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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성과 실존의 선택 : 사르트를 통해 본 여배우 장자연의 죽음 / 이현주

snachild 2013. 11. 24. 17:23
이현주식별된 저자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3(1), 2009.5, 23-34 (12 pages)

사르트르는 자신의 타자성으로 주체를 대상화 시키고, 시선을 통한 수치
로서 주체의 코기토를 가능하게 하는 타자를 해명 하였는데, 이는 주체가 타자와 내적 관계를 가지며
주체의 내면성이 타자를 경유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뒷받침 해준다. 본 고는 구체적인 사건의 결말
이 아니라, 타자성의 심연을 가시화하는 삶의 영역에서의 고찰을 통해, 불가피한 죽음의 선택이 아닌
사르트르의 ‘나의 자리’로서의 ‘실존의 선택’에 대해 해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사르트르가 선
택한 ‘실존의 선택’으로서의 ‘삶’은 때로는 박해받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나의 ‘나 됨’을 인식하게 하고,
나의 ‘내면성’을 발견하게 하는 주체/타자로서의 우리 각자를 위한 ‘나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지금까지의 서양철학이 타자의 문제를
올바르게 다루지 못했음을 비판하며 자신의 타자개
념을 개진한다. 그는 주체의 내면성이 타자를 경유
해서만 가능하며, 주체란 모두 타자의 개입을 통해
비로소 발생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타
자를 통해 공간적, 시간적으로 질서 지어진 이 세계
의 상관자로서 우리의 주체성이 정립된다는 것이다.
삶 속에서 타자와의 만남은 원하던/원하지 않던 늘
이루어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개인의
자발적 협력에 의해 강제 없이 광범위한 타자와의
소통이 바라봄/바라보여짐으로서 이루어지고 있으
며, 가시성의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융합
(convergence)과 쌍방향 소통은 푸코의 권력이론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이다. 누구나 익명의/실명의 타
자에게 자신의 생활과 생각을 알리는 개인 블로그나
미니홈피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이른바 퍼블리즌
(public citizen)의 사회가 되었다. 장자연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자살 이전에 그녀는 신인 여배우로서,
또래 이십대 여성들처럼 소통 수단으로서 미니홈피
를 운영하고, 자신의 생활을 일일이 사진으로 찍어
타자들과 공유하고 소통하는 평범한 여성이었다. 그
녀의 마지막 흔적도 미니홈피에 남겨져 있다. 장자
연이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시간은 3월 7일
오후 7시 34분이지만, 미니홈피에 남겨진 마지막 접
속 시간은 3월 7일 오후 3시 44분 53초이다.3) 그녀
는 자신의 미니홈피를 통해 답답하고 힘들었던 자신
의 심경을 공개하기도 하였다.

 

 

‘1인 미디어’ 형식의
블로그이다. 미니홈피란 미니홈피는 타자와 관계를
맺고 싶고, 인간관계를 나누기 위한 욕구와 함께 커
뮤니케이션의 형태로서 자기노출(self-disclosure)
사용하고 있다. 자기 개방 또는 자기 공개라는 개념
으로서 자기 노출은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도록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자기 노출은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인데 보다 적극
적으로는 타인이 물어본다고 해서 다 말해주지 않을
개인적 정보까지도 드러내거나 털어놓는 것을 포함
한다.5) Jourand는 자기노출 커뮤니케이션은 대인 커

그러나 타자에게 보여지는(gaze) 자기노출과 자기
표현에도 필연적으로 타자의 시선이 개입된다.

 

여기서의 타자는
주체와 맞서서 서 있는 것object, 그리고 주체와 다
른Other 자로서의 타자이다. 그러나 이 타자는 <나=
나>라는 공식과 <나≠나>라는 공식의 구별에서 출
발해서, 이 모순의 해소를 거쳐 두 공식의 통일로서
발전한다.
나라는 주체가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형
성되는 것처럼 ‘타자’로서의 ‘너’인 타자 역시 나의
타자이며, 나와 동일한 욕망을 가진 자아이다. 따라
자아는 끊임없이 타자 속에 있는 자기를, 그리고
자기 속에 있는 타자를 확인
하고 싶어 하며, 타자역
시 마찬가지이다. 타자는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나
에게 가르쳐주고 나와 내 자신을 연결해주는 필수
불가결의 매개자라는 존재론적 위치를 가지고 있으
며, 이때의 타자는 자신의 시선을 통해 나를 바라보
면서 나의 세계를 훔쳐가고 동시에 나에게 객체성을
부여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타자와 나의 관계는 상
호성이다. 내가 ‘너’에게 영향을 주듯이 나의 ‘너’는
나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며11) 인간의 모든 행위는
타자와의 관계를 전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
라서 주체로서의 나는 타자에 의해 상처 입을 수 있
는 존재이며, 상처에 노출 될 수 있는 존재, 그리고

타자에게 보여주는 존재로 설명될 수 있다. 상처에
맞닿은 채 책임을 감수하며 타자에게 헌신하고 자신
을 헌신하는 육화된 존재이기에 타자로 인해 자아는
고통 받는 존재이기도 하고, 내어주는 존재이자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인 단독자가 되는 것이
다.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흔적, 그리고 자아의 수동
성으로 인해 생긴 상처와 흔적은 타자를 위한 희생
과 책임의 형태로 던져지게 되어 윤리적 주체의 근
거가 된다. 이때 타자를 수용할 수 있는 주체성의
근거는 바로 감성으로, 감성으로 인해 자아는 타자
를 수용하고 타자로 향하게 되며 타자와의 관계에서
새롭게 구성되게 된다.12)

 

 

타자의 시선은 인식 가능한 어떤 신체적 표현
도, 지각의 대상도 아니다. 타자는 대상을 매개로 하
지 않고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출현하여 나를
대상화 시켜버린다. 나에게 타자는 ‘시선’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는 자’로서 나타난다.

 

 

사르트르는
이를, 타자의 출현으로 인한 나의 ‘내출혈
(hémorragie interne)’16)로 규정한다. 이렇게 주체로
서 타자를 이해함으로써 나는 타자의 시선에 내가
‘보여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군.. 이때의 타자는 인식이 있고 나를 볼 수 있는 그런 타자. 단순한 '대상'과 구별

 

 

마침내 여기서 나는 반성되지 않은
나의 의식에 대해 존재하게 된다. 타자의 시선에 의
해 내가 보여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나는
나의 행동에 대해 깨닫고, 비반성적인 의식을 갖게
된다. 이 비반성적인 의식은 바로 ‘수치(honte)’이다.
이 수치심은 나의 것이 아닌 의식으로 타자의 의식
을 매개로 해서만 생겨나는 의식이다. 이 수치심은
근본구조에 있어서 ‘누구인가 앞에서’ 느끼는 감정이
다. 수치심이 비반성적 의식인 이유는 ‘수치심은, 수
치로서의 자기에(대해)18) 비정립적인 의식’이기 때문
이다.

 

 

우울증이란 ‘무의식적으로 분노가 자신에게 향해진 현상’

 

 

사르트르가 ‘타자가 살고 있는 세계에 내가 출현한
다는 것, 그것이 바로 원죄이다’27)라고 말했던 것처
럼 타자의 시선은 우리를 긴장시키고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사람이 없이 물건만 있는 방에 들어갔을 때,
나는 불편하지 않다. 어떠한 일을 겪더라도, 그 사실
을 아무도 모른 채 나만 알고 있다면, 나는 불편하
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타자가 개입하게 되면 문제
가 달라진다. 그것이 설사 나를 도와주겠다고 약속
한 권력의 대상자라 할지라도 나는 결코 안전한 곳
에 있지 않다. 타자의 시선 앞에서 주체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즉자존재로 추락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허위로 가득한 타자들을, ‘더러운
자식들(les salauds)’이라 말하며 그들을 사물화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미네르바, 사르트르 <구토>, 장용학 <요한시집> 등 다른 텍스트들도 나옴

 

 

본 논문은 사르트르의 작품을 통해 주체를 발생
시키는 타자와의 관계가 필연성을 갖고 있다는 측면
에서 ‘실존의 선택’이라는 논자의 관점으로 여배우
장자연의 죽음을 해석해 보았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타자성으로 주체를 대상화 시키고, 시선을 통한 수
치로서 주체의 코기토를 가능하게 하는 타자를 해명
하였다. 이것은 주체가 타자와 내적 관계를 가지며,
주체의 내면성이 타자를 경유해서만 가능하다는 사
실을 뒷받침 해준다. 이러한 타자와의 관계는 수많
은 타자의 개입이 존재하고, 타자와의 부딪힘을 통
해 상처를 받고, 상처를 입히며 살아가게 되는 우리
의 삶을 해석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된다. 타자는
상처줌을 통해 개입하고, 또한 상처를 입히는 타자
의 손길을 통해 주체가 발생하기에 우리는 타자와의
필연적 관계를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여배우 장자
연의 죽음 역시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해 볼 수 있
었다. 그녀가 남긴 문건으로 인해 권력 관계와 함께
사회적인 파문으로까지 확산된 이 사건은 주체와 타
자와의 관계, 즉 타자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보고/보
여지는 관계가 얼마나 주체에게 수치심과 두려움을
주며 폭력적으로 작용하는 지를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