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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시대와 젠더무의식 / 임옥희 (1)

snachild 2014. 5. 6. 17:50

신자유주의 시대와 젠더무의식 = The Neoliberal Era and Gender/Unconsciousness
임옥희(Ok Hee Im) (젠더와 문화, Vol.4 No.2, [2011])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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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르러, 개인이 누리는 자유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누리는 자
유다. 개인적인 선택의 자유가 확장되면, 선택에 대한 책임 또한 개인의 몫이 된다.
사회 영역이 축소될수록, 사회안정망은 위축되고, 불확실한 삶이 지배하게 된다.
확실한 삶은 인식론적인 불확실성을 동반하게 된다. 가족, 모성, 가정마저 더 이상
안정된 공간이 아니다
. 이처럼 젠더 이해관계가 달려 있는 문제와 대면하게 됨으로
써, 젠더들이 느끼는 불안, 분노, 두려움 등은 타자의 담론으로서 젠더/무의식을 형성하게 된다.

이때 젠더무의식은 젠더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할 때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것이다.
젠더무의식은 다양한 모습으로 전이된다. 남성의 응시 아래 위협적인 여성은 팜
프 파탈이 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자유주의 시대 젊은 여성들의 무의식적인 생
존전략은 귀염떨기 전략이다. 이 글의 목적은 신자유주의 시대 젠더무의식의 구조를
조명하고 여성들의 생존전략인 귀염떨기(유혹, 가장무도회) 수행을 분석하는 것이다.

주제어: 신자유주의, 젠더무의식, 젠더이해관계, 팜프 파탈, 귀염떨기

 

 

사적인 감정들 또한 환산하여 자본화한다. 공적 영역 또한 점점

사적영역이 됨으로써 사회 영역이 한없이 축소되어버린다(바우만, 2009).

 

>>혹시 지그문트 바우만?!~*

  

 

그렇다고 신자유주의가 자유와 평등만을 가져다준 것은 아니다. 무한
경쟁을 통해 선택의 자유가 커진 만큼 자신이 선택한 행위에 대한 책임
또한 커진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 자기실현과 좌절, 자기 엔지니어링과
자기계발 등 모든 행위는 개인의 의지, 취향, 결단력, 능력에 달린 문제
가 된다. 이렇게 되면 정치의 장에서 해결해야 할 의제들 또한 개인의
선택이자 결단의 영역으로 간주된다. 개별화된 주체들에게 계급적, 민족
적, 인종적, 종교적 불평등 철폐나 정의실현과 같은 거대담론은 부담

럽게 다가온다. 과거처럼 사회적인 적대가 뚜렷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자본이 전세계적으로 이동하는 시대에 선/악, 친구/적과 같은 사회적 적
대는 불투명해진다. 사회를 총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데올
로기로 간주되는 시대에 개인은 저항하는 주체이기는커녕 유랑하는 주
체(floating subject)
에 불과해진다.1)

 

 

2. 젠더무의식의 구조
1)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젠더무의식
가부장제라는 개념은 여성해방운동에서는 핵심적인 개념이었다. 가부
장제는 막스 웨버(Marx Weber)가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서, 아버지가 확
대가족 안에서 가족 구성원들을 지배하고 가구의 경제생산을 통제하는
가구조직의 특별한 형태를 의미했다(바렛 외, 1995). 페미니즘은 단지
대가족 안에서 가축과 가족을 위시한 가구를 통솔하는 가족장으로서 가
부장이라는 개념을 넘어서 남성들이 여성을 지배하는 현상 전체로 확장
했다.

 

 

수전 벅 모스(Susan Buck Morss)가
『꿈의 세계와 파국』에서 보여주다시피 사회주의는 반(反)가정을 역설했
다. 가족이라는 협소한 범위에서 벗어나 국가에 봉사함으로써 여성은 사
회의 장으로 나오고 가정으로부터 해방될 것으로 보았다. 반(反)가족은
초기 볼세비즘의 정책이었다. 그들은 가정의 안락함을 공공의 적으로 여
겼다. 소련의 경우, 거의 모든 직종에서 여성들은 남성과 더불어 일했지
만 남성들은 육아와 가정의 허드렛일들을 맡지 않았다. 소비에트 대가족
은 프롤레타리아 계급보다 상위 범주였다.
자본주의는 가정공간을 이상
적인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여성의 이해관계를 저버리는 동안, 사회주의
가정공간을 제거하는 것으로 여성의 이해관계를 저버리게 되었다
수전 벅 모스는 주장한다.

 

>>헐...

 

 

 

다른 한편 가부장제에 정신분석개념을 적용하여 가부장제의 이데올로
기 효과를 분석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줄리엣 미첼(Juliet Mitchell)의
『정신분석학과 페미니즘』이 이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루이 알튀세
(Louis Pierre Althusser)의 이데올로기론은 페미니즘에 많은 영향을 미쳤
다. 알튀세에 영향을 받은 일군의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와 이데올로
기를 결합시키고자 했다. 알튀세가 말하는 이데올로기는 경제적 하부로
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
라도 이데올로기는 해소되지 않은 채 무의식으로 남아 있게 된다.
알튀
세에 의하면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이 현실적인 존재와 맺는 상상적인 관
이다. 이제 개별주체는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지적한다고 하여 이데
올로기와 맺는 상상적 관계로부터 쉽사리 풀려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
게 된다.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론은 계급문제가 해결된 뒤에도 여성억압

이 여전히 잔존하는 현상을 페미니스트들이 설명할 수 있는 장치를 제
공해주었다 계급보다 . 더 끈질긴 것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였으며, 따라
서 젠더 혁명은 가장 장구한 혁명이 되기에 이른다(Juliet Mitchell,
1984).

 

 

이처럼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은 페미니스트들이 자본주의와
같은 사회구성체와 성차별주의를 구분하기 위해 힘들여 발전시킨 개념
이었다. 여성문제는 자본과 계급의 문제뿐만 아니라 젠더(섹스, 젠더, 섹
슈얼리티를 포괄하는) 문제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페미니스트들이 애
용한 개념적 장치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부
장제 이데올로기는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지배의 여러 형태 중 한 가지
형태일 뿐이다. 인류학자인 게일 루빈(Gayle Rubin)에 의하면 가부장제
는 시대착오적인 개념이다. 왜냐하면 가부장제가 가족의 생사여탈권(사
법권까지 행사하는)을 쥐고 있는 전근대적인 목축시대의 가족장(아브라
함과 같은)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를 맞이
하면서 가족의 구조변동은 급속히 진행되어 4인 핵가족마저 무너지고

있다. 2011년 현재 서울 인구 중 절반이 1인 가구이고, 평균 가족 수는
2인인 시대
가 되었다.

 

>>이런 게 요즘 사회인데...

 

 

 그와 더불어 절차적 민주주의 확보에 따라 젠더불평등은 어느 정도
지양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 시대에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로 신자유주의
시대의 제반 현상들을 설명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페미
니즘에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젠더불평등, 성차별주
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등은 해소된 것이 아니라 비가시화되고 의식의
표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다
고 아무리 주장하더라도 그런 주장이 받아들
여지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지금 현재 페미니즘이 안
고 있는 고민의 지점이다.

 

게다가 개인의 무한책임이 강조되는 시대이므로
모든 것은 개인의 자기하기 나름이 된다. 따라서 여자도 자기하기 나름
인 시대가 되었다. 어떤 문제든 개인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시대에 젠
더정치는 정치적 해결이 아니라 개별적인 시혜와 관용에 의지하게 된다
(브라운, 2010).

 

 >>슬프다..ㅠㅠㅠㅠㅠ 이건 사회 구조로 인한 문제이니 정치적 해결로 손봐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개인 책임이 앞서게 되어 개별적인 시혜와 관용에 의지해야 한다니....

 

 

젠더불평등은 없다, 혹은 보이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시대에도 어김
없이 되돌아오는 무의식이 있다. 이처럼 젠더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면
끈질기게 되돌아오는 무의식을 젠더무의식이라고 개념화
하고자 한다. 젠
더무의식은 젠더 이해관계가 걸린 결정적인 사건이나 트라우마가 드러
나는 순간 의식으로 표면화
되는 것이다. 젠더무의식이라는 개념은 기존
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대신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필자가

새롭게 만든 것이다 기존의 .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고 낡은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페미
니스트들이 전근대적인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느꼈던 것은 여성억압의 모든 책임을 그것에 전가할 수 있다는 편리함
때문이었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라는 단일 원인만 제거하면 여성해방은
자동적으로 성취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젠더무의식은 시대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귀환하면서 전이
된다. 집안의 천사와 같은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여성, 수동적이고 순종
적이고 정숙한 여성, 지적이고 합리적이고 차갑고 무감각하고 타자의 감
정을 배려할 줄 모르는 기계여성, 권력과 지위를 위해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는 페미니스트들, 남성과 열정적으로 경쟁하는 여성들, 단란한 결혼
생활을 파괴하는, 자신의 여자를 넘보면서 경쟁관계에 있는 레즈비언 뱀
파이어들, 진심과 연기를 구분할 수 없는 여배우들, 사랑의 공화국이자
멜로의 공화국에서 사랑을 마다하는 싱글여성, 자기계급의 재생산을 위
해 자식을 쥐고 흔드는 초자아로서 모성, 기도하는 사마귀처럼 남자의
이성과 자제력을 잃게 만드는 치명적인 여자들, 이상화되고 모성적인 여
성들, 필립 K. 딕(Philip K. Dick)의 소설에 등장하는 검은 머리의 따스
한 소녀들, 냉혹하고 잔인하고 분열증적인 안드로이드 등. 젠더무의식이
만들어내는 여성의 모습은 이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에 걸쳐 출현한다.

 

>>헐;;; 필자가 만들어낸 용어였음 젠더 무의식

 

 

 

이처럼 억압된 것으로서 젠더무의식은 틈만 나면 의식으로 귀환하고
자 한다. 라캉에 의하면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된다. 억압된 기표들
이 되돌아와 무의식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무의식은 주체에게 미친 기표
의 효과이고,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무의식은 타자의 담론이 된다. 이렇
게 본다면 비가시화된 젠더 이데올로기는 해소된 것이 아니라 젠더무의
식화된 것
이다(라캉, 2008).

 

 

 

하지만 타자의 응시는 푸코(Foucault)의 판옵티콘(Panopticon)처럼 주
체를 완벽하게 포획할 수 없다

 

주체는
스크린에 비친 이미지와 동일시를 통해 타자의 응시를 모방하고 반복하
려고 하면서도 타자의 가면/의태/위장/위협(라캉, 2008: 166 167) 너머
에 있는 것과 유희할 줄 안다.

 

 

하지만 아이는 박해에서 벗어나려고 모친살해 충동을 억제하고 그것
을 모친숭배로 뒤집어놓는다. 대상과 주체 자신의 경계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아이에게 어머니의 전능성은 곧 자신의 전능성이기도 하다.
따라서 아이는 모친살해 충동을 모친숭배로 쉽사리 뒤집어놓을 수 있
다.8) 이렇게 본다면 살모충동과 모친숭배는 동전의 양면이다.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가 보여주는 치명적인 매력으로 인해 남성의 시선은 여
성의 가면 너머를 제대로 읽어낼 수 없게 된다. 결과적으로 남성은 머
리(지성)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혹은 자신을 파멸
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더라도 도무지 저항할 수 없는
대상 앞에서는 경이와 경외감을 동시에 느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19세기 사회문화적, 문학적 현상으로써 팜므 파탈이 부각되었던 것도 그
런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모더니티의 출현과 더불어 도시의 삶이 가
져다주는 급속한 변화, 우연성, 불확실성, 유랑하는 빈곤한 삶, 익명성은
사람들에게 불안을 불러일으켰다(벤 싱어, 2009: 9 31). 19세기에 들어
와서 고티에(Jean Paul Gaultier),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
모로(Gustave Moreau), 로제티(Dante Gabriel Rossetti) 등의 작품에서
보다시피 팜므 파탈 이미지가 특히 부각되었다. 그런 현상은 급격한 도
시화, 근대화로 인한 사회적 변동과 여성의 소비, 쇼핑, 사치가 당대사
회에 미친 영향이 지대했기 때문이었다(리타 펠스키, 1998: 105 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