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월혁명 이후의 청년문화론과 탈정치성
2. 이어령 비평의 반혁명성과 문화주의
3. 청년문화론의 교양주의와 탈정치성
4. 미적 자율성의 청년문화론에로의 전이-결론을 대신하여
<국문초록>
이어령은 4월혁명 이후에 비등해진 문학의 정치성을 비판해 온 비평가이
다. 그는 문학의 미적 자율성과 창조적 상상력을 강조했으며, 이러한 비평
관점은 50년대와 60년대, 그리고 70년대 초반까지 집중된 그의 비평 활동
에 있어서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그의 비평이 문학의 정치성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던 까닭은 교양과 문화를 중시하는 지적 체계의 특성에 있다. 이
어령은 4월혁명이 초래한 문화적.교양적 파열 상태를 경계하면서 4월혁명
직후 뚜렷하게 결여된 교양과 문화를 문학을 통해서 회복하고자 했으며, 이
를 위해 문학의 미적 자율성과 창조적 상상력을 강조한다. 이는 그의 지성
이 정치적 감수성이 아니라 문화적 감수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데 따른 결
과라 할 수 있다. 문학에 대한 미적 자율성의 강조는 청년문화론에서도 그
대로 이어진다. 4월혁명세력으로서의 청년은 정치성을 지닌다. 군사독재 이
후의 청년은 정치적 청년이 아닌 문화적 청년으로 순치되고 만다. 이어령은
‘청춘문화론’을 통해 지성과 교양을 지닌 문화적 청년을 역설하는데, 이는
당대의 군사독재의 정책방향과도 일치한다. 서구적 지성과 교양을 지향한
이어령의 비평은 4월혁명의 정치적 세례를 받은 60년대 청년을 역사와 현
실을 탈각시킨 청년으로 순치시킨다. 문학의 미적 자율성을 덧입힌 결과로
서 출현한 것이 바로 그의 청년(청춘)문화론이다.
* 주요어: 탈정치성, 청년(청춘)문화, 반혁명성, 교양주의, 미적 자율성
1. 4월혁명 이후의 청년문화론과 탈정치성
4월혁명의 청
년이 정치적 청년이었다면, 혁명 이후의 청년은 그 정치성을 급속도로 상실
하고 만다. 혁명의 청년은 학업과 일상생활 속으로, 그리고 문화적 형식 속
으로 퇴행하고 만다. 60년대는 청년의 정치적 각성과 직접행동이 결국 ‘문
화’의 범주로 귀속되고 마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퇴행 또한 군
부독재에 대한 저항과 거부라는 정치적 함의가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문화’는 정치의 직접성을 간접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간접화된 형식
속에서 정치성을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2) 이것이 60년대 박정희 군사독
재 이후 확산된 대중문화에 대한 대타의식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청년문화
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세대의 감성구조를 이러한 '대타의식'으로 살펴봐도 좋을 듯
그러나 유신개헌 이후 더욱
가혹해진 정치적 억압과 청년들을 향한 대중문화의 포획이 시작되면서 청
년의 정치성은 문화적인 것으로 변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문화가 정치적인 것이 되어버리지 않았을까...
....
이제
청년문화는 정치적 완충지대로서의 그 필요성이 대두하게 된다.
주목
할 부분은 아동문화와 청년문화를 正과 反의 위치에 둠으로써 성인문화를
지양하는 단계로서의 청년문화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좋다?!
청년문화는 “도
덕적으로 불건전”하고 “사상적으로 불온”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결국 사회
의 지배적 성인문화에 흡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청년문화가 일견 ‘파
괴적’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은 “이미 있는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
하는”, “정신적 자세”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과거의 물리적 폭력으로서의 체
제 파괴가 아니라 “茶 잔 속의 폭풍”에 지나지 않음을 강조한다. 즉, 청년
문화는 최종적으로 성인문화에 흡수되는 과정으로 존재하며, “인간성장과정
에 있어서는 바람직한 수련장”이라는 것이다. 비록 60년대 학생운동의 필
요성을 인정하고 있고 학생운동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청
년문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청춘문화가 지니고 있는 문화적 양상
은 정치성을 중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4월혁명의 이후의 청년들은 4월혁명
의 행동양식을 직접적으로 실천하고 계승하는 데 있어서 뚜렷한 한계에 봉
착하게 되었으며, 체제저항을 ‘문화’의 영역으로 이동시킬 가능성이 역력했
던 것이다.
>>헐;; 이해할 수 없음...
결국 성인문화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청년문화는 앞으로 더 발전, 수련, 성장, 성숙해야 한다는 전제잖아...
>>정치성의 중화라는 부분은 좋다
‘部門文化’와 ‘대항문화’
>>이러한 대항문화로 풀어봐도 좋을 듯. 특히 청소년 관련 (작품들) - 웹.
60년대에서 70년대에 이르기까지 문화구조라고 할 만한 기성문화가 뚜렷하
게 존재하지 않았던 한국의 상황에서 청년문화는 자연스럽게 사회구조와
정치구조에 대해서 반응함으로써 “사회정치구조의 부조리가 창조적 도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10)
이어령은 60년대 청년문화론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비평가이다. 그는 문학
의 미적 자율성을 일관되게 주장한 비평가로서 60년대의 지성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1)를 비롯한 각종 에세이류는 1960
년대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꾸준히 오르면서 청년문화의 방향이 서구적 지
성과 교양을 지향하게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문
학에 대한 이어령의 관점은 4월혁명의 청년을 바라보는 관점과 매우 유사
하다. 작가의 참여는 미적 형상화를 통한 새로운 세계의 창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그의 주장은, 작가의 행위란 쓰는 행위로 수렴되고 현실을 재구
성하는 상상력의 언어야말로 문학의 본질이라는 미적 자율성의 문학을 지
향한다.
>>WOW 미적 자율성
2. 이어령 비평의 반혁명성과 문화주의
‘4월의 輓章’은 4월의 죽음
을 전제한 것이다.
>>ㅠㅠ
4월혁명이 지니고 있었던 ‘직접행동’과 같은 충격은 이어
령의 비평에서는 이미 과거의 유물이 된 것으로 봐야 한다. 게다가 그의 비
평에서 ‘저항’은 철저히 언어적인 차원에 머문다.
>>그러다 보니 이어령에 대해 반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군...;
그에게 “「문학하는
마음」은 그러한 좌절을 현실과의 타협에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상상의 힘
에 의해서 자신을 구제하려고 시도하”며 “상상 속에서 현실을 개혁하고 창
조”하는 것으로 “있는 현실을 있을 수 있는 현실로 재구성하는”, “상상의
힘”이다.15)
작가란 결국 실천적 행동이 아니라 언어 그것을 선택한 사람이기 때
문에 커다란 의미에서 보면 문학 그것이 이미 도피라 볼 수 있다. 그러
나 작가는 언어를 무기로 하여 싸울 수 있다. 그것을 가지고 인간성을
변형하고 인간의 의식을 변화시킬 수가 있다. 또한 모든 감정을…….
그렇다면 멸망을 향해 묵묵히 추락하는 인간의 역사를, 사회의 운명
을 언어에 의한 호소 그 고발로써 막을 수 있다. 여기에 작가의 책임이
있고 사회(死灰) 속의 문학 그 전망이 트이게 될 것이다. 그럴 때 문학
은 .실천적 행동. 이상의 행동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인류애는 이상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될 것이다.17)
16) 이어령, 「작가와 저항=HOP-FROG의 암시=」, ?지성?, 1958.12., 59~60쪽. 이어령의 ?저
항의 문학?에는 「저항으로서의 문학」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17) 이어령, 「현대작가의 책임」, 앞의 책, 58쪽; ?자유문학?, 1958.4.
>>이런 자료들 읽어보면 좋을 듯
문학의 ‘가상’과 현실의 ‘실재’ 사이의 간극을 뛰어넘고자 하
는 불가능한 열망에 대한 관심은 이어령의 비평에서는 결코 거론되지 않는
다. 이어령은 작가의 실천적 행동은 단지 언어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뿐으로
그것이야말로 문학의 본질임을 주장한다. ‘작가의 쓰기=작가의 행동’이라는
등식은 작가의 실천을 언어적 국면에 한정시킨다. 이어령의 비평은 기본적
으로 문학의 불가능한 영역을 넘보지 않는다.
>>음... 근데 오히려 이게 맞을 수도
문학의 ‘가상’과 현실의 ‘실재’ 사이의 간극을 뛰어넘고자 하
는 불가능한 열망에 대한 관심은 이어령의 비평에서는 결코 거론되지 않는
다. 이어령은 작가의 실천적 행동은 단지 언어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뿐으로
그것이야말로 문학의 본질임을 주장한다. ‘작가의 쓰기=작가의 행동’이라는
등식은 작가의 실천을 언어적 국면에 한정시킨다. 이어령의 비평은 기본적
으로 문학의 불가능한 영역을 넘보지 않는다.
이어령의 문학관은 매우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비평의 내
적인 논리로 볼 때 전적으로 타당한 주장이다.
>>맞아 맞아 비평의 내적인 논리로 봤을 때..
(유리 로트만) 이 불가능한 사물의 지향은 사물을 향한 예술
의 욕동(예술과 현실의 완전한 합일)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리얼리티의 욕동
을 이해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된다. 모든 ‘리얼리티’가 환영
(illusion) 속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실제 ‘리얼’과 차별화된다 할지라도 ‘리
얼리티’는 실제 ‘리얼’을 향한 욕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가상과 실재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예술의 욕동이
다.
“<반공주의>라는 기표가 환기하는 역사적 체험과 이데올로기
의 장에서 <반공>이라는 기표는 <반공산주의>라는 기의만으로 채워지지 않
는 어떤 잉여의 의미효과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 잉여의 의미는 “냉전체
제, 분단체제, 휴전체제의 삼항구조 내부의 복합적인 연관관계” 속에 전체
주의가 기입됨으로써 발생하는데, 전체주의적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안팍
의 적을 만들어내고 “상징조작을 통하여 내부의 적을 외부의 적과 동일시”
하는 곳에 존재한다.24) 따라서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어령의 비평적
입지는 당대의 정치적 상황이 유발하는 긴장과 위협의 국면에서 비교적 자
유로울 수 있었다.
정치에 대한 이어령의 전향적인 시각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공교롭
게도 김수영과의 ‘불온시’ 논쟁을 통해서이다. 이 논쟁에서 문화에 대한 이
어령의 태도가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문화’를 ‘정치’보다 우위에 두는 그의
입장은 매우 문제시된다.
>>오~ 불온시 논쟁~~
그래.. 문제시될만도 했겠다.. ; 당시가 하도..
그런데 그런 관성과 압력 속에서 이만한 위치륻 잡고 그쪽 비평의 본류를 정립시킨 거 보면 이어령도 엄청난 존잘ㄷㄷㄷㄷㄷㄷ
이어령은 “속박”을 예술창조에 있어서의 “필요악”으로 파악한다. 이솝의
우화가 고전으로 읽히는 이유가 권력자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기 위한 눈속
임에서 비롯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불편한 표현”이 아니라 “풍부한 문학적
심상의 창조”가 되었음을 주장한다. 무한한 자유 속에서라면 이솝 우화는
직접적 서술로 폭력자를 고발해왔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그것은 고전의 반
열에 들어서지 못했으리라 판단하고 있다. 강웅식이 이미 지적한 바 있지
만, 이러한 논리는 허점으로 가득하다. 창작의 자유가 주어졌을 때 권력자
를 직접(직설적으로) 비판하는 양식만이 지배할 리도 없겠거니와26) 무엇보
다도 문제는 이어령이 정치적 속박을 새로운 문화 창조의 필요조건으로 인
식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는 사실이다. 정치적 압제 속에서 창조된
“풍부한 문학적 심상”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인류에게는 의미있는 일이라
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억압 속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적 자유이지 문화
적 창조가 될 수는 없다. 상식적인 말이지만, 정치적 압제가 문화 창조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압제적인 정치 상황을 용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
화의 ‘창조’가 정치적 ‘자유’보다 우선 순위에 놓일 수는 없다. 정치적 자유
속에서 문화의 자유는 온전한 의미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는 오히
려 정치적 억압 속에서 더욱 찬란한 결실을 낼 수 있다는 이어령의 관점은
그 스스로 정치를 도외시하고 문화에 지나치게 편향되어있음을 드러내는
증좌라고 할 수 있다.
>>으아.. 비판이 예리하시네요 ㄷㄷㄷ 논문 좋다!!
이어령의 이러한 태도는 그의 글 「‘에비’가 지배하는 문화」27)에서도 반복
된다. 한국사회의 ‘문화의 침묵’을 비판하면서 그 원인을 “문화인 자신들의
소심증”으로 돌리는 데서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
이는 1960년대의 군사정권이 자행한 문화적 검열을 지나치게 과소
평가한 것이라 볼 수 있다.
50년대의 이어령이 주창한 ‘저항의 문학’은 추상적 수준에서의 휴머니즘
에 가까운 것이자 구체적 현실성을 획득하지 못한 것임을 확인케 한다.
>>동감. 그럴 수 있다. 정말 좋은 말이고 이상적인 말인데
어떻게 보면 그렇게 너무나 빼어나고 잘된... 논리이기 때문에 구차한 현실에서 달성하기 어려웠을 수도
이와 같은 그의 문화엘리트주의는 ‘반문화’, ‘반교양’에 대한 그
의 비판과 무관하지 않다. 그가 “한국사회에서 반문화적이고 반교양적인 것
이 활개를 치고 있다”라고 했을 때, 이러한 비판은 60년대 후반 문화인들
이 지닌 문화적‧교양적 한계를 겨냥한 것이라기보다 정치적 투쟁이 초래한
문화적‧교양적 파열을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반문화적이고 반교양적인 것”이 대중문화를 지시하는 동시에 전체주의적
압제 속에서 저항하거나 신음하는 문화인들의 정치적 투쟁과 좌절을 지시
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어령의 문화주의는 탈정치적인 문화엘리트의
한담처럼 들리고 마는 한계를 초래한다.
>>글쎄.. 한담처럼 들리진 않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 담론에 대해 비판적인 것은 마찬가지였던 것 아닌가 이어령도..
3. 청년문화론의 교양주의와 탈정치성
물론 이어령은 4월혁명의 청년세대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패배와 도피 혹은 초월의 미학에만 사로잡힌 한국의 역사 속에서 4월혁명
은 청년의 분노를 보여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분노는 주체성에서 생겨나”
며, “그것을 수호하고”, “내뻗으려고 하는 데서 생겨”난다.
....그 후에 발간된 ?젊은이여 어디로 가는가?(기린원, 1996)
에 그 전문이 실려 있는데, “4월의 분노와 행동이 그것이다”라는 문장이 “4
월의 분노와 행동은 단지 정치적인 것만은 아니다”32)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이어령은 4월혁명의 정치적 맥락뿐만 아니라 문화적 맥락
을 보다 중요시했던 것이다.
>>우와ㄷㄷㄷ 소름 돋는다 이어령 짱짱맨
그래. 문학(문화) 연구가니까 당연히 4월 혁명도 문화적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고 바라봐야 하는 걸지도..!!
“청춘문화는 젊은이의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사회적 안전판의 구실
을 할 뿐만 아니라 의존에서 독립을, 그리고 방종에서 자기책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파악한다.35)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아
무래도 “젊은이의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안전판의 구실”이라는 대목이다. 4
월혁명 당시의 청년의 분노는 이어령에 이르러 욕구불만의 차원으로 전락
하고 만다. 4월혁명 당시 이승만 정권을 전복시킨 원동력은 청년들의 분노
였다. 그러나 70년대의 이어령은 청년들의 분노를 청년문화 속에서 순치시
켜야할 ‘욕구불만’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청년문화는 비로소 정치성을 탈각
하게 되며 사회적 안전판의 기능 정도로서 담론적으로 정위된다. 청년들은
이제 스스로의 욕구불만을 청년문화 속에서 해소함으로써 혁명과 전복의
기운을 양산하는 정치 주체로서의 위상을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적확한 비판인 듯
그가 저항하고자 했던 대상은 부패한 독재정
권이 아니라, “사소설의 「안방」 속에서 칩거하였거나 기껏 그 책임을 진다
는 것이 정치적 선언문 내지는 軍歌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즉 문학 그
자체를 살해한 현실참여의 「誤解의 街頭」”에서의 “방황”이었다.43)
>>앗.. 사소설 언급
목숨을 건 정치적 투쟁조차도
문화적 교양을 전제로 해야 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4월혁명 이후 에 비등
한 정치성뿐만 아니라 4월혁명 당시의 정치성조차 이어령에게는 비판의 대
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허허.. 이건 좀... 4월 혁명은 우선 정치적 영향력과 맥락이 강한 사건인데... 정치성조차 비판하다니;; 물론 '지나친' 정치성은 비판해야겠지만
한국의 가옥
구조를 거론하면서 단 10분 동안이라도 자기 혼자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의
부재를 통해 한국청년이 안고 있는 지성과 자의식을 부재를 계속 문제 삼
고 있는 데서 잘 드러난다.
>>이거 그 이토세이 논의랑 비슷하네여
이어령에게 4월혁명 청년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해방직후 “좌
우투쟁의 테러리스트”, 6․25 동란의 “병사”, 4월혁명 때의 “데모대원”으로
부정적 인식의 대상에 불과하다.
>>헐;;
이어령에게 중요한 것은 지성과 교양을 아
우르는 문화다. 4월혁명의 청년은 직접행동의 과격한 정치성을 표출했을
뿐 깊이 있는 내면의 지성과 교양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 한계를 내
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청년도 있고 저런 청년도 있지 무조건 내면의 지성과 교양을 갖춘 청년만이 최고 짱짱맨임?ㅠㅠㅠㅠ 님한테나 그렇겠지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문학의 자율성, 혹은 미학적 관점을 4월혁명의 청
년에게 그대로 이입한 결과이다. 문학이 언어로 이루어지는 예술 활동이라
는 점을 감안한다면, 4월혁명 이후의 문학이 언어의 미적 성격으로부터 완
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부분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4
월혁명의 청년에게조차 기성세대와는 다른 지성과 교양을 갖출 것을 요구
한 것은 미적 자율성을 청년에게까지 무리하게 대입한 결과이다. 강력한 혁
명의 세대는 지성과 교양을 넘어선다. 그람시가 날카롭게 지적했듯이 “문화
적 기능이 우세”할수록 “정치적 언어”는 “은어화”되며, “정치적 문제들은
문화적 문제인 것처럼 은폐”되기 때문이다.46) 혁명은 문화와 교양을 균열
시키고 파열시킨다. 이 균열과 파열을 통해 새로운 문화가 창조될 수 있으
며, 물론 이 문화는 새로운 정치체제와 길항관계거나 협력관계일 수 있다.
그람시의 주장이 비록 전체주의적 정치 상황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문화
가 갖는 탈정치적 기능을 예리하게 통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령은
4월혁명의 청년을 정치적 청년이 아니라 지성적․문화적 청년으로 순치하
고자 하는 욕망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4월혁명의 청년들이 지
니는 정치성을 삭제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좋다
4. 미적 자율성의 청년문화론에로의 전이―결론을 대신하여
이어령은 4월혁명 이후의 문학적 상황의 심각한 문제가
“문화의 타살”, 혹은 “자살”에 있다고 보고 있다. 다시 말해 4월혁명 이후
자유의 상황에서 문화인들이 꽂은 깃발은 “문화창조가 아니라 정치의 깃발”
이라는 것이다. 하여 그가 되살려내야 하는 것은 “예술 본래의 창조적 생
명”이다.48)
>>음 공감
문학의 문제에서도 너무 거대 담론이 드세졌지
4월혁명 이후의 문학이 창조성을
말살하고 참여의 이념으로 인해 경직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현은
이어령의 비평에 대해 “서구의 불안과 한국의 불안을 동일시”함으로써 한국
의 현실을 지극히 추상화했다는 비판을 한 바 있으며51),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어령이 문학과 정치의 영역을 철저히 구
분하긴 했으나 정치적 정의에 전혀 무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오..그래!
이어령은
4월혁명 이후의 정치적 청년들을 문화적으로 순치시키는 데에 관심이 있었
음에도 불구하고 참여문학에 대한 정치적 탄압에 대해서도 날선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예컨대 이어령은 남정현의 분지 사건(1967년 2월)과 한승헌
변호사의 필화사건(1974년 4월)에 대한 변론 증인을 맡았던 것이다. 남정현
과 한승헌의 필화사건에 대하여 변호인 측 증인으로 출석한 것은 진보성향
의 문인이 아니라 이어령이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이어령은
반공법 위반사건에 대한 두려운 증언55)의 자리에 나선 것에 대해서 “문학
밖의 일”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어떤 문학이냐가 아니라 문학 그 자체
를 지키기 위해서”, “어떤 자유냐가 아니라 자유 그 자체를 지키기 위해서
법정에 나가 투쟁”한 것이며, “그런 것은 문학의 본질적 행위와 다른 것”으
로 “내 글쓰기의 관심밖 일”이었다고 말한다.56) 진보성향의 참여문인들이
나서기를 꺼려하는 자리에 이어령이 나선 것은 당시 매우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57)
>>헐.. 지금 봐도 충격.... 소름 돋았어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령은 그 일을 단지 “생활인으로서
한 일”에 불과하며 “문학의 본질적 행위”와는 무관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
다. 다시 말해 법정에서의 증언이 작가로서의 행위가 아니라 생활인으로서
의 행위였다는 것인데, 이는 “작가란 결국 실천적 행동이 아니라 언어 그것
을 선택한 사람”58)이며, “.실천적 행동.과는 달리 말하는 행동에 의하여
상황을 변전시키는 직능”으로 “그것으로 새로운 현실을 불러일으키는 旗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59)이라는 주장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다. 이어
령은 ‘작품/현실’, ‘작가/생활인’을 이분법적으로 철저히 분리함으로써 문학
의 미적 자율성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의 법정 증언은 문학
행위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정권의 탄압에 의해 함부로 다
루어지고 있는 “글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수사법과 문법”을 지키기 위해 행
해졌다.60) 따라서 문학적 참여행위로 보일지도 모를 그의 법정 증언은 그
의 문학관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근거로 작동할 수 없으며, 다만 문학 행위로
부터 정치 행위를 철저히 분리시키고 있는 그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뚜
렷한 근거를 제공한다.
이
런 해석이 가능한 것은 문학의 미적 자율성을 지키고자 했던 이어령 비평
의 근저에는 서구의 보편적 지성과 교양에 대한 열망이 자리 잡고 있기 때
문이다.
기성세대와 4월혁명 청년을 바라보는 기준이 정치적
직접행동의 有無가 아니라 문화적 지성과 교양의 유무였다는 사실은 이어
령의 비평적 사유가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
어령은 문학의 미적 자율성을 강조한 것처럼, 4월혁명의 청년에게도 지성
적‧교양적 자율성을 덧입히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이때의 자율성이란 탈정
치성과 등가를 이룬다.
>>탈정치성-자율성 부분 인용
4월혁명의 청년에 대한 이어령의 비평적 사유는 60년대 청년문화론의 한
축을 형성한다. 이어령은 4월혁명 이후 청년의 정치성을 소거하고 문화적
지성과 교양을 덧씌우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이는 그의 비평적 사유와도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주목해야할 것은 문학이 언어적 가상이라는 점에서
현실과 분리되는 자율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 반면에 청년의 경우 4월혁명
으로부터 그 존재가 출현했던 까닭에 정치와 분리된 자율적 존재로 존재하
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월혁명 이후의 청년을 청년
문화 혹은 청춘문화 속에 순치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서구의 보편적 지성과
교양을 중시하는 비평적 사유의 관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어령의 이러한
비평적 사유가 대중적으로 널리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이어령
의 청년(청춘)문화론이 60년대에 확장된 대중문화와 차별화된 비판적 거점
으로 작용할 수 있었으며, 군부정권의 ‘자유교양운동’에 정확히 부합하는 내
용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긴장 없이 소비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령의
청년문화론은 서구의 보편적 지성과 교양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현실성과
정치성이 소거됨으로써 자연스럽게 정치적 이념의 불편한 긴장성을 제거한
교양과 문화의 고급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론을 대신하는 4장
<<어느 쪽을 경시하거나 치우치지 않고 의의와 한계를 날카롭게 비판한 좋은 논문인 듯
'from논to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현실성 구축 기제: 상호텍스트성과 수용자의 현실감 / 옥민혜 (0) | 2013.07.28 |
---|---|
90년대 민족문학론과 신세대문학론 / 이재복 (0) | 2013.07.28 |
토마스 핀천의 내러티브담론과 포스트모더니즘 / 송태정 (0) | 2013.07.26 |
대중서사장르 연구 시론 / 박유희 (0) | 2013.07.25 |
1994년도 추계학술 발표대회 논문요지 : 일본의 사소설의 이론과 유형 / 오상현 (40/100) (0) | 2013.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