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읽었을 때
p.37
지상에 견고한 집이 있는 사람은 상상 속에 허구의 집을 지을 필요가 없다. 불만과 의혹, 욕망과 의도가 말을 만들고 소설을 쓰게 한다. 이청준은 그것을 복수심이라는 말도 설명했다.
p.40-41
절실한 이야기여야 한다.
말을 하는(소설을 쓰는) 사람이 자기가 말하려는(쓰려는) 내용을 얼마나 절박하고 간절하게 원하고 있는가가 관건이다. 자기 자신도 절실하지 않은 이야기,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이야기에 귀 기울일 사람은 별로 없다. 아니, 그전에 자기에게 절실하지 않은 이야기에 성의가 더해지기 어렵고 그러다 보면 제 꼴을 가주처 풀려나갈 가능성도 없다고 해야겠다.
p.97-98
질 들뢰즈의 성찰에 의하면, 사물들은 본래적인 성격을 따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과 배치되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뜻이 정의된다. 가령 '입'은 강의실, 마이크와 배치될 때 '말하는 기계'가 되록, 식당, 음식과 배치될 때 '먹는 기계'가 되며, 침실, 연인과 배치될 때 '섹스하는 기계'가 된다. 우리가 선택한 재료를 무엇과 연결하고 어디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내용이 사뭇 달라진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p.108-109
구체가 소설의 핵심이다. (...) 배추를 밥상에 올리기 위해서는 먼저 흙을 손에 묻혀가며 배추를 뽑고 고춧가루를 묻혀가며 김치를 담가야 한다. 소설은 김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배추 뽑는 손, 고춧가루 범벅이 된 손을 보여주는 거싱다.
p.134
인물은, 많은 경우에, 작가의 대리인이다. 물론 작가를 인물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작가는 어떤 식으로든, 인물 속에 끼어들거나 인물 뒤에 숨거나, 혹은 인물을 방치하거나 경멸하거나 함으로써, 인물을 통해 자신의 의도와 욕망을 드러낸다. 그 드러내기의 방식이 교묘해서 잘 눈치채지 못할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p.140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는 리얼리티나 개연성을 증명해야 할 이유가 없다. 현실 속에서는 성수대교가 무너지기도 하고 중학교 3학년 애가 죽은 엄마 옆에서 6개월 동안 먹고 자기도 한다. 실제로 일어났고, 직접 경험했다고 한 일을 누가 의심하겠는가. 현실의 경험은 개연성을 초월해 있다. 그것은 증명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이야기나 죽은 사람과 6개월 동안 한 방에서 지내는 소년 이야기를 소설로 쓰려고 할 때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득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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