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check

<마음, 철학으로 치료하다 : 철학치료학 시론> 이광래, 김선희, 이기원, 지와 사랑

snachild 2022. 6. 8. 06:52

<<책의 시도는 괜찮은 편인데, 전반부에 너무 정신과 진료(약물 치료)를 거세게 비판해서 오히려 책 전반의 신뢰성이 낮아보인다. 전반부에 지나친 비판만 줄이고, 철학 치료 자체에 더 집중했음 좋았을듯. 그러나 철학 치료 분과라는 학문의 정립성을 세우기 위해서는 약을 깔 수 밖에 없었겠지... 기대를 많이 했던 책인데 정신과약을 너무 까서 오히려 시들하게 본 기분. 여러 저자가 각자의 철학 전공을 바탕으로 심리 치료와 연계될 수 있는 지점을 챕터 별로 쓴 느낌.

 

# 이광래, <미셸 푸코 : 광기의 역사에서 성의 역사까지>, 민음사, 1989, 104쪽.
크리스토퍼 레인, <만들어진 우울증>

15쪽
이처럼 반성으로서의 철학은 생각(사고방식)을 반대로 바꾸기, 다시 말해 혁신적으로 사고하고 사유하기를 의미한다.
>>reflect 등의 어원에서 추출해내는 철학의 의미

18쪽
철학과 철학자가 삶의 현장으로 나설 때 실천 철학의 복권은 가능하다.
철학의 선입관이 되어버린 관조적 지, 즉 테오리아보다 그들이 강조하던 실천적 지, 즉 프락시스로서 기능하는 삶의 지혜를 주목하라

>>프락시스 : 윤리적 실천. 왜 이 용어도 설명하는 각주도 없이 그냥 쓰는겨… 대중서가 아닌듯

반성은 그 자체가 치료적이다.
절망이 죽음의 동기이듯 반성은 삶의 계기이다.

23쪽
치료 대상으로서의 인간은 본래적으로 환자다. 인간은 누구나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뇌를 피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24쪽
실패와 상실로 생기는 우울함, 슬픔, 좌절감, 절망감에서 벗어나는 길은 스스로 ‘마음 챙김’을 할 수 있는 저인적 배려와 보살핌밖에 없다

실천하는 프락시스, 철학치료학

26쪽
트라우마의 치료에 언어적 권력 행사는 피치료자에게 제2의 트라우마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27쪽
우울하고 슬픈 나머지 절망해 죽고 싶은 마음의 서사들(narratives)이 화학분자식으로 된 암호 같은 기호들에 빼앗겨버렸기 때문이다.

29쪽
사고치료theraphy of thinking

34쪽
제정신이 자기 정신이라면 그 반대는 남의 정신인가? 제정신이 제대로 된 정신이라면 그 반대는 잘못된 정신인가? 또한 정신(혼)이 나갔다’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건 정신의 부재인가? 아니면 다른 정신을 말하는가? 흔히 말하는 혼(정신)이 나간 상태, 그래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란 어떤 것일까? 파스칼은 정신이 멀쩡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보았다. 우리의 정신이나 마음은 정상이 아닌 비정상의 나르시즘 속에서 상리공생에 길들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5쪽
푸코 또한 중세에는 마음이나 정신의 병기, 심지어 광기마저도 배제되어야할 것이 아니라 성스러운 것으로 여겼다고 생각했다. 고작해야 사랑과 미움처럼 반대인 감정이 함께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될 정도였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정신이나 마음의 병기에 관한 언설 자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르네상스 시대까지만 해도 정신의 병기는 사회가 배제할 대상이 아니었다. 당시의 문학과 예술은 광인을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으로 간주하거나, 마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그들을 상상적인 초월성일 지닌 예언자로 대우해 삶과 죽음의 중간 지대에 자리잡게끔 했다. 그러나 이성의 시대로 접어드는 17세기에 이르면 사정은 급변한다. 권력을 강화하려는 이성이 비이성을 저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책 너무 정신과약 까는데… 정신과약도 약 나름의 역할이 있고, 상담치료나 철학치료도 나름의 역할이 있는 것인데, 너무 배척한다. (의학과 자본주의가 결탁한 것도 문제적인 부분이기는 하지만)
<<진짜 엄청 까네… 경증의 환자한테는 이게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중증 환자들에게 약물은 필수적인데…;; 의학적 근거 없이 까는 경우가 너무 많다. 만약 이 책 보고 함부로 단약했다가 자살하게 되면 책임질 것인가..?
<<물론 의학이나 약물이 모든 걸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의학의 효능과 한계를 자각하면서 이와 조화롭게 이뤄질 수 있는 방법론을 모색해야지, 너무 약은 다 잘못됐고 다 때려쳐 라는 의견은 편협하게 느껴지고 오히려 이 책의 논리성을 떨어지게끔 보이게 한다.

39쪽
실제로 인간의 타고난 내향성(수줍음처럼 내면으로 향하는 성향)까지도 이른바 ‘내향적 인격 장애’로 DSM-II에 올린 스피치의 야욕은 미국 인구의 절반을 정신질환자로 만들었다.

41쪽
또한 DSM은 푸코가 말하는 생체 권력이 출현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지식이 권력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권력의 미시 구조로서 정신의 병기가 환자와 의사 사이에 권력을 실어나르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44쪽
기쁘다, 즐겁다, 평안하다, 행복하다처럼 외롭다, 우울하다, 슬프다, 불안하다라는 기분도 인간의 정상적인 기분들 가운데 하나다.

55쪽
첫째, 마음의 병기를 치유할 때 자기 자신에게 ‘주도권이 있다는 점’을 명심하라. 주도권의 상실은 자기정체성의 상실이나 다름없다.

61쪽
2장 마음의 병은 병원병이 아니다
이반 일리치, <의학의 한계, 의학의 인과응보>

90쪽
슬픔은 왜 병인가
인간은 누구나 자기 정체성을 상실할 때 슬퍼한다. 인생이란 끝없는 아이덴티티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욕망을 실현하려고 하고, 나아가 그것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부단한 엔드게임이나 다름없다.

91쪽
세속에서 욕망을 채워 자기 정체성을 확인함으로써 삶의 만족과 행복을 기대하는 재속범부는 물론이고 탈속성불을 통해 자기 정체성에 대한 만족을 염원하는 수행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무엇이든 한없이 채우려는 재속의 욕망 충족이건 부단히 비움으로써 채우려는 탈속의 원만구족이건 인간은 채우지 못할 때 자기 정체성을 반성하게 된다. 나아가 자신을 자책하거나 실망하기도 한다.
이처럼 이때의 반성은 부정적 계기와 다를 바 없다. 대체로 부정적인 반성은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되기보다 오히려 부정적 기분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예컨대 우리의 욕망이 만족할 만큼 실현되지 못할 대 그 반성은 우리의 기분을 정체성에 대한 불안에서 우울함으로, 나아가 슬픔에까지 빠져들게 한다.
이렇게 보면 불안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비롯된다. 또한 우울증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불확실이나 불만족에서 생기는 침울한 기분이라면 슬픔의 그것의 상실이나 실패가 가져다준 실망감이고 좌절감이다.

92쪽
아벨라르 엘로이즈 러브 스토리 <내 고통의 역사>

96쪽
배설을 통해 정화되지 못한 슬픔은 아픈 채로 남아 마음의 병이 되곤 한다. 억압된 슬픔은 고뇌를 키우는 병기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베르테르 증후군이 되는가 하면 엘로이즈의 트라우마가 되는 것이다.

97쪽
슬픔은 왜 전염병인가
슬픔은 대상, 즉 소유나 관계의 상실에 대한 반응이다. 

99쪽

이처럼 인간은 일찍부터 자신의 감정을 음식으로 덮거나 숨기고, 묻어버리는 것을 배워왔다. 

232쪽
내 고통의 원인은 나의 표상이다
선험적 관념론자인 칸트가 세계를 인간 일반의 선험적 표상, 즉 ‘우리’의 표상으로 간주한 것과 달리 쇼펜하우어는 세계를 ‘나’의 표상으로 보았다.

241쪽
쇼펜하우어는 행복을 우리가 욕망하는 것과 우리가 얻는 것 사이의 균형에 바탕을 둔 것으로, 고통을 그 둘 사이의 불균형에서 생기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소유에서 오는 기쁨은 단지 오류와 망상의 자식일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요구와 그것의 충족이라는 관계는 쇼펜하우어에게 “우연에게서 잠시 빌려온 것이기에 우리는 언젠가 우리도 모르는 때에 이것을 반납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고통은 망상이 사라졌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쇼펜하우어는 오류와 망상의 원인을 불완전한 인식에서 찾는다.

244쪽
예술은 쇼펜하우어에게 인간이 의지의 구속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일차적 매체다. 예술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세계와의 독특한 연관성 속에서 인간을 개체화의 원리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