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항이념적 가치관에 바탕한 능동적 사회주체 모형의 탐색 = A Search a Model of Voluntary the Social Subject based on Counter Ideological value
- 김윤철(Kim, Yun-cheol) (생명연구, Vol.16 No.-, [2010])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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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대학생은 정치, 사회적으로 중요
한 위치와 역할을 차지해왔다. 특히 탈권위주의화·민주화와
같은 사회변동의 추동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 대학생들의 삶의 양식을 볼 때, 그와 같은 정치, 사회
적 위치와 역할은 크게 변화 혹은 약화된 듯 하다. 특히 불
공정하고 불합리한 정치, 사회적 현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
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집합적 주체로서의 면모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이와 관련 이 글에서는 현 시기 한국 대학생들
의 삶의 양식과 가치관이 갖는 문제점을 추적하고, 그것의
극복을 위한 모형 탐색의 일환으로 1980년대의 대학생들의
삶의 양식과 가치관을 검토해본다. 한편 이 글에서는 이념
의 기능과 가치관의 유형, 그리고 삶의 양식과 주체 유형에
관한 논의를 수행하고 있다. 이 글은 이에 바탕해, 현 시기
한국 대학생을 ‘지배이념적 가치관에 포획된 비사회 주체’
로, 그리고 1980년대 한국 대학생을 ‘대항이념적 가치관에
바탕한 능동적 사회주체’로 규정한다. 하지만 1980년대 한
국 대학생의 삶의 양식과 가치관이 하나의 모형으로서 자리
매김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문제의 해결을 위한 방안이 먼
저 모색되어야 한다. 첫째, 이념의 교조적 수용의 지양. 둘
째, 이념적 타자와의 생산적 소통을 위한 역량의 증대.셋
째, 생명을 경시하는 실천방식 지양이 바로 그것이다.
>>글쎄.. 반드시 그렇게 집합적 주체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전제가 좀 폭력적인 것 같은데
1980년대 대학생의 삶의 양식과 가치관이 하나의 모형으로서 자리매김된다는 것도 좀 그렇고
대학생 뿐만 아니라 당시의 민중/대중들... 혹은 시대 정신 그 자체가 문제시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특히 대학생은 산업화와 경제발
전 과정에서 양질의―특히 지식―노동(력)을 제공하는 원천이 되어왔다.
또 정치, 문화적 측면에서는 기성세대들에 비해 보다 진보적인 가치관을
갖고 지배질서에 대한 저항적 실천을 수행하면서 탈권위주의와·민주화와
같은 사회변동의 추동력이 되기도 했다. 이는 ‘68혁명’1) 시기의 서구 사
회와 반독재 민주변혁 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되었던 1980년대 한국 사회
의 역사적 경험에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대학생이 이와 같은 정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기본적으로 사회경제적 이
해관계망의 구속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정치, 사회적 관용의 수혜를
가장 크게 받는 세대로서, 지배질서의 경계를 벗어나는 보다 전향적인 지
식을 탐색하는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2) 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 대
학생들의 삶의 양식을 볼 때, 그와 같은 정치, 사회적 위치와 역할은 크
게 변화 혹은 약화된 듯하다. 특히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정치, 사회적 현
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집합적 주체로서의 면모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저 승자독식사회의 늪에 빠져들어 헤어 나오고
있지 못한 ‘성장 지체의 세대’(우석훈·박권일 2007)로 보일 따름이다. 이
는 한국 사회의 성찰성과 그에 바탕한 자기혁신 역량이 상당 정도 약화
되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감안하여 이 글에서는 현 시기
대학생의 삶의 양식과 가치관이 갖는 문제점의 극복을 위한 ‘모형’을 탐색
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선 반독재 민주변혁운동이 활발하게 전
개되었던 1980년대 한국 대학생들의 삶의 양식과 가치관을 검토한다. 현
시기 한국 대학생의 그것과 선명히 대비되기 때문이다. 특히 1980년대는
한국 대학생의 정치, 사회적 영향력이 매우 컸던 시기였다. 더 나아가서는
IMF 위기 이후 사회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극심해진 한국 사회 현실
(은수미 2009)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사
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종교적, 도덕적 성찰에 바탕한 자기희생과 자기부정
이 갖는 혁신 역량을 요구하는데, 바로 그러한 역량을 치명적 문제점을 갖
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반독재 민주변혁운동에 나선 대학생
들의 삶의 양식과 가치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허허.. 거참... 뭔가 가치판단이 너무나도 확실한 듯한 느낌..
이념은 ‘진리 효과의 창출’과 ‘주체 형성’의 기능을 갖고 있는 담론체
계3)이다. 이념은 특정 가치와 그것의 추종이 역사적 합법칙성을 갖는 진
리임을 논증하고 설파한다. 이를 통해 특정 가치를 추종하는 주체를 출현
시키고, 그 주체가 특정 가치의 추종을 위해 오늘의 ―물질 혹은 양심의
―희생을 정당화하고 감수하는데 필요한 확신을 제공해준다. 그러한 확신
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특정 가치의 추종이 ‘역사적 합법칙성’을 보유한
진리라고 믿을 때 만들어진다.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정치 제도로 보다 많은 지지를 획득함
으로써 권력을 키우는 정당 조직이 이념을 중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파네비안코(Panebianco 1988)와 같은 저명한 정당 이론가는 정당조
직과 그것의 운명을 좌우하는 리더십의 성패가 그와 같은 이념의 기능을
제대로 작동시키는데 달려 있다고 보았다. 또 정당 이념에 관한 연구의
권위자인 클라우스 폰 바이메(Klaus von Beyme 1985)는 이념에 기초한
정당만이 성공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체제친화적 정당이든 반체제 정당
이든 혹은 보수정당이든 진보정당이든 간에 정당과 같은 정치 조직에게
이념은 매우 중요하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처럼 억압적 물리력보다는
주로 인민의 동의 창출에 바탕해 지배하는 헤게모니 정치의 성패는 그와
같은 이념의 기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시키느냐에 달려 있다.4
>>오호...?! 재밌다!!!!
이때 이념은 그것이 궁극적으로 무엇을―혹은 누구를―위한 것이냐에
따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지배질서의 유지와 재생산을
위한 지배 이념이고, 다른 하나는 지배질서를 깨고 새로운 질서의 구축을
지향하는 대항 이념이다. 이로부터 특정 사회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가치
관의 성격을 지배이념적 혹은 대항이념적인 것으로 나누어 파악할 수 있
을 것이다.
>>지배이념 / 대항이념
이러한 이분법 재밌다!!
하나
는 지배이념에 영향을 받아―그것이 셋팅해놓은 가치관을 보유한―원자
화된 개인으로서 정치, 사회적 의제에 무관심한 ‘비사회적 주체’이고, 다
른 하나는 대항이념에 영향을 받아―지배이념이 내세우는 가치관을 거부
하고 ― 조직화된 집단의 형태로 새로운 가치관을 갖고 지배질서에 저항
하고 새로운 질서의 구축을 위해 실천하는 능동적 사회주체이다.
대기업 최종면접을
앞둔 친구와 ‘중요한 면접 노하우를’을 공유하겠냐는 질문에 조사 대상
대학생의 26.6%가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면 거의 70~80%가 공유하겠다는 건데 고무적인 거 아닌가??? 에헷..
한편
이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대학생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행
복’(47.9%)을 꼽았다. ‘돈’은 단지 6.4%에 불과했다. 하지만 성공하기 위해
선 ‘돈’(28.7%)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꼽아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기
도 했다(캠퍼스헤럴드 2008년 3월 3일).
>>그러니까 이런 일부 집단을 상대로 한 통계를 가지고 어떻게 시대 정신.... 과 그걸 반영하고 있는 세대 전반을 아우를 수 있겠냐고요
2007년 3월, 울산의 한 대학에서 일어났던 사건이다. 대학측이 이른바
‘청소 아줌마’(여성 미화원) 8명을 해고했다. 부당해고라며 옷까지 벗어던
지며 항의하던 이들은 학교 직원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나갔다. 이후 이
들은 대학 본관 후문 쪽에서 천막농성을 펼쳤다. 비정규직인 이들은 길게
는 7년 동안 이 대학에서 일해왔다. 이들의 월급은 70만원 정도며 각종
수당은 일절 없는 상태였다. 이들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을 알고 2006년 7월 민주노총 울산지역연대노조에 가입했었다. 이들이 해
고된 것은 이 과정에서였다. 이는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비정규직 고용
을 둘러싼 전형적인 노사갈등의 한 사례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이 대학
학생들의 태도가 매우 놀라웠다. 총학생회 간부 20여명이 쫓겨난 미화원
들에게 몰려가 공부에 방해되니 학교에서 나가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
틀 후에도 검은색 트레이닝 차림의 대학생 4백여 명이 농성장 앞에 몰려
가 “물러가라”고 외치면서 시위를 벌였다. 총학생회는 ‘호소문’을 통해
“많은 등록금을 내고 다니는 학생 입장에서 민노총 시위대가 대학 본관
입구를 점령해 6000학우들의 학교생활이 자유롭지 못하다”면서 수업을
방해하는 민노총의 교내 집회금지 서명을 받는다고 밝혔다. 농성중이던
한 여성 미화원은 “저도 자식 키우는 부모지만 내 자식이 저렇게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가진 자의 편에 서서 없는 사람들을 탄압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까 겁이 났습니다”라고 말했다(경향신문 2007년 3월 20일).
>>이건 좀 논점이 어긋난 거 같은 게
노조 문제에 대한 대처 : 학교 측 나아가 노동 시장의 시스템 자체
이게 더 문제적인 거지
대학생들의 기본적인 교육권에 대해서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는 거지;;;
그래서 안 도운 대학생들 어쩌라고 까달라고?
차라리 시위 장소를 공부하는 데랑 다른 곳에서 했든가
아님 대학생들이 다른 식으로 이 노조 문제에 대해서 이해/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는 기제가 부재한 게 더 문제지
이러한 시기인 1980년대 한국 대학생들의 가치관과
삶의 양식은 앞서 살펴본 현 시기 대학생들의 그것과 달리, ‘대항이념적
가치관을 보유한 능동적 사회주체’로서의 특성을 보였다
>>이런 논리가 정말 위험한 게
이런 식으로 1980년대 대학생들을 모델화하면
당시의 학생 운동이나... 그들이 했던 시위든 사회 운동이든 뭐든
그 과정에서 '비판'해야 하는 점까지 다 좋은 거다 좋은 거다 하고 무마해버릴 가능성이 큼
그러니까 당시 학생 운동 과정에서도 여학생들 문제라든지(지나친 남초, 마초화)
분명 비판해야 할 점이 없는 건 아닐텐데
그걸 다 싸잡아서 잘했어 너넨 대항이념적 가치관을 보유한 능동적 사회주체로서 참 훌륭했었지 짝짝짝
할 수도 있다는 거
그런데 이때 주목할 것은 1980년대 한국 대학생들의 민주변혁운동이 5
월 광주의 비극에 대한 ‘원죄의식’에서 출발하였다는 것이었다. 원죄의식
이란 가해자 등의 형태로 직접 연루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죄값을
치러야한다고 여기는 ‘도덕적’ 혹은 ‘종교적’ 의식이다. 1980년대 대학생들
은 자신들이 군부독재의 전횡을 막지 못해 5월 광주의 비극이 일어났다
고 여겼던 것이다. 이는 1980년대초 학생운동세력들이 생산한 대부분의
팸플릿의 서두가 광주의 비극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되고, 광주의 비극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의 문제에 집중되었던 당시의 사회과학적 논의를 통
해 확인할 수 있다. 또 1980년대 내내 광주에 대한 추모가 한국 학생 운
동, 나아가 사회운동 진영 전체의 고유한 ‘의례(ritual)’로 자리잡았다는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도덕적, 종교적 원죄의식은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과 그 과
정에서 시작된 마르크스-레닌주의 혹은 주체사상과 같은 급진 이념을 공
부하고 수용하는 대학생들을 급격히 증가시켰다. 이는 1980년대 중후반
학생운동내 이념정파 운동의 활성화, 그리고 급진이념을 담은 사회과학서
적들이 대학가 서점은 물론, 시중 대형서적에서까지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했던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글쎄... 원죄의식만이 저항적인 힘을 만들어 내고 사회 참여를 만들어낸 원인이었을까?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이건 오히려 당시 사회 운동에 대한 동기를 편파적으로만 해석하고
사회 운동의 가치와 의의를 축소시키는 거라고 생각
선도투쟁이란 학생운동과 다른 사회운동과의 관계에 있어서 학생운동
이 보다 앞서 투쟁했던 것을 가리킨다. 대학생들에 의해 선도투쟁이 감행
되었던 것은 노동운동 등 사회운동의 성장이 지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민주변혁적 가치의 이념적 확산을 위한-인터넷과 같은-효과적인 매체
를 확보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정치·사회적 이목을 끌기 위한 것이기
도 했다. 이와 같은 선도투쟁은 1980년대 대학생들의 능동적 사회주체로
서의 면모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선도투쟁은 주로 군부독재를
상징하는 억압적 국가기구에 대한 점거와 농성 등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
것의 ‘극단적’ 양상을 우리는 1982년 3월 18일 일어난 <부산 미문화원 방
화사건>과 1985년 5월 23일 일어난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선사건>을 통
해 볼 수 있다. 이 두 사건은 모두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과 그것에 대
한 미국의 책임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겠다는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이
와 같은 선도투쟁과정에서 대학생들은 제적, 수배, 구속, 고문 등 견디기
힘든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심지어 1980년대 시기 대학생들은 스스로를
죽음에 이르게하는 투신과 분신과 같은 극한적 저항마저 감행했다.
존재이전은 ‘현장 투신’ 혹은 ‘위장취업’으로 불렸는데, 1980년대 초중반
공장으로 들어간 대학생들이 크게 증가했다. 1983년부터 1986년 사이 한
해 수백 명씩에 달하는 많은 학생들이 공장으로 들어간 것이다. 1980년대
중반에 이르면 3천여 명 혹은 그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공장으로 들어갔
다고 추정되고 있다(구해근 2002:160-161). 이와 같은 존재 이전은 학생
들의 자기부정, 자기헌신의 노력들로서 19세기 나로드니키 운동, 20세기
중반 제3세계에서의 농촌게릴라 운동, 한국 전쟁 전후 한국에서의 파르티
잔 운동에서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1980년대 한국처
럼 대규모의 대학생들이 화이트칼라 혹은 엘리트로서의 출세의 길을 포
기하고 노동자의 일원이 되기를 자처한 예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사회주의적인 반개인주의, 공동체주의 문화가 가장 극적으로 표현된 것이
며 종교적 자기희생의 태도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김동춘
1997a:85).
>>학생들의 실천과 투쟁, 그 과정에서의 희생은 정말 가치있다고 생각함
그러나 이것을 종교적 자기희생의 태도라고 해석하면 그 가치를 축소해석하는 거라고 생각함
“1980년대의 경험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빈부격차로 인한
양극화와 계층갈등, 진보-보수의 이념 대립, 수도권과 지방의 지역
격차와 갈등 분열을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핵심 조건이 있다. ‘모든 사람의 동등한 권리 향유’와 ‘집단
사이의 소통’이다. 이를 위해서는 강자의 약자 포용이 전제되어야 한
다. 80년대 대학생들은 노동 현장 속으로 들어갔거나 최소한 그들을
함께 살아야 할 존재로 생각하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이런 정신에
서 사회통합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경향신문 2010년 2
월 4일).
>>지금은 그런 실제적, 실천적 참여가 아니라 또 다른 방식이 있을 거라고 생각
“386세대는 문제제기 방식이 아주 체계적이고, 기존의 가치관의 핵심
을 의문시하고, 어떠한 것이 옳고 정당한지 통념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롭게 규정하려는 노력을 광범위하게 상당 기간에 걸쳐 했지요. 사
회가 발전하면 도덕적 능력이 증가해야 해요. 그리고 도덕적 능력의
핵심은 더불어 사는 것의 문제죠. 80년대 세대야말로 도덕적 자원이
풍부한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디지털 세대는 자기표현 잘하
고 발랄하죠. 그것이 또 사회발전의 힘이 되겠죠. 그러나 사회적 약
자 배려라든가 사회정의, 공동체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약한 게
사실이에요...오늘의 시점에서 386세대를 어떻게 바라볼 거냐? 그들
은 다른 세대에 비해 사회정의나 소외되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의
식이 큽니다. 그런 세대가 중산층의 상당 부분을 구성하고, 광범위한
규모로 사회에 진입해 있기 때문에 한국 사회가 굉장히 다이내믹한
거라고 봐요. 일본도 유럽도 밑에서부터 오는 다이내미즘은 다 사라
졌잖아요...80년대 학생들은 도덕적 윤리적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게
쓸모가 있는거냐? 나는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그런 집합적
고민이 결국은 한국 사회를 발전시키는 자원이 됐고 앞으로도 역할
을 할 겁니다”(국민일보 2010년 2월 18일).
>>> 사회적 약자 배려라든가 사회정의, 공동체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약한 게 사실
그렇다고 인정하자. 그렇다고 해도, 오히려 공동체나 사회정의, 사회적 약자 배려라는 거대한 가치관을 위해
일부 개개인에게 넌 그렇게 살아야만 해. 도덕적 윤리적 고민을 해야만 해.
하고 강요하면서 그 개인의 자율성과 고유한 가치를 무시하고 폭압하려고 하는 것 또한
일종의 문제적인 태도가 아닐까?
그런 식의 어떤 단일한 가치를 다양한 사람들에게 종용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소외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셋째, 투신과 분신과 같은 ‘생명경시’의 극단적인 실천을 반복했다는 것
이다. 이는 한국 사회 현실을 짜르 치하의 러시아나 민족해방투쟁을 전개
하던 일제 식민지시기로 ‘착각’한데서 연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극단적 실천이 극에 달한 것이 바로 1991년 5월 투쟁이었다. 1991년
5월투쟁은 1980년대 반독재민주변혁운동이 약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
했다(91년 5월투쟁 청년모임 2002). 전국에서 여러 대학생들이 분신자살
로 희생되어갔다. 최장집(1993:243)은 분신이 변화를 추구하는 강렬한 열
망에도 불구하고 지배권력의 압도적인 폭력성으로 인하여 이를 실현할
수단을 갖지 못할 때, 약자가 최대한의 도덕적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가장
치열한 무기로 선택되어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시위진
압경찰의 폭력에 의해 한 대학생이 사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노태
우 정권8)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과 같은 압도적 국가폭력을 행사
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에 대해 한국의 대표적 저항시인이자 생
명사상가인 김지하가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하
지만 당시의 대학생들은 이를 변절한 인텔리겐챠의 지배친화적 행위로
폄하하고 비난하였을 따름이었다.9) 권력에 대한 저항과 그것을 위한 이
념의 궁극적 목적이 결국 ‘살림’에 있음을 자각하지 못했거나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음을 불사한 투쟁’이 하나의 주요한 가치로 표방되기
도 했던 시기이기도 했다.10) 이는 대항 이념적 가치관에 바탕한 능동적
사회주체의 삶을 매우 특수한 것으로 보이게 만들면서, 그것의 저변이 좁
아지게끔 만들었다.
>>이 부분 비판 좋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결론 부분 참 좋은 듯.. 차라리 이 부분이 길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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