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왜

인간 존재의 욕망과 알레고리-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 맹수진

snachild 2013. 6. 3. 20:57

영화의 원작이 된 얀
마텔(Yann Martel)의 소설에는 “호랑이는 배에 없었다”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리처드 파커는
실제 호랑이가 아니라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파텔이라는 인
간의 의식 위로 사납게 튀어나온 길들여지지 않은 그의 무
의식, 야성, 폭력적인 본능의 상징, 혹은 은유인 셈이다. 이
영화는 많은 이들이 순수하게 즐겼듯이 사나운 맹수와 사
투를 벌이며 227일 간 망망대해에서 호랑이와 공존한 남자
의 이야기를 다룬 액션영화, 혹은 재난영화이지만 동시에,
액션, 재난영화라는 장르의 거푸집 속에 인간의 이성과 야
성,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투쟁, 그리고 그 속에서 무의식과
본능을 길들이고 지배하며 성장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훌
륭한 알레고리라 할 수 있다. 영화가 찾아낸 ‘내 안의 호랑
이’라는 우화는 이 영화의 결을 한층 다층적이고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개인적으로 감독과 원작자가 찾아낸 ‘내 안
에서 튀어나온 호랑이’라는 알레고리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주인공 파텔이 오랜 표류에서 벗어난 순간 리
처드 파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숲 속으로 사라져버
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문명과 이성이 지배
하는 공간으로 귀환했을 때 사라져 버린 원초적 본
능, 공격성.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지는 호랑이를
보며 서운했다는 주인공의 사후 고백은 문명과 이성
이 억누르고 포기한 원초적 에너지, 본능에 대한 인
간의 양가감정일 것이다. 그것은 제압되어야 한다. 그러나 상실의 흔적은 너무 깊다. 삶이란 무언가를 얻
기 위해 다른 무엇을 버려야 하는 일련의 행위다. 우
리는 그것을 질서, 문명, 이성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
상실 앞에서 인간은 그 속절없는 결락감을 어떻게 치
유하고 메워 가는가? 이 영화가 철학의 경지까지 나
아가는 것은 이러한 인간 실존의 조건을 종교적 차원
의 명상으로까지 끌어올렸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