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에서 작가는 바리옹이 거칠고 직접적인 수단에 의
지하기보다는 비유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수단에 기댈 것을 제안한다. 그런데 바로
이 비유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수단이란 다름 아닌 우화를 말한다.
라 퐁텐느
는 우화가 교훈적인 장르, 혹은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장르라고 말하는 전
통적인 생각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한다. 교훈이나 메시지의 전달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우화는 하나의 이야기이며, 이야기에 중요한 것은 즐
거움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즐거움은 작가와 독자 사이의 긴장과 도발에 의
하여 창출되고,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이야기는 그 끈을 이어간다는 것이
다.
<<작품론?
즉 단선
적이고 간단명료한 이야기 구조를 통하여 교훈성을 강조하는 전통적 우화와는
판이하게 다른 성격의 우화임을 말한다.
>>이야기를 보다 단순하면서도 (교훈 전달이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우화를 썼단 말인가?
즉 아테네 웅변가의 이야기는 그 안에 다른 에피소드를 품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화의 힘」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즉, 49행
부터 60행까지는 세레스 Cérès, 뱀장어, 제비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아테네
의 웅변가가 군중들이 자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자 군중들의 관심을 끌
기 위하여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우왕 재밌는데? 우화에 뱀장어를 쓰다니
<<작품론이네... 하긴 이미 제목에서부터
이야기의 단절은 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독서를 편하게 하려면 하나의 이야
기가 논리적으로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라 퐁텐느의 우화에는
이러한 독서의 안락함이 없다.
>>안락하지 않기에 의미가 역동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 여지/틈이 있는 것일까?
단순한 이야기 구조와 명쾌한 교훈, 이러한 것이 우화의 기본 덕목임에 틀림
없지만 라 퐁텐느의 우화는 기존 우화의 개념을 여지없이 파괴한다.
라 퐁텐느의 도발에는 잘 계산
된 고도의 수사학적 장치가 숨겨져 있다는 점이다.
세레스의 운명에 대한 군중의 질문은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싶어 하는 독자의
갈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야기는 곳곳에 함정을 만들어서 이야기를 끊고, 독자
의 욕망을 채우기를 거부한다. 그런데 바로 이 채워지지 않는 욕망은 다시금 이
야기를 진행시키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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