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카타르시스-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중심으로 = Litterature et catharsis: autour de la Poetique d'Aristote
'뮈토스-카타르시스'의 짝은 작품의 안과 밖을 매개하는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관객은 이제 광적인 상태에서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비극이라는, 두려움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재현하는 연극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일상의 심리적 긴장에서 벗어난다. 비극이 갖는 효과를 그렇게 해석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넓게 퍼져 있던 카타르시스 의식을 세속화한다. 카타르시스, 즉 '정화'란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여기서 역설적인 사실은 고통이 쾌감으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비극의 카타르시스 효과는 관객이 느끼는 격정을 순화하는 것이며, 고통을 쾌감으로 대체함으로써 고통을 정화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과 연민은 관객이 느끼는 그것이라기보다는 '재현활동의 산물', 즉 두려움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스토리의 요소로 이해해야 한다.9)
9) 엘즈Else의 경우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는 관객에게 주어지는 효과가 아니라 비극 자체에 내재한 요소라고 해석한다. 즉 극의 진행을 통해서 주인공이 자신의 과오를 몰랐다가 알게 되면서 생기는 죄책감의 정화라는 것이다. Gerard Else, Aristole's Poetics, 1957, pp.224-232, 423-447.
『시학』에 따르면 재현 행위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능동적인 것으로, 재현하는 형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수용과 관련된 것으로, 무언가를 재현한 작품 앞에서 느끼게 되는 독특한 쾌감이다.
줄거리를 꾸민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복사(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가치판단을 전제로 사건들을 체계적으로 배열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직접 본 관객은, 사건들 사이의 관계를 지배하는 원리를 깨닫고 무언가를 배우게 된다. 쉽게 말해서 기대와 반전 그리고 식별을 통해 "이런 일들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가"하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관객이 얻는 즐거움은 사건 자체에 대한 연민과 두려움을 제거한다는 것이다.14)
14)하디슨은 이를 심리학에서 말하는 '통찰체험insight experiece'과 연관시킨다. 그에 따르면, 비극적 체험은 '실생활'에서 경험되는 사건들과는 달리,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 즐거움은 학습으로부터 비롯되는 즐거움이다. 학습이란 특수한 사항들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일반 개념에 의해 특수 사항들 사이의 관계를 발견하는 일과 연관되는 것이다. 레옹 골든, 앞의 책, p.216
그에 따르면 카타르시스는 미메스시 3단계, 즉 이야기의 시학적 구성의 마지막 단계인 재형성화 단계에 속한다. 이 단계는 텍스트 세계와 독자 세계의 교차지점이며, 허구 세계까 잠재적 현실의 세계를 거쳐 실재 세계로 이행하는 과정이다.
드러내고 변형시킨다는 것은 칸트가 말한 생산적 상상력의 활동에 상응한다. 그것은 단지 재현한다거나 다시 그려보는 것을 넘어서서 새로이 발견하고 만들어내는 것이다.
'모호한 화자', '아이러니컬한 화자'로 인해 위험해진 현대문학은 그 유독성에 어울리는 새로운 유형의 독자, 즉 '응답하는' 독자를 요구한다.
>>이 부분. 독자의 위상 부분은 나중에 추가적으로 참고할 것.
여기서 말하는 빈틈이란 작품 자체의 미숙함이나 미완결성이 아니라 독서행위를 통해서만 완결된다는 작품 자체의 특성을 가리킨다. 카타르시스는 바로 그러한 창조의 즐거움, 매번 다르게 연주함으로써 매번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놀이의 즐거움이다. 볼프강 이저는 잉가르덴의 독서행위의 현상학을 발전시켜, '옮겨다니는 시점'이라는 독창적인 개념을 만들어낸다.23)
즉 미메시스는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무엇을 발견하고 변형시키는 것이며, 카타르시스도 바로 거기서 생긴다는 것이다.
카타르시스란 "바로 제약된 자유, 제약에서 풀려난 자유라는 역설이 정점에 이르게 되는 항이다. 해명하고 정화하는 계기를 통해서 독자는 자기 뜻과 상관없이 자유로워진다. 텍스트 세계와 독자 세계의 대면을 싸움, 텍스트의 기대지평과 독자의 기대지평의 융합은 단지 일시적인 평화만을 가져올 따름인 싸움이 되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역설이다."
문학작품(예술)이 주는 즐거움은 일반적인 의미의 즐거움이 아니라 앎, 이해를 수반하는 즐거움이다. 그것은 단순한 앎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을 변형시키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앎이다.
여기에는 일상의 삶은 무질서와 불협화음, 억압이자 제약이며 의미(진실)는 가려져 있고, (...) 즉 기원과 질서에 대한 욕구는 인간 실존의 구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학은 그러한 욕구를 미학적 방식으로 충족시켜주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문학의 카타르시스라 말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에서 주인공의 불행과 고난의 재현이 관객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쾌감을 준다는 역설을 설명하려 하였다. 둘째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두려움과 연민의 쾌감이라는 특이한 효과를 다른 장르와 구별되는 비극 특유의 것으로 보고 이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을 비극의 구성원리로 간주한다. 연민이란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남의 일 같지 않고 그래서 무의식적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며, 그 누구에게라도 닥쳐올 수 있는 고통이기에 두려운 것이다. 그 깊은 곳에는 신화적 악이 있다. 원죄, 숙명, 비극적 과오, 자유의지 등의 문제가 거기에 얽힌다. 그러한 악의 실체를 명료하게 하고 악을 저지르지 않게 하는 도덕적 카타르시스도 있다.
...
그렇게 해서 우리는 카타르시스 개념을 정화, 순화, 그리고 즐거움을 통한 앎이라는 의미로 살펴보았다.
우리는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일상의 사소하고 탐욕스런 근심에서 벗어나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 그러나 이는 감옥에서 죄수가 탈출하듯이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나마 이 고단하고 무의미한 세상에서 벗어나 보다 진실한 어떤 세계를 책 속에서 찾아보기 위해서이다.
<<이얏 말을 멋지게 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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