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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사상과 동아시아 전통의 비교 연구 / 정은해 (10/100)

snachild 2013. 12. 3. 13:06

 

 

하이데거 사상과 동아시아 전통의 비교 연구 = Comparative Research of Heidegger's Thought and East Asian Traditions
정은해(Eun-Hae Cheong) (철학과 현상학 연구, Vol.43 No.-, [2009])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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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논문들도 하이데거 사상과 동아시아 전통들 사이의 유사점들
을, 하이데거와 유식불교, 하이데거와 선 불교, 하이데거와 노장의 비교 속에서
찾아왔고, 이미 상당한 성과를 이룩하고 있다.

 

 

우선 자아관의 면에서, 하이데거는 유한한 자아를 말하고, 동아시아
전통은 확대된 자아를 말한다. 이런 자아관과 밀접히 연관된 것이 실재관이다.
하이데거는 유한한 실재성을 말하고, 동아시아 전통은 영원한 실재성을 말한다.
이러한 상이한 실재성에 관련된 시간 역시 상이하다. 하이데거의 실재관을 성립
시켜 주는 시간은 유한한 과거와 유한한 미래의 통일로서의 유한한 시간이고,
동아시아 전통의 실재관에 관련된 시간은 현재와 영원의 통일로서의 무한한 시
간이다. 이러한 상이한 시간관은 언어에 대한 상이한 견해를 낳는다. 하이데거
에게 언어는 실재성의 이해를 완성하는 데 기여하면서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
거나 보완해주는 긍정적 의미를 갖는 반면, 동아시아 전통에서 언어는 영원한
실재와 비교할 때 시공적으로 제한된 것으로서 실재성을 위해서나 인간을 위해
서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으앜.. 읽다 보니 40장이 넘는 논문이자나..ㅠㅠ 엉엉

 

 

 

 

하이데거는 불안 속에서 존재자를 무화시키는 무가 등장하고, 이
러한 무의 무화와 더불어 존재자 전체의 존재가 등장한다고 지적하였
다. 불가에서는 일체법(모든 것)이 연기(緣起)에 따른 것으로 고정된
자성(自省)이 없고 따라서 일체가 공이며, 이 같은 일체개공(一切皆
空)의 깨달음 속에서는 만물이 새롭게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이 점을
토대로 그는 하이데거의 무와 불교의 공의 유사성에 대해 다음과 같
이 지적한다: “공은 일체법의 자성을 부정함으로써, 일체법 자체를 연
기하는 것으로 성립시켜준다. 색즉시공이고, 공즉시색이다. 다시 말해
일체를 철저히 공화시킴으로써, 일체가 신비롭게 드러난다. 진공[眞
空]이 묘유[妙有]다. 무는 존재자 전체를 부정함으로써, 존재자 자체
를 개방시켜준다. 다시 말해 존재자 전체를 무화시킴으로써 존재자의
존재가 존재의 진리로 드러난다. 무가 존재로서 드러난다.”5)

 

 

하이데거는 존재자 전체의 존재가 그리스인에게서 피지스로 경험되
었으며, 이런 경험은 스스로 피어나면서 자신을 탈은폐하는 존재의
시원적 경험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와 유사한 것이 불교의 법계이다.

 

 

 

“마음이 세상에 대해 반연(攀緣) [넝쿨이 나무나 언덕을 기어올라가듯
이 그렇게 인연을 맺으려 함] 작용을 하는 것을 ‘종자생현행’(種子生
現行)이라고 하고, 또 반대로 세상이 마음에 대하여 반연의 영향을
미치는 것을 ‘현행훈종자’(現行熏種子)라고 한다. 마음과 세상과의 이
런 능/소 (能/所) [능동/수동]의 교호작용을 바꾸어가는 것을 하이데거
도 같은 방식으로 [세상에 던져진 존재와 세상을 기도하는 존재라는
이중성에 의해] 설명하고 있다”9)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윤 박사는
노자의 도, 무, 빔이 하이데거의 존재, 무, 사물성에 연결된다는 점,
그들의 도와 존재가 증여적이라는 점, 그들 모두가 일상언어의 한계
를 지적한다는 점 등에서 그들 사상이 유사성을 갖는다고 지적한다.

 

>>대충 언어의 한계 부분은 알겠는데(노자는 더욱 제한) 점점 이해가 안 가기 시작한다^ㅁ^??!?!?

 

 

그가 말하는 본
질적 유사성은 도와 피지스의 자연성, 도와 존재의 운동방식, 무위와
초연의 이중적 성격, 관계론적 사유 등이다.
그는 우선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도, 즉 길은 ‘스스로 길을 간
다’, ‘스스로 생기(生起)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이데거가 고
대 그리스 철학의 재해석을 통하여 발견하는 그리스어 ‘퓌지스’의 본
래의미, 즉 ‘스스로 피어남’과 노자가 말하는 (또는 동양에서 말하는)
‘자연’의 의미가 상응함을 알 수 있다.”27)

 

 

“하이데거가 말하는 ‘초연함’ [Gelassenheit]
이란 간단히 말하자면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하는 태도”29)인데, “노
자가 말하는 무위도 하이데거의 ‘초연함’과 마찬가지로 ‘긍정과 부정’
이라는 두 가지 계기의 동시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30)

 

하이데거의 “죽음의 이해는 자아를 비우고
도가 자신에서 행위하게 하라는 노장의 이해와 상통”34)

 

 

 

 

 

 

하이데거의 자아는 아
니다. 도가와 불가에 있어서, 완전하거나 참된 자아는 탄생과 죽음의 세
계를 뒤로 하고 있고, 따라서 시간-독립적인 자아이다. 반면에 하이데
거가 본래적 실존을 수행한다고 해설하는 자아는 탄생과 죽음의 세계를
회복하고 보존하는 자아이다.

 

 

 

비록 선불교도들이 세계의 포기를 목표로 하지는 않을지라도, 깨달음
의 순간에, 시간은 종식되고, 자신의 진리 찾기를 완성한 정신은 붓다
의 길 안에서 휴식하게 된다.”56)

 

 

 

하지만, 자아가 그리로 복귀하는 그것은 노자와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서로 다르다.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그것은 하나의 과정으로서의 존재인 반면에, 노자에게 있어서
그것은 영원한 도이다. 하이데거의 사상과 동양 전통들 사이에 남아
있는 커다란 차이는 자아관의 차이이고, 이것이 실재와 시간에 관한
기본적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60) 완전하거나 참된 자아와 같은
확대된 자아는 영원한 실재성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이것은
특수한 시간관을 낳게 된다.

 

 

도가에 있어서
자아를 구별적 사유 및 언어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 따라서 자아를
비-자아에로 확대하여 한 마음(一心)이 되는 것인데, 이 한 마음은
자아와 비-자아의 통합이고 따라서 전체인 것이다. 확대된 자아는
마치 하늘이 모든 사물들을 허용하듯 다양한 관점들을 허용할 수 있고,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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