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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구조 // 김수환

snachild 2014. 6. 21. 18:52

 

 

 

p.62

 

 (시적) 언어는 "일반적이고, 올바르며, 경제적인" 산문어와 달리 의도적으로 "지연되고 구부러진" 담론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10)

 

 10) 빅토르 슈클롭스키, 「기법으로서의 예술」, 『러시아 형식주의:문학의 이론』, 츠베탕 토도로프 편, 김치수 옮김, 이화여자대학교출판푸, 1988.

 

p.84

 

 조형예술은 현실의 '재현', 즉 "복제를 통한 중층화"와 관련된다. 현실을 비슷하게 복제함으로써 그것을 배가하는 과정은 조형예술의 본질에 해당한다. .... "그럴듯한 의사 세계의 창조, 즉 원-대사오가 닮았지만 그와 동일하지는 않은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마법적 기능은 예술의 자의식에 본질적이다" (1979a:609).

 

 

 

p.85

 

 바로 이런 기본적 전제 위에서, 도상적 기호의 '조건적 성격'2)에 관한 논의가 가능해진다. 그 논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첫번째로 도상적 기호(그림)의 1차적 조건성이 있다. 1차적 조건성이란 부피를 지닌 3차원의 대상을 평평한 2차원의 형태로 바꾸어놓아야 할 필요성을 말한다. 묘사 대상과 그림 사이에는, 예컨대 투시법(원근법)과 같은 조건적(관례적) 등가성의 원칙이 놓여 있다. 두번째로 도상적 기호의 '문화적' 조건성이 있다. 이는 도상기호의 특징인 이해의 용이함이라는 것, 즉 그것의 상대적인 '직접성' 또한 본질적으로 '문화적으로' 조건화되어 있다는 점, 다시 말해 동일 문화권 내에서만 통용되는 원칙일 뿐이라는 점을 가리킨다.

 

 2) 기호의 내용과 표현 사이의 규약적 성격을 뜻하는 '관례성'의 개념이 예술에 적용될 경우, '조건성'이라는 좀더 포괄적인 개념이 적합하다. 예술의 조건성은 예술작품을 하나의 독자적인 가상 세계, 그러니까 내부의 규약과 법칙에 따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끔 하는 약속의 체계를 뜻하기 때문이다. 관객이나 독자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이 '조건'을 무의식중에 승인하기 때문이다. 가령 일본 전통 인형극에서는 인형의 줄을 조정하는 사람이 관객에게 그대로 노출되지만, 그 사람은 '보이지만, 보이지는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말하자면 이 '암묵적인' 약속이 인형극의 기호 세계를 성립시키는 전제인 것이다. 로트만의 예술적 조건성 개념에 관해서는 이장욱, 『혁명과 모더니즘』, 랜덤하우스중앙, 2005, 188~204쪽 참고.

 

 

 

 

 

p.93

 

4) 루복lubok이란 값싼 목판화나 동판화로 인쇄한 그림으로서, 성상화인 이콘icon이 점차 쇠퇴하기 시작한 17세기 말경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일종의 러시아 민중 회화 장르이다. 흔히 텍스트와 그림이 공존하는 형태로 이루어진 루복은 러시아 민중들의 삶의 방식을 백과사전식으로 반영한 이미지로서, 일상적 삶의 다양한 정경과 풍습, 축제와 신화, 민담의 내용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사건에 대한 흥미로운 풍자와 패러디를 담고 있다. 엄숙하고 성스러운 정교 문화의 위계와 통념을 전복시킨 '뒤집혀진 세계'를 보여주는 그것은 말하자면 민중적 해학과 풍자를 반영한 속화된 이콘이라고 할 수 있다.

 

 

p.127

 

 문화 텍스트란 특정한 문화유형에 속하는 모든 텍스트를 위한 불변체로 기능하는 모종의 텍스트-구성체인데, 이는 "해당 문화의 입장에서 파악된 현실의 가장 추상화된 모델'에 해당한다. 한마디로 그것은 "해당 문화의 세계상"이라고 할 수 있다.

 

 

 

p.256

 

 모든 텍스트(특히 예술 텍스트)는 우리가 '청중의 형상'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어떤 것을 포함하고 있ㄴ느바, 이러한 청중의 형상은 실제 청중에게 일종의 규범적 코드로서 적극적으로 작용한다.

 

 p.257

 

 "텍스트와 청중 간에는 수동적인 인지로 특징지을 수 없는, 차라리 대화의 본성을 지니는 관계"가 성립한다.

 

 대화적 담화를 특징짓는 것은 두 대립적 언술 간의 코드의 공통성뿐 아니라 발신자와 수신자가 공유하는 특정한 공통 '기억'의 존재이다. ... 모든 텍스트는 코드와 메시지뿐 아니라 특정한 유형의 기억(기억의 구조와 그 내용의 성격)을 향한 지향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

 

 

 '기억의 공통성'

 

 '공통의 기억 속에 이미 기입된 것'만을 전달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어떤 점에서 공통 기억의 전달로서의 신화적 커뮤니케이션이란, 자아를 확장한 거대 세계 자체의 '자기커뮤니케이션'에 해당한다.

 

 

 

 

 p.265

 

 텍스트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소비하는 동시대의 '사람들'은 (텍스트와 마찬가지로) 해당 시기의 '문화적 총체의 경계 내에' 머물면서 그것의 구성소로 기능하고 있는, 문화체계의 구조적 요소이다. ..... 텍스트와 인간의 관계는 단일한 문화체계 속에 위치하는 서로 다른 '텍스트

 

p.266

 간의 관계'로 간주될 수 있다. 요컨대 그것은 날것으로서의 현실, 혹은 그것의 1차원적 반영이 아니라 차라리 '반영의 반영' '재현 속의 재현'인 것이다.

 

 

p.270

 

 텍스트 ㅡ '매체'에서 '주체'로

 

 텍스트와 문화의 동형성을 강조하는 로트만의 관점

 

 텍스트 자체를 커뮤니케이션의 '매체'로부터 '주체'로 바꿔놓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점

 

 

 p.273

 

 문자 문화의 틀 안에서 청중이 텍스트를 '소비'한다면, 민속문학적 분위기 속에서 청중은 텍스트 안에서 텍스트와 '유희'한다.

 

 

 p.242

 

 수신자의 적극적인 역할, 능동적인 참여자로서 수신자의 위상에 대한 로트만의 본격적인 관심이 발견되는 것은 ... 러시아의 민중 회화 양식인 루복에 관한 글에서이다. ... 민속적 세계에서 발견되는 완전히 독특한 '청중의 입지'를 지적하면서, 로트만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문자 문화의 틀 안에서 청중이 텍스트를 소비한다면, 민속문학적 분위기 속에서 청중은 텍스트 안에서 텍스트와 유희한다.

 

 로트만에 따르면, 루복이란 미학적으로 인지되는 텍스트 자체라기보다는 "청중의 의식 안에서 텍스트로 재구축되기 위한 재료"에 불과하다. 루복의 청중은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단지 쳐다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예쑬적 재구축을 위한 능동적인 행위를 수행하는

 

 p.243

 

 데, 이러한 반복적인 유희의 체험 속에서 청중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소리치고, 공감하며, 휘파람을 불어대는, 공동의 작업을 위한 참여자로서 등장한다" (1976:482) 만일 이와 같은 청중의 입지를 어린 아이들이 그림을 체험하는 방식과 비교해본다면, 이런 유형이 갖는 '유희적 성격'은 곧바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