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자 지향적 재현 체계란 무엇인가?
로트만에 따르면, 예술은 모델이다. 모델로서의 예술은 삶을 재건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인식한다. 예술과 삶 사이에는 ‘모델적 관계’가 존재한다. 모델로서의 예술이 지닌 주요한 속성은 ‘재건(모델화)을 통한 (삶의) 인식’이다. (p.49)
청자를 지향하는 문화의 예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의 개념이 ‘가장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의 개념과 동일시되는 문화가 될 것이다(즉, 최고의 가치는 이해의 용이성이다). 이럴 경우 언어에 이차적으로 부가되는 체계들(*2차 모델링 체계들)의 특수성은 최소한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즉, 최소한의 관례성을 지향하는 이런 텍스트는 의식적으로 자연언어로 된 ‘벌거벗은’ 전언의 유형을 따르면서, ‘직접성’을 모방하고자 한다.
>> 직접성 / 투명성, 반투명성
로트만에 따르면, 서술 텍스트는 두 가지 방식으로 구축될 수 있다. 첫 번째 방식은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의 도움을 빌린 이야기’이다. 언어-기호는 주어진 언어의 규칙과 메시지의 내용에 따라 결합되어 ‘사슬’을 형성한다. 선형적 구조를 지니는 언어적 서술은 무엇보다도 ‘첨가’, 즉 새로운 단어와 구절, 문장을 ‘덧붙임으로써’ 구축된다. 당연히 이러한 서술은 텍스트 용량의 증가를 가져온다. 한편 두 번째 방식, 즉 내적으로 비분절적인 도상적 유형의 서술은 이와 다르다. 그것은 새로운 것의 첨가가 아니라 “내적 요소의 변형과 재배치”를 통해 구축된다. 당연히 이 경우 텍스트 용량은 늘어나지 않는다. ... 도상적 서술의 가장 명징한 예로 드는 것은 “유아용 만화경”이다. 그에 따르면, 형형색색의 작은 유리조각들은 대칭적 형상의 무한한 변형을 만들어내면서, 일정한 서술을 창조한다. ... 전통 민화 양식 루복(p.92)
도상적 기호가 서술 텍스트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은 그 속에 어떤 ‘내적인 움직임의 요소’가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p.95)
모든 텍스트(특히 예술 텍스트)는 우리가 '청중의 형상'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어떤 것을 포함하고 있는바, 이러한 청중의 형상은 실제 청중에게 일종의 규범적 코드로서 적극적으로 작용한다. (p.256)
문자 문화의 틀 안에서 청중이 텍스트를 소비한다면, 민속문학적 분위기 속에서 청중은 텍스트 안에서 텍스트와 유희한다.
로트만에 따르면, 루복이란 미학적으로 인지되는 텍스트 자체라기보다는 "청중의 의식 안에서 텍스트로 재구축되기 위한 재료"에 불과하다. 루복의 청중은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단지 쳐다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예술적 재구축을 위한 능동적인 행위를 수행하는데, 이러한 반복적인 유희의 체험 속에서 청중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소리치고, 공감하며, 휘파람을 불어대는, 공동의 작업을 위한 참여자로서 등장한다" (1976:482) 만일 이와 같은 청중의 입지를 어린 아이들이 그림을 체험하는 방식과 비교해본다면, 이런 유형이 갖는 '유희적 성격'은 곧바로 드러난다. (p.242-243)
>>>> 로트만 책 여기저기서 붙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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