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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베르그송과 문체 / 박치완 (1)

snachild 2014. 11. 14. 14:56

 

앙리 베르그송과 문체 : et, ni/ni, à la fois 를 중심으로
박치완 (외국문학연구, Vol.30 No.-, [2008])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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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측면에서 비평가나 문학연구자가 고집하는 순전히 문학적 의미에 국한된 문
체연구나 언어미학적, 형식.구조적 측면에서의 문체연구는 이제 그 배타적인 벽을
허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가
문체를 운위 云謂할 때는, 이 문체가 어떤 형태로든 글의 형식과 내용에 일정 정도
녹아들어 있다는 점만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제한적 의미에서 보자면 문체는, 앞서
이야기한 확장된 의미의 문체와 비교할 때, 글쓰기 과정에서 작가나 저자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배려가 있었을 때 보다 더 구체적으로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때 문체는 ‘의도된’ 것이다.

 

플라톤이
대화체를 선택한 것은 주지하듯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독자 대중을 위
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그의 대화체는 독자 대중과 자신의 사상이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의도된 것이다.

 

 

 꽁빠뇨 A.
Compagno도 적고 있듯, “그 문체가 곧 ‘누가’, ‘언제’, ‘어디에서’와 같은 물음들에 답
할 수 있는 유용한 지표 paquet d'indices”이기 때문이다.2) 문체는 이와 같이 작가나
저자의 고유한 글쓰기 방식(作法)이자 동시에 글의 내용을 조직하는 원동력이다.

 

2) A. Compagno, “Chassez le style par la porte, il rentera par la fenêtre”, in Littérature, n°
105(1997), p. 13.

 

 

베르그송에게 있어서 <쓰기로서 문체 le style d'écrire>와 <사유하기로서 문체 le
style de penser>는 구분되지 않는다.

 

ED, in Oeuv, p. 110-111 참조. 이런 측면에서 베르그송의 문체는 R. 바르트가 말한 글쓰기
의 사회•역사성 층위를 단호히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런 기준이 결국은
사고를 방해하고 사유 대상과의 자유로운 대화를 가로막는다고 베르그송은 생각했기 때문
이다. 바르트는 『제로 글쓰기』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Seuil, coll. 《Points》,
1953, p. 14): “사회적 언어체계 langue와 문체 style는 (연구의) 대상들이고 글쓰기는 하나의
기능이다. 글쓰기는 (개인적) 창조와 사회 사이의 관계이다. 글쓰기는 사회적 목표지점에
의해 변형된 문학적 언어이다. 글쓰기는 그 인간적 관심 속에서 파악된 형식이며, 이런 이
유로, 글쓰기는 많은 역사의 위기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 여기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르트의 경우는 쓰여진 글, 즉 텍스트를 사회•역사라는 기준으로 ‘평가'하는데 초점이 있
고, 베르그송의 경우는 작가(저자)의 문체 계발 노력에 초점이 있다
는 점이다.

 

 

사실 문체연구에 있어 (역사) 언어학의 공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언어학은 문체를 연구함에 있어 그 영역을 전적으로 통어법에 한정시키고 있다. 더 엄밀히
말해, 통어법이 문체 연구의 주류를 이루게 됨으로써 문체연구가들에게 문학작품은 한낱
부수적인 것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리샤르 I. A. Richards같은 비평가는 문학작
품의 연구에 있어서도 문학이 언어구조와 언어의 특질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문체(론)
적 접근이 가능해야 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리고 G. 휴그에 이르면 “문체론이란 (한
정된 범위 내에서) 문학적 표현의 체계적 연구
”라는 새로운 정의를 얻는다. 여기서 우리는
결국 언어학과 문학비평, 문체(언어)와 문학작품 사이에 여전히 ‘갈등의 이분법’이 가로 놓
여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G. 휴그,『文體와 文體論』, 學文社, 1980, p. 105-107
참조.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베르그송의 3문체인 <et, ni/ni, à la fois>
는 아주 독특한 의미를 갖는다.

 

 

“베르그송의 ‘문체’”를 논하기 위해서는 이렇듯 그의 철학 전반에 대한 선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그의 사유와 그의 문체가 둘이 아니기 때문이요, 특히
그의 문체가 갖는 인식론적 특징, 방법론적 모색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16) 철학에서 문체의 문제를 인식론과 연관시켜 다룬 책으로는 그랑제 G.-G. Granger의 Essai
d'une philosophie du style(A. Colin, 1968)이 대표적이다. 이 책에서 그는 문체가 언어철학에

서 물론 인문학 전반에 걸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모름지기 문체란 철학적 형식과 내용간의 관계에서 근본적인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그래
서 철학자에게도, 그가 쓰고 말하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어떤 저작의 작가라는 점에서, 자
신의 글쓰기에 전적으로 책임이 따르며, 한 철학자의 경험내용이 다른 철학자들의 경험내
용과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문체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ibid. 302 이하 참조)고
말한 것이리라.

 

 

단어들의 정확한 선택에 의해 쓰여진 구문, 이런 구문들이 모여 형성된 절과 문단
들, 문체 계발은 그래서 결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단어를 넘어서서, 구문을 초월
하여”, “글쓰기를 하나의 운동으로 완성시킴”36), 이것이 바로 베르그송의 철학적 문
체가 여느 철학자들의 그것과 ‘같은 나물’일 수 없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36) P. Rodrigo, “Présence de la tradition. Histoire de la philosophie et faux problèmes", in Analyse
& réflexion sur Henri Bergson : La pensée et le mouvant, Ellipses, 1998, p. 89.

 

 

 

우리는 이 자리에서 베르그송 연구가이며 문학 비평가이기도 한 티보데 A.
Thibaudet가 베르그송의 문체에 대해 언급한 것을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작가에게 있어 문체는 사물로 외화 外化되며 사물에 의해 완성된다. 하지만 철학은
이와 같은 완성을 실현하기 위해 작가가 추구하는 어법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요
인즉 이제까지 우리가 살펴본 베르그송의 철학적 문체는 “(단순히) 생각(의 파편들)
이나, 문장들 또는 단어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베르그송의 문체는 그
자체가 그의 “생각의 질서이며 운동 l'ordre et le mouvement d'une pensée”42)이기
때문이다.

 

 

문체를 “언어의 변주 variation de la langue”, “외부를 향한
언어적 긴장 tension de tout le langage vers un dehors”, “단어, 구문들 사이를 오
가는 하나의 섬광 un éclair qui va des uns aux autres”이라고 정의한 들뢰즈 등48)

 

48) Cf. G. Deleuze, Pourparlers, p. 192-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