스주의의 매개 개념들을 제임슨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
이다. 이 용어의 장점은 해석의 위계를 설정하지 않고 각 층위마다 그 자율성을 인
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임슨에게 분리된 것들은 단지 외양일 뿐이다. 근본적인
현실이란 솔기 없는 그물망 (seemless web)으로서 이미 언제나 하나는 다른 하나
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은 오직 매개 개념을 통해서만 점근선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이 현실 전체를 파악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Jameson,
P olitical Unconscious, p. 40.
문화는 한 사회의 헤게모니이다. 헤게모니는 가치관, 세계관, 담론 양식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적 관계 및 개인의 습관과 정체성 속에 침윤된 미시 권력들을
아우르는 전체적 효과를 가리킨다. 그람시는 이러한 헤게모니의 생산 과정을 정
교화 라는 말로 표현한다. 정교화란 우선, 지식인이 자신의 사상과 세계관을 체계
적이고 일관된 형식으로 다듬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정교화의 과정은 오직 철학의 역사라는 맥락 속에서만 수행될
수 있다. 이 역사는 사상이 수세기에 걸쳐 어떻게 정교화 되어왔는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어떻게 한 특정 집단이 과거의 모
든 역사를 포섭하고 흡수해왔는가를 보여준다.84)
만 아니라 문화 생산을 하나의 집단적 이해에 근거해서 통제하는 방식을 의미한
다. 헤게모니는 세계관, 도덕관, 심미관 등 역사적이고 의미론적인 가치들을 정교
화 함으로써 사회 전체에 분배하고 확장시키는 권력 생산의 과정이다. 이러한 헤
게모니 개념은 권력이 단지 강압적인 것만이 아닌 설득적이고 긍정적인 합의 의
과정을 통한 권위의 생산에 기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85)
따라서 푸코에 의하면 저항은 국가나 계급의 차원이 아니라 모든 탈중심화
된 대결점 들 속에서 다양하게 전개되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지배 권력도 최
종 심급도 없는 상태에서, 더구나 저항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에이전트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권력을 비판하고 저항의 일정한 효과를 보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따라서 따지고 보면 그의 권력과 저항의 개념은 너무나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것
이 되어버린다.
바로 이러한 문맥에서 사이드는 푸코의 권력과 저항의 개념을 비판한다. 사이
드에 보기에, 푸코는 권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권력의 메커니즘을 구
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권력은 도처에 있
다 고 말함으로써 권력 개념을 너무 일반적인 것으로 만든다. 즉, 모든 관계를 권
력관계로 환원시키고 모든 저항을 지배의 필수적 메커니즘 자체로 편입시킨다. 사
이드가 보기에, 이것은 속류 맑시즘의 경제 환원론을 부정하기 위해, 그가 단순히
마르크스주의의 추동자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자신의 이론을 너무 지나치
게 정교화한 나머지 미시물리학적 지배를 일반화해버리고 신비화시킨 결과이다.90)
헤테로토피아는 탈식민주의 비평가가 제국주의나 민족주의와 같이 경화된
이데올로기들이 제공하는 보편성의 수사를 사용하지 않고, 혹은 어떤 특정한 경험
이나 정체성의 입장을 취하지 않고서도 그 이데올로기들의 지형도를 그릴 수 있
는 제3의 입장을 제공한다. 그러나 헤테로토피아는 현존하는 이데올로기의 지형도
와는 상관없이 제국주의 역사 밖에 홀연히 존재하는 비서구를 지칭하는 것이 아
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질적 경험 이란 제국주의가 헤게모니의 과정을
통해 필연적으로 반응하고 배제할 수밖에 없었던 요소들이다. 이는 제국주의 이데
올로기 속에서는 오직 부재 로서만 경험되는 것이다. 사이드의 문학 텍스트 분석
속에는 이러한 전제가 암시적으로 깔려 있으며, 이것은 그의 비평이 변증법적 비
평이 되게 하는 필연적인 조건이다. 따라서 사이드의 대위법적 시각이 가지고 있
는 함의는 왜곡된 채 침묵하고 있는 경험을 올바르게 재현하자는 것이 아니라, 재
현 그 자체를 문제삼음으로써 이질적 경험 에 접근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래
서 문화와 제국주의 에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 의 계보학적 방법에서 물러나
자신의 작업을 조심스럽게 해석학 이라고 규정짓고 있다.
<<좋은 논문 같음. 시간 나면 더 자세히 읽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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