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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성의 유교적 여성상 내면화 연구 / 김언순 (1)

snachild 2014. 4. 19. 15:06

 

조선 여성의 유교적 여성상 내면화 연구 : 여훈서(女訓書)와 규방가사(閨房歌詞)를 중심으로 

김언순
한국여성연구소, 페미니즘 연구 8(1), 2008.4, 1-42 (42 pages)

 

국문초록
본 연구는 조선 여성이 유교화되는 과정을 내면화의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조선 여
성들이 유교적 여성상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은 무엇이고, 내면화하는
양상은 어떠한지를 여성이 쓴 여훈서와 규방가사를 통해 분석하였다. 조선이 예치사회
였다는 사실과 여성의 삶이 ‘시집’이라는 테두리 안에 한정되었던 사실은 유교적 여성
상을 수용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현실적인 기제로 작동
하였다. 개국 초부터 국가는 교
화정책을 통해 효부와 열녀를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제시하였으며, 17세기 이후 사대
부들은 여훈서 편찬을 통해 조선이 종법제적 유교사회로 전환하는데 현실적으로 요구
되는 여성규범을 제시하였다. 더욱이 ‘가문의 흥망이 여성의 선악에 달렸다’는 내치론
은 예로 규정된 유교적 여성규범을 내면화하도록 강제하는 기능을 하였다.
기본적으로 조선 여성들은 사대부 남성이 여훈서를 통해 제시한 여성상과 여성규범
을 당연히 수용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여훈서와 규방가사 간에 미
묘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여훈서는 공식적인 담론 매체인 만큼 지배규범인 유교 규
범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양상
을 보이지만, 규방가사의 경우 익명에 기초하고 있는
만큼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여훈서와 규방가사에 나타난 조선
여성의 유교적 여성상의 내면화 양상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인간다움의 실현
을 위해 적극적으로 내면화, 둘째, 사회적 비난을 피하고, 가문의 명예를 위해 의무적
으로 내면화, 셋째, 강제된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으로서 내면화하는 양
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내면화의 양상은 조선 여성의 자발성에 기초한 내면화조차
사회적 조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주제어
유교화, 유교적 여성상, 유교적 여성규범, 내면화, 여훈서, 규방가사, 내치론

 

 

조선 여성들이 유교화되는 과정은 교화의 관점과 내면화의 관점에
서 접근할 수 있다. 위에서 말한 외부적 관점이란 주로 교화의 관점
에서 이루어진 연구들이다. 본 연구는 그동안 교화의 관점에서만 고
찰되었던 조선 여성의 유교화를 내면화의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즉 조선 여성들이 유교적 여성상을 내면화하는 과정을 밝힘으로써,
여성 교육의 내적 기제가 무엇인지를 밝히려는 것이다. 교육이 쌍방
의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지는 과정임을 고려한다면, 교화자의 의도
와 관점은 물론 피교화자의 의도와 동기를 밝힘으로써 교육이 일어나
는 총체적인 과정을 보다 세밀히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조선 여성들은 단순히 수동적으로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
로를 형성하는 주체로 복원될 수 있다.

 

 

또한 사대부 남성의 여훈서가 교화의 관점만을 갖는다면, 여성 저자의
여훈서는 내면화의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 자신이 내면화한 내용을 중
심으로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1) 내면화의 사회적 조건 : 禮治 사회와 시집살이
조선 여성이 유교적 여성상을 수용하게 되는 사회적 조건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조선은 예와 도덕을 중시하는 사회로서, 예의 실
천이 곧 인간다움의 실현이라는 담론을 통해 도덕적으로 지배하는 사
회였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시집살이라는 현실적인 조건이다. 여성의
행동반경이 규문 안으로 제한되었을 뿐만 아니라, 혼인 이후에는 친
정과의 거리를 유지한 채 시집 중심으로 삶이 구조화되면서, 여성의
삶은 시집의 울타리 안에서만 의미를 갖게 되었다. 따라서는 조선 여
성은 수세적인 위치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며, 시집살이
중심으로 요구되는 규범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사회가 유교 이념에 근거해 유지되는 방식은 바로 예비례 담
론에 의한 것이었다. 내면의 도덕적 완성과 차별적인 사회질서의 유
지라는 예의 두 속성은 서로 맞물려 작동하였다. 차별적인 사회질서
에 순응하는 것이 도덕적이며, 인간다움의 실현이라는 담론은 사회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동의를 이끌어내어 효과적인 통치를 가능하게
하였다. 조선의 여성들이 유교적 여성상을 내면화하도록 이끄는 일차
적인 사회적 조건은 바로 ‘예비례 담론’이었다. 이러한 조건으로 인해
여성들이 인간다움으로 규정된 예를 추구할수록 유교적 여성관에 자
발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그러나 예가 여성에게 차별적으로 작동됨으

로서 여성의 자발적인 동의는 타자화의 가능성을 내포하게 된다.

 

 

<<외부적 사회 맥락. 사회 담론에서부터 논의 시작

 

 

 

3. 여훈서에 나타난 유교적 여성상의 내면화 양상

 

 

 

 

 

 

 

나아가 호연재는 ‘남편이 만일 능히 행실을 닦고 덕을 숭상하면 여
자가 몸을 마칠 때까지 즐거움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여훈서가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규범의 수용을
말하고 있는 데 비해, 호연재는 유교적 여성관을 모두 수용하면서도
여성 일방이 아니라 남녀 쌍방의 윤리로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축첩에 대해 남자에게 호된 질책을 한 것과는 달리 한발 물
러서서 ‘하늘이 정한 운수’라고까지 합리화 하고 있다. 즉 ‘자신에게
자식이 없을 경우 남편이 첩을 얻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며, 만일 자
식이 있다 하더라도 남자는 본시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젊은 여자를
사랑하는 존재이므로 운수(운명)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직분에 충실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헐 ㅡㅡ

 그렇다면 여자가 다른 남자와 바람 펴도 하늘이 정한 운수라고 합리화해라 그럼 인정 ㅇㅅㅇ)

 

 

4. 규방가사에 나타난 유교적 여성상의 내면화 양상
규방가사는 여훈서와 마찬가지로 주로 혼인 이후 시집에서 겪게 되는
여성의 삶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러나 여훈서가 시집살이에 요구되는
여성규범을 반드시 여성이 지켜야 할 도리로서 권유하고 있다면, 규방가
사는 여기에 덧붙여 유교적 여성의 삶에 대한 비판과 탄식의 내용도 담
고 있다. 계녀가류 규방가사는 시집에서 여성이 행해야 할 규범과 행실
을 권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탄식류 규방가사는 이러한 여성의 삶
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부당한지를 탄식하는 내용들로 이루어졌다. 따라
유교적 여성규범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규방가사에서 여성의 삶과 관련해 공통적으로 전제하는 내용은 다
음과 같다. ① 여성은 10세가 되면 규문 밖을 나가지 않는다. ② 여
성은 성장하면 부모형제를 떠나 남편의 집인 시집에서 한평생을 사는
것이 숙명으로서, 이러한 여성의 삶은 女子有行 遠父母 離兄弟로 요
약된다. ③ 가문의 흥망성쇠는 여성에게 달렸다. ④ 이러한 전제 위에
시집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덕목과 규범을 제시하고 있다. 시집살이
에 필요한 덕목들은 사대부 여훈서에서 주로 다루었던 사부모(事父
母), 사구고(事舅姑), 사부(事‘), 화형제(和兄弟), 목친척(睦親戚), 교
자녀(敎子女),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 어노비(御奴婢), 음식의
복(飮食衣服), 절검(節儉), 근면(勤勉), 불투기(不妬忌), 수신(修身), 신
언어(愼言語) 등의 내용에 기초하고 있으며, 여기에 新行에 대한 내용
이 자세히 추가되었다.

 

 

여성의 삶을 가리켜 ‘가소롭다~’ ‘전생에 무삼죄로’ 라는 표현이
상투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여성 자신에 대한 부정적 정체성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주로 텍스트 -> 양상 분석 (어떤어떤 식의 '여성상'을 내면화하였는지)

 

 

5. 맺음말
이상에서 조선사회가 형성하고자 했던 여성상에 대해 조선 여성들
은 어떻게 반응했으며, 유교적 여성 규범을 어떻게 내면화하였는가를
여성이 직접 쓴 여훈서와 규방가사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기본적으
로 조선 여성들은 사대부 남성이 여훈서를 통해 제시한 여성상과 여
성규범을 당연히 수용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수
용 논리에는 몇 가지 양상이 있으며, 여훈서와 규방가사 간에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여훈서는 공식적인 담론 매체인 만큼 지배규범인 유교 규범을 적극

적으로 지지하는 양상을 보이지만, 규방가사의 경우 익명에 기초하고
있는 만큼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하고 있다. 특히 종법적 질서 속에
서 탄생한 시집살이의 냉혹한 현실에 대해 여훈서는 그 타당성 여부
를 문제 삼지 않으며, 그 어려움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지만, 규방가사
에서는 어려움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나아가 여성의 삶 자체
를 거부하고자 한다.
여훈서의 저자들은 높은 도덕적 자각을 기초로 유교적 여성상을 적
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지만, 규방가사에서는 그 수용 양상의 수위가
한 차원 낮아진다. 주위의 시선과 사회적 평판 그리고 시집에서의 대
우가 유교적 여성상을 내면화하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또한
개인의 자발적인 자기실현보다는 시집과 친정이라는 가문의 명예가
우선시 된다. 따라서 비록 가문의 명예를 위해 자발적으로 유교적 여
성상을 내면화 하더라도 그 실현 동기는 남성처럼 입신양명이라는 적
극적인 목표를 갖기보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것인 만큼 방어적이
며 소극성을 띠게 된다.
또한 여훈서에서는 유교가 규정하는 여성관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지
배질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지만, 규방가사에
서는 강제된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으로서 유교적 여성
규범을 수용하고 있다
. 이것은 유교가 제시하는 여성의 삶을 긍정하지
않는데서 비롯된다. 여자유행, 출가외인 담론에 의지하는 종법적 질서
는 여성에게 친부모 형제와 이별해야 하는 원초적인 고통을 강요한다.
친정과의 단절은 시집살이에서 겪어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시집에서 여성이 실
천해야 할 ’道가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길이며, 성인에 이르는 길이라
해도 현실의 고통은 도덕적 실천 의지를 무력화시킨다. 여훈서를 통해
서는 차마 이러한 속내를 드러내기 어렵지만, 여성들 간에 자유롭게
공유하는 규방가사에서는 여성이 따라야 할 규범 하나하나에 대한 비
판이 아니라 여성의 삶 전체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유교적 여

성규범을 충실히 따르더라도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동의가 아
니라 다른 대안이 없는 삶 속에서의 생존전략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여훈서와 규방가사에 나타난 조선 여성의 유교적 여성
상의 내면화 양상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인간다움의 실
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내면화, 둘째, 사회적 비난을 피하고, 가문의
명예를 위해 의무적으로 내면화, 셋째, 강제된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으로서 내면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결국 유교적
가치와 규범을 예로 규정한 禮非5 담론과 시집살이라는 현실적 조건
위에서, 가문 흥망을 여성에게 책임지우는 內治論의 시각은 조선 여
성으로 하여금은 조선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덕, 규범을 수용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현실적인 기제로 작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