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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우리의 지각들은 무엇을 향해 열리는가? 내가 나의 자리에서 보는 바대로의, 탕인이 체험한 것을 무엇이라 부르며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 우선 타인이 체험한 것은 내가 타인을 신뢰하므로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지 않을 뿐더러, 타인이 체험한 것은 그 가운데 나에 대한 타인의 관점 같은 것이 들어 있기 마련이라 나 자신과 상관이 있을수밖에 없다. 여기 내가 잘 아는 얼굴이 있다. 미소, 목소리의 억양, 그 면면이 나 자신이듯이 나에게 친숙하다. 아마 타인은 나의 인생의 많은 순간에 나에게 어떤 매력일 수 있는 그러한 광경으로 축약될 것이다. 하지만 목소리가 변한다든가, 뜻밖의 말이 대화 도중에 튀어나오거나, 또는 반대로 내가 생각만 했을 뿐 말로 온전히 표현하지 않은 것에 너무도 잘 부합하는 응답이 돌아올 때, ㅡ갑자기 저기에서도 매순간 삶(生)이 살아지고 있다는 자명함이 찬연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저 눈들 뒤쪽, 저 몸짓들 뒤쪽 어딘가, 뒤쪽이라기보다는 저들 앞쪽 어딘가, 저들 주변 어딘가, 어딘지 알 수 없는 공간의 이중 바닥에서 생겨난 하나의 다른 개인적 세계가 나의 세계의 피륙을 통해 말갛게 비쳐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에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다른 개인적 세계에서이며, 나는 나에게 건네진 말에 대한 응답자에 불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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